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공동체, 회복하는 공동체

사무엘하 강해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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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새벽기도에 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다윗이 므비보셋의 삶을 회복한 것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교회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나갈지에 대해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한 공동체이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7장이 언약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8장은 하나님께서 이 언약의 내용이 이뤄진다는 것을 전쟁의 승리를 통해 보여줍니다. 9장에서는 다윗이 므비보셋이라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푸는 모습에 대해 말합니다. 9장이 있기 때문에 8장에 나온 다윗의 전투가 그냥 일반 세계사의 전투와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9장에서 다윗은 언약에 근거해서 은혜를 베풀기 때문에 8장에 나온 전쟁도 하나님의 언약에 근거한 믿음의 행동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만약에 다윗의 전쟁이 세속의 왕들이 하는 것처럼 자신의 용맹을 떨치기 위한 전쟁이면 9장에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라 사울 정권에 있던 모든 사람을 처형했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장은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푸는 장면을 보여주며 다윗의 행위가 언약에 근거한 믿음의 행위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본문 1절에 다윗이 사울 집안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기 위해서입니다. 왜 다윗이 사울 집안 사람에게 은혜를 베풉니까? 바로 요나단 때문입니다. 요나단은 살아 생전에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지지했습니다. 사무엘상 23장 18절에 요나단이 다윗에게 말하기를 “너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내 아버지 사울도 안다.”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요나단은 왜 다윗이 왕이 된다고 이야기 했습니까? 아마 요나단은 사무엘이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고 다른 이웃이 왕이 된다는 이야기를 잘 새겨들었다가 다윗이라는 인물을 보고 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된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나단은 사무엘상 20장에 다윗이 목숨의 위협을 느끼고 힘들어할 때 다윗을 버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윗을 돕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다윗의 집과 언약을 맺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칠 것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야기 하기를 사무엘상 20장 15절에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 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함을 내 집에서 영원히 끊어버리지 말라고 합니다. 요나단은 다윗이 왕이 된다는 예언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해서 다윗의 동역자가 됩니다.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도와줍니다. 다윗이 왕이 된다는 그 약속안에서 다윗과 운명공동체가 됩니다. 그리고 다윗에게 자신의 집에 인자함을 끊지 말아달라고 합니다. 다윗이 왕이 된다는 약속 안에서 요나단과 다윗은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다윗은 결코 요나단을 잊을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요나단은 죽었지만 요나단의 후손에게라도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다윗이 왕이 된다는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그들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설명) 이것은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세우셨다는 이 약속 안에서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우리는 이 약속을 위해 하나님께 함께 선택 받았고 이 약속으로 인해 함께 구원 받았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로 부름 받아서 우리가 같은 하나님을 예배 합니다. 약속 안에서 우리는 하나입니다.
(적용) 약속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고 또 무모한 일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배척합니다.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 가장 보편적인 생각이었습니다. 자신과 언어가 다르고 인종이 다르고 역사가 다르고 혈통이 다르면 하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이 약해보이면 억압해서 자기 아래로 두려고 하거나 자신보다 힘이 강하면 숭배하고 차원이 다른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면 하나의 약속으로 세워진 교회공동체, 언약 공동체는 다른 것들을 하나로 모아 한 몸 되도록 했습니다. 생각이 다르고 성격이 달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그 약속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을 하다보면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납니다. 나와는 성격이 달라서 활발한 사람을 만나거나 혹은 소심한 사람을 만납니다. 나보다 많이 배운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적게 배운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돈이 많은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적은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보수적인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진보적인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나이가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습니다. 다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보여줘야 합니다. 우리의 모습이 다 다르지만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신다는 이 약속 안에서 얼마든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합니다. 다윗이 왕이 된다는 그 약속 안에서 베냐민 지파였던 요나단과 유다 지파였던 다윗이 하나가 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 되신다는 약속 안에서 하나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세상은 자신과 다르면 배척하고 다르게 여기고 끼리 끼리 어울리지 않습니까? 우리는 언약공동체로서 세상에서 절대 볼 수 없는 모습을 보여주며 분열된 세상을 회복시키는 공동체로 쓰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의 약속으로 하나된 공동체입니다.
2-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동역자를 존귀한 자로 세워준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약속 안에서 동역자를 존귀한 자로 세워준다는 것입니다. 공동체가 하나가 되려면 그 안에서 서로 존귀한 자로 세워주는 것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예를 지키는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의 약속으로 맺어진 공동체가 존귀하게 여기지 않으면 혹은 누구만 존귀하게 여기고 누구는 존귀하게 여기지 않게 되면 그 공동체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존귀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어디서나 존귀하게 여길 수 있는 사람 뿐 아니라 어디서도 존귀하게 여김 받지 못하는 사람을 존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공동체와 교회의 언약공동체의 차이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집안에 종이었던 시바라는 사람을 부릅니다. 시바에게 사울 집안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물어봅니다. 그리고 그 남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한다고 합니다. 여기 3절에 보시면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기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은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선택하신 그 영원하신 언약 안에서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푼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기 나라를 세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를 다스리는 일꾼으로서 사울의 집에 남은 자에게 보상을 하려고 합니다. 세상적이고 정치적인 생각들을 모두 내려놓고 오직 언약 안에서 은총을 베풀려고 합니다. 그리고 시바는 므비보셋의 존재를 알립니다. 그리고 6절에 보시면 사울의 손자인 므비보셋이 등장합니다. 므비보셋은 자신이 다윗의 종이라고 자신을 한참 낮추어 이야기 합니다. 아마 자신이 사울의 후손이니까 일평생 다윗을 괴롭힌 사울에 대한 악감정 때문에 자신을 불러 벌하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7절에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무서워하지 마라고 합니다. 요나단으로 인해 은총을 베풀 것이라 말합니다. 할아버지 사울의 밭을 돌려주고 항상 다윗 앞에서 떡을 먹을 것이라 말합니다.
사울 왕의 밭을 돌려준다는 이야기는 의미심장합니다. 단순히 재산으로서 보상을 해주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사울 왕이 왕으로서 갖고 있던 토지를 준다는 이야기는 므비보셋이 왕족의 지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께서 세우시기 때문에 다윗처럼 왕은 되지 못하지만 왕족으로서 존귀하게 살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한 근거가 나옵니다. 바로 므비보셋이 다윗의 상에서 식사를 하는 것입니다. 다윗과 함께 식사를 하려면 얼마나 지위가 높아야 되겠습니까? 일국의 왕과 아무나 식사 자리를 할 순 없습니다. 므비보셋은 멸망한 나라의 왕자였지만 다윗이 그를 기억하여서 존귀한 자로 여겨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이 므비보셋을 회복시킨 이야기를 보면서 단순히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해라 이런 메시지를 얻을 수 있지만 그것을 넘어서서 언약공동체가 어떤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다윗과 요나단이 하나의 약속을 공유했습니다. 그 약속 안에 이제 므비보셋이 들어왔습니다. 그 약속은 다윗이 왕이 되어 하나님 나라를 확장한다는 약속입니다. 다윗은 므비보셋을 이 약속 안에 있는 사람으로 간주합니다. 이 약속으로 생긴 하나님 나라 공동체 안에 므비보셋을 맞이합니다. 고대이스라엘 사회에서 다리를 저는 자는 존귀하게 여김을 받지 못합니다. 왕이나 제사장이 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런 통념을 깨고 므비보셋이 다윗과 함께 식사를 하며 왕자와 같이 존귀하게 여김 받도록 하고 있습니다. 가문의 재산을 돌려받아서 왕자처럼 살도록 했습니다. 언약 공동체 안에서 므비보셋의 삶이 다시 회복 된 것입니다.
(적용) 이것을 보며 우리는 교회 공동체가 어떠해야 하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됩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원자 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하나의 약속으로 같은 공동체가 된 곳입니다. 이 공동체 안에서 우리는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했던 것처럼 서로를 존귀하게 만들어주고 서로의 삶을 회복시켜 주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 안에서는 상처가 치유되고 분노가 잠잠해지고 우울한 것이 활력을 얻는 일이 생겨야 합니다. 므비보셋에게 은혜를 베푼 다윗의 후손이신 그리스도는 마치 므비보셋과 같이 비참한 처지에 있는 우리를 회복시키셨습니다. 날 때부터 죄인으로 태어나 일평생 죄의 비참함 가운데 살아야 하는 우리를 구원 하셨습니다. 시편 23편이 고백하듯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셨습니다. 마치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상을 베풀 듯이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상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것을 우리가 성찬식 때 마다 경험하지 않습니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이미 존귀하게 하셨기 때문에 우리또한 한 언약의 공동체 안에 들어온 이를 존귀하게 여깁니다. 나보다 좀 못한 것 같아도 그럴수록 낮은 마음으로 더 가까이 다가가고 반갑게 맞이하고 대해야 합니다. 나도 예수님께 구원 받았지만 저분도 구원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면 우리는 서로를 존귀하게 여길 수 밖에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세상의 지위와 세상에서의 위치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의 손과 발로 서로 더 섬기며 동역자를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의 섬김이 동역자를 왕자로 만들고 공주로 만듭니다. 세상에 이것보다 아름다운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을 실천하여 교회가 세상과 무엇이 다른지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결론
설교를 맺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자 되신다는 하나의 약속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하나된 공동체 안에서 서로 존귀하게 여기며 우리 공동체를 더 아름답게 세워나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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