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오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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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사명과 같이 우리도 그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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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창조주 이십니다. 시 139편에 주께서 우리를 모태에서 지으시고 창조하셨고, 주님의 눈이 우리를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즉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선하신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다만, 죄인인 인간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선한 목적보다는 자신의 목적과 야망을 위해서 살아가기에 끝없는 갈망과 욕망 속에서 괴로워하며 살아갑니다. 때로는 최선을 다해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괴로움의 현실인 경우도 많습니다. 선교단체에서 리더십 훈련을 받을 때 였습니다. 사명 선언문이라는 것을 작성했었습니다. 그 때 나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내 인생의 과거를 돌아보며 그 사건을 통해서 내가 얻은 교훈과 아픔들을 써 내려가고 그렇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만들었던 사명 선언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온 세상와 열방 가운데서 예배하는 예배자가 되어, 예배자를 훈련하고 일으켜 온 세상과 열방이 하나님을 예배하게 한다.
자 그렇다면 다음의 문장은 누구의 사명 선언문일까요?
우리는 장벽과 한계를 뛰어넘는 사람 중심의 혁신을 창조하여 모두를 위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존재합니다.
바로 삼성전자의 브랜드 선언문입니다. 그럼 애플의 사명선언문은 어떻게 될까요?
bringing the best user experience to its customers through its innovative hardware, software, and services”
혁신적인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최고의 사용자 경험을 제공합니다.
다음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사명선언문입니다.
Our mission is to empower every person and every organization on the planet to achieve more.
우리의 사명은 지구상의 모든 사람과 모든 조직이 더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입니다.
이와같이 기업들도 사명선언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명선언문이 있다는 것은 인생의 방향을 잃지 않게 해 주는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 줍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힘들고 어려운 일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또한, 인생의 방향을 정해야 하는 중요한 때가 찾아 옵니다. 우리의 인생을 돌아볼 때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이 분명이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사명은 무엇이었을가요?
로마서 1:1
1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나 바울은 부르심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았습니다.
사도 바울의 사명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따로 세우심을 받은 것이 그의 사명입니다. 그의 부르심은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행 9:15
사도행전 9:15 (NKSV)
15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그는 내 이름을 이방 사람들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가지고 갈, 내가 택한 내 그릇이다.
그렇다면 요한복음에 나타난 예수님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잘 알듯이 , 요 3:16-17
요한복음 3:16–17 (NKSV)
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7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아들을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입니다. 이는 요 1:3-5 “3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4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의 빛이었다. 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세상인 어둠에 예수께서 구원의 빛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가 겪으신 괴로움과 극복

우리가 겪는 가장 큰 두려움과 어둠은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죽음"일 것입니다. 죽음은 생명을 잃어버림 입니다. 생명의 상실, 영원한 단절입니다. 누구나 이 상실의 감정과 단절되는 감정에 싸이게 되면 빠져나가기 힘든 어려운 마음이 듭니다. 분명 하나님이 내 삶을 향한 계획과 뜻이 있다고 믿지만 경제적인 상실, 관계의 단절, 미래의 불투명함은 우리를 한없이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주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예수님의 말씀처럼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 다는 것은 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산다"는 그 신앙 고백이 내가 없어지는 인생인 거 같아 괴로워 집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들려 오리심, 즉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어질 때,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까지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열매를 많이 맺게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도 밀알이 되어 썩어지시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와의 상실과 단절, 죽음의 권세가 주는 어두움을 아셨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을 읽어 보겠습니다. 요12:27
요한복음 12:27 NKSV
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여야 할까? ‘아버지, 이 시간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할까? 아니다.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 때에 왔다.
사명을 위해 십자가를 죽음 앞에 서는 마음이 괴롭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음은 그 마음의 괴로움으로 아버지 이시간을 벗어나게 하여 주십시오라고 하실 만큼 십자가에서 느끼실 고통의 무게를 느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당시 지중해 세계전역에서의 영웅관과는 맞지 않는다고 합니다. “고난과 역경에서 슬픔과 눈물의 흔적없이 용감하게 직면하는 사람을 영웅으로 칭송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라는 실존 앞에 주님은 괴로워 하십니다.
시편 55:4–6 NKSV
4 내 마음은 진통하듯 뒤틀려 찢기고, 죽음의 공포가 나를 엄습합니다. 5 두려움과 떨림이 나에게 밀려오고, 몸서리치는 전율이 나를 덮습니다. 6 나는 말하기를 “나에게 비둘기처럼 날개가 있다면, 그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가서 나의 보금자리를 만들 수 있으련만.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수난을 앞두시고 하셨던 겟세마네 에서 하셨던 기도와 비교되어집니다. 십자가의 길, 수난의 길은 예수님에게도 고통의 때이셨습니다.
마가복음 14:36 NKSV
36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모든 일을 하실 수 있으시니, 내게서 이 잔을 거두어 주십시오.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십시오.”
요한은 겟세마네의 기도의 정신을 27절에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나는 바로 이일 때문에 이 때에 왔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대로 하여 주옵소서라는 그 마음 즉,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이땅에 오셨고, 바로 그 십자가가 예수님이 이땅에 오신 이유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래서 밀알이 썩어지는 괴로움의 때를 벗어나게 해 달라기 보다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바로 이 일 때문에 이때에 왔다.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십시오 !!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시자 하늘에서 부터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리고 그 소리는 천둥 소리와 같이 들렸습니다. 사실 요한복음에서는 다른 복음서와 달리 예수님의 신탁 즉, 아버지의 음성이 세례를 받으실 때 , 그리고 변화산에서 예수께서 영화로운 모습으로 나타나셨을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던 것이 기록되지 않고 오늘과 같이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음을 기록합니다.
요한복음 12:28–29 NKSV
28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드러내십시오.” 그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 왔다. “내가 이미 영광되게 하였고, 앞으로도 영광되게 하겠다.” 29 거기에 서서 듣고 있던 무리 가운데서 더러는 천둥이 울렸다고 하고, 또 더러는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고 하였다.
내가 이미 영광되게 하였고, 앞으로도 영광되게 하겠다.” 라고 하나님께서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으로 인해서 영광을 받으셨고, 앞으로도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성육신하시고, 공생애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심을 통해서 영광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하나님을 이미 영광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께 영광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14 NKSV
14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그가 오신 이유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수님께서 받으신 그 사명은 바로 이 세상의 통치자를 심판하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2:30–33 NKSV
3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이 소리가 난 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를 위해서이다. 31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날 것이다. 32 내가 땅에서 들려서 올라갈 때에, 나는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어 올 것이다.” 33 이것은 예수께서 자기가 당하실 죽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암시하려고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의 죽음이 세상에 대한 심판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속죄가 일어나는 곳이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거절하는 사람들의 죄가 드러나는 곳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므로, 자신의 죄를 핑계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들의 죄는 그들이 곧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이 세상의 임금’은 사탄을 일컫는다(14:30; 16:11). 십자가는 또한 사탄이 쫓겨나는 사건이다(31절). 얼핏 보면 예수님이 패배하고 사탄이 승리한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목적을 성취하신다. 반면에 사람들을 멸망시키려는 사탄의 목적은 실패한다. 따라서 십자가는 예수님이 승리하시고 사탄이 패배한 사건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기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 하늘의 소리를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십자가는 세상이 심판을 받을 때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 나는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의 원복음을 생각나게 합니다. 죄로인하여 죽음이 인류에게 들어왔습니다. 그 죽음 세상의 통치자가 왕노릇하며 사단이 자기가 하나님 보다 높은 왕인듯이 세상을 다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은 사단의 머리를 밟아 부수어 버릴 것입니다.
창세기 3:14–15 NKSV
14 주 하나님이 뱀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서 네가 저주를 받아, 사는 동안 평생토록 배로 기어다니고, 흙을 먹어야 할 것이다. 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자손을 여자의 자손과 원수가 되게 하겠다. 여자의 자손은 너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너는 여자의 자손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다.”
예수님의 심판은 밀알로 썩어지심으로 모든 사람들 즉, 유대인들이나 이방인들이나 예수님께로 이끌어 내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다는 요3:16 “16 하나님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외아들을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사람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의 말씀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사야 53:12 NKSV
12 그러므로 나는 그가 존귀한 자들과 함께 자기 몫을 차지하게 하며, 강한 자들과 함께 전리품을 나누게 하겠다. 그는 죽는 데까지 자기의 영혼을 서슴없이 내맡기고, 남들이 죄인처럼 여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많은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졌고, 죄 지은 사람들을 살리려고 중재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당시 모든 영웅들 처럼 영원한 승리로 나타나는 영웅적 메시야를 기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썩어짐으로 영광을 얻는 다는 역설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요한복음 12:34 NKSV
34 그 때에 무리가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인자가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인자가 누구입니까?”
결국 그들은 메시야가 들려야 하다는 것을 믿지 못했습니다. 십자가가 하나님께 영광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은 분명히 이미 말씀하신 것과 같이 십자가의 죽음이 있어야 부활이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셔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이땅에 오셨습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습니다. 빛이 있을 때 그 빛을 믿어야 합니다. 그들은 지금 구원의 임박함을 알아야 했습니다.
성경전서 새번역 (12장)
34  그 때에 무리가 예수께 말하였다.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 계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당신은 인자가 들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인자가 누구입니까?”35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아직 얼마 동안은 빛이 너희 가운데 있을 것이다. 빛이 있는 동안에 걸어다녀라. 어둠이 너희를 이기지 못하게 하여라. 어둠 속을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36  빛이 있는 동안에 너희는 그 빛을 믿어서, 빛의 자녀가 되어라.”

우리들도 예수님 처럼

대림절 네째주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이땅에 오신 이유 즉, 사명을 분명히 아셨고 이루시기 위해서 애쓰셨습니다. 우리의 삶에 늘 승리하고 영광을 받는 일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등산을 하면서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면서 결국 목표한 산 정상에 오르듯이 때로는 내리막으로 한 없이 내려 가는 것 같은 상황에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상실감과 고난, 고통의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예수님은 무엇을 보여 주시려고 오셨을까요? 그것은 실패과 상실 단절, 절망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함이 아닐까요?
월드컵 스타 리오넬 메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이번 카타르 월드컵은 영화와 같은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모든 조별리그와 16강 8강, 4강을 거쳐 이제 결승전만이 남았습니다. 아르헨티나와 프랑스가 결승에서 맞붙게 되었습니다. 이 경기가 주목받는 것은 축구의 신이라 불리는 리오넬 메시와 펠레를 잊는 축구황제라 일컫는 음바페의 세기의 대결이 기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 중 리오넬 메시는 최고의 축구선수에게 주는 발롱도르 상을 여러번 수상하고, 유럽 챔피언스 컵 우승등 화려한 경력을 자랑했지만, 유독 국가대표 경기에서는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의 경력에서 월드컵 우승컵은 허락되지 않았고 번번이 좋지 않은 결과에 사람들의 비난과 죄책감에 실망하고 낙심하여 2016년에 국가대표 은퇴를 선언합니다. 그런데 리오넬 메시 선수를 다시 국가대표에 복귀하게 만든 편지가 요즘 다시 회자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의 조국 아르헨티나의 작은 시골 마을 선생님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제가 인터넷에서 그 내용을 가져왔습니다.
리오넬 메시에게,
당신은 아마 이 편지를 읽지 않겠죠.
하지만 저는 오늘 축구팬이 아닌 한 사람의 교사로서 당신에게 편지를 전합니다.
​저는 비록 교사이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저를 향한 아이들의 존경심은 아이들이 당신을 좋아하는 마음에는 미치지 못합니다.
그만큼 아이들은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지금 영웅이 포기하는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당신을 지치게 만든 일부 아르헨티나인들의 어두운 면을 저도 잘 압니다.
그러나 대표팀 은퇴는 당신을 욕하고 깍아내리는 이들에게 굴복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처럼 승리에만 가치를 두고 패배를 통해 성장하는 것을 무시하는 어리석음에 넘어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아이들에게 이기는 것만이 우선이고, 유일한 가치 라는 선례를 남겨선 안 됩니다.
아르헨티나의 어린아이들이 인생의 목적은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이 어린 시절부터 어떤 어려움을 이겨내며 오늘의 메시가 되었는지 잘 압니다.
성장 호르몬 결핍이라는 희귀병을 앓은 당신이 어린 나이에 고통스러운 주사를 얼마나 맞으며 자랐는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은퇴하면 이 나라 아이들은 당신에게 배웠던 노력의 가치를 더 이상 배우지 못 할 것입니다.
지금 당신처럼 졌다는 이유만으로 포기한다면 오늘도 하루하루를 어렵게 살아가는 이 나라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당신을 얘기할 때 당신이 얼마나 멋지게 축구를 하는지 얘기하지 않습니다.
프리킥으로 단 한골을 넣기 위해 당신이 같은 장면을 수천 번이나 연습한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당신은 아르헨티나 대표팀 유니폼을 벗어선 안됩니다.
모든 팬들이 당신에게 승리와 우승만을, 트로피와 메달만 바라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제발 우리 아이들에게 2위는 패배라고, 경기에서 지는 것이 영광을 잃게 되는 일이라는 선례를 남기지 말아 주세요.
진정한 영웅은 패했을 때 포기하지 않는다고 생각 합니다.
진정한 영웅이라면 이길 때는 같이 이기고, 질 때도 혼자가 아니라는 진리를 알려줘야 합니다. 당신이 우리나라를 대표할 때만큼은 리오넬 메시가 아닌 아르헨티나 그 자체라는 마음으로 대표팀에 남아 줬으면 합니다.
결과에 관계 없이 사랑하는 일을 해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위대한 우승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세요.
진심을 담아,​
- 비알레 초등학교 교사, 요아나 푹스 -
[출처] [축구] 리오넬 메시를 부른 한 편의 편지|작성자 이스트힐

설교를 마치며

설교를 마치려고 합니다. 우리 삶이 늘 승승장구 할 수 없기에 우리는 구원자를 기다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이땅에 오신 이유를 기억하셨던 것처럼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이 시작입니다. 실패가 끝이 아니라는 것, 죽음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예수님은 보여 주셨습니다.
두번째,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받으시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과 승리에 관심이 있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 되시길 기도하였습니다. 아버지와의 친밀감 안에서 하나님의 성품은 당시 영웅적 승리에 도취된 메시야가 아닌 우리의 구원자는 바로 십자가의 길을 알려 주시는 분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세번째, 십자가의 길을 통해 실패 가운데 소망과 구원을 주신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는 십자가의 길, 밀알이 썩어지는 길을 통해서 빛이 어둠을 이긴다는 것을 기억하고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고 마귀를 심판하신 방법은 놀랍게도 십자가의 길이었습니다. 실패를 통해 우리의 인생에 하나님의 빛이 비추어 어둠이 떠나간다면 그것은 실패가 아닌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이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걸야 할 길은 아버지와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친밀함 가운데 아버지께 기도할 때 우리의 삶의 고난도 실패도 하나님은 영화롭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볼 때 실패자입니다. 예수님과 같이 복음 때문에 많은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고린도후서 11:23–28 NKSV
23 그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입니까? 내가 정신 나간 사람같이 말합니다마는, 나는 더욱 그렇습니다. 나는 수고도 더 많이 하고, 감옥살이도 더 많이 하고, 매도 더 많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24 유대 사람들에게서 마흔에서 하나를 뺀 매를 맞은 것이 다섯 번이요, 25 채찍으로 맞은 것이 세 번이요, 돌로 맞은 것이 한 번이요, 파선을 당한 것이 세 번이요, 밤낮 꼬박 하루를 망망한 바다를 떠다녔습니다. 26 자주 여행하는 동안에는, 강물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 사람의 위험과 도시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27 수고와 고역에 시달리고, 여러 번 밤을 지새우고, 주리고,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추위에 떨고, 헐벗었습니다. 28 그 밖의 것은 제쳐놓고서라도, 모든 교회를 염려하는 염려가 날마다 내 마음을 누르고 있습니다.
이와같은 고난을 당한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로마서 8:28 NKSV
28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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