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캠프) 12강. 낮은 자의 기도
두 번째 비유에서, 예수께서는 두 인물이 다른 자세와 목적을 가지고 깊이 기도하는 장면을 그려내신다. 비유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물인 ‘이 세리’는 자신을 저 더러운 ‘죄인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사실을 감사하는 기도를 드리지만, 한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혹은 그를 위해[18:11])” 하나님 앞에서 저 세리처럼 자기의 의를 드러내고 (그 자신 혹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에 대해서만 기도한다. 이 바리새인(그가 누가의 내러티브에서 모든 바리새인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며, 1세기 역사에서 볼 때도 극히 이례적인 사례이다.)은 자신이 소유한 재산을 희생하였다며 자신을 아주 추켜세운 이야기(‘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의 말미에서 자신을 내세우면서, 특별히 그 자신을 (납세자들의 돈으로 그들의 주머니를 채우는 것으로 악명 높은 당시의) 세리들, 그리고 또 다른 세리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자랑한다. 비유에서 물론 그 세리는 바리새인처럼 하나님 앞에서 자기를 변호하지는 않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으면서도 하나님과 멀어진 자처럼 고개를 낮게 숙이면서 “멀리 서서”(makrothen) (18:13), ‘먼(makran) 나라’에 있는 허랑방탕한 잃은 아들과 같이, 자신의 자책감을 가까스로 극복해낸다.(15:13, 18–19, 21) 게다가 (고릴라나 검투사를 떠올리게 하는) 자기과시적 동작과는 거리가 먼, 자기의 가슴을 치는 행동은 (“다만 가슴을 치며”[18:13]) 하나님께 간결하게 호소하는 간청과 조화를 이루면서 회개가 미치는 자기 고행의 고단함을 다음과 같이 전달한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18:13, 바리새인의 장황한 기도연설과 대조를 이룬다.) 이전의 비유에서 과부는 담대하게 정의를 호소한 것과는 달리, 이 세리는 겸손하게 자비를 구한다. 그렇다 할지라도 세리의 청원은 과부의 경우처럼 비유의 말미에서 분명하게 허락되는 모습이 있다.(“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18:14]) 변증법적인 균형과 긴장 속에서 정의와 자비라는 이 두 가지의 덕목은 하나님 통치의 주요한 목표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하나님의 나라를 찾는 이들에게 허락하시는 가장 가치 있는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