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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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종교는 ' 기독교' 라고 불립니다 . 그렇다면 우리가 믿고 있는 '기독교 '라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국어사전에서는 기독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교훈을 중심으로 하는, 천지 만물을 창조한 유일신을 섬기고,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종교" 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 사전의 정의처럼 우리는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고 ,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습니다 .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데 있어서는 그 기준이 되는 것들이 필요한데 그 기준이 바로 성경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약의 말씀들과 율법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있었습니다 . 오늘 말씀을 통해서 신약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떻게 이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며 살아가야 할 지 알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보기 원합니다 . 사복음서를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라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모두 예수님께 책망을 받고 또한 그들은 예수님을 대적해야할 존재로 여기고 있었기에 두 무리의 차이점을 쉽게 느끼지 못하고 비슷한 사람들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 하지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서로 대립하고 있었던, 다른 성향을 가진 유대교의 분파였습니다 . 사두개인들은 성전의 제사장과 당시 귀족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매우 보수적인 집단이었는데, 이들은 구약 중에서도 모세 오경만을 성경으로 인정하고 나머지 역사서나 선지서 같은 부분들은 성경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부활과 천사와 영을 부인했으며 , 산헤드린 공회의 핵심 세력으로써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선 이들이 바로 사두개인들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평민들을 중심으로 거룩 운동을 주도하던 자들로써 율법을 철저하게 따르고 계명을 준수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 자들이었습니다 . 잘 아시는 탈무드도 바리새인에 의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 하지만 계명 준수와 거룩을 겉으로만 지키고 그 마음으로는 지키지 않아서 , 예수님께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하셨던 자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이었습니다 . 이처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서로 그 신학적 입장의 차이에 의해서 서로 대립하던 중에 , 예수님이라는 공공의 적을 만난 것입니다 . 예수님 때문에 자신들이 비판받고 , 자신들의 종교적 위치가 위험해지자 예수님을 공공의 적으로 여기고 시험하려고 달려든 것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바리새인 중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시험한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 마태복음 22장의 말씀을 훑어보면 1-14절에서 혼인 잔치 비유가 나오고 , 이어서 15-22 절은 바리새인의 제자와 열심당원이라 불리던 자들이 세금을 내는 문제로 예수님을 시험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데나리온에 새겨진 가이사의 얼굴을 보고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고 말씀하시며 시험한 자들을 놀라게 하셨습니다 . 이어서 사두개인들이 부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 당시에 유대교에서도 사두개인들만이 부활을 부정하고 있었는데 , 이들은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부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 하지만 이 역시 예수님의 가르침에 의해서 사두개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 이런 배경과 흐름 속에서 바로 오늘의 본문이 등장합니다. 잠시 생각해 봐야할 문제는 이 세 번의 시험이 모두 하루 안에 이루어졌다는 사실입니다 . 하루 걸러서 한 번씩 시험한 것이 아니라 하루 동안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둘러싸고 시험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예수님을 시험에 들게하기 위해서,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을 이용해 집요하게 덤벼든 것입니다 . 아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전에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을 것입니다 . 바로 앞에서 사두개인들이 부활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만약에 여기서 예수님이 그들을 반박하지 못하시면 부활을 부정하는 사두개인들의 주장이 맞는 것이 되면서 부활을 믿는 자신들의 신학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을 반박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 하지만 마음 한 편에서는 또 예수님이 그들의 시험에 넘어지지 않으셨다는 사실에 마음에 분노가 일었을 것입니다 . 앞서 언급한 것처럼 바리새인들은 제자들을 보내서 세금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하지만 결판이 나지 않자 이제 그들 중 한명이 직접 나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 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율법사들은 성경에 매우 능통한 자들이었습니다 . 성경에 관해서는 당시에는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최고의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자가 직접 나서서 예수님을 시험하려 한 것입니다 .그 시험의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냐는 것입니다 . 사실 이 질문은 당시 율법학자들에게 있어서 굉장히 큰 이슈였습니다 . 당시의 율법사들은 구약에서 총 613 개의 계명을 찾았습니다. 하지만 613개나 되는 이 많은 계명들을 다 지키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따른다는 것을 깨닫고, 그 중에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으로 나누어서 구분하고 있었습니다 . 하지만 계명을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나누는 그 기준에 있어서 항상 그들 사이에서 논쟁이 있어왔던 것입니다 . 그들 사이에서 논쟁거리였던 계명의 중요성에 대한 아주 민감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온 것입니다. 절을 보시면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했다고 하는데, 여기서 시험하다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알아내서 음해하기 위해 ' 사용된 단어입니다 . 이처럼 율법사는 당시에 민감한 문제였던 계명의 중요성에 관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의 생각을 알아내어 예수님을 음해하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나왔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목적을 가지고 율법사는 예수님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라고 질문했습니다 . 여기에서 사용된 ' 크다 '라는 말은 헬라어 단어 '메가스'라는 단어인데, 어떤 대상들 중에서 무엇이 더 중요한지 비교할 때 사용하던 형용사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사가 질문한 것을 잘 풀어서 다시 말해보면 "선생님 , 우리가 구약 성경에서 613개나 되는 율법들을 찾아내었는데 , 이 중에서 어떤 계명이 더 중요한 것입니까 ?"라고 물어본 것입니다 . 이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 장 5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며 "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 신명기의 말씀을 원문 그대로 본다면 "그런즉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해라!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 사랑하라는 단어가 명령조로 적혀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리고 그 방법으로 마음과 생명과 힘을 다해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음과 생명과 힘을 다한다는 이 사랑의 방법은 우리 인간 존재의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어설프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 눈에 보기에만 사랑하고 뒤돌아서서 하나님 말고 다른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 나의 모든 것을 다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생명을 걸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인 것입니다 .신명기의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는 굉장히 익숙한 말씀 중 하나였습니다 . 구약의 모든 말씀들을 잘 알고 이해하고 있던 유대인들이었지만 , 특별히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은 우리가 사도신경으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처럼, 유대인들이 예배를 드릴 때마다 고백했던 신앙고백문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또한 유대인들이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이 말씀을 암송함으로써 그 교육을 시작할 만큼 이 말씀은 유대인들에게 너무나도 익숙하고 잘 알려진 말씀이었습니다 . 이런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이들의 질문에 대답하신 것입니다 . 이 질문을 던진 바리새인들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겉으로 보이는 모습을 중요시하던 집단이었습니다 .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23장에서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라고 바리새인들을 비판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을 가지고 외적 거룩함에 대한 부분으로만 이해하고 내적 거룩함을 무시해 버렸습니다 .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해서 , 즉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이들은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레위기 19장 18절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웃 사랑으로 그 맥락을 이어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이 말씀은 십계명의 후반부라 볼 수 있는 5-10 계명을 요약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십계명의 후반부는 사람과 관련된 것인데, 이 요약으로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사도 바울은 로마서 13 장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 간음하지 말라 , 살인하지 말라 , 도둑질하지 말라 ,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고 말하며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있습니다 .절의 시작 부분을 보시면 "둘째도 그와 같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같다라고 하는 것은 단순히 그 의미가 같다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 그 중요성이 동등한 것임을 분명하게 짚고 넘어가신 것입니다 .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지 않거나 , 이웃을 사랑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라고 말합니다 .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이 이웃이라는 것은 과연 누구를 의미하는 것이겠습니까? 누가복음 10장의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이웃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말씀해주고 계십니다 .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는지에 대해 물어보자 예수님께서 다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는지 물어보십니다. 이에 율법교사가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고 하였다고 대답하였습니다 . 예수님께서 그렇게 행하라고 말씀하시자 율법교사가 다시 " 그러면 제 이웃이 누구입니까 ?"라고 물어봅니다 .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로 설명해 주셨습니다 . 강도당한 자가 쓰러져 죽어가고 있을 때 제사장도 레위인도 그를 보고 피하여 도망갔지만 사마리아 사람만이 그를 불쌍히 여겨서 치료해주고 주막으로 데려가 주인에게 치료를 맡기는 모습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자비를 베푼 자라고 율법 교사가 답했습니다. 당시 자신들과 같은 유대인 외에는 그 누구도 이웃으로 생각하지 않던 유대인들에게 그들이 경멸하던 사마리아인 역시 그들의 이웃이 됨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하신 말씀처럼 예수님께서 말하신 이웃은 유대인들이 생각하던 유대인 자신들 뿐만 아니라 사마리아와 땅 끝 , 즉 온 인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또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에서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어떤 면에서 볼 때 잘 지킬 수 있는 부분일 수도 있겠지만, 원수까지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해 기도하라는 이 말씀은 인간적인 부분으로 봤을 때 지키기 쉽지 않은 부분입니다 .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형제에게만 문안하는 것은 세리와 이방인들도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이 무시하던 세리와 이방인을 언급하시면서까지 우리의 원수까지도 , 박해하는 자들까지도 사랑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로마서의 말씀처럼 사랑이 율법의 완성인 것을 성경의 여러 부분들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서 사도 바울은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다"고 언급하면서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이에 그치지 않고 야고보는 야고보서 2장에서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 . 만일 너희가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법자로 정죄하리라 "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최고의 법이고,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 ",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니라", "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 , "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그에게 가서 거처를 그와 함께 하리라 "고 사랑에 대하여서 많은 것들을 말씀하셨습니다 . 이 많은 말씀들이 말하는 것이 결국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고 계신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하시는데 그 사랑의 방법으로 마음을 다하고 생명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어중간하게 사랑하고 , 계산하고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 말은 간단하게 들리는데 이것을 지키려고 생각해보면 참 쉽지 않은 부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 우리가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 찬양 중에서도 " 주님 한 분 만으로 나는 만족해 "라는 가사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모습을 조금만 솔직하게 되돌아 보면 , 우리가 정말로 하나님을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서, 죽을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또한 이웃을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 같이 사랑하는 것이 쉽습니까 ? 너무도 어려운 일입니다 .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우리는 끝없이 계산을 하고 생각을 하고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 내가 이정도 베풀면 다시 그정도 돌아와야만 베풀어주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 내가 베풀었을 때 다시 돌려받기 힘든 사람에게는 우리의 사랑과 관심이 멀어지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에 우리에게 참 다행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37절과 39절에 사용된 사랑이라는 단어는 '아가파오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철저하게 비이기적인 사랑을 나타낼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 그러니깐 우리 스스로 이 사랑을 실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성령님의 도우심이 있어야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이 사랑들을 우리가 행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할 때 , 성령님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하도록 도우시고 , 이웃을, 우리의 원수와 박해하는 자들까지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 우리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철저하게 인정하고,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 이웃을 사랑하시길 바랍니다 . 바리새인들처럼 겉으로 보이는 거룩에만 신경써서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다는 예수님의 비난을 받는 것이 아니라 ,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예수님의 기쁨이 되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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