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과 옛 언약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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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후서 3:6-18
고린도후서 3:6-18
고린도후서는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쓴 2번째 편지입니다. 바울이 고린도라는 도시로 첫번째 방문했던 때는 바울의 2차 전도여행에서 아덴을 떠난 뒤였습니다. 그곳에서 유대인 부부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를 만나고, 매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에게 설교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바울은 18개월을 보낸 뒤, 바울을 파송한 안디옥 교회로 돌아갔다고 사도행전 18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3차 전도여행으로 에베소에 사역하고 있을 때, 고린도 교인들과 편지를 주고 받았습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큰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을 알게 되고, 이로 인해 고린도전서를 쓰게 됩니다. 고린도전서를 쓴 이후에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동안 고린도 교인들과 접촉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인들에게 큰 문제가 일어났습니다. 그것은 바로 고린도 교인들을 미혹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나온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고린도 교인들을 미혹하여서, 바울의 복음을 듣지 않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다가서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에 바울은 고린도후서를 고린도 교인들에게 보냈습니다. 그렇다면 거짓 선지자들이 주장했던 바가 무엇인지, 그리고 바울은 그들에 대해 어떻게 반박하는지 같이 보고자 합니다.
바울을 대적하는 거짓 선지자의 주장을 알려면 먼저 그들의 정체를 알아야 합니다. 그들의 정체는 유대주의자들로 볼 수 있습니다. 이방인 개종자들에게 율법의 의무를 부과시키게 하고, 할례를 받게 하려고 한 그리스도인 유대인들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단순히 예수님을 믿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행위도 지켜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고린도 교회만 겪었던 것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의 유대주의자들도 갈라디아 교회를 미혹하였을 때,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할례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에 이삭을 낳기 전에 명한 것이 할례라는 것을 언급하면서, 무조건 할례를 받아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당시 바울은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마음의 할례를 받으면 된다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유대주의자들은 그걸로는 부족하다,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바울이 웅변술에 부족하다고 이야기하였습니다. 바울의 대적자들은 유대인이지만 헬라 문화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헬라 문화에 익숙합니다. 헬라 문화에서는 말을 잘 하는 것이 중요하였습니다. 당시에 플라톤,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였던 문화를 소유하고 있었으며, 각 도시마다 토론을 할 수 있는 광장을 꼭 설치하였습니다. 그만큼 헬라 문화에서는 철학을 논하며 토론을 하는 웅변술이 중요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1:6 에 바울이 말에 부족하다는 말이 나옵니다. 이것은 헬라어로 ‘이디오테스’ 라고 하는데, 이 단어의 뜻은 완전히 전문가도 아니고 완전히 초보자도 아닌 중간정도의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즉, 헬라식 수사법에 완전히 무뢰한은 아니지만 능통한 연설가도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런 말을 들은 이유는 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11:23 을 보면, 바울이 정신 없는 말을 한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 정신 없는 말은 바울이 불치병으로 인해 말을 능숙하지 못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떤 병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거짓 선지자들은 이러한 바울의 불치병을 보고, 그가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그렇게 된 것이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신명기 28:20-28 을 보면, 하나님이 불순종하는 자에게 병이 있을 것이라는 율법의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이를 통해 바울의 거짓 선지자들은 바울의 불치병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이라고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을 보고, 거짓 선지자들은 바울이 사도로서 자격이 없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할례를 받으라는 율법에 불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율법을 지키지 않은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는 것에 대한 말을 바울이 어떻게 받아쳤는지 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출애굽기 34 장의 예화를 듭니다. 출애굽기 34 장에서 모세는 십계명의 두 돌판을 들고 이스라엘에게로 내려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모세의 얼굴에 수건을 둘렀습니다. 모세의 얼굴에서 찬란한 광채가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 찬란한 광채는 하나님의 영광이며, 이것을 직접 대면하는 것이 너무 두려워서 수건을 두른 것입니다.
이 내용을 인용한 이유는 바울이 옛 언약, 율법의 대명사인 모세와 새 언약의 일꾼인 자신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같이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 번째는 영광이 일시적인가 영원한가에 대한 차이입니다. 율법의 영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모세가 있었을 때에는 옛 언약, 율법의 영광이 너무 빛나 수건으로 가렸습니다. 지금은 율법이 폐기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율법의 모든 요구조건을 다 지킬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율법의 굴레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하고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율법의 영광은 장차 없어질 영광, 일시적인 영광입니다. 그런데 그 없어질 영광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세의 얼굴을 주목하지 못했습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이 찬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율법의 요구조건을 다 지켜야 하는 때에도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납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보다 찬란한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새 언약입니다. 바울은 새 언약의 일꾼이고, 이것은 없어지지 않을 영광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고린도후서 3:10-11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예수님이 오시는 때에 율법의 모든 조건을 다 지킬 필요가 없어졌기에, 없어질 것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심으로 우리에게 주신 새 언약은 영원토록 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우리를 살리느냐 죽이느냐입니다. 고린도후서 3:6-9 을 보면, 율법 조문은 우리를 죽이는 것이고, 영은 살리는 것이라고 말하며, 옛 언약과 새 언약의 특징에 대해 나열합니다. 옛 언약은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 정죄의 직분으로 나와 있고, 새 언약은 살리는 것, 영의 직분, 의의 직분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율법 조문은 우리를 죽이고자 합니다. 아니 우리를 죽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율법의 모든 조건을 이행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2:10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를 범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아무리 살아생전에 율법에 있는 모든 것을 다 지키더라도, 하나라도 범하면 율법의 요구를 만족하지 못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지 못한 자의 결국은 죽음입니다. 그렇기에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이 결국을 우리는 맞이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살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행위로 산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과 은혜로 우리가 살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이제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우리는 의롭다 여김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칭의’라고 합니다. 의롭다 불러준다. 하나님이 그분의 뜻대로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로 인해 하나님의 의에 만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율법은 우리가 율법의 하나라도 범하면 우리를 꾸짖고 죽음으로 인도하는 정죄의 직분이라면, 새 언약은 의의 직분인 것입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예레미야 31:31-34 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같이 찾아서 읽기를 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르쳐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에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이 바로 출애굽기 34 장에 나온 십계명, 옛 언약인 것입니다. 이제 새 언약은 옛 언약처럼 행위로 법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분의 법을 새 언약의 백성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절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그분의 법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마음을 성령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고후 3:14-15을 보면 옛 언약을 따르는 거짓 선지자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고후 3:13 에는 모세의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여 수건을 두르게 한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와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대면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하게 알기를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이때에는 하나님을 대면하면 죽을 것이라는 신앙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들은 그들 안에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저 자기가 생각할 때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라는 마음만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수건을 벗겨지지 아니하다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수건이 덮어진 것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고 그분께 돌아가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건이 벗겨진 것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이 우리의 죄로 인해 죽을 수 밖에 없다는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이 믿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수건이 벗겨지지 않고 덮인 자,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지 못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수건이 벗겨지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영광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면, 주의 영광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영광을 주님이 오실 마지막 날에 보게 되면, 아니 주님을 믿고 그분이 우리에게 행하신 은혜의 영광을 보게 되면, 우리는 자유롭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고후 3:17-18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성령님이 예수님을 알고 그분을 믿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로 인해 자유를 얻게 되고 하나님의 큰 영광을 대면하게 됩니다.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거짓 선지자, 유대주의자들에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내가 율법에 불순종해서 말에 뛰어나지 못하고 정신없는 말을 하게 되는 불치병에 걸렸다고, 하나님의 저주를 받았다고 이야기하지만, 오히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를 얻지 못하는 저주라고 바울은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제대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인간을 죽게 하는 일시적인 옛 언약을 따르는 것보다 제대로 하나님을 알아 인간을 게 하는 영원한 새 언약을 따라야 한다고 말입니다. 비록 불치병으로 인해 삶이 힘들고, 오해를 받기도 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저주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울에게는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이요 은혜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을 오해하게 되고, 이것이 분쟁을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안에 구원에 의한 자유가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고린도전후서를 통해 고린도 교회의 거짓 선지자들과 바울, 그리고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통해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주 안에서 하나 된 공동체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아니, 우리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있습니다. 지금 그렇지 않더라도 앞으로 알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렇게 인도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믿고 참자유를 얻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요한복음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참자유를 얻는 화도광성교회 성도 분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