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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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을 깨워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성도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인 17장과 다음주에 살펴볼 18장의 말씀에서 에스겔은 온 땅을 통치하시는 하나 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 그 중 오늘 17장은 독수리와 두 포도나무 비유의 예언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남유다는 요시야 왕이 므깃도 전쟁에서 죽은 이후로 긴박하게 쇠퇴의 길을 걷게 됩니다. 요 시야 왕 이후에 여호아하스, 여호아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왕이 왕위를 이어갔지만, 바벨론에 의해서 남유다의 역사는 끝나고 말았습니다. 17장은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예루살렘이 함 락되기 이전 애굽 왕에게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외교 사절단을 보낸 시점에 선포된 예언입니 다.
본문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먼저 1-10 절에는 독수리와 두 나무의 비유가 나타나고 , 11-21절까지는 이 비유에 대한 해석이 등장합니다. 마지막으로 22절부터 24절까지 의 말씀에는 독수리와 백향목의 비유가 역전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먼저 1-10절에 나타난 독수리와 두 나무의 비유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와 신명기에서 독수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묘사할 때 사용된 동물입니 다 . 하지만 오늘 본문에 나타난 색이 화려하고 날개가 큰 독수리는 힘세고 재빠르며 적대적인 정복자였던 바벨론에 대한 상징으로 사용되었습니다. 레바논의 백향목은 그 자태 때문에 제왕 의 나무라 불리는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구약에서 숭고함과 장엄함을 상징하고 , 다윗 왕조가 ‘백향목 ’이라 지칭되기도 했습니다 . 독수리가 레바논에서 ‘높은 가지 ’를 꺾어서 상인의 성읍에 두었다는 것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유다를 침입해 여호야긴을 바벨론으로 끌고 가서 그 곳에 붙잡아 둔 사건을 의미합니다 . 여기서 그치지 않고 독수리가 그 땅의 씨앗을 가져다가 옥토에 심었는데 그 포도나무가 자라서 독수리의 보호 아래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는 바벨론 이 여호야긴 대신 시드기야를 왕으로 삼아 유다를 다스리게 한 것을 의미합니다 . 여호야긴과 시드기야는 백향목과 포도나무, 즉 서로 다른 나무로 묘사되는데 이는 시드기야가 여호야긴에 서 이어지는 합법적인 왕조가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7-10 절에는 포도나무의 배반과 결과가 등장합니다 . 7 절에 나타나는 독수리는 앞서 나타난 바벨론이 아니라 애굽 왕을 가리킵니다. 포도나무는 바벨론의 보호 아래에서 많은 열매를 맺 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포도나무인 시드기야는 바벨론의 보호 아래 있지 않고, 바벨론을 배반 하여 바벨론의 라이벌과 같은 애굽 왕 바로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예레미야서를 통해서 살펴 본 것과 같이 시드기야가 애굽과 동맹을 맺은 결과로 유다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9-10 절에 나타난 심판은 이중적 구조를 가지고 나타납니다 . 먼저 독수리가 포도나무의 뿌 리를 뽑아 마르게 했으며, 또한 동풍이 불어 그 나무를 마르게 했습니다. 이런 심판의 이중적 인 구조는 이후에 비유의 해석에서도 나타나는데 , 지상의 심판과 천상의 심판을 가리키고 있 습니다.
먼저 11-18절에서 비유는 지상적인 차원에서 풀이됩니다. 여기서 유다 왕의 행동은 애굽과 바벨론 왕들의 관계 속에서 설명됩니다 . 특히 15절의 ‘형통하겠느냐 ?’ 라는 질문은 심판의 불 가피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16-18절에는 앞서 비유에서 나타난 뿌리가 뽑힐 것이라는 내용 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 시드기야가 붙잡혀 죽은 것까지 확대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 15절 하반절에서 언약을 배반하고서 피하겠냐는 질문이 등장하는데 이는 18절에서 그 답변이 등장 합니다 . 유다는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한 결과로 멸망할 수 밖에 없고 , 그 멸망을 피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19-21절에서 비유는 천상적인 차원 즉 , 하나님의 차원으로 옮겨져 풀이됩니다 . 시드기야는 바벨론과의 조약을 깨뜨렸습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19절에서 “내 맹세 ”를 업신여겼고 , “내 언약 ”을 배반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바벨론 왕과 맺은 조약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한 맹세에 의해 보증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에 유다가 포로로 붙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심판을 받는 것은 하나님에 의한 것이 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심판에서 그치지 않으시고 새롭게 행하실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십니다 . 이것은 본문 3절과 4 절에 나타난 비유를 역전시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은 첫 번째 독수리와 달리 백향목의 꼭대기에서 ‘연한 가지 ’ 를 꺾으셔서 높은 산에 심어 큰 백향목이 되게 하십니 다 .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가 되시며, 실제로 온 땅을 통치하시는 분이심이 나 타납니다 . 높은 산에 심긴 가지는 아름다운 백향목이 되어, 각종 새가 그 아래에 깃들며 열매 를 맺습니다 . 여기서 높은 산은 예루살렘을 가리키고 연한 가지는 메시아적 인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활동이 들판의 나무를 높이기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 시고 , 번성하게도 하시고 마르게도 하시는 분이심을 알게 합니다. 이런 예수님의 구원 활동을 통해 세계의 민족들과 통치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며, 온 땅의 진정 한 통치자로 인정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가운데 집중해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19-21 절에 나타난 비유의 천상적인 차원 의 풀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드기야는 바벨론 왕과의 조약을 깨고 애굽 왕 바로와 동맹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 맹세 ” 를 업신여기며, “내 언약” 을 배반하셨다고 말씀하 셨습니다 . 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한 맹세이기에 비록 하나님이 아닌 바벨론 을 배반하였지만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삶 역시 이와 동일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살아간다고 말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 앞에서 ”의 삶입니다 .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사람과의 관계에서 신실하지 못하고 배반하고 악을 행하는 것은 곧 그 행동을 하나님께 한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 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바울 역시 모든 것을 “주께 하듯 하라”고 권면 합니다.
세상에서 만나는 우리 주위의 이웃은 우리가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 기에 우리가 평소에 세상 속에서 행동하는 모든 행동은 그들에게 곧 교회 다니는 사람들에 대 한 평가로 이어지게 됩니다. 우리의 행동이 세상 속에서 엉망이고, 부정직하고, 악이 가득하다 면 , 결국 사람들은 말하지는 않더라도 교회에 대해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에 대해서 부정적이 고 좋지 않은 기억들로 채워지게 됩니다. 우리가 세상 속에서와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온전한 성도의 모습을 지켜나가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세상 가운데서 우리의 삶 이 온전하지 못하면 결국 그것은 교회를 욕되게 하는 것이고 ,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 다.
잘 하고 계시겠지만, 각자의 삶을 되돌아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물론 제 삶 가운데서도 고 쳐야 할 부분들이 참 많음을 말씀을 준비하며 깨달았습니다 . 그리스도인으로써 , 성도로써 온 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부단히 노력해야만 합니다 .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 며 우리의 삶이 온전한 모습 가운데 있도록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모습을 통해서 하나 님이 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 가운데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며, 하나님의 이름이 높여지는 그런 삶을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