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과 정식의 사람

바벨론에서 다니엘처럼(8)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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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6:1–9 (NKRV)
Daniel 6:1–9 NKRV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다리오가 자기의 뜻대로 고관 백이십 명을 세워 전국을 통치하게 하고
또 그들 위에 총리 셋을 두었으니 다니엘이 그 중의 하나이라 이는 고관들로 총리에게 자기의 직무를 보고하게 하여 왕에게 손해가 없게 하려 함이었더라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모여 왕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말하되 다리오 왕이여 만수무강 하옵소서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그런즉 왕이여 원하건대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메대와 바사의 고치지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하매
이에 다리오 왕이 조서에 왕의 도장을 찍어 금령을 내니라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우리가 잘 아는 속담 중에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다 아시다시피 사람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어두운 부분이나 잘못이 있는데, 누군가 작정하고 털면 반드시 들통나니까 조심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 아닙니까? 어떤 면에서 이 속담은 나쁜 의미로 '먼지 날 때까지 턴다!"가 있습니다. 마음먹고 한 사람의 흠을 찾으면 반드시 흠을 찾을 수 있다는 뜻이지요. 사실 우리는 이렇게 털리는 것이 두렵습니다. 털면 엄청나게 많은 먼지가 나올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일에 살펴본 다니엘 5장은 벨사살을 마지막으로 바벨론은 멸망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패권을 쥐게 된 나라가 바사제국으로 영화 300으로 유명한, 크세르크세스 왕이 통치했던 페르시아입니다. 다니엘은 새롭게 개국한 바사제국의 세 명의 총리 중 하나가 되었던 것이죠.
아시다시피 다니엘은 바벨론의 국무총리급의 주요 관료 아니었습니까? 일반적인 경우라면 다니엘은 바벨론 왕국과 함께 역사에서 사라졌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바벨론을 무너뜨린 바사제국은 다니엘에게 더 높은 직위를 맡깁니다.
뭐 기록이 없어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다니엘은 신생제국이었던 바사를 안정시키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게되어 몰락한 제국의 관료였던 다니엘이 이 신생제국의 2인자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바사제국의 다른 관료들이 다니엘을 어떻게 생각했겠어요?
당연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다니엘의 허물을 찾아 끌어내리려 했던 것이죠. 리모콘 - 4절 혼자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국사에 관하여 다니엘을 고발하려고 했던 그 못된 관료들이 다니엘의 인생 전체를 다 털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물론 친구들의 흠까지 샅샅이 뒤져 보았을 겁니다. 현재의 허물뿐 아니라 장년기와 청년기, 심지어 청소년기의 실수까지 눈에 불을 켜고 찾아보았을지 모릅니다. 얼마나 지독하게 다니엘의 혐의와 비리를 찾으려고 노력했는지 4절 한 문장에 “고발할 근거”, “아무 근거”, “허물”, “그릇됨”, “아무 허물” 등 이렇게 다섯 차례나 단어를 바꾸면서 강조를 하고 있는 걸 보세요. 그런데도 다니엘을 고발할 아무 근거도 허물도 발견하지 못하는 거예요. 다니엘은 그야말로 '털어도 먼지 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못된 관료들이 얼마나 낙담을 했는지 그들의 탄식을 보세요. 5절입니다. (혼자)
5 그들이 이르되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서 근거를 찾지 못하면 그를 고발할 수 없으리라 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제국의 관료들도 다니엘의 털어서 먼저 안 나는 삶에 근거가 하나님의 율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길고 치밀한 감시의 결론으로 다니엘의 삶의 근거인 ‘율법’을 책잡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던 것이죠. 바로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기도하는 신앙습관이 있는 것을 알고 왕을 찾아갔던 것입니다. 아마도 바사제국이 개국 초창기였기 때문에 왕권을 강화 시킬 수 있는 입안이라고 왕을 부추기고 설득했을 것입니다. 그 입안의 내용이 7절입니다. (혼자)
7 나라의 모든 총리와 지사와 총독과 법관과 관원이 의논하고 왕에게 한 법률을 세우며 한 금령을 정하실 것을 구하나이다 왕이여 그것은 곧 이제부터 삼십일 동안에 누구든지 왕 외의 어떤 신에게나 사람에게 무엇을 구하면 사자 굴에 던져 넣기로 한 것이니이다
한 달 동안 왕 외의 어떤 신이나 사람에게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금령을 내리고, 어기면 사자 굴에 넣도록 하는 조서를 왕이 내려서 시행하도록 했던 것이죠.
그런데 당시 메데 바사 제국에서 왕의 조서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180일의 시행 준비 기간이 필요했습니다. 영토가 아프리카의 이집트에서 인도의 인더스 강에 이르기까지 워낙 넓은 영토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유일한 통신수단이라고는 파발을 들고 말을 타고 달려가서 전하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었잖아요? 게다가 다양한 민족의 언어로 번역을 해서 일정 기간 고지하고 시행해야 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 다니엘의 정적들은 하루라도 빨리 처형하고 싶었지만, 약 6개월 정도의 기간을 기다리면서 털어도 먼지 나지 않던 다니엘을 계속해서 흠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어떻게든 다니엘의 꼬투리를 잡으려고 하는데, 먼지 하나 나지 않는 그의 신앙 행위를 가지고 이런 비열한 짓을 저지르는 모습을 보면서, 송인규 교수가 쓴 「세 마리 여우 길들이기」라는 책이 떠올랐습니다.
저자는 그 책에서 인간의 내면에서 다스리기 힘든 세 마리 여우가 있다고 하는데요. 야망, 질투, 경쟁심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책이 크리스천을 대상으로 쓴 신앙 서적이라는 것을 생각해 볼 때,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을 믿어도 내면에 여전히 다스리기 힘든 내면의 여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 주는 것 아닙니까? 오죽하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을 했겠어요? (리모콘-빌1:14,15)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15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으로, 어떤 이들은 착한 뜻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나니
참 놀라운 말씀 아닌가요? 그렇게 담대히 주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 중에도 어떤 이들은 투기와 분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여 복음을 전하는 사람 중에도 그 내면의 세 마리 여우, 즉 야망, 질투, 경쟁심을 잘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약의 사울 왕을 보세요. 어린 다윗이 골리앗을 무찌르자 그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우연히 여인들의 노랫소리를 듣고 갑자기 돌변하지 않습니까? (리모콘-삼상18:6,7)
6 무리가 돌아올 때 곧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돌아올 때에 여인들이 이스라엘 모든 성읍에서 나와서 노래하며 춤추며 소고와 경쇠를 가지고 왕 사울을 환영하는데
7 여인들이 뛰놀며 노래하여 이르되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한지라
아니 여인들도 정말 이상한 분들이에요. 아니 그냥, “그 다윗 청년이 참 잘했네” 이러면 될 것을, 왜 사울과 비교해서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굳이 이런 노래로 만들어서 불렀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다 약한 존재들 아닙니까? 자칫 경솔한 말 한마디로 사울처럼 그 속의 여우가 발악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사실 사울도 어떤 면에서는 참 억울한 것 아닙니까? 다 자기를 그렇게 환영하는데, 그냥 별생각 없이 시장에서 떠도는 말을 듣고 이성을 잃어버린 거잖아요? (리모콘-삼상18:8)
8 사울이 그 말에 불쾌하여 심히 노하여 이르되 다윗에게는 만만을 돌리고 내게는 천천만 돌리니 그가 더 얻을 것이 나라 말고 무엇이냐 하고
우리 안에 있는 못된 여우가 벌이는 가장 악한 짓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나쁜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어린 여자아이들의 노랫말을 듣고 ‘아! 다윗에게 나라를 빼앗길지도 모르겠구나!’ 이런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요. 이 얼토당토않은 상상을 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여우가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리모콘-삼상18:9)
9 그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이 9절 말씀을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사울의 마음이 더 크게 다가옵니다. (리모콘-새번역)
9 그날부터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여러분, 이 한 구절 때문에 다윗이 얼마나 죽을 고생을 했습니까? 다 아시는 내용이잖아요? 하지만 이것 때문에 다윗이 고생은 했지만, 망하지는 않았습니다. 망한 사람은 오히려 사울이었죠.
제가 부목사 생활을 오래 했잖아요? 제가 얼마 전까지 부목사 시절에 설교할 때는 ‘설교가 참 은혜가 된다’고 그런 말을 종종 들었거든요. (물론 담임목사인 지금은 오히려 잘 못 들어요. 그러고보면 참 우리 성도님들이 지혜로우신 거예요. 일부러 저 겸손하라고 그렇게 칭찬을 아끼시고 아무도 저에게 칭찬을 안하도록 마음이 하나가 되어 저를 위해주시니 제가 감사하죠.)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거죠?
아무튼 여러분! 부목사들이 왜 설교를 잘하는지 아세요? 어쩌다 한 번 하기 때문에 그래요. 어쩌다 한 번 하는 설교를 잘하기 위해서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합니까? 한 번 걸리기만 걸려보라고! 다 은혜 끼치고 말테니까! 이런다니까요.
제가 이제 새로 오실 부목사님이 수요예배 때 매주 설교할 텐데 저보다 더 잘한다는 말을 듣고 질투가 나서 설교강단에 안 세운다면 누가 비참한 거예요? 설교 기회가 안 주어지는 부목사님인가요? 담임목사인 제 존재가 비참한 것 아닙니까? 사울처럼 비참한 것 아닙니까? 저도 제 안에 있는 여우를 잘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는 자주 이런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님, 제 안에 있는 여우들을 잘 다스리게 해 주시길 원합니다.”
비단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정말 다스려야 하는 것은 내 안에 혹시라도 도사리고 있을 여우들을 잘 다스리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자! 오늘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이렇게 험하고 악한 세상을 다니엘처럼 멋지게 헤쳐나가며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 수 있을지 윤리적인 측면과 신앙적인 측면 두 가지의 포인트로 은혜를 나누길 원하는데요. 먼저 우리가 다니엘에게 배워야 할 윤리적인 비결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정직한 사람 되기입니다.
저는 이 다니엘 6장을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참 배울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4절을 다시 보십시오.(리모콘)
4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근거를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근거,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여기에서 ‘충성되어’라고 번역이 된 히브리어의 원어적인 의미는 ‘신뢰할 만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참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새로운 제국의 왕이 망한 나라의 관료를 왜 다시 등용했겠습니까? 그것도 여든이 넘은 고령의 정치인이었던 다니엘을 왜 전국을 다스리는 세 명의 총리 중 가장 유력한 자로 세웠을까요? 다니엘은 믿을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포로 출신이었지만 신뢰할 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이죠. 다니엘은 악한 세상에서 살았지만,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악한 세상에 물들지 않고 주변 사람들에게도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것입니다.
「육일약국 갑시다」라는 책을 쓴 김성오 대표가 정직한 비즈니스에 대한 간증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의 비즈니스 성공 비결을 나름대로 분석한 칼럼을 보았는데요. 첫째는 스스로 ‘자영업자 마인드’라고 표현하는 열정이고, 또 하나의 중요한 원리가 ‘정직함’이었습니다.
김대표님의 초지일관적인 이 열정은 이윤보다는 사람을 남기는 장사를 해야 한다는 그의 모터에서부터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를 편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그의 첫 번째 마인드라면, ‘정직함’에 대해서는 군대에서 배웠다는 거예요.
이분이 약대를 졸업하고 군대에 가서 의무대에서 근무를 했는데요. 고참들이 휴가를 나갈 때마다 자신들의 가방에 몰래 여러 약을 가득 채워서 휴가를 나가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못된 전통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해도 말이 먹힐 리가 없죠. 그래서 본인이 휴가를 갈 때 아무것도 안 가지고 빈손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 고참들의 가방의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더니 제대할 무렵에는 그런 못된 전통이 없어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저는 설교 잘하는 신령한 목사라는 말보다 정직한 목사라는 말을 꼭 듣고 싶습니다. ‘아, 우리 목사님은 정직한 사람이야!’ ‘저 하름교회 목사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 정직한 사람이야!’
저는 이 말을 듣기 위해 제가 좀 힘들어도요. 교회 안에서의 이런저런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작은 것들부터 개선해 나갈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정직한 목사가 되고 싶거든요.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물론 정직함과 성실함을 갖추었다고 보상을 받거나 그러는 것은 아닙니다. 정직하다 보면 손해 볼 때도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행해지는 ‘관행’이나 부조리들을 바꾸기 위해 정직함을 택했을 때 대부분은 손해 보는 것 아닙니까?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 구제하고 기도하고 금식하는 것을 두고 “자기 상을 받았다”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리모콘-마6:2)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들은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는 말을 비즈니스용어로 풀어보면 ‘이미 대금을 지불하고 영수증 처리까지 해주었다’라는 뜻 아닙니까? 그러니 남겨진 상이 없다는 것이죠. 이 땅에서 계산 끝났다는 거예요. 그러나 정직한 사람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이 다 아시고 나중에 갚아주신다는 것이죠. 이 세상에서 받는 보상이 적을 수도 있고 억울할 수도 있지만, 전도서의 저자의 말처럼 “해 아래에서의 수고의 보상이 아닌, 해 위에서의 영원한 것”을 보상받는 상급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니엘은 어떻게 하나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신뢰받을 만한 정직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그 비결은 두 가지 면에서 균형을 이루었기 때문인데요. 첫째로는 다니엘은 ‘탁월한 실력’이 있었습니다. 3절(혼자)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이 부분은 역시 새번역 성경으로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이 다른 정승들이나 지방장관들보다 더 우수하였으므로”
둘째로 다니엘은 탁월한 실력뿐만 아니라 ‘깨끗한 도덕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4절 후반부(혼자)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제가 좀 철이 없고 이상주의자인지도 모르겠지만, 간혹 크리스천 가운데도 “에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 어디 있어?” 하면서 자신의 부정한 면을 합리화하는 경우를 봅니다. ‘교회가 다 은혜로 하는 거라고 하지만’ 부정한 일을 감추려는 것은 은혜가 아니죠. 정직해야 은혜가 되는 것이죠.
여러분, 왜 꼭 털면 다 먼지가 나야 합니까? 조금 다른 소망을 품으면 안 됩니까? ‘주님, 저는 적어도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이길 원합니다’ 이런 다짐과 결단을 하면 안 되는 겁니까? 예수님 믿는 것 때문에 회식 자리에서 술 안 마시고 담배 안 피워서 분위기를 깨는 것 말고는 어떤 허물도 찾을 수 없었다는 평가를 들으면 안 될까요? 그것을 위해 더 탁월한 실력과 도덕성으로 균형을 이루겠다는 결단으로 좀 더 치열하게 내 안의 여우들과 싸우면 안 되는 것입니까?
여러분, 상상해 보십시오. 그런 탁월한 실력과 정직한 도덕성으로 한 사람 한 사람 채워진 교회라면 세상 가운데 정말 매력 있는 교회가 되지 않을까요? 우리 인간이 천사처럼 완전무결할 수는 없더라도 다니엘처럼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그런 인생이 되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여러분, 우리도 다니엘처럼 탁월함과 정직함의 균형을 이루는 삶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적어도 내 주변 사람들에게 “저 사람은 믿을 만한 정직한 사람이야”라는 평가를 듣는 동시에 실력으로도 인정받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가 하면 다니엘에게 배워야 할 신앙적인 비결은 예수님을 정식으로 믿는 신앙인 되기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시간이 지나면 신앙의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고 안주하려는 마음도 있고 그러지 않습니까? 직장 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유독 나를 괴롭히고 짓누르는 사람을 만날 때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이 여전히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세상적인 방법이 아닌, 억울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이죠.
전라남도 영광에 조그만 교회가 하나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 한 분이 목회하시다가 너무 지친 나머지 휴가를 얻어 영광 지역에 잠시 머물게 되신 거예요. 그러다가 그 작은 시골 교회의 새벽예배에 참석하시게 되었는데요. 처음에는 시골 교회 목사님의 설교가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사실 목사가 다른 목사의 설교를 들으면서 은혜받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렇게 설교가 끝나고 낯선 성도들과 함께 앉아서 기도하는데, 어느 할머니의 기도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거예요. 가만히 눈을 떠서 보니까 등이 꼬부라질 대로 꼬부라진 할머니께서 강대상 바로 앞에 앉아서 계속해서 같은 말만 되뇌셨다고 합니다. “정식으로 믿게 해 주십시오” “정식으로 믿게 해 주십시오”
이 목사님이 이상하게 그 할머니의 “정식으로 믿게 해달라는” 기도가 계속 마음에 남는 거예요. 그 뒤로도 5일을 더 새벽예배를 드렸는데 그때마다 할머니의 기도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목회 여정을 되돌아보게 되었다고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너, 정말 정식으로 목회해 본 적 있니?”하고 물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 목사님이 다시 목회 현장으로 돌아간 뒤에 자신의 책상 앞에 ‘정식으로’라는 네 글자를 써 놓고 정식으로 성경을 읽고, 정식으로 기도하고, 정식으로 심방하고 정식으로 설교하시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목회에 열매가 생기고 교회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운동선수들도 슬럼프가 오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다시 기본기를 다지는 일 아닙니까? 신앙생활도 똑같습니다. 다니엘이 탁월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그가 한결같이 정식으로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말이 쉽지, 다니엘은 어떻게 그렇게 탁월한 실력과 정직함의 균형을 이룰 수가 있었을까? 정말 그게 궁금하더라고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리모콘-3절 합독)
3 다니엘은 마음이 민첩하여 총리들과 고관들 위에 뛰어나므로 왕이 그를 세워 전국을 다스리게 하고자 한지라
바로 ‘마음이 민첩했기’ 때문입니다. 이 ‘민첩하다’라는 것은 영어 성경으로 보면 “excellent spirit” ‘뛰어난 영’이 ‘was in him’ ‘그의 안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즉 다니엘은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 탁월하신 성령님이 그와 함께하셨다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성령에 붙들린 사람’ 이것이 다니엘의 마음을 민첩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자녀가 민첩해지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excellent spirit” 탁월하신 성령님께 붙들리는 인생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성령에 붙들리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생각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에 붙들린 다니엘은 여든이 넘는 나이가 되도록 그 민첩함이 빛바래지 않았던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성령께서 하시는 일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정식 신앙인이 된 줄로 믿으시길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니엘은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어떻게 여든이 넘은 노년까지 그런 인생을 살 수 있었을까요? 그는 철저히 성령님께 붙들린 민첩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시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 정식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정식으로 읽어야 하고, 기도를 다시 정식으로 해야 합니다. 저같이 미숙한 목사는 정식으로 목회하는 것을 배워야지요. 민첩해져야 합니다. 성령님께 붙들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에요. 그렇게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꿈과 약속을 우리가 붙들 때, 우리는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함께 같은 길을 걸어가는 우리 하름 공동체가 있지 않습니까? 힘들고 지칠 때 서로 등 토닥여주면서 끌어주고 밀어주면 됩니다.
우리가 모두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탁월한 영이신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그분을 의지하는 길로 나아가면 우리도 다니엘처럼 정직한 도덕성과 정식으로 믿는 신앙인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그런 다짐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기억하시면서 함께 다짐의 기도를 드리길 원합니다.
“주님, 제가 정직과 정식의 사람이 되길 원합니다. 정직한 도덕성과 다시 말씀과 기도로 민첩한 성령의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기도
살아계셔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다니엘은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는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를 고발하고자 했지만, 아무런 허물도 찾지 못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의 영에 붙들린 민첩함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 우리도 그러한 영적인 민첩함을 주셔서 다니엘과 같이 털어서 먼지 안 나는 그런 인생이 되길 원합니다. 정직한 도덕성으로 하나님과 주변인들에게 참 그리스도인으로 인정받기를 원합니다. 우리 하름의 성도님들이 다시 한번 정식으로 믿는 믿음이 회복되길 원합니다. 힘든 이가 있으면 끌어주고 낙심한 이가 있으면 등 토닥주면서 다니엘처럼 살아가길 원합니다.
주여, 우리 모두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고 새 힘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모든 것을 주님께 맡겨드리며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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