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을 보내시는 하나님

사무엘하 강해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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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새벽기도에 오신 것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은 자신의 권력에 취해 끔찍한 죄를 지은 다윗을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에 대해 말씀합니다. 설교를 통해 그분의 백성을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으시기를 축복합니다.
1- 말씀은 죄인을 찾아간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말씀은 죄인을 찾아간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자신의 부하의 아내를 빼앗았습니다. 자신의 부하인 우리아를 치열한 전쟁터로 내몰아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우리가 지난 번 살펴본 본문 11장 27절 말미에 보시면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다고 되어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여기서 모든 것을 끝내시고 다윗을 심판하셨으면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악랄한 왕으로 기억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저지른 일은 사울도 다윗에게 하지 않았던 굉장히 악한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에게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직분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이 잘못을 저질러서 하나님의 통치를 온전히 보여주지 못할 때, 혹은 왕이 하나님의 백성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선지자로 하여금 왕을 깨닫게 하십니다. 선지자가 다윗에게 간다고 할 때 달리 말하면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을 보내셨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죄인인 다윗에게 말씀이 찾아간 것입니다.
오늘 본문 12장 1절을 원문상으로 보면 접속사가 있습니다. 이 접속사는 직역을 하면 그리고 나서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내시니 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그리고나서 의미는 다윗이 행한 그 일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했기 때문에 그 결과로 여호와께서 나단을 다윗에게 보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쉽게 말하자면 다윗이 범죄한 후에 선지자가 간 것은 두 사건이 단순히 시간순으로 벌어진 일이 아닙니다. 다윗이 범죄했기 때문에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선지자를 보내셨습니다.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죄인에게 말씀을 보내시는 분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경에 나오는 수 많은 악한 이들처럼 그냥 심판해버리면 안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을 회복시키고자 하셨습니다.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나단이 다윗에게 가서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부한 자와 가난한 자의 이야기입니다. 부한 자는 자신이 가진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자의 유일한 재산을 빼앗습니다. 다윗은 나단이 들려준 이 이야기를 듣고 분노합니다. 5절에 보시면 그 사람이 마땅이 죽어야 한다고 노발대발합니다. 6절에 보면 그 빼앗은 것은 네 배로 갚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네 배로 갚아야 한다는 주장은 다윗이 분노해서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2장 1절에 도둑질 했을 때 어떻게 배상해야 하는지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정확하게 양을 빼앗으면 네 배를 갚아야 한다고 나옵니다. 그러니까 아이러니한 것이 다윗이 율법을 정말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끔찍한 죄를 짓습니다. 요즘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정치권에서 참 많이 쓰입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입니다. 자신은 그렇게 끔찍한 죄를 저질렀으면서 나단의 이야기 속 부자가 지은 죄에 대해서는 분노합니다. 자신이 알고있는 정확한 율법의 기준대로 판단합니다. 이렇게 율법을 잘 아는 사람이 그렇게나 끔찍한 죄를 지었습니다. 이것이 죄인의 본성입니다. 율법을 달달 외워도 순간의 탐욕을 이기지 못하고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말씀을 보내셨습니다.
(증명) 요한복음 1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입니다. 1장 14절에 뭐라고 말합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의 죄인들을 위해 내려 오셨습니다. 말씀이신 분이 내려오셨습니다. 말씀이신 분이 많은 죄인들을 회개시키시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이 땅에 복음을 남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인 다윗에게 말씀을 보내신 것처럼 우리에게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버려두지 않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적용) 우리는 죄인입니다. 끝없이 넘어지고 죄 짓고 또 다시 스스로 실망합니다. 하지만 하나님도 계속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십니다. 말씀이신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처럼 우리 삶에 계속해서 말씀이 옵니다. 예배를 통해 말씀이 옵니다. 새벽에 저녁에 말씀이 옵니다. 우리가 성경 읽을 때 말씀이 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정말 부족하고 연약하다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기준대로라면 그야말로 심판 받아 마땅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다윗과 언약을 맺으셨기에 다윗을 포기 하지 않으신 것처럼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로 우리와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우리를 십자가로 구원하셨기 때문에 결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죄 때문에 넘어지십니까? 절망에 사로잡히지 마시고 하나님이 보내시는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예배를 통해, 기도회를 통해, 개인 묵상을 통해, 성경 필사를 통해 말씀에 귀 기울이시기 바랍니다. 우리 신념으론, 우리 도덕으론, 우리의 지성으로는 도저히 죄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답은 단 하나 말씀입니다.
2- 말씀은 죄인을 회개시킨다.
(전환문장)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말씀을 보내시는데 그렇다면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바로 회개입니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말씀은 죄인을 회개시킨다는 것입니다. 7절부터 12절까지 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왕으로 세우셨는데,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악하게 행동했기 때문에 심판 받을 것이라 합니다. 다윗의 집에 칼이 떠나지 않고 다윗의 아내들이 모욕을 당할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다윗은 자신의 죄를 고백합니다. 13절에 여호와께 죄를 범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단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지만 14절에도 보았듯이 이 일이 여호와의 원수가 비방할 거리를 얻게 했기 때문에 다윗이 낳은 아이가 죽을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는 세력들이 다윗의 행동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깎아 내릴 수 있기 때문에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 나온 아기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아까 언급한 끔찍한 일은 겪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계는 있습니다. 불순종의 심판은 받지 않지만 징계는 있습니다.
고대근동의 문헌들을 보면 고대의 선지자들은 주로 어용선지자입니다. 그러니까 어용선지라는 의미는 권력에 빌붙어서 권력에 순종하는 선지자라는 뜻입니다 고대의 선지자는 왕이 무 슨 잘못을 하든 왕이 무슨 짓을 하든 그저 신의 이름으로 왕을 축복하고 왕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왕의 호의를 얻으면 권력과 물질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근동지역의 나라들과 이스라엘이 질적으로 다른 직분자 체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는 고대근동의 어용선지자와는 달리 왕의 일탈을 막고 왕의 죄를 정죄하여 회개하도록 합니다. 이것은 상징성을 띕니다. 왕조차도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 말씀에는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왕조차도 죄를 지으면 말씀앞에 회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것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말씀 앞에서 회개하는 백성이 되어야 할 것을 말합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회개시킵니다. 말씀에는 회개의 능력이 있습니다. 사실 사람이 내뱉은 말이 뭐 그렇게 큰 능력이 있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고대근동의 이방 선지자들은 왕에게 아첨할 수 밖에 없습니다. 왕의 심기를 건드리는 신탁을 받으면 그냥 왕의 손짓 한 번에 목이 잘려나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통치하시는 이스라엘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선지자는 참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때문에 그 말씀에 권위가 있습니다. 능력이 있습니다. 죄인을 회개 시킵니다. 단순히 나단이 다윗에게 겁을 주었기 때문에 다윗이 회개를 한 것이 아니라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에 다윗이 회개를 한 것입니다. 말씀은 죄인을 회개시키기 때문에 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이전 시간에 다윗의 권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지 않았습니까? 다윗의 명령 한 번이면 랍바가 포위되고 수 많은 적들이 목숨이 달아납니다. 다윗의 명령 한 번이면 온 나라가 들썩입니다. 이런 다윗인데 무엇이 다윗을 막을 수 있습니까? 무엇이 다윗을 말릴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권세자를 무릎 꿇리고 엎드리게 합니다. 깨닫게 하고 회개시킵니다.
(적용) 우리 안에 다윗의 권력에 못지 않은 죄악의 권력이 자리잡고 있지 않습니까? 오랬동안 우리 삶을 지배한 욕망이 권력이 되어 우리 삶의 체계를 휘어잡고 있지 않습니까? 탐심이 지배하는 삶을 살다보니 돌이킬 수 없는 행동과 말을 하지 않습니까? 무엇이 우리가 죄 짓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 너무나도 안타깝고 절망 가운데 있지 않습니까?
우리 안에 있는 죄가 일종의 권능을 가져서 우리 영혼과 삶을 지배하다 시피 하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 죄의 파괴력에 우리가 속수무책으로 끌려다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열심과 노력으로는 우리의 신념으로는 도저히 이것을 이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으로서는 됩니다. 그 초라한 행색의 나단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그저 전했는데 그 권세자가 무릎을 꿇고 회개했습니다. 손 짓 한 번이면 목이 뎅강하고 날아가는데 그 선지자가 말씀을 갖고 있으니까 말씀이 죄성을 꺾고 회개를 불러일으키며 회복의 역사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회개라는 일은 그 어떤 권력과 무력으로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 심령에 회개를 불러일으킵니다. 죄악의 권세를 꺾어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단순히 고대 근동의 왕들처럼 우리의 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우리 기분이 좋으라고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 안에 자리잡은 욕망이 꺾이고 회개가 일어나고 회복이 되는 일을 위해 우리는 말씀을 가까이 합니다. 하나님이 이 놀라운 사건을 일으키기 위해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 우리에게 말씀을 보내십니다.
결론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회개시키기위해 말씀을 보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되 끝까지 천국으로 인도하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죄에 넘어지고 좌절해도 계속해서 말씀을 보내시고 우리 안에 회개를 불러일으킵니다. 오늘 하루도 말씀으로 회개의 능력을 경험하고 죄악을 이기는 복된 하루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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