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에 관하여

청소년부 예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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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마태복음 6:9-13(신약 8쪽)
마태복음 6:9–13 NKRV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반가워요.
오늘은 주기도문에 관한 얘기를 하려고 해요. 제가 이번 주간 새벽기도회를 인도하면서 주기도문을 함께 나눴는데요. 그 덕분에 주기도문을 좀 더 집중해서 들여다 볼 수 있었어요. 또 마침 우리가 하는 공과가 주기도문에 관한 것이니까요. 한번 전체 내용을 정리한다고 생각하고 주의 깊게 들어보면 좋겠네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얘기를 하려는데요. 주기도문은에는 총 6개의 기도가 나와요. 이 각각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서요. 주기도문을 통해서 얻게 되는 기도의 교훈을 나누는 것으로 얘기를 마무리 하려고 해요.
참고로 주기도문은 성경에 두 군데 나와요.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서요. 둘을 비교해 보면, 몇 가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오늘 우리는 신약성경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주기도문을 살피려고 해요.
그럼 본격적으로 6개의 기도를 하나씩 소개하도록 할게요.
주기도문의 첫 번째 기도는 이래요.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받으소서’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겠다는 결단을 말해요. 무슨 말이냐면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해 지소서’ 기도해야지만 하나님이 거룩해 지는 것은 아니에요. 사실 하나님은 본래부터 거룩한 분이시죠.
거룩이라는 말은 구별된다는 말인데요. 인간과 짐승은 구별되잖아요.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다른 모든 존재는 구별되죠. 그리고 그 구별을 통해 하나님이 다른 어떤 것에 비할 수 없는 얼마나 위대하신 분인지를 알 수 있죠. 이렇게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미 거룩한 분이세요.
그럼에도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받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변화를 위해서예요. 가령, 여러분들의 부모님과 선생님의 명성은 어떻게 높아질 수 있을까요? 여러분들의 행동과 삶을 통해서겠죠. 여러분이 훌륭한 행동과 삶을 산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길러주신 부모님과 여러분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죠.
물론 여러분이 꼭 훌륭해야지만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훌륭해지는 것은 아니죠. 여러분이 훌륭하지 못할지라도 여러분을 키우고 가르치신 분들은 사실 그만한 능력을 행했다는 면에서 이미 훌륭하신 분들이지요. 그러나 여러분들의 삶이 그것을 더욱더 명예롭게 또는 빛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은 이미 거룩하신 분이지만요. 오늘 우리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더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이죠. 그래서 이 기도는 내가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서 그와 같이 하나님을 높이는 찬양의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나타나는 것이에요.
주기도문의 두 번째 기도는 이래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세 하소서’ 이는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결단이고요. 이것이 주기도문에서 가장 핵심적인 기도에요. 왜냐하면, 이 기도가 결국 주기도문을 통해 이루려는 기도의 목표나 목적이 되기 때문이에요.
이 기도는 하나님 나라에 관해 알아야 하는데요. 하나님의 나라 또는 천국이라 부르는 것은요. 죽어서 가는 나라 또는 하늘 어딘가에 있는 나라가 아니에요. 천국은 살아서도 누릴 수 있고요. 어떤 공간의 개념이 아니라, 어떤 상태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깐 천국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상태를 말해요. 이는 내 삶을 내 뜻과 의지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따라 살아가는 상태를 말해요. 그러니 천국은 죽어서 가는 어떤 곳이 아니라요.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상태를 통해 경험되는 거예요.
그리고 앞선 기도와 마찬가지로 이 또한 내가 기도하든 안 하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그의 나라를 이루실 것이지만요. 그럼에도 이 기도를 하는 것은 앞선 기도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그에 걸맞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위해서 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게 살겠다는 결단이지요.
주기도문의 세 번째 기도는 이래요.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뤄지게 하소서’이는 우리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 두며 살겠다는 결단이에요. 이 역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은 우리의 기도로 말미암는 것은 아니에요.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유롭게 자신을 뜻을 펼치실 수 있는 것이죠. 그러니 하나님이 속한 영역인 하늘은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뤄진 상태에요.
그러나 우리가 속한 땅은 하나님의 뜻이 완전히 이뤄지지 못한 상태이지요. 이는 하나님이 무능력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생각해 보면, 우리의 삶에서 추구하는 목표는 대체로 하나님의 뜻에 관계되어져 있지 않는 경우가 많아요. 가령, 여러분이 좋은 성적을 거두고 어떤 일에 좋은 결과를 얻기 바라는 것이 대체로는 하나님의 뜻과 큰 관련은 없지요.
물론 그렇다고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다면, 하나님이 뜻을 이루지 못하시는 것도 아니에요. 단지 하나님은 우리가 변화할 시간을 주고 계신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곡식과 가라지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셧어요.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이 상할까 염려한다고 말이지요. 그러나 추수 때가 오면, 곡식은 창고에 저장해 둘 것이지만, 가라지는 아궁이 던져서 태울 것이라고도 말씀하셨어요. 이는 하나님은 언젠가 그분의 뜻을 완전히 이루실 것이라는 거예요.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게 해달라는 기도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때가 이르기 전에 그 분의 통치를 받아들이고 그 분의 뜻에 따라 살아갈 것을 결단하는 기도에요.
여기까지 주기도문의 첫 번째부터 세 번째에 이르는 기도를 하나님 청원이라고 해요. 이는 기도의 주어가 하나님이고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뜻에 관한 것이죠. 반면에 주기도문의 네 번째부터 여 섯 번째에 이르는 기도를 우리 청원이라고 해요. 이는 우리의 삶에 관계된 기도이고 앞의 하나님 청원과는 구별되는 기도이지요.
주기도문의 네 번째 기도는 이래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 이는 하나님을 우리의 생명의 주인으로 믿고 그 은혜 아래 살겠다는 결단이에요. 여기서 일용할 양식이라는 것은 하루의 삶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양식을 말해요.
이와 같은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 무엇이고, 그것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깨닫게 해줘요. 달리 말하면, 우리는 삶에서 필요 이상의 것들을 추구하거나 욕망하고 있다는 것이고요. 우리에 속한 것들이 나의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말해줘요.
그러니 우리가 구할 것은 일용할 양식이면 충분한 것이고요. 더 정확히는 이것을 공급해주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거예요. 그리고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우리 생명의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믿고 그 믿음에 따라 살겠다는 거예요.
주기도문의 다섯 번째 기도는 이래요.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소서’ 이는 우리의 관계에 따른 기도로써, 서로 적대하는 관계를 용서를 통해 개선하고 사랑의 관계로 변화시키겠다는 결단이에요.
성경의 죄의 문제가 모든 관계의 파괴를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 있어요.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죄로 인해 멀어졌고요. 인간과 인간의 관계도 죄로 인해서 서로를 미워하고 원수가 되게 만들죠.
그리고 이 죄라는 단어를 성경의 원어인 헬라어로 보면, ‘채무, 빚’이라는 뜻을 가진 말인데요. 결국 죄라는 것은 우리의 관계 속에서 반드시 청산되어야 할 빚이라는 거예요.
한편 이는 우리 스스로가 청산할 수 없는 정도의 빚이기도 해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묵혀진 빚 또는 죄를 청산하고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 또는 우리와 이웃과의 관계를 바르게 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곧 허물을 용서하고 사랑을 이루는 관계로 나타나는 거예요.
주기도문의 마지막 여섯 번째 기도는 이래요.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소서’ 이는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게 해달라는 기도로 사탄의 종노릇하지 않겠다는 결단이에요.
사실 이 기도에는 ‘사탄’으로 대표되는 악한 자가 전제 되어 있어요. 그러니깐 우리를 시험에 빠트리고 우리를 악에 속하게 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이죠. 바로 그러한 존재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해 달라는 거예요.
이는 한편으로 우리에게 깨닫게 해주는데요. 사탄이라는 악한 자의 존재와 그 위험성을 말이지요. 어떤 이들은 말해요. 세상에 그런 것이 어디 있냐고 말이죠. 그러나 성경은 사탄과 같은 악한 세력의 존재가 있음을 말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에 주의하고 경계할 것을 명하고 있지요.
이는 마치 이런 거예요. 우리가 도둑이나 간첩을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요. 그것의 위험성을 간과할 때, 우리는 언제고 그로부터 위협받을 수 있어요. 반면에 그것에 너무 집중하면 우리의 생활이 불가능해 질 수도 있고요.
그러니 여기에는 균형이 필요해요. 여러분이 외줄타기 하는 장면을 보았는지 모르지만, 외줄타기 할 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면 외줄에서 떨어지게 돼요. 그래서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않으며 균형을 잡아야지 외줄을 제대로 탈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요. 사탄과 악의 세력에 관해서도 세상에 그런게 어디에 있어 하는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과 모든 일은 그 악마로부터 비로되었다는 또 다른 편으로 치우친 생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게 만든다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악의 존재를 경계하는 한편,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것이지요.
이를 통해서 우리는 사탄과 악의 세력의 시험에 빠지 않게 되는 것이고요. 그로부터 벗어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주기도문의 핵심 기도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하소서라고 했는데요. 결국 악의 세력을 경계하고 그로부터 벗어나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고 이루는 삶이에요. 달리 보자면, 오늘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있고, 악의 세력에 지배를 받고 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하는 거예요.
참고로 우리가 알고 있고 또 오늘 우리가 살펴본 마태복음의 주기도문은 사실 이렇게 끝나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이 있사옵나이다. 아멘’ 그러나 이 내용은 누가복음의 주기도문에는 없는 것이고요. 또 마태복음에도 괄호에 들어 있잖아요. 고대의 사본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는 것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이는 후대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고요. 또 이는 사실 기도라기보다는 송영이라고 봐요.
송영은 찬양을 말하는 것인데요. 유대인들과 초대 기독교인들은 기도나 예배의 끝에 하나님을 찬양하는 전통이 있었어요. 여러분이 그런 장면을 보았나 모르겠는데요. 예배 끝나면, 오르간 반주를 하거나 후주라는 것으로 음악을 연주하곤 하는데요. 이것이 바로 송영의 전통을 따르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은 예배의 마지막은 전통적으로는 이 송영까지 완전히 끝나고 마쳐지는 거예요.
그리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하는 것은 기도라기 보다는 송영이라고 할 수 있고요.
시간 관계상 간단하게만 살펴본 거예요. 그래서 좀 더 세부적으로 설명할 부분들을 건너 띄었는데요. 제가 이 얘기만 하고 마치려고 해요. 주기도문을 통해 저는 기도의 교훈을 얻게 되었는데요. 기도는 나를 버리고 하나님을 채우는 것임을 알게 됐어요.
주기도문은 이를 잘 드러내 주는데요. 주기도문의 6개의 기도에서 ‘나’를 주어로 하는 기도는 없어요. ‘하나님’ 또는 ‘우리’를 주어로 하죠. 이에 따라서 하나님 청원과 우리 청원으로 나누기도 하고요. 그러니 주기도문의 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니에요.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예수님이 우리에게 가르쳐주시는 진정한 기도의 모습이기도 하죠.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나를 위해 기도하는데요. 예수님은 기도가 자신의 목적과 욕심을 위한 것이 아님을 주기도문을 통해 가르치고 있어요. 오히려 하나님을 위한 기도여야 한다는 것인데요. 그래서 기도의 순서도 하나님의 뜻을 위한 하나님 청원으로부터 시작하고요. 이어서 우리의 삶을 위한 우리 청원으로 옮겨가요. 그러니 기도는 나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담는 것이 돼죠.
저는 여러분들이 주기도문을 통해서 이것을 꼭 기억했으면 해요.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고, 나를 버리는 아니 나를 넘어서는 것이라고 말이지요. 오늘 여러분이 이와 같이 기도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간절치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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