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도 헛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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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views1. 즐거움을 쫓다 2. 다 해보고 내린 결론 3. 세상의 즐거움은 유한하다 4. 세상의 즐거움은 허탈하다
Notes
Transcript
Sermon Tone Analysis
A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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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S
Emotion
A
C
T
Language
O
C
E
A
E
Social
세상의 즐거움
세상의 즐거움
JYP. 박진영 대표가 몇년 전에 이런 노래를 발표한 적이 있습니다. 가사를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나 놀만큼 놀아봤어 나 놀만큼 놀아봤어"
“왠지 몰랐어 뭐 때문에 열심히 살지”
“돈을 벌어서 어떻게 써야하는건지”
“둘러보았어 무엇으로 나를 채울지"
“안정이 되면 다시 불안해지고 싶고"
“불안해지면 다시 안정이 되고 싶어"
“생각해봤어 정말 갖고 싶은게 뭔지"
“근데 가져도 왜 계속 배고 고프지”
“눈 감을 때 두렵지 않기를 눈 감을 때 웃을 수 있기를"
“내가 어디로 가는지 알면서 내딛는 힘찬 발걸음으로 살기를"
“이런 날 구원해줘 제발”
“꺼지지 않을 음식으로 나를 배불려줘"
제 대학교 동기가 이스라엘에서 고고학 발굴팀에서 일을 하던 당시 식당에서 박진영과 비슷한 사람을 본 적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박진영처럼 보이긴 하는데, 그가 이스라엘에 있을리 없고, 또 수염도 다듬지 않고 옷도 허름하게 입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알아보지 못서던 것이죠.
그런데 몇년 뒤 박진영이 티비에 나와서 본인이 신을 찾기 위해 이스라엘에 머물렀던 적이 었었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구요.
동기가 본 사람이 박진영이 맞았던 것이죠.
그렇게 신을 찾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던 박진영이 하나님을 만난 후 발매한 곡이 제가 조금 전에 읽어드렸던 “나 놀만큼 놀아봤어"였습니다.
물론 그가 이단이라는 여러 논란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가 이 노래를 쓴 것 자체는, 하나님을 만난 후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내린 결론과도 같은 것이었기에 소개를 해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놀만큼 놀아봤어. 왠지 몰랐어 뭐 때문에 열심히 살지.” “둘러보았어 무엇으로 나를 채울지"라는 이 가사들이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의 저자의 마음을 잘 표현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의 저자도 똑같이 놀만큼 놀아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서 먼저 쾌락과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전도서의 저자를 솔로몬이라고 하죠. 솔로몬이 어떤 왕이었죠? 아버지 다윗보다 더 크고 강력한 왕국을 통치하던 왕이었죠. 왕이기에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살아왔던 사람이었죠.
그가 세상에서 즐거움을 찾아보려 했어요. 하나님이 아닌 세상에서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을 탐닉하듯이 찾고 다녔어요.
1절을 보면 “내가 시험삼아 너를 즐겁게 하리니 너는 낙을 누리라!”라고 말합니다.
낙을 누리라.는 말은 좋게 보다, 좋은 것으로 여기다 라는 뜻을 갖습니다.
즉, 내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따라가라. 내가 좋다 여기는 것을 쥐고 그 것을 즐기라. 라는 뜻입니다. 내가 삶의 주인이 되어 상황을 통제하고 즐기는 삶을 살라는 것이죠.
저자는 삶의 낙을 찾기 위해 정말 많은 실험을 했어요. 그런데 효과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제는 술을 마시며 탐구하기 시작했어요. 술을 통해 쾌락과 즐거움을 찾아보려 했어요.
우리 3절 중반절을 볼까요? “내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면서 술로 내 육신을 즐겁게 할까” 이상한 표현입니다.
술을 취할 때까지 마시겠다.
하지만 마음을 지혜로 다스리겠다고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평안을 유지하며 술을 찾겠다. 마시겠다는 것이죠.
좀 이상한 말이지 않나요? 사람들이 술을 왜 마실까요?
보통 술을 마시는 사람들은 취하기 위해 마시는데,
저자는 평안을 유지하며 술을 마셔보겠다. 라고 말하고 있으니까요.
그가 이렇게 말을 하는 이유는, 술을 마시는 이유가 취하기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알아보고 싶은거에요.
사람들은 술을 통해 마음의 괴로움을 잊는다고 하는데, 술을 마시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인가를 확인하기 위해 마셔보고 있는거에요.
세상이 말하는데로 술을 통해 극한의 기쁨과 평안을 누리고 싶었던 것이죠.
그는 그렇게 쾌락에 대한 실험을 4-10절을 통해 지속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일단 자신을 위해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육신을 즐겁게 하려고 극상품 포도주를 위한 포도원을 짓기 시작합니다.
또 엄청난 저택과 정원 그리고 공원을 조성합니다.
그리고 그 공원에는 사냥 놀이를 위한 동물을 기르기 시작합니다. 사냥을 통해 쾌락을 찾아보려 합니다.
많은 노예를 소유하고 부리면서 소 떼와 양 떼를 돌보게 하며 많이 가진 것을 통해 평안을 찾아보려 합니다.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권력들과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사용하여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봅니다.
삶의 의미를 어떻게든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서 찾아보려 합니다.
그리고 그는 결론을 내립니다. 어떤 결론을 내렸을까요?
11절입니다. “그 후에 내가 생각해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한 것이로다"
세상의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 보았는데, 결과가 헛되었다 말합니다.
바람을 손으로 잡을 수 있을까요?
바람을 손으로 잡아 가두려고 하는 것은 정말 미련한 행동일 것입니다.
저자는 자신이 한 모든 행동들이 바람을 손으로 잡아 통제하려고 했던 것처럼 정말 너무나 허무하고 헛된 것이었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서두에 읽어드렸던 노래를 보면 “가져도 왜 계속 배가 고프지”라는 가사가 나옵니다.
저는 이것이 전도서 저자의 마음이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도시도 건설해보고 엄청난 건축물도 세워보고 포도원도 만들었어요.
단순한 포도원이 아니라 그 건조한 땅에 물이 차고 넘치도록 물을 끌어왔고 연못도 만들었어요.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다 했어요.
그런데 결론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허무했다는 것이죠.
육체와 영을 가진 존재
육체와 영을 가진 존재
왜 세상의 즐거움은 바람을 잡는 것과 같이 허무한 것이다! 라고 말을 했을까요?
사실 세상에는 즐거운 것들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세상에서 즐거움을 찾기도 하고, 다양한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에서 스트레스를 풀고 마음의 답답한 응어리들을 풀어낼 때가 있습니다.
저는 바다를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합니다.
부산에서 사역을 할 때 집 앞에 바다가 있었는데, 바다를 보면서 늘 저는 마음을 정리하곤 했습니다.
정처 없이 흘러가는 바다를 보면서 생각을 하면 생각 정리가 참 잘되더라구요.
인천에 올라올 때도 바다를 기대하며 왔는데, 부산 바다와는 확실히 다르더라구요.
우리는 각자의 방법으로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때론 그 안에서 즐거워하기도 하고, 그 즐거움을 서로 나누기도 하죠.
제가 자주보는 유튜브가 있습니다.
단순한 반복 작업을 하거나 혹은 설거지 등을 할 때 유튜브를 틀어놓는데요.
제가 자주보는 유튜브는 ‘무한도전'입니다. 지금은 프로그램이 끝이 나서 티비에서는 하지 않지만, 유튜브에는 여전히 남아있거든요.
제가 무한도전을 보면 늘 저희 아내는 “본 거 또 봐도 그렇게 재미있어? 왜 맨날 무한도전만 봐?” 라고 묻습니다.
봤던 내용이지만 웃음도 나고 재미있기 때문에 보는 것인데요.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무한도전을 볼 때는 웃음도 나고 재미있는데 그 것이 끝나면 허무한거에요.
그래서 또 보고 또 보고 하면서 시간을 굉장히 의미없이 흘려보낼 때가 많더라구요.
잠깐의 즐거움이 지나가면 찾아오는 그 허무함을 달래기 위해 또 잠깐의 즐거움을 찾고 허무해지고, 이것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이죠.
세상이 주는 즐거움은 딱 그 순간 뿐이더라구요.
그 순간을 견디지 못해 또 다른 것을 찾으면 같은 상황이 반복이 되고,
허무한 시간을 보내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은 다릅니다. 그 즐거움은 계속해서 남고 생각할수록 즐겁고 또 다른 은혜를 묵상하게 되죠.
귀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들으며 정리한 내용들을 나중에 보거나, 혹은 삶에서 경험한 은혜들을 함께 나누면 기쁨과 즐거움이 또 늘어나곤 합니다.
세상이 주는 즐거움과 하나님이 주는 즐거움은 다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시는 즐거움을 발견하고 누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육체와 영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육체적 즐거움만 채워서는 삶이 평안하고 즐거울 수 없습니다. 우리는 육과 영 모두가 함께 채워져야 진정한 즐거움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반드시 영적인 즐거움. 영적인 갈급함도 채워야 합니다.
영적으로 채워지지 않으면 우리의 인생을 평안할 수 없고, 계속해서 바람을 손으로 잡으려는 시도만 하는 삶이 될 것입니다.
전도서의 저자는 지금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왕으로써 해볼 것 다 해봤는데 정말 허무합니다.”
“하나님 없이 찾는 행복과 즐거움은 그때 뿐이었습니다.”
“진정한 삶의 기쁨과 가치는 오직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류에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새벽을 깨우고 각자의 자리에서 말씀대로 살아가기로 몸부림치는 우리는 “진정한 삶의 기쁨과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라 생각합니다.
영적인 교류. 영적인 갈급함을 채우려는 그 마음이 우리에게 있기에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 있는 것이지 않습니까?
오늘을 살아가며, 영적인 필요를 채워달라 기도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육체적 즐거움을 넘어 영적인 즐거움과 평안함으로 가득찬 하루의 삶 그리고 주시는 은혜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하며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