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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바나바와 사울의 만남 2. 중심 무대로 돌아오다 3. 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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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와 사울의 만남

오늘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 그 복음이 세계로 확장되어 전파되고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복음이 퍼지는데 역할을 한 사람들이 19절부터 등장하는데요. 그들은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 몇 사람 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전하던 이 안디옥은 사람들이 몰려 들던 지역이었습니다.
짧은 시간 동안 굉장히 부유해진 상업의 중심지였어요.
조용하던 도시에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그들은 사업할 물건믿고 있던 신들을 조각한 우상들을 갖고 왔습니다.
같은 문화권, 같은 신을 믿는 사람들이 그 곳에서 만나게 되었을 것이고 이내 모여 자신들이 믿는 신을 위한 무엇인가를 짓고 생활하기 시작합니다.
상업 중심지를 넘어서 문화와 종교적 중심지이교도들의 모임 장소가 되어갑니다.
각종 이단들과 우상들이 가득 찬 안디옥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도착을 한 것이죠. 안디옥에 도착 한 후 이들은, 유대인들의 삶의 중심지였던 회당을 찾아 나섭니다.
회당은 모든 소문과 정보가 모이는 곳이었고, 교육을 담당하는 곳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는 장소였습니다.
그래서 회당은 늘 유대인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들은 그것을 알았고, 회당을 찾아가, 유대인들만을 위해 주 예수를 전파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누구든 듣기를 원한다면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도 했 습니다.
이들이 전하는 주 예수에 관한 복음을 듣고 모여 든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였습니다.
첫번째 유대인들입니다.
그들은 안디옥에서 꽤나 큰 영향력을 보여주던 사람들입니다.
안디옥은 정말 다양한 인종과 많은 우상들이 모여드는 곳이었습니다. 옆 사람이 믿는 신이 좋아보이면 그를 나의 두번째, 세번째 신으로 삼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친구 중 스리랑카에서 온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복음을 전했고 함께 예배를 드리러 갔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리고 난 후 이 친구가 “예수님은 좀 짱인 것 같아.”라고 말을 하더라구요.
그래서 전 이 친구가 드디어 우상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기로 했구나!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함께 밥을 먹으러 갔는데 식사기도를 시작하더라구요.
‘정신차렸다. 이제 됐다. 너도 나랑 같이 천국에 간다’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식사기도가 안끝나는거에요.
한참을 기다린 후에 무슨 기도를 그렇게 길게 했느냐 물어봤더니, 자신이 믿는 모든 신들에게 다 기도를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자신이 믿어왔던 신들도 좋고, 예수라는 신도 강하고 좋으니 다 믿으면 모두가 자기에게 복을 주지 않겠냐는 말을 이어 나갔습니다.
강하고 좋은 신들을 많이 믿으면 믿을수록, 그들에게 정성을 쏟을수록 더 많은 복과 은혜를 받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 인 것이죠.
안디옥에 있던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믿었던 신 외에 다른 신들을 받아드리고 최소 2개 이상의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신을 믿고 받아드리는 것이 굉장히 자유롭고 또 이상하지 않았던 그 안디옥에 특이한 집단이 등장합니다.
바로 유대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절대 다른 신을 받아 드리지 않습니다.
유일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이라 고백하며, 다른 신에게 관심도 주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앞을 보고 걸어가는데, 유대인들은 옆으로 걸어가고 있었던 것이죠.
그래서 안디옥 사람들은 그들을 주목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을 통해 유일한 신.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알아 갑니다.
이는 지금 저와 여러분의 모습과 똑같습니다.
세상은 우리를 주목합니다.
세상의 가치와 다른 것을 섬기고 붙잡고 걸어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바라봅니다.
우리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날 수도 있고, 하나님의 이름이 바닥에 떨어질 수도 있죠.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말씀대로 살아감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려 하는 것이죠.
안디옥에 살던 유대인들은, 다양한 신을 믿음에도 불구하고 복을 받지 못해 불안해하던 그들에게, 한 신으로도 충분하다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그런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두번째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입니다.
유대인들의 삶을 보고 궁금했던 사람들 혹은 유대인들과 경제적인 어떤 거래나 관계를 맺어오던 사람들이 회당에 모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들이 알아왔던 평생의 가르침과 다른 이야기를 들으며 흥미를 가졌고, 계속 들으면서 유대교로 개종하여 신 한 분만을 모시기로 마음 먹었던 사람들입니다.
세번째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입니다.
유대교로 개종한 이방인들 중 혹은 외부에 있던 이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 복음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그 말씀을 받아드린 사람들입니다.
복음 듣기를 즐겨했던 사람들이며 동시에 예수님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졌던 사람들입니다.
왜 이방인들은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관심을 가졌던 것일까요?
왜 그들은 자신들이 믿어왔던 신을 버리고 돌아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시작했을까요?
이방인들이 왜 그렇게 많은 신들을 선택하고 믿어왔는지를 이해하면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갖게 된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들 사이에는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기대가 없었습니다.
기대를 갖지 못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그들이 믿었던 신. 의지했던 마술사 그리고 나의 미래를 알려주기를 바랬던 점성술.
그 어느 것에서도 사람들은 답을 찾지 못했거든요.
내가 왜 살아야 하며,
삶은 왜 이렇게 힘이 든 것인지
그리고 삶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갖고 있던 그들에게 우상도, 마술사들도, 별들도 대답을 해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의 삶보다 그 이후의 세계. 사후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지금 내 삶을 구원하거나 바꿀 수 있는 신이 없다면, 죽음 이후 나를 책임져 줄 신 혹은 어떠한 존재에 대해 궁금해 한 것이죠.
그러다보니 그리스도. 구세주. 메시야라는 단어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죠. 그들이 경험해 온 신들자신의 것을 가져가기만 하지 주지 않는 신들이었거든요.
사람이 만든 신은 사람에게 어느 것도 줄 수 없죠.
그리스도도 그러한 신들 중 하나라 생각했었는데
듣고 조금씩 알아가면서 예수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가짜 우상들과 다르게
뭔가 삶에 평안함을 주고,
나의 삶에 기쁨이 회복되며, 그 분을 알아갈수록 삶의 활기가 넘친다는 것을 경험합니다.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이 가짜가 아니라, 내 돈을 뜯어가기 위한 어떤 상술의 목적을 띈 종교가 아니라, 진짜라는 것을 믿어 갑니다.
하나님이 그들 가운데 역사하셨고, 그 결과 안디옥 교회가 무섭게 성장을 하기 시작합니다.
안디옥에 교회가 생겼고, 그들이 모여 예수님을 찬양함으로 이방인들의 수가 늘어간다는 이야기를 들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사람을 파송합니다.
먼저 복음을 전하고 영향을 주고 있던 구브로와 구레네 사람들에게 환영 받을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들에게 잘 녹아들 수 있는 사람구브로 출신 바나바를 보냅니다.
바나바가 가서 안디옥 교회를 둘러본 후 이 공동체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찾아냅니다.
그것은 바로 안디옥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도록 조직을 구성하고 그들을 위한 훈련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중심 무대로 돌아오다

바나바가 곰곰히 생각하다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는 무대의 중심에 있었으나 무대 밖으로 밀려났던 한 남자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 벌을 주고 죽이는데 가장 앞장 섰던 사람입니다.
로마시민이면서 엄청난 사람을 스승으로 두고 있었던, 지금 말로 말하면 늘 인싸였던 한 남자를 바나바가 떠올립니다.
그리고 그를 찾으러 길을 떠납니다.
하지만 곧 문제가 생깁니다.
이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사실 알 수 없었거든요. 그가 고향에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유대교를 나와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드렸기 때문입니다.
정통 유대교를 떠나 기독교라는 새로운 집단에 들어갔습니다.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그를 가정이 받아주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고향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던 것이죠.
그가 어디에 있는지 수소문 했고, 다소 근처에 머물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 나섭니다.
바나바가 찾아나선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맞습니다. 사울입니다.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예수님을 만나 삶의 목적과 방향이 완전히 바뀌어버린 사람 사울입니다.
사울이 예수님을 만난지 벌써 10년이 지났습니다.
늘 인싸. 무대의 중심에 있던 그는 무대에서 내려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가정에서도 배척당했고, 자신이 평생 몸을 담아왔던 그 공동체에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스도 공동체도 그를 제대로 받아주지 않습니다. 그의 전적이 너무 화려했기에 믿고 들이기에 쉽지 않았던 것이죠.
하지만 그는 10년동안 활동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눈에 띄지 않았지만 사역을 계속해 왔습니다.
비록 무대의 중심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가장 익숙했던 주인공의 역할은 아니었지만 그는 쉬지 않고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사실 사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에 최적의 인물이었습니다.
바로 현장에 투입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세워나가기에 가장 좋은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은 그를 중심의 자리에서 끌어 내리셔서 보이지 않는 곳으로 보내셨어요.
어떻게 보면 비중이 없어 보이는 자리에서 10년을 보낸 것이죠.
왜 하나님은 그를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무대의 중심에서 벗어나게 하셨을까요?
(쉬고)
첫째, 하나님은 그에게 시간을 주셨던거에요.
주요 자리에서 밀려서 보이지 않는 곳에 있으면서 그는 우선순위를 조정하고 또 전해야 하는 예수님에 대해 정리하는 시간들을 가졌어요.
단순히 내가 경험한 예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전하는 예수님이 누구이며 무엇을 하셨고 또 어떤 일을 이루어 내신 것인지를 그의 언어로 명확하게 정리하는 시간을 가진 것이죠.
하나님은 바나바를 통해 변방의 자리에 있던 그를 이제 다시 무대의 중앙으로 데려오기로 마음 먹으셨어요.
사실 바나바가 사울을 찾아올 이유는 없었어요.
왜냐하면 지난 10년동안 사울이 보여준 것이 없었거든요.
예수님을 능숙하게 변호하며 복음의 진리를 쉬지 않고 계속해서 전해왔지만, 유대인 사이에서 거둔 성과가 없었거든요.
여러 회당에서 사역의 실패를 거듭해 오고 있었어요.
9장 31절을 보면 모두가 든든히 서 갈 때 바울은 어떤 역할도 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있거든요.
10년 동안 중심에서 밀려 있었던 사울이에요.
아무도 그를 찾지 않고,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지 않고 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어요.
바울은 하나님이 주신 시간을 마음껏 사용하며, 자신의 사역의 방향을 정리하고 있었어요.
둘째, 교회가 아직 이방인 회심자를 받아드릴 준비가 되지 않았었어요.
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갔던 그 시기는, 베드로와 고넬료 사건이 있기 전이었어요. 그러니까 이방인 회심자와 식사하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던, 이해하지 못하던 때라는 것이죠.
만약 사역의 실패를 경험하고 있었던 그리고 무대의 밀려나 있던 그가 이방인 사역을 시작했다면, 예루살렘에서 그의 사역을 막았을 가능성이 높아요.
예루살렘 교회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거든요.
가장 중요한 사도였던 베드로에게도 “왜 이방인들과 식사를 했는지 소명하라"고 말할 정도였기에, 사울의 사역은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어요.
또한 사울도 완전히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방인 문화를 확실하게 알지 못했던 것이죠.
로마 시민이기에 이방 문화를 더 쉽게 받아드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럼에도 그는 이방인들을 다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필리핀에서 1년간 있으면서 선교를 할 때 깨달았던 것이 있습니다.
아무리 예수님과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다가가 섬기고 함께 살아간다 해도, 그들의 문화와 사고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 때 저는 선교사로써의 준비가 하나도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적응하는 것은 정말 쉬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더라구요.
그 중 한 가지가 크리스마스 파티였습니다. 우리도 크리스마스 때 친한 사람들을 집에 불러 함께 파티를 하곤 하는데요.
우리는 밤을 새서 놀지는 않고 적당히 놀다 집 주인이 쉬게끔 돌아가곤 하죠.
필리핀 현지교회 친구 집에 초청을 받아 갔고, 저는 밤 11~12시 쯤 집에 가려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이상하게 보면서 저보고 앉으라고, 더 놀아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내가 집에 가야 너가 쉬는 것 아니냐라고 물었는데, 필리핀 문화는 밤을 새 같이 노는 것이라고 말을 해주더라구요.
우리 문화와 다른 것이죠.
그것처럼 바울도 준비가 되어야 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나 외곽에 있었던 것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다소에서 10년을 보내며 이방인 문화를 거의 완벽하게 익혀 나가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낙오된 것 같은 뒤떨어져 보이는 10년 이었지만
하나님의 관점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훈련받고 바로 세워지는 10년 이었던 것이죠.
바울은 이 시간들을 겪으면서 다듬어져 가기 시작합니다.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사울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왜 불러주셨는가를 생각하며, 주신 사명을 생각하며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때에 바나바를 보내어 사울을 찾도록 하신 것이죠.
교회를 세우고 조직하여 훈련을 시키는 것에 능숙했던 다른 사람들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바나바 자신에게 더 편하고 익숙한 사람도 분명히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굳이 사울을 찾아 나섭니다. 심지어 바나바가 있는 그 곳에서 반대쪽으로 160km나 떨어진 곳까지가서 찾아 옵니다.
여러분이 사울이었다면 자신을 찾아 온 바나바를 보고 무엇을 느끼셨을 것 같으십니까?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예수님이 주신 사명을 정리하고, 이방 문화를 익히며 그 분을 전하는 삶을 살았다 해도,
그는 이전과 같은 큰 영향력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는 사역마다 실패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나바. 모두가 존경하고 사랑하는 그 지도자가 자신을 찾아 먼 길을 왔습니다.
그리고 함께 사역하자 손을 내밀었습니다.
여러분이 사울이었다면 바나바의 제안이 어떻게 들리셨을 것 같으신가요?
저였다면, 일단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왜 나를 찾아왔는가? 나는 그런 일을 감당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을 했을 것 같습니다.
사울이 바나바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정확히 알수는 없지만, 그는 바나바와 함께 길을 떠나 무대의 중앙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모습과 마음을 다 보고 계십니다.
소리 없이 그 자리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으로 교회와 동역자들을 섬기고 있는 것도 알고 계시고,
때론 치열하지만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내고 계시는 그 모든 마음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생각하신 그 때에 사울처럼, 여러분의 그 섬김의 마음을 분명히 갚아주실 것입니다.
무대의 중앙이 아니더라도, 외부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그 자리를 지켜내고 계시는 모든 분들의 기도를 반드시 듣고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바나바와 함께 온 사울은 독립된 공동체를 세워나가기 시작합니다.
바나바의 보증으로 사울은 큰 무리들을 가르치며 큰 무리를 단단하게 세워 나갑니다.
그렇게 단단하게 세워진 공동체를 향해 “그리스도인"이라 사람들이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좋은 말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안디옥 교인들을 비꼬고 조롱하기 위해 만든 말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을 Christian이라 부르는데, 원래 이 말은 Christianos였습니다. 이 말은 “어떤 운동이나 공동체의 지도자와 한패를 이루거나 동화되었다.”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어떤 운동이나 공동체의 리더에게 세뇌되었다. 그가 주장하는 것에 온 마음과 정신을 빼앗겼다"라는 것이죠.
세상 사람들은 안디옥 교인들을 향해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며, ‘그리스도에 미친 사람들' ‘그리스도 사상에 빠진 바보들"이라 조롱했습니다. 비웃고 경멸했습니다.
그런데 안디옥 교인들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기뻐했습니다.
“아 내가 잘 살고 있구나!”
“내 모습이 예수님을 닮아가고 있구나!”
“저 사람이 나를 그리스도인이라 불렀어. 저 사람이 나를 예수님을 진짜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했어" 라고 받아 드렸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에 미친 사람들"이라 불렀지만,
교회는 “내가 믿는 그 대상이 나를 통해 세상에 드러나고 있다.”라고 받아드린 것이죠.
그리고 그들은 세상의 조롱처럼 ‘그리스도에 더 미쳐가기 시작.’ ‘그리스도를 더 깊이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아가보라는 청년이 예루살렘에 심각한 흉년이 든다는 예언을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안디옥 교회 사람들은 그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것을 내놓습니다.
진짜 그리스도인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죠.
사실 안디옥 교회 사람들의 삶도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사회에서 배척 받기도 했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라고 드러내며 사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본인들도 살기 어려운 그 때에, 더 어려운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며 격려하며 자신의 것을 나누어 주고 있는 것이죠.
먹을 것이 없어 어려움을 겪을 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 먼 안디옥에서 사랑과 평안의 선물이 전달되고 있습니다.

적용

오늘 이 본문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도 그들처럼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나바는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을 위로하고 세워주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던 사람입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 지속적으로 공급되는 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선교활동을 할 때, 정말 부족한 영어 실력이지만 대학생 친구들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기도 모임에서 말씀을 나눌 사람이 없어 매번 찬양만 하고 기도를 해왔었는데, 한국에서의 저의 전공을 들은 친구들이 짧아도 좋으니 말씀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을 했었기 때문이죠.
말씀을 나누기로 한 첫 날 저는 도망가고 싶었습니다. 아프다고 말할까. 못하겠다고 말할까 오만가지 변명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간절하게 요청하던 그들의 눈빛이 생각이 나 도망가지 못하고 결국 기도모임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 기도했던 것은 딱 하나였습니다.
"제 영어 실력은 형편 없고, 말씀을 준비하는 것도 더 형편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세요"
어떻게 됐을까요?
설교 한번에 3천명이 돌아오도록 했던 그 베드로가 바로 저인줄 알았습니다.
나 완전 능력있는 설교자인데?! 라는 교만한 생각을 할 정도로 하나님께서 강하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하고 매달렸더니, 할 수 없는 사람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주시더라구요.
보잘 것 없는 영어 실력과 말씀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시는 은혜와 힘은 그것을 가리고도 남을 정도로 크고 강력했었습니다.
바나바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힘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께만 의존했고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역사하실 수 있도록, 사울을 통해 일하실 수 있도록 한 발 물러나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갔습니다.
바나바는 충분히 교회의 중심이 될 수 있었고 신자들을 가르치고 세워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그 중심의 자리를 다른 이에게 기꺼이 내어주고, 곁에서 사람들을 챙기며 세워나가는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그저 오늘 나에게 주시는 그 힘과 은혜에 감사하며, 나에게 허락하신 그 일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한 것이죠.
사랑하는 제2가족 여러분.
하루 하루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계십니까?
하루 하루 어떤 힘으로 살아가고 계신가요?
매일 비슷한 삶을 살아가느라,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아가고 계시진 않으셨나요?
내 힘으로 오늘도 살아내보려고, 애를 쓰고 계시진 않으셨나요.
10년간 변방에 있었던 사울은,
매일 부어주시는 그 힘과 은혜 덕분에 하루를 견뎌 낼 수 있었습니다.
그 힘과 은혜가 있었기에, 10년 뒤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기쁜 마음으로 길을 나서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바나바 역시 매일 부어주시는 그 힘과 은혜가 있었기에,
반대하고 사람들이 반기지 않았던 사울을 불러내어 보증하고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도울 수 있었습니다.
성도님들은 오늘을 어떻게 살아가고 계셨나요?
저도 여러분들도 정말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힘으로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끊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그 힘이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나에게 주어지고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루를 마무리하며 잠자리에 들 때, “오늘도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라고 고백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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