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마지막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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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라는 제목을 가지고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옛날 한 마을에 두 가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두 가문은 원래 서로 우애가 두텁고 잘 지내던 사이였습니다. 그러다가 한번 크게 싸우고 난 뒤에 철천지 원수가 되어 서로 으르렁대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문의 청년과 다른 가문의 처녀 가 눈이 맞아서 서로 사랑하는 사이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면 결혼을 해야하 는데 결혼을 하고자하는 이 두 남녀의 관계를 알게 된 가문의 어른들이 노발대발하며 그 결혼을 반대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두 가문이 크게 싸운 이후로 남자 청년 가문 의 어른이 유언으로 상대 가문과는 아무런 관계를 맺지 말 것을 당부하고 죽었기 때 문입니다. 이런 유언을 마음에 품고 살아왔던 청년의 아버지는 자신이 죽기 전까지 계속해서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다가 결국 죽기 전에야 자신의 아버지의 유언을 포기 하고 아들의 결혼을 허락했다고 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 드라마를 보시면 재벌가 회장들이 죽으면 변호사가 와서 유언장을 읽어주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유 언장에 자신이 가진 재산의 분할이라던지 마지막으로 남긴 중요한 말들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도 재산을 차지하기 위해 유언장을 위조하는 사례도 있다고 합니 다. 이처럼 한 사람의 유언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들에게, 그리고 유언을 남기는 다른 사람에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유언이 가 지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유언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유는 오늘 본문 말씀이 어떻게 보면 예 수님의 유언과도 같은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유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오 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살아가시다가 , 공생의 삶을 살아가시고 ,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이후에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고 승 천하시기 직전에 하신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유언의 영 향력에 대해 앞서 언급했습니다. 이처럼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지상 사역의 마 지막에 하신 말씀이기에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 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 아가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사도행전 1장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다가 승천하시기 전의 모습이 기록된 부분입니다. 오늘 본문은 제자들이 예수님께 질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오시는 때가 세상의 종말의 때이며, 메시아는 이 세상의 모든 불의한 세력을 멸하시며 이스 라엘 땅에 메시아 왕국을 세우실 것이라는 메시아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바로 이러한 메시아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라고 물어봅니다. 이 질문은 제자들이 이전부터 계속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질문입니다. 제자들도 유대인이 가지고 있었던 메시아 신앙과 다를 것 없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로마의 식민지 상태에 있었던 이스라엘을 해방시켜 주실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6절 본문을 보시면 “여쭈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 서 이 여쭙다라는 말은 ‘반복하여 집요하게 질문하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제자 들이 오늘 본문에 이르러서 이런 질문을 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계속해서 예수님 께 언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실 것인지 물었다는 것입니다 . 이렇게 제자들이 계속 해서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해 질문한 것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질문이 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마치 다윗 시대와 같이 부와 군사력이 강한 나라로 회복시키시고 이스라엘의 왕이 되신다면 자신들은 왕이 되신 예수님 아래에서 좋은 자리를 가지고, 권력을 얻을 수 있던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0 장을 보시면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영광 중에서 자신들을 좌우편에 앉게 해달라 고 말하고, 누가복음 22장에서는 자신들 중에서 누가 큰지에 대한 논쟁을 하는 것을 통해 제자들의 마음이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제자들이 이런 질문들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요 ? 제자들이 예수 님과 함께 오랜 시간 다녔지만 이런 질문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아직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았기에 그들이 아 무리 놀라운 예수님의 기적들을 직접 눈으로 보고 체험했다 할지라도 예수님의 말씀 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질문을 들으시고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 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 십니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종말의 때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성령을 받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우리는 종말의 때가 언제인지 알 수 없습니다 . 언제 종말이 오 는지, 예수님께서 언제쯤에나 재림하실지 아무런 행동 없이 막연하게 기다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바라시는 행동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또한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종말의 때가 언제인지 궁금해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받아 예수님의 신실한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리는 아무리 궁금해하고 성경 을 연구하고, 학문을 한다고 해서 종말의 때가 언제인지 절대 알 수 없습니다. 그 때 는 하나님만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우 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기에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8절 말씀을 다같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 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와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 라 하시니라” 8절의 ‘오직’으로 번역된 말은 헬라어 ‘알라’에 해당되는 말로써 원래 의미는 ‘그러나’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 앞서 제자들에게 종말의 때에 관해서 제자들에게 알 바가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나서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이라 고 말씀하시며, 제자들에게 증인의 삶을 살아갈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8절의 말씀을 통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냥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 니다. 제자들이 만약 그냥 가서 복음을 전했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들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하게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 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아무리 말을 유창하게 하고, 사회성이 좋아 다른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다고 할지라도 성령님이 주시는 권능이 없으면 아무런 복음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고 성령이 주시는 권능 을 받아야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용된 권능이라는 단어는 누가복음에 서 나타난 예수님의 사역을 시작하게 한 위로부터 내려오는 권능과 병을 고치시며 귀 신을 쫓으시는 사건들에 사용된 단어와 동일한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성령님이 임 하시면 이러한 권능들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사도행전을 통해 나타난 제자들 의 복음 사역을 보시면 예수님이 행하신 권능과 같이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것 들을 행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은 후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 의해서만 복음이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과 유대, 사마리아에 이 어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전까지 사도행전 1장 8절을 묵상하고 암송하면서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하는 것에 대해 전혀 어렵지 않은 것으로 생각했었 습니다 .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당시의 예루살렘은 어떤 곳이었습니까? 어떤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습니까?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라고 말한 대 제사장들과 유대인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시각으로 볼 때 예루살렘에서 자신들이 예수님을 증 거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일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제자들에게 성령님이 임하시지 않았다면 제자들은 예루살렘에 가서 복음을 전하기 힘들었을 것입 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담대히 예루살렘에 가서 복음을 전했고, 예루살렘에는 초대교 회가 세워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공동체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유대와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유대는 예 루살렘을 둘러싸고 있는 지역이었고, 사마리아는 당시 유대인들이 극도로 싫어했던 사마리아인들이 살고 있는 도시였습니다. 구약 시대 앗수르 왕이 북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고 온갖 이방 민족들이 사마리아로 옮겨와 살게되면서 자연스레 이방인과의 혼혈민족이 된 도시가 사마리아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선택하셨다 는 선민사상이 아주 강한 민족이었고, 이방인들을 가까이 하지 않았던 민족이었기에, 이방인과 혼혈이 된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과 같이 대하고, 마치 개와 같이 대했던 사람들이 유대인이었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평생을 살아온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에도 가서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쉬운 일이었겠습니까?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본문을 지나 사도행전 8장은 사울의 예루살렘 초대 교회에 대한 핍박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지역으로 퍼져나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이 때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이전까지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 벌어진 것 입니다 . 하지만 성령님의 임재 속에서 권능을 받은 빌립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사마리아까지 가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가라고 하신 곳은 땅끝입니다. 땅 끝에 사용된 단어는 ‘가장 끝까지’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로마 제국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 가장 먼 곳이라고 하면 세계적 강국이었던 로마 제국이었기 때문입니다. 로마 제국이라고 하면 유대인들에게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이방인입니다. 예루살렘 과 유대, 사마리아는 간단하게 생각하면 유대 민족에 속한 무리입니다. 하지만 로마는 유대인의 기준으로 볼 때 이방인입니다. 그들이 멸시하고 천대했던 , 같은 자리에서 밥 먹는 것조차 부정한 것으로 여겼던 것이 바로 이방인입니다. 그들에게까지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 역시 유대인인 제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에 복음을 전하는 것에 이어서 이방인들에게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행전 13장부터 사도들은 소아시아부터 로 마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임재 속에서 사도 들은 자신들이 직접 눈으로 보고 느낀 것들을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 지 이르러 전함으로 예수님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을 사도들이 지키는 것으로 이루어진 책입 니다. 앞서 언급했지만, 1-8장에서는 예루살렘에서의 복음 증거를, 9-12장에서는 유 대와 사마리아에서의 복음 증거, 마지막으로 13-28장은 소아시아와 로마에서의 복음 증거를 다루고 있는 것이 사도행전의 전체 스토리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과 유대 , 사마리아, 땅끝까지 자신의 증인이 되 라는 말씀에 많이 놀라고 힘들었을 것입니다. 아직까지 그들의 마음 속에는 인간적인 생각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 가 권능을 받고 나서 그 일들을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실제로 성령님을 받고 권능을 받아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님의 도우심 없이 복음을 증거하려고 합니다. 마치 자신이 잘나서, 자신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증인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 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입니 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런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성령님의 도우심 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일들을 행하셨습니다.’ ‘하나 님께서 나의 삶에 이런 놀라운 변화를 주셨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3장 6절과 7절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 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시라” 우리 안에 이런 고백들이 넘
쳐나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에 있어서 나의 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 오직 하나님께서 하셨음을 고백하고 나아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주위의 이웃들에게 복 음을 전하라고 하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복음전 파의 대상들은 제자들의 입장에서 인간적으로 볼 때 너무나도 어려운 대상이었습니 다. 상대하기 싫은 사람들이었고, 인간취급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지 만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우리도 이런 삶을 살아야 합니다. 정말로 우리의 인간적인 시선을 내려놓고, 알게 모르게 우리가 우리의 사랑을 베풀지 않았던 사람들에게도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 리가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있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철저하게 우리의 할 수 없음을 하나님 앞에 고백하고,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며, 우리의 이웃들에 게, 또한 우리가 평소 멀리하던 우리 주위의 이웃들에게까지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복 음을 담대하게 증거하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