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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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성경에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성품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 공의로운 하나님 , 심판하시는 하나님 , 영원하신 하나님 , 불변하시는 하나님 등 여러 모습의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아가고자 하는 하나님의 성품은 바로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성경의 첫 책인 창세기의 시작인 창조로부터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마지막 부분까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 출애굽기와 요한 1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간단히 보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출애굽기 2장을 보면 당시 애굽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된 노동으로 인해서 어려움을 겪게 되었을 때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출2:23).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돌보시고 기억하셨다는 사실입니다 . 하나님께서 먼저 기억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서 모세를 부르시고 애굽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 4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왔던 이스라엘 백성이 부르짖었다면 여러분 같으면 어떤 반응을 보이겠습니까? 반응을 보이지 않던지 아니면 한참 뒤에 반응을 보이지 않겠습니까 ?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즉각 반응하시며 모세를 통해 출애굽시키심으로써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이셨습니다.
요한 1서 4장을 보면 사도 요한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계속해서 언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났다고 말하는데 그것이 무엇이냐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 가운데 보내어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라고 말합니다 . 계속해서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서 화목제물로 예수님을 보내신 것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사건이 바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건입니다. 사람은 끝없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졌고 , 우상을 만들어 우상에게 절하고, 이방신들을 예배하는 죄들을 지어갔지만 , 하나님은 그런 인간을 버리시지 않으시고 예수님을 보내셔서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조금만 못되게하고 귀찮게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 사람과의 관계를 끊어버리려하고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의 가장 작은 것 하나조차도 내어주기 싫어하는 그런 존재인데 , 예수님은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버린 원수된 우리를 위해서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이 어떠한 것인지 자세히 알아가길 원합니다. 본문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볼 수 있습니다 . 첫 부분은 31-34 절까지로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는 분이심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 아들을 주시면서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최종적으로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도, 고발할 수도 없는 그런 상태에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35-39절까지인데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끊을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하며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31절에서 “ 그런즉”이라는 말은 좁게는 28-30절, 넓게는 18-30절의 내용에 이어지는 결론의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고 정하시고 의롭다고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 .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가 어떤 결론에 이를 수 있겠느냐 ?’로 이어지는 말인 것입니다. 세상은 예수님께 속한 모든 사람들을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아서 성도는 이에 대한 각오를 해야하는 존재입니다 . 하지만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주시기 때문에 우리를 위해서 세상과 싸워주시기 때문에 , 우리를 향한 세상의 그 어떤 공격에도 우리가 두려워하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하는데 이 ‘주셨다 ’는 말은 법정에서 사용하던 용어인데 ‘ 법정으로 데려오다 ’, ‘ 죄수를 인도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 종교개혁가 루터는 ‘주셨다 ’ 는 말을 ‘버렸다 ’, ‘희생하였다 ’라는 의미로 사용했고, 영어성경 NIV에서는 ‘포기하였다’라는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자기의 아들을 . 단 하나뿐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인 우리들을 위해서 주셨는데 어떻게 주셨냐면 버리기까지 ! 희생하고 포기하면서까지 ! 우리를 위해서 아끼지 아니하시고 기꺼이 주셨다는 것입니다 . 그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가 잊지 않고 기억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우리에게 예수님뿐만 아니라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 마태복음 7장 11 절을 보면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안들어주시는걸까요? 성적이 잘 나왔으면 좋겠어요 . 용돈이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 집에 새 컴퓨터를 샀으면 좋겠어요. 등등 우리의 기도제목들이 많이 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대해 응답해 주시지 않을까요 ? 야고보서 4장 2b-3 에 보면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우리가 우리의 정욕을 위한 것 . 즉 우리의 욕심으로 우리가 잘못 구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지 않으시는 것이지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해서 그것을 보고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에게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먼저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기도하면 그 이외에 필요한 것들을 모두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줄 믿습니다.
35절을 보면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냐고 말하면서 7 가지 큰 어려움들을 나열하고 있습니다. 환난이라는 것은 외적인 환경과 외부적 원인으로부터 들어오는 압력과 고난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곤고는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한 마음의 극심한 걱정과 불안을 의미하고, 박해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로부터 고통을 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근은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것조차 채워지지 않는 그러한 상황. 즉 흉년으로 인해 우리가 굶주린다는 것입니다. 적신이라는 말이 조금 어려울 수 있는데 원어적인 의미로는 ‘벌거벗음 ’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개인적 가난으로 인한 벌거벗음과 사회적인 소외까지도 포함하고 있는 말로 쓰이고 있습니다. 칼은 우리를 핍박하는 칼, 그리고 순교자들이 당하는 목베임에서 사용된 단어로서 심각한 상황을 말하는 비유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7가지 어려움들을 나열했는데 이것은 우리가 무시할 수 없을만큼 우리의 삶에서 큰 부분들이지만 이러한 문제들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을 끊어버릴 수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으로 어려움들이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6절의 말씀은 시편의 말씀( 시 44:22) 을 인용한 것인데 시편에서의 원래 문맥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한 적대자들의 핍박과 압박 속에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는 내용 속에 들어있는 말씀입니다 . 바울은 이 말씀을 인용하면서 우리가 이러한 핍박과 압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도우시는 그 사랑으로서 넉넉히 이길 수 있다고 37절에 이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 여기서 이긴다는 것은 단순히 싸움에서 한 번 이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 항상’ 가장 영광스러운 승리를 거둔다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지혜, 지식으로 인한 승리가 아니라 전적으로 예수님께서 주시는 승리인 것입니다. 이를 영어성경 NASB에서는 압도적으로 이긴다고 번역했는데 힘겹게 겨우 승리하는 것이 아닌 지속적으로! 당연하게 ! 이긴다는 말입니다.
38-39절에서 다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여러 어려움들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 사망 , 생명 , 천사 , 권세자 , 현재 일 , 장래 일 , 능력 , 높음 , 깊음, 피조물이 바로 그것입니다. ‘사망 ’은 죽음의 위협을 가리키는 말로서 여기서는 당시 성도들에게 지속적으로 있었던 순교의 위험을 말하는 것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생명 ’ 은 우리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과 역경 , 유혹이 있을 수 있는데 , 이런 것이 성도를 위협하는 요인이 된다는 것에서 사용된 말입니다. ‘천사’ 는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는 영적 존재이고 , ‘권세자 ’들도 천사와 비슷한 말로서 ‘하늘의 영적 세력으로서의 권세자 ’ 즉 악한 영을 의미하는 것인데 이러한 영적인 존재들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 일과 장래 일 ’이라는 것은 말 그대로 현재에 있는 상태와 미래에 오는 것들을 말하는데 ‘ 오늘에 따르는 두려움 혹은 걱정들과 내일에 대한 염려들 ’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 ‘능력 ’이라는 것은 원어적으로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추상적인 의미로 쓰이거나 폭풍과 지진과 같은 자연적 힘을 나타내는데 사용되었습니다 .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닥치는 어떠한 천재지변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은 여전히 우리를 향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39절에서 높음과 깊음에 대해서 나오는데 이 둘은 모두 천문한적인 용어로 사용된 단어들입니다 . 당시 사람들은 별에 대한 공포가 있었는데 별이 가장 높이 있을 때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고 생각했기에 바울은 이를 들어서 이런 높음에도 상관 없이, 깊음은 별이 나타나는 수평선 아래의 하늘을 가리키는 것으로 별이 뜰 때나 질 때나 여전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다는 것을 바울이 설명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던 이런 여러 가지 어려움들을 제외하고도 우리가 아는 것과 또한 알지 못하는 것들까지도 포함한 그 어떤 피조물들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할 사실은 그 사랑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 다른 어떤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것. 우리 혼자 떨어져서 외롭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 우리가 원래 어떤 존재입니까 ? 우리는 죄의 권세 아래에서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죄인이었습니다 . 죄인되어서 하나님과 원수되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서 하나님과 다시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아들이라 부르시며 사랑해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야할 것입니다 . 우리를 걱정하게 하는 여러 장래 일이나 어떠한 어려움도 우리가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그 모든 것을 뛰어 넘는 놀라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2014년의 마지막 주일을 보내고 이제 돌아가서 3 일만 지나면 2015년이 다가옵니다 .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오늘 말씀처럼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며 살아갈 때에 우리 가운데 두려움 없이 하나님 안에서 복된 삶을 살아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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