인생이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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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서 1장 1-7절 설교 제목 인생이 참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1 다윗의 아들로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었던 설교자가 한 말입니다.
2 설교자가 말합니다. 인생은 정말 허무하고 허무하다. 세상 만사가 너무 허무하다!
3 사람이 해 아래서 일하는 모든 수고가 무슨 유익이 있는가?
4 한 세대가 가고, 다른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5 해는 떴다가 지고, 다시 떠오르기 위해 그 떴던 곳으로 급히 돌아가는구나.
6 바람은 남쪽으로 분다 싶더니, 다시 북쪽으로 향하고, 다시 이리저리 돌아 제자리로 돌아간다.
7 강들은 모두 바다로 흘러들지만, 바다는 결코 넘치는 법이 없다. 강물도 다시 돌고 돌아 제자리로 돌아간다.
시작
사람이 죽음을 알수록 하나님 앞에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4년 전에도 한 번 죽음의 위기 가운데 있었습니다. 사역에 괴로움 가운데 성도를 섬겨도 열매가 보이지 않는 괴로움 가운데 수면을 청했습니다. 그 시간 목의 기도가 막혀 한동안 호흡을 하지 못했습니다. 힘을 내어 보았고 발버둥을 쳤으나 숨을 쉬지 못했습니다. 호흡하지 못하는 고통 중 죽었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순간이지만 세상에서 이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아싸 이제 나 죽는다.’, ‘이제 세상 근심 걱정 다 두고 하나님께 간다.’, ‘나 천국간다.’, ‘나 이제 이 고통에서 해방된다.’
힘을 빼고 죽음을 기다릴 때, 갑자기 숨이 쉬어집니다.
숨이 쉬어지고 한참 잠을 청하지 못합니다. 신기했습니다. 세상 이렇게 행복한 순간은 없었거든요.
근심, 걱정, 두려움을 – 세상의 괴롬이 나의 모든 것을 삼키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크게 두 가지를 경험하였습니다.
하나는 인생이 진짜 짧으며 인생의 시작과 과정과 끝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둘은 허무함이었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사역과 노력, 근심, 걱정, 두려움, 때론 가진 행복, 수고들을 쥐지 못합니다. 그동안 쌓아 봤자. 결국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여기서 크게 달라진 것들이 있었죠. 세상의 평가와 세상의 노력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지를 돌아보는 일입니다.
목회자라는 이름으로 평가받습니다. 몸 관리는 하고 있는지. 설교는 어떻게 준비하는지, 사는 모양과 꼴은 어떠한지를 평가받고 그 시선 안에 갇혀 살기도 하죠. 어떤 경우 사람의 숫자로 평가 받기도 합니다. 김선민 목사가 뛰어난 목회 능력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았다. 사람들이 어떠하다고 평가한다. 결과가 좋아 보이지 않을 때는 그 평가들처럼 저도 괴로움에 빠져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인생이 짧다는 것을 직면했을 때, 그런 평가들과 시선과 눈에 보이는 결과들이 제 인생에서 남을 까요. 그동안 쌓아 두었던 학력과 돈과 명예를 다른 사람들이 기억해 줄지 모르겠지만 그 가진 것과 기억을 가지고 가지 않습니다.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유일하게 남는 건 하나님 외에 없죠. 무엇을 가져갈까요. 무엇이 평안을 우리에게 제공해 줄까요.
짧은 경험이지만 이후부터 삶이 자유로워 지더라고요. 사람들은 제가 어떤 사역을 하던 기도를 하던 그 마음 하나 헤아려 줄 능력이 없습니다. 결과를 보고 결과를 평가합니다. 성과를 봅니다. 우리들의 겉모습을 봅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우리는 영원히 가져가지를 앉습니다.
하나님 앞에 어떠한지가 지극히 중요해집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지고자 하니. 사람들의 평가와 말, 권력, 명예, 돈이 내 삶에 허무함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그것들에게 목숨 걸 필요가 없으며 그것들에게 매달릴 필요가 없습니다. 어차피 인생에 유일하게 남는 건 하나님 외에 없죠.
그리고 오늘 말씀에 이런 지식을 지혜라고 합니다.
2. 인간을 자각함
오늘의 말씀을 통해 인간 인생의 한계를 그대로 드러냅니다.
1절에 이를 전하는 전파자를 먼저 소개합니다.
다윗의 아들로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있었던 설교자가 한 말입니다.
자신을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 설교자라고 소개합니다. 여기서 설교자라는 것은 총회의 지도자 총회의 연설자를 말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인간 중 인간으로 최고의 지혜를 베풀어 주었으며 왕정 초반에 뛰어난 통치를 하였던 이스라엘의 왕인 솔로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솔로몬은 세상에 누릴 것을 다 누린 왕이었습니다. 부와 명예,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능력 – 세상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모든 것을 가진 왕이었습니다.
모든 것을 가졌던 왕이 ‘전도서’를 쓰는데 첫 구절부터 탄식을 자아냅니다.
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이를 제대로 해석하기 위해서 ESV 역본을 찾아보았습니다.
Vanity of vanities, says the Preacher, vanity of vanities! All is vanity.
배너티 어브 배너티즈 세즈 더 프리처 배너티 어브 배너티즈 올 이즈 배너티.
허영심의 허영, 허영심의 허영! 모든 것이 허영이다.
우리 개역개정역본, 쉬운성경과 영어 역본을 볼 때, 오늘 본문을 제대로 읽기에 부족함이 있습니다.
히브리어 원어의 뜻은 우리가 읽는 것과 상당히 다른 느낌을 제공합니다.
개역개정 4판에서는 장르상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라고 하는 건 '장르'를 고려하지 않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유는 시라는 장르는 아래 문맥의 에너지를 표현해야 하는데 개역개정 4판은 은근 '힘차다?'
쉬운성경도 인생은 정말 허무하고 허무하다. 세상 만사가 너무 허무하다!
다시 히브리어로 돌아가면
개역개정의 헛되고 헛됨을 '하벨 하발림'이라고 하는데 이 뜻을 동시에 '호흡들의 호흡'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원어를 우리말로 발음하고 한 번 어떤 느낌인지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벨 하발림 아마르 코헬레트 하벨 하발림 핰콜 하벨 -
헛되고 헛되다는 말보다. 단순한 ‘한숨’ 길게 쉬는 모양과 같습니다.
에휴 – 에휴우 – 에휴 – 에휴우 – 모두가 에휴
한숨 쉬고 한숨 쉬는 모양을 오늘의 본문으로 만들어 내었습니다.
3절에 이 한숨이 무엇을 말하는지 밝히죠.
3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새번역으로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에서 아무리 수고한들, 무슨 보람이 있는가?
이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을 돌아볼 때 우리의 인생에 대한 지혜자의 평가입니다.
하나님의 평가입니다.
지혜자는 하나님을 알았고 인간의 인생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인생을 둘 때 인간의 한계의 인간이 지닌 인생의 모양들을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모양과 어떠한 힘과 어떠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보았자. 우리의 결국은 -하벨 하발림 아마르 코헬레트 하벨 하발림 핰콜 하벨 -
한숨처럼 공기 중에 허무하게 퍼져나가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지혜자는 우리에게 전하고 있죠.
동시에 2-3절에서 보이지 않던 하나님을 존재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인간 인생의 한계를 분명히 밝힙니다. 동시에 솔로몬은 열왕기상 8장 27절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우리에게 비교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하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성전이오리이까.
결국 인간의 허무함과 하나님의 위대함을 아는 일 – 이것이 지혜입니다.
솔로몬이 배운 지혜는 단지 솔로몬만이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아버지 다윗에게서 배웠습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깨달은 지혜를 다윗의 시편을 통해서 더욱 명확하게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3. 먼지와 다름없는 우리의 공간
첫 번째로 우리는 공간을 통해 인간 인생의 허무함을 알게 됩니다.
시편 8편 1-4절 한 번 읽겠습니다.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인간의 인생을 인간 앞에 두게 될 때 우리는 인간의 높음과 낮음으로 평가하고 잠시의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거나 고통과 괴로움을 경험합니다. 인간은 비교하는 존재들이며 인간은 남들과 비교하며 자신의 삶을 평가하죠.
어른들이 말하는 세상에서 어떤 직업, 어떤 지위, 남들 앞에서 어떻게 군림하는지, 부림을 받는지 비교하고 또 비교합니다. 인간의 괴로움, 한탄 속에서 또한 허무 속에서 성경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만듭니다.
시편 8편의 저자가 여호와를 묵상합니다. 주의 이름을 묵상합니다. 아름다움을 묵상합니다. 영광의 큼을 묵상합니다.
그리고 3절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봅니다.
사람이 사람을 돌아보며 인생들을 고민하다. 하늘을 보니.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달과 별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우리 인간에게는 달과 별처럼 높고 위대한 것들을 바라나 인간이 감당하지 못할 크기와 높이를 자랑하죠. 인간들이 원하고 바라는 것들 스타가 되고 싶다. 높은 자리에 있고 싶다. 남들보다 빛나고 싶다- 그 욕구들을 달과 별로 표현하지만 결국 그 위대하고 높은 것들은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들이며 하나님께서 손가락으로 지으신 우리가 보기에 크고 위대한 것들이나 하나님 앞에서 한 없이 작은 것들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 앞에 우리의 존재를 놓아둡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우주 가운데 나라는 존재가 있습니다.
무한하신 하나님과 나를 비교해 놓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높아 보았자.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이 됩니다. 우리가 경험하는 거대한 땅 위에 통치자가 되고 말죠. 그러나 아무리 넓은 공간의 위대한 별이 되어 보았자. 하나님의 무한한 공간 아래에 우리는 한낱 먼지보다 작은 존재임을 자각하게 됩니다.
우리의 근심과 걱정을 가지고 온 고통을 쥐고 사는 이 공간마저도 하나님 앞에서 먼지보다 작은 공간에 먼지보다 작은 걱정을 끌어안고 사는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볼 때 – 정확히 말씀드리면 별 것도 아닌 것에 목을 걸고 사는 나를 보게 됩니다.
인간과 인간사에 나의 인생의 어려움과 힘들고 고충을 달고 살면 나와 인간을 바라볼 때, 크고 두렵고, 어렵고 무서운 일이 될 수 있겠지만 하나님 앞에 이 걱정스런 공간에 울음을 털어 놓았을 때 – 이것들은 죽으면 없어질 – 내가 이 공간에 없으면 없어질 –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겠죠.
청와대, 백악관, 그리고 저도 가끔 살고 싶은 저 좋은 집들. 인간들이 바라는 욕망의 공간들이지만 결국 하나님 앞에는 그 무한한 공간 속에서 아무것도 아닌 것들임을 가져가지도 못하는 허무한 것들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지혜는 이 공간의 허무함을 전하였습니다.
4. 먼지와 다름없는 우리의 시간
두 번째 인간의 인생을 돌아 볼 때 우리의 시간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이 허무함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시편 144:3-4
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시간으로 돌아봅시다.
우리가 경험하는 시간들이 매우 귀함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동시에 우리가 가진 시간들이 하나님 앞에 내어 놓게 되었을 때 얼마나 허무한 시간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144편을 볼 때 시편의 저자는 ‘사람’에 관해서 묻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인생을 살펴 보시는데 이 지혜로운 시편의 저자는 인간의 인생에 대해 이렇게 밝히죠.
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간에 속박되지 않으시는 분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 무한한 시간 속에서 하나님과 나를 보게 될 때 우리의 시간은 어떠한가요.
때에 따라 우리는 위기를 경험합니다. 때에 따라 시간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에 쌓여 살 때가 많습니다. 시간을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때에 따른 시험과 때에 따른 일과가 나의 숨을 막히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인간에 태어나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시간은 두렵고 괴로운 것들을 많이 만들어 냅니다.
우리가 지닌 시간을 우리 안에서 살펴 볼 때, 각자 보내는 시간에 대한 평가를 하곤 합니다.
누구는 1년 동안 얼마를 벌었다느니. 한 사람의 시간의 가치가 얼마라느니, 누구는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여 좋은 대학, 기업에 취직했다느니. 등등의 평가와 말들을 우리는 – 우리가 사는 인생 중에 쉽게 경험합니다.
그 작디 작은 공간에 작디 작은 인간에게는 그 시간이 크고 두렵고 인생을 바꾸어 낼만한 시간들처럼 보이나. 결국 하나님 앞에 서게 된다면 그 시간마저도 허무하고 허무한 것들로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세상 시간을 잘 써서 좋은 자리와 많은 물질을 가져간들 – 내 자녀와 자손이 돈과 물질을 소유한들 나뿐만 아니라. 내 자녀와 자손이 모든 것을 가져가지 못합니다. 그들이 누린 시간 이어봤자. 하나님의 영원 앞에서는 한낱 모든 시간에 점 하나 남기지도 못하죠. 무한 속에 유한한 우리의 시간의 결국은 한숨 외에 고백할 게 없습니다.
우리가 인생의 고난과 괴로움, 탄식의 시간을 보냅니다. 어느 때는 울며 어느 때는 죽고 싶기도 하죠. 이는 신앙을 가진 누구도 경험하고 생각해 보았을 일들입니다. 그 시간이 주는 괴로움이란 한계란- 되돌릴 수 없는 영원하지 않은 시간이 주는 아픔이란.
결국 하나님 앞에 그 영원에 놓아두었을 때 – 아무것도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이를 지혜롭다 – 라고 말을 하죠.
5. 왜 기독교인가.
시간과 공간 – 우리를 옭아매게 만드는 것들입니다. 이 이 공간에서 있는 인생의 수많은 이야기들 기쁨, 즐거움, 행복, 괴롬, 고통, 탄식. 이 시간 안에 있는 인생의 수많은 이야기 기쁨, 즐거움, 행복, 괴롬, 고통, 탄식.
이를 하나님의 시간과 공간 앞에 놓는다는 솔로몬이 오늘 고백한 것과 같이
한숨 쉬고 한숨 쉬고 한숨 쉬고 한숨 쉬고 모든 일에 한숨 쉬는 일 외에 없음을 고백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봤자. 무한한 공간 아래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작디 작은 인생의 공간을 자리잡고 있으며 기억조차도 하지 못하겠죠. 무한한 공간 아래서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우리의 인생이라봤자. 무한한 시간 아래서 눈에 보이지도 않을 작디 작은 인생의 시간을 자리 잡고 있으며 이것조차도 기억하지 못하겠죠. 영원한 시간 아래서 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인생의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 그것밖에 되지 않는데 우리는 이 기억조차 하지 않을 것에 매달려 죽기 살기로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수고와 노력을 우리가 가지고 영원을 살아갈까요. 영원을 채워 낼까요. 아니면 허무하게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요. 여기서 뭐 쥐고 영원히 사실 분 계시면 – 아예 없죠. 있을 수 없죠.
결국 모든 인생은 가진 것 없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됩니다.
모든 인간의 인생은 – 모든 인간에게 남는 건 하나님 외에 없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고백이며 그리스도인이 인생을 살아가는 힘입니다.
이를 아는 자를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릅니다.
6. 결론
결론을 맺겠습니다.
저는 이전 청년들을 섬기면서 노는 일, 취업, 학업, 여러 핑계로 예배에 빠지는 일에 대해서 지적하였습니다. 하나님 대신 우상을 섬기는 일이죠. 또한, 그것들이 자신의 인생을 돌봐준다고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과거 대학생들을 붙들고 교회 출석하도록 요청하였을 때 그 친구들이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취업 준비하느라. 고시 준비하느라. 청소년들은 시험으로 예배에 출석하지 않습니다.
좋은 대학, 사람들의 인정, 좋은 직업, 많은 연봉, 좋은 대학이 자신의 인생의 다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오늘의 본문을 볼 때- 그런 것들이 영원을 충달해 줄 수 있을까요. 영원 안에서 무한히 짧은 인생을 살아가고 난 뒤에 그런 수고의 여러 부품을 쥐고 영원을 채워 낼까요.
결국은 아무것도 쥐지 못합니다.
과거 하나님을 전하였던 제자들이 있습니다. 그 친구들이 와서 대학 어디 갔다. 취업 어떻게 했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수고와 노력에 대해서 칭찬을 하곤 하죠. 그러나 제가 항상 유념하도록 유도한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
하나님 앞에 영원과 무한 앞에 그게 자랑거리일까요.
먼지보다 작고 영원의 기억에도 남지 않을 것들을 왜 자랑거리가 될까요.
친구 여러분 인생에 많은 것을 놓고 포기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놓아야 한다는 것을 지혜자는 분명히 밝힙니다.
전도서 12장 1절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우리에게 남는 건 결국 하나님 외에 없습니다. 세상 노력과 수고를 쌓아 두고 살아가지만 결국 유일하게 우리 앞에 계실 분이 하나님 외에 없습니다. 모든 인간의 수고와 노력을 한다고 할지라도 믿든지- 믿지 않던지 하나님 외에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짧디 짧은 별 기억도 남지 않을 인생을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죽으면 없어질 – 순식간에 사라질 것들에 목숨을 걸어야 할까요.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참 지혜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 결국은 하나님 외에 남는 게 없습니다. 사라질 것에 무한에 비해 무한히 작은 것들에 목숨을 매여 사는 게 얼마나 미련한 일인가요. 하나님 외에 없습니다. 하나님 외에 남는 게 없습니다. 다시 간절히 바랍니다.
세상 미련함에 빠져 미련함을 자랑치 말고 참 진리를 사모하여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참 성도로서 이 땅 가운데 살고 세워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바랍니다.
이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이 무한한 공간과 영원을 통치하시는 참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참 지혜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을 경험하는 우리 주님의 성도 머리 위에와 세광교회 중고등부 위에 이제로부터 영원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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