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 나의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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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직분 없는 사람이 성도가 아니다.
거룩하다라는 형용사가, 복수가 아닌 단수로 사용되면 성자가 되고 여러 있는 복수로 사용하면 성도가 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묵상할 내용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부르신다. 그러니까 내가 하나님을 만나야 하지만, 그러나 우리는 형제자매를 기억해야 하고, 우리를 기억해야 하고, “우리”를 그의 백성으로 삼아주신 하나님께 경배드릴 수 있어야 한다. 간단히 말해 우리를 “교회”로 불러 주셨다는 말이다.
본문: 위기 상황이 오면 공동체의 위기 상황이다. 모두 부활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본문: 위기 상황이 오면 공동체의 위기 상황이다. 모두 부활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지난 주 제자들은 부활의 주님을 만났다. 그래서 도마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데, 반응이 조금 까칠하다. 그는 자리에 없었다. 그러나 한편으로 제자들도 잘나서 만난 게 아니었다. 그렇게 여러 번 말씀해 줘도 믿지 못할 뿐 아니라, 기억도 못했고 마리아가 와서 이야기를 해도 믿지 못했다. 그냥 예수께서 찾아오셨을 뿐이다. x2 봤으니 믿게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그 자리에서 없었던 도마가 와서 까칠한 모습을 보인다.
이게 흔히 생각하듯이 도마가 특별히 의심이 많아서 그런 것만 같지는 않았다. 일단 제자들이 두려워서 모인 곳의 문들을 닫았을 때에, 도마는 그 모습이 마뜩치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무서워서 떨다가 또 믿지 않았다가 예수님을 보았네 하니까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자세한 내용은 기록되어 있지 않다.
딱 보이지 않는가.
부활의 신앙이 없고, 연약한 사람들의 모습이 새로워지지 않을 때에 갈라지고 분열 될 수 없다. 지금 도마는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지 않으며 더 심해질 수 밖에 없ㄷ, 다른 제자들을 믿을 수 없고, 신뢰할 수 없다는 걸로 보입니다. 안 그렇습니까?
οὐ μὴ πιστεύσω
“절대” 믿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감을 그렇게 해석해야 한다. 뭔 말인들 믿겠냐?
교회가 다투고 분열이 많은 원인.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않으면, 성향과 상황이 다른 사람들이 나눠질 수 밖에 없다.
부활의 예수님은 문이 잠겨도 들어 오신다. 그리고 제자들이(교회가) 평강이 있기를 원하신다.
부활의 예수님은 문이 잠겨도 들어 오신다. 그리고 제자들이(교회가) 평강이 있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는 분이시다.
교회는 하나되고 통해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무엇보다 “부활”의 공동체다. 그게 유대인들하고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한 번 도 오셔야지.
26절 “여드레를 지나서” 다음 주일이라는 이야기다.
왜 자꾸 가운데? 그게 중요한 메시지 도마도 마음에 평강이 있어야지.
모두가 빠짐 없이 부활의 주님을 만나, 성령을 받아(22절) 하나가 되어야지.
그렇게 하신 것이다.
23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누구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범상치 않다.
닫힌 문으로 예수께서 들어오셔서 말씀하시지 않으면,
내가 마음에 안 드는 것을 손에 쥐고 놓아주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건강하게 살아날 수 없다.
교회를 만드시는 사람들
교회를 만드시는 사람들
연약한 사람들이, 부끄럽고 부족한 사람들을 모아 교회를 만드신다.
그냥 사는 것과 부활은 다르다.
연약한 모습, 그대로, 상처 있는 모습 그대로의 부활의 주님을 만난 후.
나를 감추면서 막 공격, 정죄할 필요 없다.
어쩌면 부활의 주님을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믿음 없는 자 - 신실함이 없음.
계 2:10 “10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도마는 놀라운 고백을 한다.
표지 그림에서는 막 손가락을 집어넣지만···.
넣으라는대로 넣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보면 아는 거지~
그래서 사실은 다른 제자들과의 관계가 문제였다는 것이다.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 부르는 것, 감탄사.
다 눈 녹듯이.
연약한 자가 부활의 주님을 만날 때 강건한 자가 되고, 복음을 전하게 된다.
교회가 세상에 보여줄 것.
교회가 세상에 보여줄 것.
처음부터 강한 자가 복음을 전하는 것 아니다. 절대 아니다.
부활+성령.
베드로에 대해서 살펴 보았다.
잘난 척하다, 엎어지고, 세 번의 부인이 있었기에 5천명 회심하게 설교하는 사도 베드로가 나올 수 있었다.
바울 - 정말로 죄인의 괴수다. 죄인 중 첫번째다. 그걸 놓치면 안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나름 조금 잘난척 하고 싶어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깊은 곳에서 때로는 예수님을 빙자해서 내가 앞서려는 모습(제자들).
결정적인 순간에 도망가던 모습.
약할 때 강하게 하시는 모습.
교회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예전에 성도가 아닌 시절.
요한과 더불어 - 아홉 번째 산책 15. 내 손과 옆구리 (요한복음 20:24∼29)
교회가 이 세상을 향하여 보여 주는 것이라고는 집단화된 이기심, 거대한 야망, 그리고 세속화된 성공주의와 출세주의뿐입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셨던 증거가 결단코 아닙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해 당하셨던 고난의 상처와 아픔의 흔적을 보여 줄 수 있는 교회를 소개해 주십시오. 나는 그 교회 교인 되기를 고려해 보겠습니다.”
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