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로운 통치자 예수 그리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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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가 많이 추운데 새벽을 깨워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는데, 먼저 1-8 절의 말씀은 ‘의로운 왕’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사야는 1절에서 왕이 공의로 통치하고 나라의 방백들이 정의로 나라를 다스리는, 구원의 시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방백이라는 것은 나라의 고위 관리들로써, 이들을 통해서 왕의 권 력이 각각의 분야에서 실질적으로 행사되었기 때문에 중요한 위치에 있는 자들이었습니다. 이 사야는 정의와 공의로 나라를 다스리는 왕과 방백들은 모두 광풍을 피하는 곳과 같고, 폭우를 가리는 피난처와 같으며, 마른 땅의 냇물과 같고, 아무런 기력이 없는 땅에서 큰 바위의 그늘 과 같다고 말합니다 .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왕과 방백들은 백성들에게 있어서 의로운 통치자 이기 때문에 , 여러 힘든 상황 가운데서 백성들의 피난처와 생명이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 이는 이전에 살펴보았던 불의하고 무능한 통치자들과 대조를 이루는데, 의로운 통치자는 백성 들에게 신실한 목자로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절에서는 눈이 있어도 보지 못했던 자들이 보게 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던 자들이 듣 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 하나님께서 붙은 눈을 떼어 주시고 , 막힌 귀를 뚫어주시기 때문입 니다 . 의로운 통치자가 다스리는 구원의 시대에는 왕과 방백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할 뿐 아니 라, 백성들도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여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조급한 자의 마음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을 깨닫게 되며 , 어눌하게 말하던 자의 혀가 민첩하게 되어 말을 분명하게 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조급한 자들은 원래 지식이 없어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없는 자들이고, 말이 어눌한 자는 솔직함과 진실함이 결여된 정치가들을 말합니다. 하지 만 구원의 시대에는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다시는 지속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어 리석은 자를 고귀한 자로, 우둔한 자를 존귀한 자로 부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신분적 질서가 확립된 사회에서 이상적인 질서를 보였습니다. 사회를 구성 하는 구성원들이 각자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감당하며 사는 사회가 가장 이상적인 사회였 습니다 . 하지만 신분적인 질서의 경계가 허물어진 사회는 혼돈의 사회가 되었습니다 . 이전에 는 혼돈의 사회였지만 , 구원의 시대로 인해 사회가 극복되고 , 창조 질서가 회복된 이상적인 사회가 도래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6절의 ‘어리석은 자 ’는 윤리적으로 종교적으로 부패한 사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회적- 정치적으로는 힘이 있었는데 “어리석은 것과 불의, 간사 , 패역한 말 ”을 일삼는 자들이었습니다. “패역한 말로 여호와를 거스르며” 라는 말은 하나 님의 공동체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게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공동 체의 어려운 자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7절의 ‘악한 자’ 는 그 그릇이 악하여서 악한 계획을 세웁니다. 그들은 남에게 해가 되는 일만 생각하고, 가난한 자를 무자비하게 희생시킵 니다 . 하지만 ‘존귀한 자 ’ 는 존귀한 것을 계획하며 , 존귀한 것을 위해 일어서는 자들입니다 . 그들은 사회적-경제적 약자를 위해서, 공동체 질서의 확립을 위해서 애씁니다. 이는 자신들에 게 돌아오는 어떤 혜택 때문이 아니라 , 자신의 의무로 생각하기에 그렇게 행하며 , 진리와 정 의를 바로 세우는 데서 자신들의 사명을 찾기 때문입니다.
이어서 9-20절의 말씀은 ‘ 위에서부터 부어지는 영’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9 절에서 이사야는 안일하며 염려없이 사는 예루살렘의 여인들을 향해서 일어나 자신의 목소 리를 듣고 귀 기울이라고 말합니다. 자신들의 안전과 생활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이 없는 자들 은 그들에게 닥쳐오는 재앙이 자신들의 눈 앞에 다가왔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는 그들에게 일 년 정도 지난 후에는 수확 때가 되어도 포도와 열매를 거둘 일이 없어질 것이 라고 말합니다. 11절에서 ‘베로 허리를 동이라’ 는 것은 죽은 자를 위해 탄식하는 행위를 의미 하고 , ‘가슴을 치는 것’ 역시 죽은 자를 위한 애도 의식입니다. 수확 때가 되어도 포도와 열매 들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농부에게 있어서 그 어떤 일보다 가슴 아픈 일이기 때문입니다. 또 한 경작지들이 황폐해지며 집들은 파괴될 것입니다 . 백성들이 힘들여 개간한 땅에는 가시와 찔레가 나서 아무런 결실이 없을 것이고, 집과 성읍이 파괴되어 아무런 기쁨과 즐거움이 없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 이전에는 인구가 많아 소란스럽던 성도 적막해지며 , 예루살렘 성은 황무 지가 되어서 들나귀와 양들을 차지가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이런 심판과 폐허의 극복은 15 절에 등장하는 ‘ 위에서부터 영 ’이 부어짐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 하나님의 영은 자연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광야는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 름다운 밭은 숲이 됩니다 . 하나님의 영은 자연 뿐만 아니라 , 사회를 공의와 정의가 지배하는 의로운 사회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공의와 정의가 확립되어서 사회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을 확보하게 됩니다. 이전에 예루살렘의 정치가들이 생각했던 강대 국과의 연합은 참된 평화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가능하게 해 준 자연의 풍요와 사회 정의는 완전한 평화와 안전을 가져왔습니다 . 이 평화와 안전은 공의와 정의로 통치한 대가가 아니라, 정의로 인한 열매이고 결과로 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으로 인해 다가온 구원의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평화로운 곳에서 안전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 이전에 찔레와 가시로 뒤덮인 땅이 이제는 “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으로 변화되었습니다 . 이런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을 위협하던 세력들에게는 심판이 됩니 다. 19절을 보시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우박을 내리셔서 숲을 상하게 하시고 , 성읍을 파괴 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결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이상 외부의 적들에게 위협받지 않 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며 , 평화롭고 부족함 없이 살 수 있도록 축복해주시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 속에 나타난 수 많은 사람들은 공의와 정의로 나라를 통치하는 의로운 왕과 통치 자들을 기다렸지만 언제나 실망 가운데 살았습니다 . 이후로 오랜 시간이 지나고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인해 드디어 사람들이 기다리던 의로운 통치자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말 씀과 가르침은 사람들에게 참된 피난처와 쉴 곳이 되었습니다. 비록 예수님의 초림으로 완전 한 구원의 시대가 도래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그분의 인격과 말씀을 통해 새로운 구원의 시 대를 미리 맛보며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의로운 왕되신 예수님을 기대하며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 의로운 왕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신실한 목자가 되십니다 . 우리는 그분의 목소리 를 듣고 따르며 가르침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 세상에는 불의와 어리석음과 간사 와 패역한 말들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성도된 우리는 의로운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의 다시 오심을 기대하며 살아야만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답게 , 성도답게 , 그분을 따라 정의와 공의를 행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이 어리석다고 손가락 질하고 , 왜 그렇게 사냐고 조롱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이신 정의와 공의를 따라 실천 함으로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이 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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