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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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의 어리석은 자랑의 이유 : 교회를 아끼기 때문에

[고후11:1-6]
1 원하건대 너희는 나의 좀 어리석은 것을 용납하라 청하건대 나를 용납하라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3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
4 만일 누가 가서 우리가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은 너희가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6 내가 비록 말에는 부족하나 지식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이것을 우리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모든 일로 너희에게 나타내었노라
배경설명
거짓 사도들이 교회에 들어와 영향을 미치려 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 신자로서 예루살렘 혹은 교회의 추천서 등의 인간적 조건으로 자기 권위를 세우고 바울의 권위를 폄하했습니다. 문제는 교회의 동요였는데, 당시 새로운 학파가 어느 도시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기존 학파를 비판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교인들도 이런 경쟁을 당연시 하는 분위기였고, 만약 가만히 둔다면 심각한 상황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때문에 바울은 적극적인 개입을 한 것이죠.
바울의 호소 : 나의 어리석은 자랑을 용납하라(1절)
거짓 사도들의 자랑에 맞서 바울은 자신의 자랑을 서술해갑니다. 자신의 자랑을 약간 어리석은 것으로 묘사하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용납해주기 원한다는 말로 오늘의 본문을 시작하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의 안타까운 상황을 담고 있습니다.
먼저는 성도들의 상태입니다. 사역자가 인간적 조건을 자랑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일인 것이 당연하지만,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경우에는 다릅니다. 오히려 그런 자랑을 사역자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어리석은 것”이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인간적인 자랑에 몰두하고 있는 성도들의 어리석은 관점을 비판하려는데 있습니다.
두 번째는, 바울의 상태입니다. 사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로 부터 시작되이기에 추천서 쓰듯 자신을 소개하거나 자랑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은 이전과 너무나 많이 달라졌습니다. 거짓 사도들과 맞서야 하고, 성도들의 낮은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분별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죠. 바울은 그 무엇보다 교회와 성도를 향한 사랑과 간절함을 가지고 지금의 자랑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권면의 이유 1 : 교회를 위하는 바울의 마음(2~3절)
2절을 보시면 자신이 자랑할 내용을 소개하기에 앞서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부연 설명합니다. 2절입니다.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과 성도들의 언약관계를 유지시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마치 순결한 처녀를 메시아에게 드리듯 성도들을 한 남편 메시아에게 약혼시킨 것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성도와 메시아를 신부와 신랑으로 묘사한 것은 새 언약 관계의 전형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복음을 통해 독자들이 구원 과정을 경험하도록 이끌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거짓 사도들의 영향력 때문에 성도들과 메시아의 관계가 위태로워졌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들의 가르침을 따라가면 뱀에게 미혹된 하와가 하나님을 거절하고 선악과를 먹었듯이 성도들의 사고가 메시아를 향한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 수 있습니다. 마치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김으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린 것과 같습니다. 방치하면 언약 관계에 충실한 하나님의 의로운 진노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바울은 이 과정을 막고 싶은 것입니다. 하나님 그분이 그런 결과까지 가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분은 자신의 사랑을 거절한 언약 백성에게 맹렬한 질투로 경고하고 징계해서 다시 돌아오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도 동일한 질투의 사랑을 표현하고 계십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그 마음을 따라 어리석은 자랑을 함으로써 성도들이 돌아오도록 돕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 추구했던 거짓 사도들과는 달랐던 겁니다.
권면의 이유 2 : 교회의 상황(4절)
바울이 자랑할 수밖에 없었던 실제적인 이유는 교회가 전혀 분별력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짓 사도들이 와서 바울이 선포하지 않은 다른 예수를 전해도 용납하였고, 그들이 받지 않은 영을 받게 해도 용납했습니다. 그들이 듣지 못한 복음을 전해도 용납하고 말았던 것이죠. 그것은 새 언약 관계를 맺고 그 안에 있게 하는 것, 곧 구원 과정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인데… 그럼에도 그들에겐 아무런 감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바울과 거짓 사도들을 비교하며 거짓 사도들의 영향력을 선호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답답한 상황이 바울이 하나님의 질투로 성도들을 대하는 이유인 것이고, 자신을 자랑하는 권면을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바울의 변호 : 약한 웅변술에 대해(5~6절)
바울은 먼저 거짓 사도들이 비난하는 자신의 약점에 대해 변호를 시작합니다. 5절입니다.
“5 나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보다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는 줄로 생각하노라”
그는 지극히 크다는 사도들에 비해 조금도 부족함 없다는 말로 시작하는데, 여기서 지극히 큰 사도란 표현은 거짓 사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바울과 비교해 스스로를 이렇게 평가했기 때문이죠. 바울은 자신을 변호하며 두 가지의 영역을 언급하는데,
첫째는 자신의 말재주입니다. 거짓 사도들은 바울의 화술을 지적하고 사역자로서의 자질을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울의 말은 유창한 웅변술과 수사학을 사용해 사람들을 설득하는 형식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고린도 전서 2장에도 그와 같은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데, 바울은 구차한 변명 대신에 자신은 유창한 화법에 문외한이라고 자인합니다. 다만 진리의 지식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강조할 뿐이죠. 거짓 사도들과 비교할 수 없는 지식을 가졌고 성도들에게 여러 방법으로 그 지식을 보였다고 말합니다. 이미 복음 증거와 관련해 두 번째 편지에서 이미 변호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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