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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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우리가 받은 은혜
들어가는 말: 우리가 받은 은혜
여러분, 이제 벌써 한해가 다 가고 우리는 11월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52주 중에 여러분과 함께 할 22년도는 오늘을 포함해서 5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난 여름 수련회를 통해 참 큰 은혜와 도전을 받았습니다. 여름수련히를 마치며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하겠다. 말씀과 기도를 더 열심히 해보겠다. 하나님 말씀을 따라 착하고 바르게 살아보겠다 등등 여러 다양한 다짐들을 했었습니다. 그런 뒤,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기간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고등부에서는 야외예배와 연합특강, 체육대회를 했었죠. 사회적으로는 이태원의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났고, 국가적으로는 러시아가 전쟁에서 패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개개인을 살펴보면, 고삼 선배들은 수능이라는 중요한 시험을 치루기도 했고, 다른 친구들도 중간고사를 마무리 짓고 이제 학기말 고사를 준비하고 있지요. 누군가는 꿈을 찾아 달려가기도 했고, 누군가는 꿈을 바꾸며 다시금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또 누군가는 사랑하는 친구를 만나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이별의 아픔을 경험하기도 했습니다. 아픈 친구도 많이 있었고, 키가 더 크거나 더 건강해진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참 여러 일들이 있었죠.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여러분이 수련회때 받은 은혜, 여러분이 예배때 받은 은혜와 감격은 여전히 안녕하십니까? 여전히 여러분이 잘 붙잡고 그 은혜와 감격, 도전을 잘 유지하고 키워 나가고 계신가요? 그런 기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리진 않았나요?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이전에는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마음이 식어버린 한 교회의 이야기를 나눠볼까합니다. 그 교회는 오늘 함께 읽은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서론: 라오디게아의 특징(돈, 의복, 의술 but 물문제)
서론: 라오디게아의 특징(돈, 의복, 의술 but 물문제)
라오디게아라는 도시는 로마제국의 중요한 무역로 두개가 만나는 곳에 위치한 도시로서 많은 돈이 오가는 곳이었습니다. 이 곳은 비옥한 땅을 가지고 있어서 양을 키우기에 너무나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길러진 양들의 털은 품질이 좋아서 좋은 옷을 만들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에서 만들어진 옷들은 이 도시를 대표하는 상품이 되었지요.
의복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의약품 재료가 풍부했습니다. 이 곳에서 만들어지는 연고와 안약은 효과가 뛰어나서 로마 제국의 많은 사람들이 라오디게아의 약을 선호했습니다.
라오디게아의 좋은 위치와 그들이 갖고 있는 품질 좋은 의복과 약품들은 도시를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로인해 1세기 당시 도시 안에 은행이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금융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부유해진 그들은 자신들에게 부족한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평안을 해칠 자는 그들을 다스리는 황제말고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황제를 숭배하며 그들의 삶을 방해하지 말아주시길 빌었고 제때제때 조공을 바치며 평화로운 삶을 유지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갔지만 예수님이 보시기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몸은 부유해졌지만, 그들의 영혼과 마음은 그렇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전에 처음 예수님을 믿은 당시의 신앙은 온데 간데 없고 부유해지고 편안해져서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17절의 말씀입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넘치는 부로 인해 어려움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에게서 생겨나는 값비싼 옷들과 의약품들은 그들을 부유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전혀 곤고하지도 않고 가련하지도 않았습니다. 가난과는 거리가 멀었으며 눈이 멀기보다는 눈이 깨끗하게 잘 보였고, 벌거벗기 보다는 아름다운 옷을 갖춰입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을 향해 곤고하다, 가련하다, 가난하다, 눈이 멀었다, 벌거벗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은 그들의 육적인 모습때문이 아니라 영적인 모습때문입니다. 영적으로 가난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문제여서 영적으로 가난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은 그들의 행위 때문이었습니다. 15절의 말씀입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이런 부유하고 잘나가는 도시에도 문제는 있었습니다. 이 도시에는 주민들에게 공급할 물이 넉넉하지 못했습니다. 도시에서 제일 가까운 곳 샘은 10km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곳까지 수도관을 설치하여 물을 끌어다 사용했습니다. 그곳에 있는 물을 10km나 옮겨야 했기 때문에 물은 미지근하게 식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렵게 끌고온 물 맛도 좋지 못했습니다. 어떠한 관리는 라오디게아의 미지근한 물이 구토를 유발할 만큼 맛이 없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바로 옆에 있는 히에라볼리라는 도시는 치료효과가 좋은 따뜻한 온천수가 나오는 것으로 유명했고, 골로새는 청량감이 좋은 시원한 물이 나오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그곳들의 물과 비교했을 때 라오디게아의 물은 쓸모없는 물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행동을 히에로볼리처럼 따뜻하거나 골로새처럼 차갑고 시원하지도 않은 미지근해서 구토하게 만드는 무익한 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그들의 행위가 무익할까요? 그 이유는 바로 그들이 14절에 기록된 것처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예수님의 제자다운 삶을 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충성되고 참되지 못했습니다. 달리 말하자면 그들은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지 못했고, 진실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자신의 부유함에 빠져 창조의 근본이신 이를 의지하지 않고 자신들의 돈으로 모든 것을 창조하고 만들어 낼 수 있는 냥 의기양양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진실된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행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무익한 행위였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의 말씀처럼 예수님의 제자로서 말씀을 삶 속에서 나타내는 신실하고 진실된 증인된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에는 유익하고 멋있는 삶일지 몰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은 하나님의 눈에는 무익한 삶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16절의 말씀처럼 그들을 입에서 토해버리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신실하고 진실된 증인으로서, 유익한 자로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본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말씀과 회개)
본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말씀과 회개)
이런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18절의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예수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주님으로부터 나오는 금과 옷과 안약을 사라고 말씀하십니다. 스스로는 부유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부유하지 못했고, 벌거벗었으며, 눈이 먼 자들이었던 그들에게 예수님은 당신으로부터 나오는 연단된 금을 사서 진정으로 부요해지고, 흰옷을 사서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며, 안약으로 가리웠던 눈을 뜨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로부터 나온 것이 예수님으로부터 나온 금과 옷, 약으로 부유해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를 부요하게 하는 것, 곧 말씀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른 것이 아닌 말씀으로 우리 삶을 가득채우길 바라고 계십니다. 우리를 부유하다고 믿게 하며, 우리를 평안하다고 믿게 만드는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유하게 되라고 권하십니다. 그것이 진정한 부유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말씀만이 우리의 삶을 부유하게 합니다. 이사야 40장 8절에 기록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원하며 이 말씀만이 우리 삶을 풍성하고 부요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돈으로도 어떻게 할수 없는 죄악의 고통과 죽음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얼마나 많은 권력자들이 죽음을 피하기 위해 수억의 돈을 사용하며 생명을 유지하려고 합니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 하여 수억의 돈을 쓰지만, 우리는 수억의 돈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에 죽음을 이길 수 있습니다.
능력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고 부요하게 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하라
두번째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19절에 기록된 것처럼 열심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예수님께서는 부요함에 눈이 멀고, 당신보다 황제를 숭배하는 그들을 멸망시켜버리기 위해 책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식을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으로 훈계하십니다. 아주 벌하시지 않고 그들이 돌이킬 수 있게끔 훈계하십니다.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이런 당신의 모습을 마치 부모와 자식간의 사랑을 넘어서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표현하십니다. 20절의 말씀입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이 말씀은 솔로몬이 기록한 사랑 노래인 아가서 5장 2절과도 닮아있습니다.
내가 잘지라도 마음은 깨었는데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오 내 머리에는 이슬이, 내 머리털에는 밤이슬이 가득하였다 하는구나
아가서 5장의 말씀은 신랑과 신부의 관계를 갱신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남편인 신랑이 지속적으로 아내인 신부의 방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랑을 계속 표현하는 것이지요.
‘나의 누이여, 나의 사랑아, 나의 비둘기야,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다오!’
오늘 본문 3장 20절에서도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와 우리를 향해 계속해서 문을 두드리시며 우리에게로 들어오고자 요청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아닌 다른 것들로 가득채웠던 우리의 마음을 회개하며 정리하여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으로 다시 들어오실 수 있게 하는 행동은 회개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과의 관계를 다시 맺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다시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며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우리의 삶을 다듬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뜻이 아닌 나의 뜻대로 행하던 것들을 회개하고 정리해서 예수님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이 세상에서 예수님이 보여주신 당신의 뜻은 자기 부인과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내려오셔서 당신의 뜻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살아가셨습니다. 십자가 죽음을 앞둔 두려운 시간 속에서도 자신의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셨고, 십자가 위에 달려 죽는 순간까지도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옷이 제비에 뽑히는 것과 신 포도주를 마시는 것, 그리고 죽음 이후에 다리뼈가 꺾이지 않는 것과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흐르는 것 모두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정하신 일이었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우리 주님 예수님은 겸손히 자신을 부인하시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행동하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행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 땅에 있는 교회와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함이셨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입니다.
romans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자 자신의 뜻을 끝까지 죽이셨습니다. 그의 자기 부인으로 우리는 죄에서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랑 얻는 자들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해야 할 일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그분의 뜻이 나의 삶에 이뤄지길 원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너무 많이 사랑해서 자신의 뜻과 생각을 앞세우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교회와 삶 속에서 예배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그것을 따라 살아가는 것을 즐거워 하는 것,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을 너무 많이 사랑해서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 사랑으로 지으신 이 땅과 사람들을 사랑하고 아끼는 것, 그 사랑을 모르는 자들을 섬기는 것. 이것이 바로 자기 부인과 사랑의 삶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축복은 너무나 영광스러운 축복입니다. 21절입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이기는 자에게는 주께서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셔서 하늘로 오르시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이 땅을 다스리시는 것처럼 우리에게 그런 영광스러운 자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쉽게 얘기하자면, 예수님 당신과 같이 되게 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다. 물론 우리는 양자로서 예수님과 동일한 자가 될 수는 없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얻는 축복을 영원히 허락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이 말씀이 예수님께서 재림하신 뒤에 허락될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땅을 살며 우리를 거듭해서 유혹하는 부유함에서 오는 나태함과 교만을 물리치고,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우상으로 섬기고 의지하며 사는 것을 거절하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축복하셔서 하나님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굳건히 하실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는 자녀들에게는 아버지께 기도하며 의지할 수 있는 특권, 연약함을 토로하며 하나님의 풍성함을 간구할 수 있는 특권, 죄를 지었지만 회개하므로 심판을 피하고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할 수 있는 특권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귀 있는 자들은 모두 성령 하나님께서 교회와 교회인 우리에게 하시는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하나님께 돌이켜 하나님만을 사랑하며 의지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축복을 얻게 되길 바랍니다.
결론: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결론: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
오늘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라오디게아는 부유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부요함을 하나님보다 중요하게 여겼으며, 하나님이 아니더라도 넉넉하고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으며 살아갔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무익한 자들이라고 책망하시며, 다시 말씀을 따라 살아가기를 요청하시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를 권하셨습니다.
우리가 다시 돌아와 버가모 교회에 말씀하셨던 것처럼 처음사랑을 회복하길 원하고 계십니다. 그렇게 회복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로서 얻는 영광스러운 축복과 권세를 영원히 허락하실 것입니다.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