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이용하는 사람 VS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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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서 개역개정판 5장
5 너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갈 때에 네 발을 삼갈지어다 가까이 하여 말씀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이 제물 드리는 것보다 나으니 그들은 악을 행하면서도 깨닫지 못함이니라
2 너는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 그런즉 마땅히 말을 적게 할 것이라
3 걱정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
4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하나님은 우매한 자들을 기뻐하지 아니하시나니 서원한 것을 갚으라
5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6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하게 하지 말라 1)사자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7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
불편한 진실
불편한 진실
얼마전 영부인의 순방 일정 중에 찍은 사진이 논란이 되었습니다. 김건희 여사가 캄보디아에서 심장병에 걸린 남자 아이 한 명을 품에 안고서 찍은 사진 말입니다. 항간에서는 이를 두고 ‘빈곤 포르노’라며 강한 비난을 가하기도 하는데요,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굶주리고 병든 아동의 모습을 이용한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일들이 사회에서는 비일비재하게 일어납니다. 특별히 정치권에서는 더더욱 그래왔지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봉사와 기부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심지어 필요한 사진 장면을 연출했던 적도 여러 번 이슈가 되었었지요. 이런 종류의 일들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불쌍한 이웃을 위해 봉사와 기부를 하는 것 자체는 항상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중심에 무엇이 있는가에 따라 봉사와 기부가 물색해질 만큼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상당히 좋게 보았던 선행의 모습이 사실은 자신의 욕심과 야망을 위해, 자신의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서 꾸며내고 연출한 장면이었다면 누가 그것을 진심으로 인정하며 반길 수 있을까요? 씁쓸하게도 우리가 겪는 많은 일들이 그렇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속에 들어 있는 본래의 모습이 너무나도 다른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언젠가 진실은 밝혀지고 본래의 모습은 드러나게 마련이니, 우리는 살면서 겉과 속이 다르지 않게 본질을 잘 지키며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해서 새벽에 나누고 있는 전도서의 말씀도 이러한 본질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전도서를 지은 솔로몬이 인생들에게 남기고 싶었던 교훈은 무엇이었을까요? 굳이 제가 이것을 성도님들께 여쭤본 이유는, 이것이 전도서 전체의 말씀을 이해하는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전도서의 처음과 끝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시면 이런 구절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전 1:2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전 12: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그리고 각각 처음과 끝에 반복되는 구절에는 시작하는 말과 끝맺는 말이 이어지는데, 시작하는 말에는 하나님 없는 모든 인간 수고의 헛됨을 강조하는 내용이 나오고, 끝맺는 말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통해서 그 허무함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 그럼 다시 한 번 여쭙겠습니다. 솔로몬이 전하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인간의 삶의 본질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부와 권력과 지혜와 쾌락을 누리면 겉으로 보기에는 인생에 성공한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것은 다 헛된 것이니 그저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하지요. 이것이 전도서의 핵심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내용도 마찬가지로 본질에 대해서 교훈하고 있습니다. “기도에 있어 우리가 지켜야 할 본질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말해주지요.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본문의 내용을 바탕으로 가상의 인물을 한 번 등장시켜 보겠습니다. 여기 어리석은 사람, 겉과 속이 다른 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아주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인데요, 늘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잊지 않는 사람입니다. 또 그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늘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의 소리는 크고 그의 기도의 내용은 장대합니다. 심지어 그는 하나님께 어마어마한 서원을 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 이 기도에 응답만 해주시면 제가 크게 헌신하겠습니다!”
주변에서 보기에 이 사람은 아주 신앙이 깊은 사람처럼 보입니다. 늘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기도도 열심히 하고 어마어마한 서원을 하기까지 했으니 누가보아도 신앙이 좋게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겉보기와는 달리 이 사람은 속이 병들어 있습니다. 기도의 본질을 놓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아주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며 늘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기는 하지만, 자세히 보니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그가 늘 간절히 기도하긴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그의 기도의 내용이 썩 반갑지 않습니다. 왜일까요? 그는 마땅히 구해야 할 것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비전을 품고 기도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알고보니 그에게 일확천금의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인생에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기회이기에 그는 절대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가 간절했습니다. 그의 서원이 어마어마한 서원이긴 했지만, 여기에는 이런 조건이 붙어 있었습니다. “하나님 이 기도에 응답만 해주시면 제가 무엇이든 다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기도일까요? 아니면 거래일까요? 물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아뢰며, 우리의 마음에 품은 소원을 간구할 때 다급한 말로 간절히 기도할 수 있지만, 앞에서 말한 그 사람의 기도는 본질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이것은 기도가 아니라 거래지요. 기도가 나의 욕심과 야망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의 본질을 놓치게 되면 우리는 신앙에서도 바른 길을 벗어나게 됩니다. 첫째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포함해서 우리 자신도 하나님께서 주인이신데, 우리가 우리의 무엇을 가지고 하나님과 거래를 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누리는 생명조차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것으로 내세울 수 없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과 거래하려 할 때, 우리는 애초에 시작할 수도 없는 일을 벌이며 교만에 빠지는 것입니다. 둘째로 거래하는 사람은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거래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렇지 않지요. 하나님은 그저 자신의 유익을 위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기도로 하나님과 거래하려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 이상 우리의 아버지가 아니라 거래의 대상으로 낮추어 보는 신성모독에 빠지는 것입니다.
기도의 본질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 샤마와 샤마르. 주의 깊게 듣고 주의 깊게 행동하는 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