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선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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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11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16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No pain, No gain이라는 영어 속담이 있습니다. 고통이 없이 얻는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이 속담에 성도 여러분 모두 상당히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 본문은 바로 하나님의 No pain, No gain 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무언가를 얻으시기 위하여 고통을 받으셨어야했던 것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을 하나하나 살펴보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얻고자 하셨고, 어떤 고통을 받으셨는지 알아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10절을 보시면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나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이 그를 위합니다. 또한 세상 모든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습니다.
세상 모든 것들의 존재의 이유이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나요? 많은 아들들이 영광에 들어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많은 아들들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이죠. 그들이 영광에 들어가려면 조건이 필요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구원의 창시자”가 고난을 겪고 온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창시자”라고 표현된 이 말을 좀 더 다듬어서 번역하면 “구원의 리더” 혹은 “구원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굽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온전하게 하심”이라는 표현은 원래 온전하지 않았다는 의미보다는 어떤 일을 성취한다는 의미입니다. 완성시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구원을 성취하는 사역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원을 성취하려면 고난을 겪으셨어야 하는거죠.
오늘 본문 10절을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영광에 들어가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고난을 겪고 구원의 사역을 성취하시죠.
오늘 10절이 바로 오늘의 중심 메시지이고 11절부터 18절까지 그 내용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생각해볼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에 들어간다는 것은 원래 영광에 있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원래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요? 오늘 본문 14~15절이 그것을 설명합니다.

14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자녀들이 원래 혈과 육에 속했었습니다. 혈과 육은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마귀에게 속한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하게 된 자녀들을 마귀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방법은 마귀를 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15절에서 이 자녀들이 마귀 밑에서 종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을 부모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보면 그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자신이 정말 사랑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너무너무 사랑했죠. 그런데 그 자녀가 알콜에 중독되었습니다. 술이 없으면 살지 못할 것처럼 살아가죠. 술 때문에 그 인생을 망치고, 관계도 실패하고, 직장에서도 짤립니다.
그런데도 술을 포기하지 못하고 구걸해서 얻은 돈으로 또 술을 삽니다. 술의 종이 되어 매여 살아갑니다.
부모는 이런 자녀를 보고 어떤 마음을 가질까요? 술에 모든걸 바치고 살아가는 자녀를 아니꼽게 여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 알콜 중독을 치료하기 위한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할 것입니다. 또한 할 수 있다면 술을 없애버리려고 하겠죠.
하나님의 마음이 이런겁니다. 죄의 중독에 빠져서 살아가고 마귀에게 종 노릇 하는 자녀를 구하시기 위하여 마귀를 직접 멸하십니다. 죄를 해결하십니다.
결국 바로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으로 인하여 바로 예수님이 구원의 리더가 되시게 된겁니다.
그러나 설교 서론에 언급했던 것처럼 no pain, no gain입니다. 얻는 것이 있으려면 고통이 필요했습니다. 그 고통, 고난을 예수님께서 직접 겪으십니다.
그럼 어떤 고난을 겪으셨을까요? 예수님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같은 모습을 취하십니다. 신학적 용어로 “성육신”하시죠.
하나님은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하여 성자 예수님을 그 죄의 권세로 들어간 자녀들의 모습을 갖추게 하십니다.
1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인간들과 형제라고 불리는걸 부끄러워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성육신에 대해서 생각해볼 때 그냥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아 예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거구나’라고 생각하면 아무 느낌이 없습니다.
그러나 한번 잘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그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그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
그리고 그 말씀으로 말미암아 모든 만물이 창조되었습니다. 인간도 마찬가지고요.
말씀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으로 인하여 인간이 창조되었죠.
예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는데 인간의 몸을 입으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으로서 가지고 있는 권리, 권한은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다스리시고 통치하시는 권한입니다.
온 우주의 왕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런데 그런 분이 피조물로서 온다는 것은 그 권한, 그 권리를 마땅히 포기하고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실 때도 여전히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인간의 몸을 입으셨기 때문에 그가 받지 않으셔도 되었던 인간으로서의 고통, 한계를 다 겪으신겁니다.
하나님은 그런 것을 겪지 않아도 됩니다. 아니 겪으시면 안되는 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을 살아가고 느끼고 똑같이 공감하며 살아가십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 그러나 기꺼이 그렇게 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성육신의 의미입니다. 이 사랑은 이 세상 가장 위대하고 놀라운 사랑입니다. 이 세상 어떠한 신이 피조물들을 구하려고 자기 권리를 다 포기하고 인간처럼 될까요?
그 어떤 신도 그러한 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그런 결정을 하십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구원을 성취하십니다. 완벽하게 성취하시죠.
그리고 성육신의 의미가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예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셨어야만 하는 이유는 바로 인간들이 지키지 못했던 율법을 대신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는 너무나도 쉽습니다. 그렇게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거에요.
그런데 그 하나님의 말씀을 어떤 사람들도 지키지 못합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던 자유의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합니다. 최초의 인류였던 아담이 그리하였고, 그 이후로도 단 한명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낸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 의롭다고 여길만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때 영웅이 등장합니다. 그 모든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이 등장하죠. 그 분은 하나님이시면서도 사람이셨습니다. 바로 예수님이죠.
예수님은 성육신하셔서 인간의 몸으로 이땅에 오시고 인간과 같이 똑같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 자유의지로 죄를 선택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
율법에 완벽히 순종하셨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 율법에 순종하신 의로움을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들의 것으로 쳐주십니다.
하나님의 판결대 앞에서 모든 사람들은 죄인으로 판정받았습니다. 그 죄인으로 판정받은 판결대에서 예외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명이 율법을 완벽하게 지켜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지켜낸 의로움을 모든 죄인들을 의로움으로 여기시게 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의로움 때문에 모든 죄인들을 이제 의롭다고 판결을 내리십니다. 예수님께서 그 모든 것을 하셨다는 믿음이 있는 자들은 원래는 죄인이지만 예수님의 의로움으로 의롭다 칭함 받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칭의”라고 말합니다. 우리의 의로움은 하나도 없으나 예수님께서 다 이루어내신 의로움을 우리의 의로움으로 여겨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판결대에서 우리를 죄인이 아닌 의인으로 칭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십니다. 그리고 우리와같은 입장에서 자신의 권한과 권리를 포기하고 인간의 한계와 위치를 같이 경험하십니다.
또한 그러한 인간의 입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지켜내는 의로움을 이루어내십니다.
그 의로움을 우리의 것으로 칭해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들을 영광으로 들어가게 하시기 위하여 하신 일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바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17절을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그 자신이 제물이 되셨습니다.
백성의 죄를 속량하십니다. 죄값을 대신 치루신겁니다.
모든 백성의 죄를 대신해서 죽는 것이 어떤 인간이면 안되나요? 어떤 인간이 죄를 대신해서 죽으면 죄값을 치룰 수는 없나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직접 죽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죽으신다는 것이 모순입니다. 죽은적이 없으셨던 분이 죽는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십니다. 하나님이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죄값을 치룰 수 있었던겁니다.
하나님이 죽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죽으심으로 인하여서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구원의 창시자가 되시기 위하여 성육신 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대제사장이 되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주십니다.
원래 하나님의 자녀였음에도 죄라는 알콜에 빠져서 중독되어 살아갔던 우리가 마귀의 종 노릇을 하며 살아갔던 우리를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주십니다.
인간은 참 배은망덕합니다. 그러나 그 배은망덕한 인간을 위하여 고난을 기꺼이 받으시며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시켜주십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요.
탕자의 비유 이야기를 잘 알고 계실겁니다.
한 아들이 자기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물려줄 유산을 미리 달라고 요청합니다. 정말 배은망덕하죠? 아버지는 언젠가 돌아가시니까 그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는겁니다.
회사에서 월급을 가불받는 것도 상당히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은 아주 배은망덕하게 유산을 가불받으려 합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유산을 미리 줍니다. 그런데 그 아들은 그 유산을 어떻게 하나요?
집을 나가서 그 유산을 가지고 방탕한 생활을 즐깁니다. 문란한 유흥생활을 즐깁니다.
결국 아버지의 유산을 다 탕진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돼지들이 먹던 쥐엄 열매를 먹어가며 생계를 유지합니다.
아주 배은망덕합니다.
너무 힘들어하던 이 탕자는 결국 아버지에게 혼나다 못해 죽게 될 수도 있을 위험을 각오하고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돼지 쥐엄열매를 먹고 씻지도 못하고 거의 폐인이 된 그 모습을 본 아버지의 모습은 어땠습니까?
그를 탓하지 않습니다. 그의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묻지도 않습니다.
그저 따뜻하게 안아주고 잘 돌아왔다고 말해줍니다.
가장 좋은 것들로 잔치를 엽니다.
자신의 아들이 돌아왔다는 그 사실 하나로 아버지는 기쁘고 행복합니다.
아들은 자신의 아버지의 유산을 탕진한 탕자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보다 더한 탕진을 하는 아버지였습니다. 그 탕진은 아들을 향한 사랑을 탕진하는 탕부였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탕부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을 탕진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이 가장 미워하는 죄에 허덕이고 방탕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마귀의 권세에서 놀아나고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탓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고 있는 자녀들이 받아야하는 형벌과 고난의 짐을 대신 지게 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구원의 창시자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선택하신 자녀들을 죄의 권세로부터 다시 이끌어내십니다.
이끌어내시고 난 이후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더 이상 지은 죄에 대한 질책을 하지 않으십니다. 과거를 모두 잊으십니다. 오직 사랑하십니다. 사랑을 탕진하십니다.
우리의 진정한 사랑의 탕부 하나님이 되어주십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적용)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짓고 죄에 허덕이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구원의 조건을 다 성취하셨지만 우리에게 구원은 차근차근 적용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는 중에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구원이 어떤 의미인지를 깊이 묵상해보면 우리에게 죄의 대한 책임을 묻지 않으시는 탕부 하나님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또한 고난의 짐을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기억해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 또 죄를 짓습니다. 연약하고 넘어집니다. 우리의 삶의 주인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을 책임져줄 것이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으로 생각하고 살악가ㅣ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허덕이고 넘어집니다.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볼 때 좌절감과 실망감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사랑을 탕진하시는 탕부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그 모습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언제나 여전히 사랑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사랑하는 길벗교회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된 기쁨으로 다시 복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다시 하나님의 자녀된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삶에 감사와 기쁨이 있길 원합니다.
내가 잘 못해서,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지 못해서, 내가 부족해서 나를 탓하고 실망하고 좌절하기보단 하나님께 다시 돌아가 우리를 받아주시는 하나님 안에서 기쁨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구원을 이루신 분이 완벽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구원이 완벽합니다. 우리의 구원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성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 안에서 구원의 흔들림없이 살아가고 또한 다시 탕부 하나님께로 돌아갔을 때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는 길벗교회 성도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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