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에의 참여 & 성령의 적용 (소요리 29-30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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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구속에의 참여 & 성령의 적용
본문 : 누가복음 24:46-49
찬송가 : 183장, 190장, 196장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1. 아무리 좋은 것도 배송이 안 되면 누리지 못합니다.
요즘 배송 문화, 배달 문화입니다. 시킨 물건이 도착을 해야 쓸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낮아지시고, 높아지신 모든 구원의 은혜가, 우리에게 배달되지 않으면, 우리는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찰스 하지는, 말씀이 가장 중요한 은혜의 수단이라 할지라도, 말씀은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결단코 사람들을 구원시키거나 변화시킬 수 없다고 했고,
루이스 벌코프 역시, 말씀은 성령의 역사 없이는 결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도,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며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들을지라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라는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편이 있어도, 성령께서 역사하시지 않는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배달되지 않은 물건과 마찬가지로, 전혀 우리에게 구원의 역사를 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위대한 죽음을 죽으시고, 놀라운 부활을 하셨다고 해도, 그게 배달이 안 되면, 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야, 예수님께서 이루신 모든 구원의 혜택이 우리의 마음 속에 정확하게 배달되기 때문입니다.
소요리문답 제29문을 먼저 읽겠습니다.
제29문 :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까?
답 :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구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게 적용하여 주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
배달이 되지 않으면 참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시고, 사시고 죽으신 비하의 은혜, 죽음 가운데서 부활, 승천, 재위하시는 승귀의 은혜가, 아무리 값어치 있어도, 배달이 안 되면 안 되는 것인데, 그것을 배달하는 분이 누구시냐? 그게 바로 성령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구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게 적용하여 주심으로 가능해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이 성령의 적용 사역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계십니까? 그리스도께서 값 주고 사신 비하의 은혜, 승귀의 은혜가 ‘나의 것’으로 소유화되셨습니까? 그것을 이루어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신 후에, 더더욱 강력하게 임재하셔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모든 사람에게 쉬지 않고 배달하고 계십니다. 그 물건을 배달받은 사람이 바로 그리스도인인 것이죠.
오늘 본문 46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비하와 승귀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46절 말씀입니다.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일단 죽습니다. 고난을 받고 죽는 것을 비하라고 합니다. 낮아지는 거죠.
그리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십니다. 부활, 승천, 재위, 재림. 우리는 이것을 승귀라고 하죠.
비하와 승귀를 통해, 우리에게 배송될 물건은 다 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배송할 사람이 필요한 거죠?
4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예수님의 제자들이, 바로 그 물건을 배송하는 배송자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증인이다. 너희가 나의 비하와 승귀를 모두 목격한 증인들이다. 라고 하시면서, 너희가 이 물건을 배달해야 한다. 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제자들은 배송에 실패했습니다. 주소지를 몰랐던 것은 아닌데, 차에 기름이 떨어져서, 물건 배달에 실패했습니다. 우리가 읽어보지는 않았지만, 38절에 예수님이 제자들을 책망하십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하시면서 책망하십니다.
왜요? 아직도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확실하지 않아서, 마음이 흔들리고, 제자들은 방구석에 짱 박혀 있었습니다. 물건 배송에 실패했죠.
우리도 이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여전히 내 마음에서 확신이 없고, 흔들리며, 복음을 전하기는커녕, 사람들이 비난할까봐 방구석에 짱 박혀 숨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은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오늘 본문처럼 예수님은 방구석에 짱 박혀있는 제자들을 친히 찾아오십니다. ‘니들 여기서 뭐하냐? 왜 여기 숨어 있냐? 아직도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냐? 마음이 흔들리고 두렵느냐? 나를 봐라. 나는 죽음을 이겼다. 부활하였다.’ 라고 하시면서, 의심많고 겁 많은 우리들을 찾아와서 다시 한번 증인,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당장 내 마음 속에 확신 없음으로 흔들리지 마십시오. 아직도 헷갈려하는 의심 많은 자기 자신 때문에 괴로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고통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죽은 지 3일만에 부활한 것을 목격한 제자들도 흔들렸어요. 그들도 배송에 실패했어요.
두려운 게 당연한 것입니다. 의심이 생기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이 이 사실을 아세요. 그래서 부활하신 후에 제자들을 친히 찾아가서 격려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일어나는 의심도 만져주시고, 두려움도 만져주셔서, 다시 한번 제자의 길, 증인의 길을 살게 하시는 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만 믿고, 힘을 내시기를 바랍니다.
2. 그렇다면 성령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물건을 배송하실까요?
소요리문답 제 30문을 봅니다.
제30문 :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십니까?
답 : 성령께서는 우리를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부르셔서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주십니다.
여기서 핵심적인 단어는 ‘연합’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십니다. 육체적인 연합이 아니라, 영적인 실제적인 연합, 신비적인 연합을 말합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목소리로 부르시는데, 이것을 효력 있는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부르심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나아온 사람의 마음 속에 믿음을 일으켜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원자로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이 모든 것을 성령님께서 하십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예수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이 됩니다.
우리가 결혼하면,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이 되듯이, 예수님과 우리 사이에 성령님께서 중매자가 되어 주셔서 한 몸이 되도록 이끌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서, 예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은혜를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비적 연합입니다.
여러분, 교회는 성령님께서 배달하신 그 은혜를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다 이루어놓으신 십자가와 부활의 은혜를 배달받아, 그 물건 포장지 뜯어서, 그 안에 배달된 모든 풍성한 선물을 누리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 은혜 가운데 풍성하게 거하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찬송하게 됩니다. ‘이것도 주시고, 저것도 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항상 찬송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 은혜를 전혀 누리고 있지 못하신가요? 물건은 이미 다 만들어졌습니다. 제품은 다 만들어졌어요. 그런데 성령님의 배달하시는 사역, 적용 사역이 여러분 가운데 충만히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으시면, 여러분은 만들어진 제품을 하나도 사용해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셔야 합니다. ‘성령님, 내 안에 역사하여 주시옵소서. 성령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비하와 승귀의 모든 은혜가 나의 것이 되게 해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제자들은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벌벌 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벌벌 떠는 제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주십니다. 이것이 구원받은 자의 삶입니다. 우리는 벌벌 떠는 사람이 아니라, 위로자, 격려자가 되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은 이런 위로자, 격려자가 되도록 불러주신 것입니다.
47절을 읽습니다.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굳이 시작하는 장소를 기록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어디서부터 시작된다고 했습니까? 예루살렘에서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어디로 전파될 것이라고 했습니까? 모든 족속, 모든 열방으로 전파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잇는 사도행전은, 복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해서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전파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다윗의 나라가 먼저입니다. 이스라엘이 먼저입니다. 이스라엘이 먼저 회복되는 것이 구약의 그림입니다. 그리고 회복된 이스라엘에 “모든 열방”이 되돌아오는 것이 구약성경의 그림이었습니다.
이사야 2장 2절에, “마지막 날에 되면 예루살렘 성전 산이 가장 높은 산이 될 것이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열방들이 그 산으로 모여들게 될 것이다.” 라고 예언되어 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마지막 날에 되면은, 먼저 예루살렘이 회복되어야 된다. 그게 하나님 뜻이다. 그리고 그 산으로 모든 열방이 찾아와서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 이게 하나님 뜻이다. 라는 뜻 아닙니까?
그래서, 예수님이 이스라엘의 회복시키는 다윗의 자손이면서, 모든 열방을 구원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는 것입니다.
특별히 예수님은 열 두 명의 제자들을 뽑는데요. 하필이면 10명도 아니고, 12명인 이유는, 예수님이 뽑으신 제자들이, 새로운 이스라엘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심으로, 구약성경이 예언한 다윗의 나라가 회복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니네들이 말하는 나라가 아니라, 열두 명의 제자들이 바로 내가 세우고자 하는 다윗의 나라다. 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이 회복된 다윗의 나라에 누가 들어옵니까?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예루살렘에 찾아온 모든 유대인들도 들어오지만, 고넬료, 루디아 같은 이방인들이 바울이 전한 복음을 듣고, 교회로 들어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구약성경에서 예루살렘 성전 산에 모든 산 위에 높이 우뚝 서고, 그 산으로 모든 열방이 되돌아오는 그림이, 누가복음으로부터 시작하여, 사도행전에서 점진적으로 확장되어 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세우신 교회가 바로, 구약성경이 예언한 다윗의 나라요,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라는 뜻입니다.
여러분, 그래서 우리는 이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아, ‘내가 바로 다윗의 나라구나, 내가 바로 아브라함의 자손이구나.’ 하는 자부심입니다.
유대인들이 거부하고, 많은 사람들이 거부한 그 복음을 소유한 내가 바로 다윗의 나라, 아브라함의 자손이구나. 라는 확신을 가지셔야 합니다.
4. 이 모든 은혜에 대한 확신이 무엇으로 주어집니까?
우리가 함께 읽은 제29문의 말씀처럼, 성령의 적용 사역을 통해서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49절을 읽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이제 예수님은 승천하십니다. 하늘로 올라가십니다. 그런데 그냥 올라가시면, 안 되고, 예수님께서 이루신 모든 구원을 적용해주실 분을 내려주셔야 합니다. 그게 바로 성령님이신데, 49절에서는 “위로부터오는 능력”이라고 되어 있고, 사도행전 1장 8절에서는, “성령”이라고 명확하게 표현했습니다.
성령님이 임하셔야 합니다. 성령님이 오셔야, 교회가 확장됩니다.
오늘날 교회가 움츠러드는 이유는 성령의 적용사역이 약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라는 믿음이 생기지 않는 이유 역시 성령의 적용사역이 활발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기도하라고 하신 말씀의 자리에 머물러야 합니다. 예수님이 주신 은혜가 나의 은혜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님, 내 마음 속에 임하여 주시옵소서. 그래서 성령의 능력으로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무도 안 믿는 환경 속에서,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시라고 주장했던 제자들의 담대함이 우리에게도 생기게 해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교회가 살아나고, 확장되고, 모든 열방이 다윗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5.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신 모든 구원의 은혜를 배송하는 배송자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완벽하게 성령님만 일하신다고 할 수는 없지만, 교회가 성장하는 시대는 확실히 성령님께서 일하셔야 하는 시대입니다.
말씀이 있어도, 성령님이 역사하지 않는 말씀은 죽은 말씀이요, 옛 경전에 지나지 않습니다. 찰스 하지나 루이스 벌코프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성령님께서 일하셔야만 기록된 말씀이 살아서, 우리들과 우리 아이들의 마음 속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을 구하십시오. 성령님께 일하여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우리 아이들을 다윗의 나라,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전파하도록 용기를 주시는 분도 성령님이십니다.
교회를 교회되게 하고, 예수님이 이루신 모든 구원을 누리게 하시는 분도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우리를 불러 주시는 분도 성령님이시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분도 성령님이시고, 우리가 예수님과 연결되어, 의롭다 함을 받게 하시는 분도 성령님이시고, 양자 됨, 성화의 은혜를 주시는 분도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사역이 활발하면, 회개가 일어나고, 믿음이 강해지며, 예수님을 점점 더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성령님의 사역이 활발하여서, 지역의 많은 영혼들이 다윗의 나라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편입되는 구원의 역사가 충만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1. 교회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여러분의 마음 속에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마음 속에 성령님께서 활발하게 일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앞에 세우신 담임목사님과 사모님을 위해서, 교역자들과 교사들을 위해서 기도해주십시오. 성령님께서 사용하시는 일꾼들 다 되게 해달라고 기도해주십시오.
2. 말씀에 대한 확신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2천년 전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의 은혜가, 오늘날 나를 위한 사건이라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회개하는 일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구원에 대한 은혜가 활발하게 확산되어, 이 지역에 하나님의 은혜가 널리 전파되도록 기도합시다.
누가복음 24:46-49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사역
46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이렇게 그것이 기록되어졌다(그라포, 수동태). 그리스도가 파스코(경험하다, 겪다, 고생하다 / 능동태) 하시고, 삼일에 네크로스(죽은, 복수) 자들 가운데에서 아니스테미(일으켜 세우다, 일어나다, 깨어나다 / 능동태) 하신다고.
*시편 22편과 이사야 53장과 관련되어, 그리스도의 고난이 예언되어 있다.
*제3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은 호세아 6:2과 관련된다.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르 살리시며 셋재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호 6:2)
47 그리고 그의 이름으로 케륏소(선포하다, 설교하다, 가르치다 / 수동태) 된다. 메타노이아(회개, 후회)가 그리고 하마르티아(죄, 불법, 죄악 / 복수)의 아페시스(용서, 탕감, 사함)가. 모든 에스노스(이방인, 민족, 족속, 열방)을 위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아르코(시작하다, 주관하다, 다스리다) 하여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회개가 가르쳐진다. 또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죄 용서가 가르쳐진다.
*그런데 이 가르침은 “모든 열방”을 위한 가르침이다. 모든 열방이 예수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예수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는다.
*이 일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된다. “다윗의 나라”가 세워지고, “이방 민족”들이 다윗의 나라로 돌아와, 이스라엘과 함께 하나님을 예배하는 구약의 그림이 완성된다는 것이다. / 그래서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복음이 예루살렘 - 유대 - 사마리아 - 땅끝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이 구약의 성취라는 것이다.
*이사야 2:2-3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백성들에게 주의 말씀이 전파될 것을 기록한다.
“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이사야 2:2)
*이사야서의 중심 부분(40-55장)은 절망에 빠져 있는 백성들에게 광야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기나긴 여행을 하리라고 격려하는 목적을 명백히 담고 있다. 마침내 고레스 칙령이 그 꿈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 사건들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계획의 완성이 되어 주지는 못하였다는 사실이 처음부터 암시되었다.
48 너희들은 마르튀스(목격자, 증인, 순교자 / 복수)들이다. 후토스(이것 / 복수)들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실컷 고생하신 것, 죽으신 것, 3일만에 부활하신 것을 목격한 목격자들이다. 이 시대 교회는 이것을 ‘성령’으로 목격한다.
49 그래서 이두(보라!) 나는 에크스아포스텔로(내보내다, 파송하다, 보내다)한다. 나의 아버지가 에팡겔리아(약속, 서약)하신 것을, 너희들 위에(에피). 그러므로 너희들은 카시조(앉다, 자리하다 / 명령) 하라! 이 폴리스(도시, 마을)에. 너희들이 엔뒤오(입다, 붙이다, 옷입다) 할 때까지. 휘프소스(높이, 높은 곳)으로부터의 뒤나미스(힘, 권능, 능력)을.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되어 복음이 선포되기 위해서, 예수님은 제자 공동체가 예루살렘 성에 머물러 있어서 높은 곳에서부터 오는 능력으로 옷입을 것을 명령하고 계시다. 그러므로 선포/선교/설교/가르침은 ‘성령’으로 이루어진다.
소요리문답 29-30문
제29문 : 우리가 어떻게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까?
답 :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그 구속을 우리에게 효력 있게 적용하여 주심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의값 주고 사신 구속에 참여하는 사람이 됩니다.
제30문 :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십니까?
답 : 성령께서는 우리를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부르셔서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켜 주시고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심으로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주십니다.
그리스도께서 높아지신 이후 아버지의 우편에서 행하신 첫 번째 일은 성
령을 보내시는 일이었다.
마지막 때가 오기 전에는 성령께서 모든 육쳬에게 - 자녀들과 늙은이
와 젊은이들과 남종과 여종들에게 - 부어지는 일은 없을 것임을 구약 자쳬
가 예언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中ㅐ지께서 그에게 주신 그 나라를 힘이나 무력
으로 통치하시지 않는다. 그의 낮아지심에서도 그렇게 하시지 않았고, 그의
높아지심에서도 그렇게 하시지 않는다. 그는 하늘의 그의 자리에서 자신의
선지자적 · 제사장적 · 왕적 활동 전쳬를 영적인 방식으로 계속 수행하시는
것이다. 그는 오직 영적인 무기들로만 싸우신다. 그는 은혜의 왕이시요 동시
에 권능의 왕이시지만, 언제나 성령을 통해서 그의 군대를 인도하시며, 또한
성령께서는 말씀을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하신다.
교회 (목격자 공동체)
고대 사회 속의 왕은 전쟁 승리의 복된 소식을 알리기 위해 전령을 보냈다. 신약 성경 저자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무덤에 들어가심, 부활과 승천을 통해 죄와 죽음을 극복하신 하나님의 승리를 알리는 것으로 복음전도를 이해했다. 이런 승리의 소식이 선포될 때 청중은 이런 복된 소식을 믿고 향유할 수 있는 자리로 초청받게 되고, 비로소 그 복음을 믿음으로 죄의 삶으로부터 돌이키게 되어 부활하신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는 길을 밟게 되는 것이다.
비록 성경은 복음전도의 은사를 받은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지만(엡 4:11), 회심 사역은 설교자의 기술에 따라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사역임을 성경은 명확히 가르치고 있다.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것과 다르게, 신약 성경 속에서는 공동체적 경험이 대대적으로 드러난 경우도 많다. 신약 성경에는 제자라는 단어가 총 262번 등장하는데, 그중 239번이 복수형으로 기록되어 있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로새서 1장 28-29절)
증인
‘어떤 사실을 증명하는 사람’, ‘자신이 직접 목격한 사건에 대해서 증언하기 위하여 부름받은 사람’, ‘재판에 출석하여 증언하는 사람’을 가리킨다(출 23:1; 마 18:16). 성경에서는 땅을 사고 팔거나(창 23:11; 룻 4:1–9) 결혼할 때(룻 4:10–11), 혹은 재판할 때(신 19:18; 잠 18:17) 그리고 언약을 체결할 때(창 31:44–52) 등 삶의 여러 영역에서 증인을 필요로 한 것을 볼 수 있다.
성경 기록을 보면, 단지 사람뿐만 아니라 돌(수 24:27), 기둥(사 19:20), 노래(신 31:19–21), 율법(신 31:26), 제단(수 22:27–34) 등도 증인으로 인정된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재판정에서 법적 시비를 가릴 때에, 치우침 없는 공정한 재판을 위해서, 또는 증거의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반드시 두세 명 이상의 증인(목격자)이 요구되었다(신 17:6–7; 19:15; 마 18:16; 고후 13:1; 딤전 5:19; 히 10:28). 이들 증인은 무엇보다 정직해야 했고 목격한 것 곧 사실만을 말해야 했다(출 23:1; 레 5:1).
‘증인’으로 번역된 원어를 통해 증인의 역할과 자세를 배울 수 있다. 먼저 히브리어로 ① ‘에드’(עֵד) - 원뜻은 ‘되풀이해서 말하다’, ‘입증하다.’ 법정 용어로서 ‘진실을 밝혀 시시비비를 가리게 하는 자’란 뜻이다(사 44:8). 헬라어로 ② ‘마르튀스’(μάρτυς) - 원뜻은 ‘정보를 가진 자’ 혹은 ‘지식을 전달하는 자.’ 이는,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역할을 하는 자를 말한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목격한 자로서 그 사실(정보)과 그 복된 소식, 즉 복음(福音)을 고백하며 증거하는 자라는 뜻으로 쓰인다(눅 24:48).
이처럼 신약성경에서는 복음의 진리,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사람(전도자)을 ‘증인’으로 지칭했는데(행 1:8,22), 특히 사도는 자신들을 ‘증인’으로 인식했다(행 2:32; 5:32; 10:39; 22:15; 26:16; 살전 2:10; 딤후 2:2). 그리고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온전히 실현한 자로서 ‘충성된 증인’이라 일컫기도 했다(계 1:5; 3:14).
한편, 헬라어 ‘마르튀스’는 오늘날 ‘순교자’(殉敎者)를 뜻하는 영어 ‘martyr’의 어원이 된다. 증인은 자신의 목숨을 내걸고 자신이 목격한 바 있고 확신하고 있는 바를 증거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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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이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실존은 많은 경우에 하나님의 영광 중에 그리고 현현 중에 나타났지만, 복음에서는 예수님 자신이 사람들 사이에 하나님의 실존을 나타내셨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는 교회 시대 전체를 통해서 성령이 우리 가운데 삼위의 실존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현재 가장 두드러지게 우리와 함께 하시는 분이시다.
성령의 사역의 4가지 면
1) 성령께서는 능력을 주신다
2) 성령께서는 정결케 하신다
3) 성령께서는 계시하신다
4) 성령께서는 하나가 되게 하신다
칼빈주의 개혁파 신학의 구원론에서 성령의 주권적 사역, 특히 구원의 적용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은 개혁파 신학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개혁파 구원론이 인론적(人論的)인 것이 아니라 신론적(神論的)으로 고찰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이것은 인간의 구원이 인간의 선행이나 노력에 의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받는다는 성경적 진실에 근거한 논의이기도 한것이다.
구원의 적용(適用)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객관적(客觀적) 구속 사역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죄인의 마음과 생활에 성령께서 주관적(主觀的)으로 구속을 실행하시는 사역을 의미한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칭의(稱義)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에 의해서 전가(轉加)되어진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 연합의 사역을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창조하시는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와 연합시킨 자들을 또한 거듭나게 하신다.
이 거듭나게 하시는 사역을 중생(重生)이라한다. 이 중생은 전적으로 성령의 단독 사역(單獨事役)으로 죄와 허물로 죽은 자(엡 2:1)를 살리시는 성령의 창조적(倉造的) 사역인 것이다.
말씀자체의 능력이 아니라 말씀과 함께, 말씀과 더불어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 죄인이 말씀을 받고 거듭나며 새생명 가운데 태어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말씀을 전하거나 듣거나 읽을 때 성령의 조명과 역사(役事)를 필히 간구해야 한다.
성령께서는 칭의(稱義)와 수양(受養)의 사역(성부 하나님의 사역)에 의해 하나님의 아들된 자들을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확신(確信)케 하시며 그 사역을 계속하신다(롬 8:14-17,갈4:4-7).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形象)을 이루기까지 쉬지 않고 역사(役事)하신다(고전 3:17-18, 롬8:26-30).
성화(聖化)는 하나님의 성령의 초자연적 사역이다. 이것은 근본적(根本的)으로 영혼안에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역으로 사람의 사역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은 죄인을 거듭니게 하실 뿐아니라 성화와 선행의 동인자(動因者)가 되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성화의 방편(方便)을 부인(否認)하거나 무시(無示)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례(聖禮), 기도와 묵상, 섭리적 지도등을 통해 성령께서는 성화를 이루어가신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이 방편(方便)을 부지런히 사용(使用)해야 할 의무(義務)가 있다.
그렇다고 하여 이 기구들(방편들)이나 선행이 성화를 주는 것은 아니다. 단지 우리는 성령을 더욱 의지하여 행할 뿐이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 같이(칭의에서와 같이) 은혜로 구원을 받는 중이다(성화에서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16장 3절은 "3. 신자들이 선행을 할 수 있는 재능은 조금도 그들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영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또 그들이 능히 선행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미 받은 은혜 외에, 그의 기뻐하시는 것을 원하고 또 행할 수 있도록 그들 안에서 역사 하시는 동일한 성령의 실제적 감화가 필요하다.
구원적 신앙에 있어서의 성령의 사역은 주권적으로 역사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구원은 전적으로 성령의 구속적용 사역에 의존(依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구원을 위해 성령의 소욕을 따를 것(갈5:16-26)과 더욱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명령을 받는 것이다(빌 2:12-16).
성령은 우리 구원의 기초자요 유지자요 완성자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소멸치 말고 근심시키지 않도록 순종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을 위해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성령은 “자연적 창조의 생명”을 시작하고 유지시키고 발전시키고 인도하며, 삶과 사회 생활에 있어서 타락시키고 파멸시키는 죄의 세력을 일시적으로 제한하고, 인간에게 공동 생활에 있어서 일정한 질서와 예의를 유지하고, 상호 관계에 있어서 외면적인 선과 의를 행하며 그들이 부여받은 천부적 재능을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한다.
반면, 구속 및 재창조의 영역에서, 성령은 위로부터 출생하고 위로부터 양육되며 위에서 완성될 “새 생명”, 즉 지상에서 살지만 원리상 천상적 생명을 시작시키고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며 인도한다. 특별 사역을 통해 성령은 죄의 권세를 극복하고 분쇄하며,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새롭게 하시며, 하나님께 영적으로 순종할 수 있게 하고, 세상의 소금과 빛이요,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영적 발효소가 되게 한다. 창조 영역에서의 성령의 일반 사역은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지만 구속 사역에 예속적이다. 선택받은 자의 전생애, 심지어는 중생 이전의 생애도 최종적인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에 의해 결정되고 지배된다.
기독교 강요
아버지께서 독생자에게 주신 은혜들은 그리스도 자신이 사적으로 쓰시기 위한 것이 아니고, 빈곤하고 곤궁한 사람들을 부유하게 만드시기 위한 것이었는데, 우리는 그 은혜들을 어떻게 받는가 하는 것이다. 우선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밖에 계시고 우리가 그와 분리되어 있는 한, 인류의 구원을 위해서 그가 고난당하시며 행하신 일은 모두가 우리에게 무익, 무가치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에게서 받으신 것을 우리에게 나눠주시기 위해서는 그가 우리의 것이 되며 우리 안에 머물러야 했다.
신약성경신학
예수님의 첫 번째 선교는 갈릴리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이어진다. 사실 복음서 기자 가운데 누가만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셨다는 사실을 여러 번 언급한다. 교회의 사역 역시 이와 유사하다. 사도행전 1:8은 선교가 예루살렘에서 유다와 사마리아 및 땅 끝까지 확산될 것이라고 말한다.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은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과 사도행전의 첫 장을 연결한다. 끊을 수 없는 사슬과 같이 누가는 성령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연결한다.
누가복음 24장이 하나님의 계획을 요약하듯이 사도행전 1:8은 지리적 언급과 함께 초대교회의 발전을 요약한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 유다와 사마리아를 거쳐 땅 끝까지 전해졌다. 교회는 오직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누가복음 24:47의 사명을 후세까지 수행하였다.
(이제 누가복음 24장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이 회복된 것이다. 이들은 제자 공동체이며,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강림 이후에, “이방인”들이 “새로운 이스라엘”(교회)로 편입되어 들어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구약성경이 예수로 말미암아, 교회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성령은 이미(the already)가 이 악한 세대에 침
투해 들어온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성령은 신자들에게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은 완성될 것이라는 확신
을 주신다
성령은 사람이 하나님께 속함을 나타내며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도
록 신자들에게 힘을 주신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
한 회개의 메시지는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
이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약속하신 것”을 보내실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
나서는 안된다. 오직 그때에만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24:49) 것이며
온 세상에서 증인이 되기 위해 필요한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누가복음의 결론에서처럼 성령을 받
는 것은 땅끝까지 복 음 을 전파하기 위해 필요하다(1:8). 그러나 성령을 부
어주시기 전에 예수님은 반드시 승천하셔야: 한다(1:9-11). 예수님이 주와
그리스도로 높아지고 다윗의 보좌와 하나님 우펀에 앉을 때에만 성령은
주어질 수 있다(z:36). 하나님 우편으로 높아지신 자로서 예수님이 아버지
께 성령을 받아 이 동일한 성령을 그의 제자들에게 부어주셨다<2:33). 예수
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모든 나라가 귀중히 여기도록 하기 위해 성령은 예
수님이 높아지신 후에만 주어졌다.
사도행전 8, 10, 19
장에서 성령의 오심은 주로 카리스마적 사역을 위해 권능을 주신 것을 묘
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한다는 것
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순절 기사는 카리스마적 권능을 받는 것뿐만 아니라 성령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출발을 나타내기도 한다.
말씀이 가장 중요한 은혜의 수단이라 할지라도 말씀은 성령의 역사
가 없이는 결단코 사람들을 구원시키거나 변화시키는 능력을 나타낼 수 없
다 (찰스 하지)
말씀은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결코 사람을 변화시킬 수 없으며 그 말씀
은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으로서의 능력의 말씀이므로 성령과 함께 역
사하여 회심과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소유하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벌코프
는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말씀을 강조하는 동시에 말씀이 은혜의 방편이 되
기 위하여 성령이 함께 역사해야만 한다는 견해를 주장함으로써 말씀과 성
령의 균형을 강조하고 있다. (벌코프)
칼빈도 우리에게 믿음을 일으키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며 하나님의 약속
의 말씀을 들을지라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강조하
였다. (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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