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하박국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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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하박국 2:4(구약 1303쪽)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반갑습니다.
오늘 이 시간 함께 하신 분들에게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우리는 교회력에 따라 대림절 둘째 주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대림절이라는 절기는 성탄일을 앞둔 4주 전의 절기를 말하는데요. 두 가지의 의미를 담고 있는 절기입니다. 하나는 과거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사건 이른바 초림을 기다렸고요.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약속하신 이 땅에 다시 오실 사건 이른바 재림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그래서 대림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기다리는 절기를 뜻합니다.
이러한 대림절을 놓고 기다림에 관해 생각하다가 보니까요. 오래 전에 약 10전에 저에게 있었던 특별한 기다림의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그 후로는 그와 같은 마음이 들었던 적이 아직은 없습니다. 저는 당시에 서울에 있던 우리 교단의 신학대학원을 다닐 무렵이었습니다. 그 날 밤은 아주 특별한 밤이었습니다. 저는 신대원 근처의 조그마한 카페에 있었는데요. 그 곳에는 저 말고 다른 분이 함께 있었습니다.
제가 그 분을 알게 된 것은 약 1년 남짓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품어왔던 마음을 용기내어 전하고 있었습니다. 맞아요. 좋아한다고, 사귀어달라고 고백하는 중이었습니다. 같은 학교를 다니고 수업을 듣는 사이에 어느 순간 그와 같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 후로는 어떻게든 기회를 만들어서 함께 시간을 보내려는 노력을 여러 차례 했습니다. 저의 그와 같은 정성이 조금은 가 닿았는지, 가깝게 얘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이 무르익던 그 날 밤 용기를 내어서 학교 앞 조그만 카페에서 제 마음을 전했습니다. 결과가 어땠을까요? 그 분은 제게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하루 달라고 했습니다. 즉각 제 마음에 응답을 주지 않은 것은 아쉬웠지만, 그것이 거절로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평소에도 신중한 성격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어쩌면 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더욱이 편안하게 얘기를 마치고 같이 기숙사로 돌아왔습니다.
저에게 그 밤은 무척이나 아름답고 들뜨는 밤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저를 보면 아시지만, 그 기분 좋은 밤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저의 어떤 실수들이 끝내 좋은 관계를 이루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후에 그 분과의 관계는 어색해지더니 점점 멀어지고 말았습니다. 물론 그 후로 어느 정도 다시 관계가 회복되긴 했지만, 이전처럼 맘 편히 연락할 수 있는 관계가 될 수는 없었습니다.
그것은 보다 이전에 제가 여러 번 경험했던 과거의 기억들 속에 일부분이지만, 그날 밤의 설렘과 두근거림은 아주 특별한 기억으로 조금은 미화되어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껏 살아오면서 느꼈던 굉장히 특별한 기다림으로 제 안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떻습니까? 과거에 또는 현재에 어떤 특별한 기다림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리고 그 기다림이 오늘 나에게 기쁨으로 또는 어떤 슬픔으로 다가옵니까?
사실 저는 또 최근에 한 슬픈 기다림의 현장을 보았습니다. 잘 알고 계시지만, 어제 새벽에 서동완 장로님의 부친이신 서승원 권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그 일이 있기 전날 담임목사님과 함께 서승원 권사님을 뵈었습니다. 그날 서승원 권사님은 산소 호흡기에 의지해서 거친 숨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담임목사님의 인도로 함께 찬송하며 기도하며 회복을 기원했습니다. 물론 가능성이 높지 않았지만, 아마도 가족들은 보다 더 간절히 바라고 원했을 겁니다. 기도가 끝나고 가족들을 남겨두고 저희는 교회로 돌아왔습니다.
후에 일에 관해 서동완 장로님께 듣기론 그랬습니다. 저희가 다녀간 이후에 조금은 호흡이 안정 되었고, 새벽에 이르렀을 때는 아주 편안한 상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로부터 호흡이 약해지더니 결국은 새벽 1시가 넘어서 소천하셨습니다. 그렇게 가족들의 바람과는 달리 기다림은 슬픈 이별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삶에서 때로는 두근거리고 행복한 기다림의 순간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의 바람과 어긋나는 슬픈 결과와 마주하기도 합니다.
사실 오늘 우리가 읽은 구약성경 하박국이 마주한 현실이 그러했습니다. 하박국 예언자는 고대 이스라엘이 바벨론 제국에 멸망하던 무렵에 활동했던 선지자로 추정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처한 불행한 현실에 관해 하나님께 따져 묻습니다. 대체 왜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난 것이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은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심판이었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그러자 하박국 예언자는 또 다시 따져 묻습니다. 그 심판의 도구를 왜 하필이 바벨론 제국으로 사용하셨냐고요. 과연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옳은 것은 무엇이냐고요. 그러자 하나님은 또 다시 응답해 주십니다. 그들 또한 때가 되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말씀을 하박국 예언자에게 일러주십니다. 다시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하박국 2장 4절입니다.
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훗날 기독교의 중요한 교리를 형성하는 말씀이 됩니다. 이는 마르틴 루터가 신약성경 로마서 1장 17절을 토대로 이신칭의 곧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세운 것인데요. 이 말씀은 본래 오늘 확인한 것처럼, 구약성경 하박국 2장 4절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하박국 예언자에게 때를 기다리는 우리의 삶에 관해서 말씀해 주십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로 ‘에무나’라고 합니다. 이것의 본래 뜻은 신실함또는 충성됨 입니다. 그러니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기를 멈추지 말고 그 뜻을 믿음에 따라 신실하게 또는 충성되게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후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박국 3장 17절에서 18절 말씀인데요.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우리에게 찬양의 가사로 잘 알려진 말씀이지요. 자세히 보면, 거의 폐허가 된 상태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즐거워 할 것을 고백하는데요. 이는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때가 이르기까지 주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겠다는 결단입니다. 이것이 구약성경 하박국이 주는 교훈이고요. 오늘 우리가 대림절을 보내며 주님을 기다리는 이유이고요. 현재 우리의 신앙생활의 방식이에요.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삶이 평안하고 늘 기쁘고 두근거리는 일들이 가득하면 좋을텐데, 우리의 삶을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괴로움의 연속일 때가 많고요. 오히려 잠자리에 들면서 눈을 감을 때마다 다시 눈을 뜨지 않기를 바라는 순간들이 더 많아요. 그런데 오늘 구약성경 하박국을 통해 하나님은 우리가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신실함 삶을 살아갈 것을 말씀하고 계세요. 그것이 다름 아닌 신앙생활이라고 말이지요.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의 삶이 괴롭히 힘들어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이 이룩하실 그 때를 기다리며, 온전히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 말이지요. 오늘 저와 우리 성도님들께서 그러한 삶을 이루시길 간절히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