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생명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45 viewsNotes
Transcript
참된 영웅의 조건
참된 영웅의 조건
지금 카타르에서는 2022년 월드컵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8강전이 진행중인데, 우리나라는 12년 만에 극적인 16강 진출을 이루어 냈습니다. 선수들이 얼마나 많은 노력으로 그 힘든 훈련과 스트레스를 견뎌내며 월드컵 16강을 이루어 냈는지 모릅니다.
특히, 후반전 추가시간에 터진 역전골은 우리나라 축구 경기 역사상 안정환 선수의 헤딩골과도 맞먹을 정도로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골이었습니다. 이 골을 만들어낸 두 선수, 손흥민과 황희찬이 16강의 영광의 주역이었습니다.
그 중 손흥민 선수의 70m 드리블과 수비 선수 7-8명에 둘러싸여 있는 그 상황에도 불구하고 정확하게 달려오고 있는 황희찬 선수에게 어시스트를 하였습니다. 골을 넣은 황희찬 선수도 대단하지만, 손흥민 선수는 정말 대단합니다. 영국 BBC 에서는 이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서 그를 영웅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영화에서 나오는 영웅들처럼 국가대표 유니폼이라는 영웅의 옷을 입고, 영웅들 처럼 얼굴에 가면을 썼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가면은 영화에서 슈퍼히어로들이 자신을 정체를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가슴아픈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토트넘과 마르세유와의 챔피언스 리그 경기중에 상태 선수와 부딪혀 안와골절이라는 부상을 입고 수술을 받게 되었습니다. 월드컵 개막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일어난 부상입니다. 여러분 크고 작은 외과 수술을 받아 보셨겠지만,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데 얼마나 오래 걸립니까? 그것도 아주 예민한 눈 주위에 안와골절 수술이니 마스크를 쓰고 출전을 한다는 것도 대단한 의지입니다. 뛰면 뛸수록 얼굴은 붓고 땀이 흐를 때 마다 마스크는 벗겨지려고 하였을 것이고, 시야도 가려져서 너무나도 불편했을 상황이었을 텐데,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고서 팀을 위해서 희생적으로 뛰었습니다. 어쩌면, 프로 선수로서 커리어를 위해서 또 다른 부상을 피하기 위해서 월드컵에 출전 하지 않는 결정을 해도 되었을 텐데 그의 모습을 보면 이번 월드컵의 참된 영웅입니다. 단연코 자기 희생과 헌신적인 책임감이 영웅을 만듭니다.
예수님을 찾아 온 그리스 사람들
예수님을 찾아 온 그리스 사람들
대림절을 맞아 우리는 세번째 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복음이신 예수님께 예배를 드리는 예배자로서 오늘 여러분에게 자신을 땅에 떨어진 한알의 밀알로 자신을 비유하시는 예수님에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오늘 예수님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찾아 옵니다. 그들은 바로 그리스 인들 입니다.요 12:20-21
요한복음 12:20–21
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그리스 사람이 몇 있었는데,
21 그들은 갈릴리 벳새다 출신 빌립에게로 가서 청하였다. “선생님, 우리가 예수를 뵙고 싶습니다.”
예루살렘에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온 그리스사람 즉, 헬라인들이 빌립에게 예수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들은 누구일까요? 헬라 본토인 그리스에서 온 사람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렇다면 헬라어를 쓰는 헬라파 유대인 일까요? 아닌것 같습니다. 헬라어를 쓰는 이방인들로 하나님을 예배하러 온 사람들입니다. 그들을 당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도행전에서 에티오피아 환관이나 고넬료와 같은 사람이 이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그들이 개종자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인들은 정식으로 개종하지 않아도 성전의 이방인의 뜰에 들어가 절기의 순례에 참여하는 것이 허용이 되었기에 지금 본문은 헬라어를 쓰는 아직 개종하지 않은 헬라인들이지 않을가요?
그렇다면 왜 그들이 왔을까요? 한 주석가는 예루살렘 입성을 다루는 19절까지와 20절 사이에 예수님에의해서 성전이 정결케 되는 사건, 마가복음 11:15-17
마가복음 11:15–17 (NKSV)
15 그리고 그들은 예루살렘에 들어갔다.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 뜰에서 팔고 사고 하는 사람들을 내쫓으시면서 돈을 바꾸어 주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를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16 성전 뜰을 가로질러 물건을 나르는 것을 금하셨다.
17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기록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불릴 것이다’ 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는 그 곳을 ‘강도들의 소굴’ 로 만들어 버렸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입니다. 성전 정결사건이 이뤄진 곳은 바로 이방인의 뜰입니다. 이방인들은 개종자들을 제외하고는 안뜰까지 여인의 뜰까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AD 37년 시리아의 로마총독도 이것을 어기지 않았을 정도 이고 안뜰과 이방인의 뜰을 나누는 담장에는 “the dividing wall of hostility”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담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이방인도 성전을 둘러싼 담장과 성전 영역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잡히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의 죽음에 스스로 책임져야한다”
엡 2:14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에 나온 담이 바로 이 담입니다. 이 담을 넘으면 즉시 사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성전이 이방인에게 주는 메시지는 바로 하나님께 나올 수 있는 것은 유대인들 뿐이다. 차별하고 편애하는 하나님이지 않았을 까요? 게다가 유대인들은 거기에 제물을 파는 상인들과 환전상으로 가득하게 하였으니 이방인들의 뜰은 한마디로 성전이 아니라 도떼기 시장 그 자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나타나셔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시면서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시니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고 싶고,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며 질문도 하고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싶었을 것입니다.
요한의 이와같은 모습은 예수님께서 세상을 위해서 보내진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이심을 보여 줍니다. 요3:16 “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유대인들과 바리새인과 같은 유대인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대적하여 죽이려 하는 것과는 다른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과 같이 취급받던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서도 예배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요4:23-24
23 참되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예배를 드릴 때가 온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24 하나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
썩어져야 할 밀알이신 예수님
썩어져야 할 밀알이신 예수님
예수님에게 다가온 이방인들, 그리스 사람들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하여 갈등이 깊어진 상황에서 그들에게 다가 왔습니다. 이스라엘 전체가 예수님을 메시야로서 구원자로서 거부하였지만 오히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엡2:14 “14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에베소서 말씀을 이루어 메시야로부터 제외되었던 이방인들을 새언약의 공동체로 품어내셨습니다. 이 일을 이룰 때가 가까워지는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23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가 왔다.
24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예수님께서 때에대해서 요한복음에서 아홉번 정도 언급을 하셨습니다. 오늘의 언급이 네번째입니다. 앞서서 하신 때에대한 것이 아직 때가 오지 않았다는 미래적인 때 였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리스 사람들이 다가오자 이제 그 때가 되었다고 합니다. “인자가 영광을 받을 때" 말입니다. 이는 인자라는 말이 예수님의 수난과 관련되어 사용되었고, 요한복음의 저자는 인자가 영광을 받은 사건을 십자가사건입니다. 예수가 십자가에서 낮아지심이 예수의 영광의 최고로 나타나는 시간이었습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는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텃밭을 키우시는 분들은 가지를 먹고싶으면 가지의 씨를, 옥수수를 키우고자 하면 옥수수 씨앗을 밭에 뿌립니다. 이 씨앗은 그 생명의 DNA를 가지고 그 나무의 모양 , 뿌리, 줄기, 잎파리, 꽃, 그리고 열매까지 그 씨앗이 품은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그 씨앗이 농부의 손에만 들려져 있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밭에 뿌려져 땅에서 썩어져 발아되어야만 그 생명이 시작이 됩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듯이 예수님은 죽으실 것을 아셨습니다. 그것도 십자가 형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 죽음은 동시에 예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낮아졌는데 높아지셨습니다. 낮아짐의 높아짐, 버림으로써 받음, 죽음으로 생명을 얻는 것이 기독교의 패러독스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 인들이 다가옴을 보면서 큰 꿈을 꾸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귀 이후 이루어질 이방인들의 구원 말입니다.
이방인인 우리들은 지금 하나님을 믿고자 하여 예루살렘의 이방인의 뜰에 가서 그 무시무시하고 장엄한 그 담에 쓰여진 글을 보지 않아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만 의지한다면 예수를 성전삼아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영과 진리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엄청난 열매를 거두기 위해 예수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 땅에 떨어져 죽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 처럼
우리도 예수님 처럼
제가 자주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예배학 격언이 있습니다. “기도의 법칙이 믿음의 법칙이 되고 믿음의 법칙이 삶의 법칙이 된다.lex Orandi lex credendi lex vivendi”입니다. 대학교를 입학하고 선교단체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으로서 예수를 믿음을 훈련할 때, “내려놓음", “권리포기", “반대정신"이라는 예수의 제자의 삶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은 자기중심적으로 내것을 챙기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내려 놓은 가장 큰 권리 포기, 내려 놓음은 무엇이었을까? 최근에 제가 예수전도단 선교단체를 내려 놓을 때 결정적인 역할을 하셨던 한 리더 간사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짧게 말씀 드리면 “그때 용규 형제가 잘못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우리 리더들이 잘못한 거야 용규형제와 팀들이 애써서 지켜오던 것을 존중해 주지 못했어 용서를 구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사실 그때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에 리더가 된지 일년조금 못되어서 전체적인 변화 속에서 사역을 내려놓고 높은뜻 푸른교회의 부교역자로서 사역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 마음에 사실은 정리해고 된 가장과 같은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낮아짐, 내려놓음은 그 순간은 죽음과 같이 두려움의 순간이 되어버립니다. 인터넷으로 화요모임 실황을 보고 실패감에 빠져있던 제가 하나님앞에 나가 기타를 들고 찬양하던 순간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용규야 고맙다. 네가 최선을 다해 주어 고맙구나. 네가 예수전도단에서 할일은 다 마쳤다. 수고했다.”말씀해 주셔서 한 없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러면서, 무대위에서 찬양인도하던 사역자에서 성도들에게 다가가는 목회자로서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시작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그 독자 이삭을 요구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그 독자가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생명과 같이 사랑하는 자기것이 될 것을 아셨습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높아지고, 소유하려고 발버둥치며 살지는 않으십니까?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는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밀알의 생명을 얻으려면, 버려야 합니다. 땅에 떨어져야 합니다.
25 자기의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의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생에 이르도록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예수님이 최고의 가치라면, 우리의 생명 나의 자존심까지 예수님의 것입니다. 나의 자아가 밀알이 되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고,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이 되길 소망합니다. 갈2:20
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 땅의 이웃을 향하여
이 땅의 이웃을 향하여
높은뜻안성교회는 안성땅을 섬기고 나아가 평택과 인근 지역도 함께 섬기길 원합니다. 열방을 품은 교회가 되길 소망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 지금 이곳에 가장 가까운 이웃이 바로 높은뜻안성교회 성전 기증자 이기진 장로님과 함께 하시는 분들이라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웃 봉사와 전도를 블레스타운부터 하면 어떻겠는가 라는 내적음성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을 장로님과 나눴을 때 흔쾌히 각 가정당 10kg의 쌀을 기증해 주셨습니다. 저는 기도합니다. 혹 우리가 만날 영혼 중에 우리 교회로 예수님 만나겠다고 나오는 그리스인과 같은 분들이 밀알의 생명을 얻게 되길 소망합니다.
26 나를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있는 곳에는, 나를 섬기는 사람도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높여주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