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고함을 경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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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72장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신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고 있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17 또 하나님이 사십 년 동안 누구에게 노하셨느냐 그들의 시체가 광야에 엎드러진 범죄한 자들에게가 아니냐

18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에게가 아니냐

19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1. 성경의 메시지는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12절에서 - 14절까지 본문 말씀의 주제를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12절을 읽어보겠습니다.

12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히브리서의 저자는 오늘 본문을 통해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경계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백성들은 믿음을 가진 자들입니다.
누구를 향한 믿음이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구원받은 모든 백성들의 공통점입니다.
그런데 오늘 히브리서 기자는 왜 믿음이 있는 사람들에게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경계하라고 말합니까?
우리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성령님에 의한 믿음은 언제나 변함이 없습니다. 신실하죠.
그러나 우리가 믿음이 생기고 난 이후 우리의 믿음이 그 상태로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죄성이 여전히 남아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유혹과 고난 속에서 흔들리기도 합니다.
믿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흔들리기도 합니다.
사랑하는 길벗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흔들릴 때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혹시나 믿음이 흔들리는 것 때문에 너무나 많은 삶의 부분들이 흔들리지는 않으신가요?
모든 사람들이 다 믿음이 흔들립니다. 성령님이 믿음을 주시고 나서부터 단 한번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는 사람들은 없습니다.
우리는 연약합니다. 우리의 죄성이 우리에게 오는 유혹과 고난 속에서 우리를 갈대처럼 흔들리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성령님이 주신 그 믿음이 사라지지는 않는다는겁니다. 성도 여러분. 그 사실을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흔들림이 계속 생길 수는 있는데, 흔들리는걸 떠나서 완고해지는 것은 정말 큰 문제인겁니다.

13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완고하다는 말이 무엇인가요? 성경에서 완고하다는 말은 쉽게 말하면 “고집이 세다”라는 말입니다.
제가 결혼은 했는데 아직 아기가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기 돌보는 것을 무척 좋아하고 아기들을 예뻐합니다. 실제로 놀아주는 것도 꽤나 잘하는 편입니다.
저희 처가쪽 조카가 처음 태어났을 때 요것이 너~~무 예쁘고 귀여워서 기회가 될 때마다 잘 놀아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했습니다.
지금은 네 살인데 지금도 처가댁에 오면 저를 찾습니다. 이모부는 어디갔어요? 이모부는 언제 와요? 하면서 저를 찾습니다.
어쨌든 이 조카가 네 살인데, 이제 말도 어느정도 잘하고 합니다.
그런데 가끔 보면 조카가 고집을 부릴 때가 있습니다. 보통 어느때냐면 졸릴 때 되도 않는 고집을 부립니다.
아기들은 다 그렇죠. 자기가 힘들거나 졸리거나 뭔가 정서적으로 불안해지면 고집을 부리거나, 울거나 합니다.
그런데 이 고집이 보통 고집이 아닙니다. 완전 황소고집이에요. 그래서 훈육을 하고 잘 알려주긴해도 그 상황에서는 말을 안듣습니다. 조카가 안들으려고 안듣는게 아니고 그냥 너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겁니다.
그러나 조카가 잘 양육받고 성장한다면 이러한 부분들이 많이 해소될 것입니다. 여기 있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도 아기 때는 그런 면이 있었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장해가면서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극복해나갔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지금도 조금씩 그런 습관들이 남아있지 않으신가요?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아기처럼 고집을 부렸던 어떤 공동체를 예시로 들고 있습니다. 그것은 출애굽 이후 광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공동체입니다.
15-16절을 제가 읽어보겠습니다.

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하였으니

16 듣고 격노하시게 하던 자가 누구냐 모세를 따라 애굽에서 나온 모든 사람이 아니냐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바로로부터 출애굽 한 이후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합니다.
그런데 사실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은 이스라엘의 완고함으로 가득 차 있는 시기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완고함으로 하나님과 모세의 뜻을 거역하거나, 듣지 않는 경우가 참 많았습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을 보고 하나님께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라고 말씀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

이 표현이 바로 “완고하다”라는 말의 하나님 식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완고한 백성을 표현하실 때 “목이 뻣뻣하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자신들의 능력과 생각이 하나님의 뜻보다 더 옳고 맞다고 생각하는 고집있는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 앞에 목을 뻣뻣이 들고 순종하지 않는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시는거죠.
특히 이 본문은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던 것에 대하여 하나님이 평가하시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완고함, 목이 뻣뻣함의 원인이 과연 무엇일까요? 왜 우리는 완고해지는걸까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출애굽시키셨는데, 또한 하나님의 하나님 되시는 것을 직접 말씀하시고, 보여주셨는데도 왜 이스라엘 백성은 완고해졌을까요?
우리도 예수님께서 직접 만나주시고, 믿음을 주셨는데 왜 우리는 완고해질까요?
그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하나님 말고 다른 것으로 채우려고 하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가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갔는데 내려오질 않습니다.
모세는 당시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잇는 중보자 역할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가 안내려오는겁니다.
그들의 생각은 어땠을까요? 혹시나 모세가 죽은 것은 아닐지, 아니면 우리를 놓고 도망간 것은 아닌지.
불안과 초조 속에 있었을겁니다.
그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해낸 해결 방법은 무엇이었나요? 금송아지 우상을 만드는겁니다.
여러분 모세가 오지 않아서 불안한 것은 우리의 마음의 연약함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굳셌다면 모세를 보내주시고 언제나 자신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을겁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세워버립니다.
그들은 무엇을 의지했나요? 자신들의 불안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들이 만든 우상을 의지했습니다.
금송아지 우상에는 두 가지 면모가 있습니다.
먼저 금송아지 우상 자체가 우상이라는 점입니다. 무언가 의지할 대상이 필요했던겁니다.
두번째로 금송아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을 의지했던겁니다. 그당시 금은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온 하나님의 성소를 만들 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금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어냅니다. 물질적 능력이 있으니 그 능력으로 일을 해결하려고 하는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보통 인간들은 연약함을 채우기 위하여 두 가지 모습 중 하나의 모습을 택하곤합니다.
나 말고 다른 어떤 무언가를 의지하거나, 혹은 나의 능력을 의지하거나.
이것이 우상의 큰 특징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모두 우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 말고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려고 하는 마음은 “탐욕”입니다.
그리고 나의 능력을 의지하려고 하는 마음은 “교만”입니다.
cs루이스라는 기독교 저술가는 인간의 죄에 대하여 가장 큰 두 가지 죄는 “탐욕”과 “교만”이라고 말합니다.
탐욕은 하나님 이외에 다른 것이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하는 것을 말하고요, 교만은 하나님의 자리를 자신이 차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확한 고찰입니다. 인간의 우상은 나이거나, 나 말고 다른 무언가입니다. 내가 되면 교만의 죄를 짓게 되고, 나 말고 다른 무언가가 되면 탐욕의 죄를 짓게 됩니다.
이스라엘도 두 가지 모습이 모두 있었던겁니다. 어떤 이들은 금송아지 자체를 하나님의 대체물로 대체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금송아지를 만들 수 있는 자신들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대체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어떻습니까? “목이 뻣뻣한 백성이로다”입니다.
이들이 완고해서 나를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들을 의지하는구나..라는 평가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40년 광야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의 완고함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그 완고함을 버려야 한다고 강력하게 경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완고함은 결국 우상을 세우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대상인 하나님을 믿어야 하는데 그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른 것을 믿는겁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 불러왔던 결과는 무엇입니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출애굽 1.세대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던겁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완고한 마음을 가지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그 죄로 인하여 누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진다는겁니다.
실상 우리가 우리의 뜻을 고집하고 완고해졌을 때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의 복을 발로 뻥 걷어차버리는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을 때 가장 좋은 복을 얻게 됩니다.
왜죠? 하나님은 가장 선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선한 것을 주시기 원합니다.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백성들은 선하신 하나님 뜻에 순종하면 가장 좋은 복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상황에 가장 알맞고 좋은 복을 누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믿음이 흔들리게 되면 순종하지 않게 되죠. 그러면 하나님의 그 복을 발로 차버리는거죠.
굴러들어온 복을 발로 차버린다는 말이 잊지 않습니까? 그런 상황이 되어버리는겁니다.
적용)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정확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완고함을 경계하라”
완고한 모습을 가지면 구원이 사라져서 경계하라는 걸까요? 아닙니다.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셨던 그 구원의 믿음은 절대로 잃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는 완고한 모습 때문에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으로서 마땅히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선한 복을 잃기 때문입니다.
완고함 때문에 잃는 복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안이죠.
우리가 흔들리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상황과 환경이 변하면서 우리의 연약한 믿음이 흔들립니다. 그러면 우리는 완고해지기도 합니다.
큰 문제에 봉착했을 때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내 힘을 의지해서 내가 해결하려고도 하고, 혹은 다른 어떤 것을 과도하게 의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 앞에 완고한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죄의 권세로 들어가려는 아주 나쁜 습성입니다.
죄의 노예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는데 다시 죄의 권속으로 들어가 노예처럼 살려고 합니다. 노예 근성이죠.
그것이 우리의 연약함의 적나라한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우릴 위해 죽으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그 선하심을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그 선하심을 맛보게 하시려는겁니다. 그 선하심을 맛보면 우리는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하나님을 예배하고 영광 올려드립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속에서 정말 하나님을 의지하기 힘든 경우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완고한 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주신 구원을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구원받을 수 없어던 완벽한 죄인이었습니다. 구원이 불가능해보였습니다. 절대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가능해보이는 죄인을 구원하셨잖아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하셔서요. 하나님은 불가능함이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의 환경과 상황이 변하여 하나님을 때때로 의지하기 힘들 때가 생기신다면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불가능한 구원을 이루신 예수님.
그러면 이 세상 어떤것도 불가능할 것이 없다는 믿음이 생기실겁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선한 복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굴러들어온 복을 뻥 차 버리는 완고한 모습을 경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환경과 상황이 정말 힘들고 어려워 하나님을 의지하지 못할 것 같을 때 다시 예수님을 바라보고 불가능해보였던 구원을 이루어주신 하나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하며 살아가시고 그 평안을 삶에서 깊이 누리시는 길벗교회 성도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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