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체가 되신 하나님(요1:14~18)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0 ratings
· 219 views
Notes
Transcript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그 이름으로 구원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사도요한이 기록한 성경이 요한복음. 1장은 서론. 출생이나 족보로 시작하지 않음. 선언으로 시작. 예수- 그는 말씀이었다. 생명이었다. 빛이었다. 연극무대에서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
말씀의 로고스. 이 표현은 구약성경 지혜라는 단어의 신약적 표현. 인격을 가지고 있는 하나님. 인격성이 강조. 생명은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생명이 탄생. 창세에 물질을 창조하셨던 창조주 하나님. 예수를 만난 자마다 하나님의 말씀에 반응하기 시작하며 살아남. 빛은 참빛 피조된 빛이 아니라 창조주 자신의 빛. 영광. 죄를 소멸시키는 빛. 성소의 가장 은밀하고 두려운 곳 지성소 언약궤 위에 임재했던 창조주의 빛이 우리 에게 왔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신의 인격성(마음), 생명이 살아남, 죄가 소멸되고 하나님을 만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
사도요한이 예수님을 연극무대에 소개하면서 빛이신 하나님을 먼저 받아들인 사람을 등장시키는데 이 사람이 세례 요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 보내진 자. 빛이 사람들에게 비치나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고 모름. 빛을 받아 들인자를 모델로 말하는 것. “영접하는 자는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능력을 베푸신다” 이는 부모가 전수 하는 것도 아니고 종교시스템도 아니고 권유나 철학과 교육으로 예수님을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세례 요한을 빛 속에 먼저 들어온 자로 소개. 후에 빛을 사용하여 설명.
낮에 예수님을 찾아와서 구원의 기쁨을 누린 사마리아 여인과 밤에 예수를 찾아와 고민한 율법사의 대조, 가롯유다가 예수를 팔기로 작정하고 나가니 밤이더라 강조. 화가 중에 빛을 아주 잘 사용한 사람이 있음. 렘브란트. 빛의 마술사. <돌아온 탕자> 얼굴에서 손을 거쳐 둘째 아들에게 직광. 옆에 아버지와 같은 옷 첫째. 보조광, 반사광. 빛 앞에 서 있지만 직접적인 빛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 사람을 말함. 빛이 비치는 왼손을 오른손으로 덮음. 빛이 있지만 어둠으로 덮으려는 것. 정의와 율법 아래 있는 사람. 신약의 렘브란트가 바로 사도 요한.
다시 예수님을 빛으로 묘사한다.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선지자들이 들었던 말씀, 시내산 위에 천둥과 같은 말씀, 천지를 창조하신 말씀이 육체가 되었다. 기능적 육체를 말하는 것아님. 육체(사륵스)라는 것은 죽음과 병약, 고통을 모두 다 느끼는 유한한 육체. 완전한 인간이 되셨다는 뜻. 그러면 육신으로 오신 순간은 하나님이 아니셨나? 똑같은 하나님. 육체로 오심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됨을 포기하신 사건. 개미를 구원하기 위해 개미가 되는 것. 왜?
①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인간이 아니어야 한다. 하나님이어야 한다. 죄인이 죄인을 구원하지 못한다. 자기도 죽는데? 그래서 인간이 아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완전한 인간이어야 한다. 죄인이 당할 고통을 모두 느껴야 하니까. 그래서 예수님은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 되셔야 하는 것.
②그리고 하나님은 죄를 용서할 수 없다. 거룩이 본질. 죄와 함께 할 수 없다. 심판해야 공의로운 하나님. 그러나 동시에 사랑의 하나님. 죽일 수 없다. 2021년 7월 누나를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남동생 최종 결심공판 “~죽인 자식도 내 자식이요, 죽은 자식도 내 자식 죗값을 치러야 하겠지만 딸에게 용서를 구하고 아들이 제품에 돌아올 수 있게 선처를 부탁” 아버지의 마음.
심판과 사랑의 딜레마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십자가. 수직과 수평은 만날 수 없는 운명. 그 가운데를 뚫고 들어오신 것. 십자가의 수평과 수직이 만나는 점은 수직인가? 수평인가? 수직도 수평도 아님. 점이다. 순간이다. 이 역사의 순간에 용서와 심판을 자신의 몸으로 온전히 이루기 위해 역사의 시공간 속으로 들어오신 사건.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신비. 충격적인 표현.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거하시매라는 단어가 천막을 치다. 출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성막)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함께 있겠다 작정하심. 동물의 피를 통하여 죄를 사하고 너희와 내가 만날 것. 출29:46 그들은 내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로서 그들 중에 거하려고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줄을 알리라 나는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구원해 내신 이유가 함께 있기 위해. 그리고 성막은 구약에 사람이 하나님과 친구와 같이 이야기하는 장소가 됨 출33:11(전)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그 하나님이 이제 육신을 입고 우리와 함께 신방을 차리신 것. 성막의 영광이 눈에 보이는 육체의 옷을 입고 우리 가운데 임하신 것, 그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는 자마다 빛이 임하고 지성소로 들어가 죄가 소멸하고 거룩하여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 알콜중독, 깨어진 자, 어떤 죄를 지었어도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이 무조건적으로 용서하시는 것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독생자의 영광이요. 독생자라는 말은 독자(외아들)라는 말이 아님. 유일한 아들. 하나님이 나의 죄를 소멸시키기 위해 예배하신 유일한 아들.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 노력, 철학, 시스템으로 안된다. 오직 예수로만! 너무 독선적이지 않는가? 진리는 원래 독선적인 것. 1+1=2가 보편적 법칙. 1234키가 번호대로. 진리의 본질은 진리 이외에 어떤 것도 허용하지 않는 특징. 은혜와 진리가 충만 = 복음.
14절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고 육신으로 오신 이유는 우리 옆으로 더 가까이 오셔서 함께 있기 위함. 하나님이 옆에 오시면 영광의 빛이 우리를 쪼임. 죄를 소멸, 생명이 들어와 하나님을 인식하고 반응하기 시작. 이 일을 독생자(오직 예수)를 통해 이루심. 이것이 은혜와 진리(복음)이다!
16절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금상첨화. ~위라는 뜻이 아님. 안티. 대체와 대조되었다. 이전에 은혜가 있었지만 더 완벽한 은혜가 왔으므로 대체되고 완성되었다. 이전 은혜가 무엇인가? 17절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앞의 은혜는 율법.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는 존재가 하나님이 살길을 열어주신 것이 율법. 그러나 율법은 완전하지만 인간이 완전하지 못해서 율법을 지킬 힘이 없음. 지킬수록 죄를 더함. 이제는 새로운 법이 재정되었는데 은혜(무조건적 용서와 자격 없는 자에게 그냥 주신 것)와 진리(실체, 그림자가 아님). 그 은혜와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
18절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품=교제하고 용서하고 생명, 회복되는 장소. 룻이 보아스의 품에서부터 회복과 역전이 일어남. 하나님의 품에 있던 예수님이 그 품에서 떠나 우리에게 오셨다. 왜? 하나님의 품으로 다시 인도하시려고. 다 무너지고 깨지고 상해서 스스로는 절대 돌아갈 수 없는 하나님의 품에 하나님이 먼저 찾아오심. 이 시대에는 내가 깨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손만 올리면 된다. 가서 너희를 싸매어 다시 내 품에서 치유하고 회복하리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이유는 무엇인가? 딱 하나. 그냥 나와 함께 있고 싶어서. 우리가 잘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니다. 그냥 함께 있고 싶은 것. 신의 사랑이다. 아기가 태어나면 그냥 생각만 해도 기쁜 것. 존재적 기쁨.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처럼 먼저와서 앉으신 것. 그 분이 예수 그리스도. 이런 식으로 신을 설정한 종교가 없다. 먼저 다가오는 신.
예수 그리스도. 그는 누구인가?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완전히 여신 것. 그래서 책을 보고 공부해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불가능. 이해안되는 일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 십자가 위에서 나의 죄를 대신 씌우고 자기 아들을 죽이신 사랑. 성자 예수님은 내가 받아야할 고통을 온전히 당하고 죄의 댓가를 치르기 위해 온전한 육신으로 오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내 죄를 소멸하심. 내가 무엇이길래? 그리고 내가 살아남. 이것이 복음이다. 믿으시기 바란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