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04 양청] 성탄설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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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눅1:46-56
제목 비천한 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벌써 12월이다. 이제 올 해도 4주 밖에 남질 않았다. 12월에는 전세계적으로 기념하기도 하고, 또한 우리도 그토록 기다리는 성탄절이 있다. 그래서 12월 한 달 동안에는 성탄절에 대한 말씀들을 나누고자 한다. 오늘은 그 첫째 시간으로, “비천한 자들을 돌보시는 하나님" 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한다.
오늘 우리가 함께 봉독한 본문의 말씀은, 라틴어 첫 단어를 따서 ‘마그니피캇’ 이라고 부르는, 기독교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노래중 하나이다. 아주 오래전 수도원에서는 이 시를 읊조렸고, 로마카톨릭 시절에는 이 노래를 영창으로 불렀고, 한적한 작은 시골교회에서는 저녁 촛불 앞에서 이 시를 낭송하기도 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트럼펫과 팀파니를 곁들여 웅장한 곡으로 만들기도 하였다. 기독교 역사적으로 한 여인의 노래를 이토록 기념했던 적이 있었을까? 더군다나 아직 예수님은 임신만 된 상태이지 출산한 상태가 아니었다. 그러나 엘리사벳 태중의 아이를 기뻐 뛰놀게 만들고, 마리아를 소망과 승리로 감격하게 만든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자비하심' 때문이다. 이것이 이 노래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제이기도 하다.
히브리어에서 '자비'를 뜻하는 말 '라하밈'은 '자궁'을 뜻하는 말에서 나왔다. 자비란 어머니가 자식에게 대해 가지는 마음과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헬라어에서 '자비'를 뜻하는 단어 '엘레오스'는 어려움에 빠진 사람에게 대한 긍휼한 마음을 가리킨다. 또한 '긍휼'을 뜻하는 또 다른 헬라어는 '내장'을 가리킨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고 창자가 꼬이는 듯 한 아픔을 느끼는 것이 긍휼이고 자비인 것이다. 영어에서 자비를 의미하는 '컴패션'이라는 단어는 라틴어 '함께'(com)라는 말과 '아파하다'(passio)라는 말이 합해져서 만들어졌다.
이렇듯 자비의 핵심은 아파하는 것이다. 마음이 깨어지는 것이다. 함께 부둥켜안고 우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불행을 보고 마음이 깨어지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힘겨운 일이다. 불편한 일이다. 그래서 그런 상황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우리의 마음에 있다. 혹은 값싼 동정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 그렇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하심은 결코 이렇지 않음을 기억하시길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떤 자비하심을 나타내셨는가? 사실 본문인 마리아의 찬가에서 다양한 요소들을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성탄과 관련하여 저는 “비천함을 돌아보심"이라는 주제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본문 48절에서도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고 말씀하시고, 52절에서도 “비천한 자를 높이셨다"고 말씀한다. 우리 나라 말로 “비천하다" 라는 단어는 “지위나 신분이 낮고 천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 마치 뉘앙스가 낮고 천한 신분과 관계있는 것 같다. 그러나 “비천하다”라고 번역된 헬라어 “타페이노스" 의 본래 의미는 “치욕"과 관련이 있다. 치욕의 의미가 무엇인가? 수치와 모욕이다. 특별히 성경 속에서 이 단어는 “배우자가 당하는 치욕"과 관련이 있다. 여러분 생각해보라. 여러분이 알고 있는 성경인물 중에서 아기를 갖지 못함으로 인하여 치욕을 당한 사람이 누가 있는가?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하갈의 갈등도 있겠고, 사무엘의 어머니요, 엘가나의 아내였던 한나와 브닌나의 갈등도 꼽을 수 있겠다.
한나는 엘가나의 아내였는데 그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그 이유 때문인진 모르겠지만 엘가나는 첩을 두었는데 그 첩의 이름은 브닌나였다. 브닌나는 첩이었지만 자식이 있었고, 한나는 본처였지만 자식이 없었다. 이 때문에 브닌나는 한나를 업신여겼다. 삼상1:6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브닌나는 정식 아내도 아니었음에도 자식이 없다는 이유로 한나를 격분시킨다. 이 단어는 원어로 ‘천둥치다' 라는 뜻인데, 브닌나의 격동이 이처럼 한나를 완전히 뒤집어놓았던 것이다. 마치 아이를 갖지 못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하갈이 업신여겼던 것처럼.
그러나 이 이야기는 단지 불임으로 고통받는 한 가정의 이야기를 담는 것이 아니다. 훗날 한나가 사무엘을 잉태하면서 삼상2장을 통해 하나님을 찬미하게 되는데, 이 내용을 정리해 보면 이렇다.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하던 한나가 하나님께 택함받지 못한 자들을 상징하는 브닌나에게 억압을 받고 치욕을 당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한나의 억울함과 그 치욕을 돌아보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한 아이를 허락하셨으니 곧 사무엘이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로 인하여 억눌리고 고통 가운데 괴로워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돌아보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한 아이를 허락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다. “타페이노스", 억압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는 치욕. 이 단어를 중심으로 한나의 찬미와 마리아의 찬미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시 본문 48절과 52절로 돌아와서, 주께서 마리아의 수치와 비천함을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영광으로 덮어주셨던 것처럼, 죄로 인하여 고통받고 억눌리던 주의 백성들을 위하여 한 아이를 허락하신 것, 곧 독생하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려보내신 날, 바로 성탄절이다. 죄로 인하고 고통받고, 억눌리고, 답답하고, 괴로워하는, 비참한 저와 여러분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기 위하여, 그 치욕을 돌아보시기 위하여,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오신 것이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비의 핵심은 함께 아파하는 것이다. 죄로 인하여 기진해 있고, 죄로 인하여 억눌렸으며, 죄로 인하여 고통받던 하나님의 백성들의 치욕된 삶을 하나님은 그저 멀리서 지켜만 보지 않으셨다. 그 아픔과 괴로움을 그저 공감만 하시지 않으셨다. 사랑하는 백성들과 함께 아파하시고 함께 울어주시기 위하여 하늘 모든 영광을 기꺼이 내려놓으시고, 낮고 천한 이 땅 가운데 종의 형체로 내려 오셨다. 우리 주님의 자비하심이 이와 같이 위대하다.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어찌 보면 매년 맞이하는 성탄절이다. 지금도 여러 성탄행사들 가운데 분주할 것이고, 연말연시를 앞두고 마음도 들떠 있겠지만, 12월 한달 동안 성탄의 의미들을 살펴보면서 우리 가운데 성육신하신 주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더욱 깊이 묵상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란다. 내가 겪어야 할 수치를 대신 짊어지시고, 내가 당했어야 할 모욕을 대신 담당하신 우리 주님을 기억하며 감사함으로 성탄을 맞이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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