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육신의 완성 - 그리스도의 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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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성탄절입니다. 너무나도 기쁜 축제의 날입니다.
정말 예전에는 크리스마스가 전 세계적인 축제의 날 처럼 여겨졌습니다.
이 날에 꼭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이 이 날을 즐겼습니다. 담배를 피던, 술을 마시던, 오락을 하던 사람들은 이 날을 즐겼다는 것이죠.. 아마 오랜 과거부터 이러한 전통이 있었을 것입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이 날이 기쁜 소식의 날이기 때문이겠죠.. 그러니까 우리랑은 다른 의미겠지만 이 날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던 날임은 분명합니다. 확실히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
제가 이번에 성육신에 관해서 묵상하고, 책들을 읽고 설교를 준비하면서 여러가지 생각과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성탄절에 다양한 오락과, 그리스도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냥 선물이나 받으러 오는 다양한 사람들, 거리에 쏟아져 나와서 쾌락에 몸을 맡기는 청년들을 보면서 어떨때는 분노하기도 했고, 어떤때는 서운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오심,,, 이 거룩하고 귀한 날… 다 한번 온전히 그리스도를 생각할 수 없는가? 왜 세상은 이 날에도 여전히 그냥 즐기고, 쾌락을 위해 살고, 단순히 오락을 즐기는 날로만 여기는 것일까?
그런데 성육신을 묵상하다 보니 제 생각이 틀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세상에 오신것이죠.. 거룩하고, 깨끗하고, 모두가 예배를 드리는 세상이 아니라… 깨어져 버리고, 타락하고, 쾌락적이고, 욕망을 위해 살아가는.. 하나님을 찾지 않는 세상가운데 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탄절의 그 날에 성전에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구유에서 태어 나셨습니다.... 성전에서 제사장들과 함께 있었던 것이 아니라 길가는 수많은 사람들, 밤에 다양한 이유로 여관을 찾는 사람들 바로 그들과 함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육신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성탄절에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들을 삶을 사는 것을 보게됩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이러한 하나님을 모르고 깨어진 세상에 주님께서 찾아오셨다는..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정말 은밀하게 임하여 계셨다는 것을 묵상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들 가운데 은밀하게 또 아주 평범하게 오셨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지막 심판에 대해서 말씀하셨던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이에 의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나이까
어느 때에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나이까
어느 때에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리니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의 의미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아주 낮은 곳에 예수께서 임하셨다는 것을 알고, 그들과 예수님이 함께하신 다는 것을 알면서 우리 자신은 전혀 낮아지려 하지 않고, 우리 자신은 전혀 그리스도가 있는 곳에 있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우리의 신앙생활을 다시 돌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계신 곳에 그리스도께서 실제적으로 임하셨기 때문에 이 몸! 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 땅에 오심과 떨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하셨을 때에 도마가 왜 예수님의 몸을 보고 진짜 몸인지 알고자 했겠습니까??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몸이 자신들 가운데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상징적이고, 놀라운 일인가 하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지금까지 우리가 따랐던 예수님이 실제적으로 우리 가운데 있는것인가? 이것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다.. 그것을 극적으로 증거하는 것이 몸입니다!!
오늘날 얼마나 쇼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선거철이나, 혹은 겨울철만 되면 잠깐 어려운 사람들 있는 곳으로 가서 잠깐 대화하고 나눠주고 사진찍고 오는 뭐 그런 모습을 우리는 많이 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몸을 입으셨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신 것이 그냥 쇼가 아니구나.. 잠깐 있다가 가시는 그러한 연출이 아니구나..
정말 사시러 오셨구나.. 정말 이 누추하고 연약한 인간의 몸으로 사시러 오셨구나 하는 것을 아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몸이 가지는 상징성이 있는 것이죠,. 우리와 같다.. 우리와 똑같은 삶이다.. 우리와 똑같은 연약함이다..는 거입니다.
그런데요.. 제가 성육신에 대해서 묵상을 하면서 오늘 본문이 조금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서 이야기 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누구인가 하니 “성도”라고 말씀합니다. 성도가 이 땅에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도로 부름받은 우리의 사명이나, 우리의 일상이 어떠해야 하는지가 조금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앞서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으로 다니신 길거리를 생각해 보십시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예수님께서 만나셨던 사람들을 생각해 보십시요..
삭개오, 막달라 마리아, 간음한 여인, 종교적 허세가 가득한 바리새인들, 세리 마태, 어부 들입니다...
그 예수님이 그들을 만나서 무엇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십시요..
위로하시고, 치유하시고, 대화하시고, 상담하시고… 어떤때는 훈계하시고..
그런데요.. 우리가 그 몸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성육신 하셔서 이 땅에서 다니시고, 만나시고, 행하셨던 그 몸이 오늘날 우리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사실 우리가 성도라고 불리지만 우리가 있는 이 그리스도의 몸으로 어떠한 일을 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그곳이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여 계신 곳!1 이라는 생각을 하십니까?
우리가 만나는 그 사람이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여 만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습니까?
다시말하면 다양한 사람들이 우리를 만날때 그들은 누구를 만납니까? 그리스도의 몸!!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적인 존재라는 것이 아니라… 그 낮아지신 예수님이 오늘날 우리를 통해서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임마누엘이지요.. 함께 하신다.. 예수께서 이 땅에 없는데.. 어떻게 함께 하십니까??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우리를 통해서 아닙니까?
여전히 그 성육신이 이 땅가운데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이 성탄절… 몸으로 오신 성탄절은 기쁨과 축제와 복된 소식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있는 곳에서 우리는 어떤 소식을 전해줍니까?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서 치유되고, 회복되고, 다시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일이 일어났는데..
그렇다면 오늘 예수님의 몸을 이루는 우리는 사람들에게 어떠한 것을 전해줍니까? 우리가 성육신 하신 예수님의 몸인데.. 그 몸을 지금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는데...
마치 도마가 예수님의 손을 보여 주소서!! 진짜 몸인지 보여 주소서!!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이.. 세상은 그리스도를 보여라.. 그 몸을 보여라!! 이렇게 말하는데… 그런데 그 몸을 이루는 우리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보여주는 그 모습이, 정말 그들에게 기쁘고 복된 소식이 되고 있습니까??
성육신이 에수그리스도의 33년의 생애에서 끝난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를 통해서 여전히 예수님께서 자신의 몸을 보여주고 계신다는 것을 아는것..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따라서 우리의 삶은 이 땅에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의 삶과 일치되야 합니다. 우리를 몸으로 부르신 예수님께서 그 삶을 원하시기 때문이다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바울도 그리스도의 몸을 이야기 하면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즉, 성육신과 부활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을 이야기 할떄 빠질 수 없는 두 기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합니다.
2절에서 모든 겸손, 온유, 오래참은, 서로 사랑… 이것을 지키는 것인데요.
이거 우리 힘으로 하려고 하면 엄청나게 어렵지요.. 겸손해야 된다. 우리가 말로는 하지만 정말 겸손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온유하는 것 그거 보통 힘든일이 아닙니다. 오래참음 당연히 안되고요...
오래참는게 안되니까 서로 사랑이 될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일은 우리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몸!! 그 몸안으로 우리를 부르실때에.. 그 몸에 내 삶이 하나가 될 때에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그렇게 사셨던 몸!!
그리고 오늘 우리를 그 몸으로 부르셨다는 것!
우리가 만일 아~ 내가 이땅에 예수님의 성육신 몸으로 사는구나!! 이것만 알아도 우리의 삶이 얼마나 달라지겠습니까?
오늘 이땅에 예수님이 떠나고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예수님이 여전히 나를 통해서 이 땅에 성육신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내가 그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내 삶이 예수님이 이 땅에 성육신 하여 여전히 임마누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거 놀라운 말이지요.. 우리가 예수님의 몸으로 이 땅을 산다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께서 2000년 전에 하셨던 그 일을 오늘도 하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의 성육신의 몸이거든요.. 그 몸이 하셨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이 것을 우리가 깨달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마지막 만찬에서 자신의 몸을 찢어서 우리에게 왜 나눠 주시겠습니까?? 너희가 나의 몸이다는 것입니다.
내 몸은 찢겨지고 이 땅에서 사라지겠지만!! 너희가 내 몸이 되어 살아간다는것입니다.. 그러면… 그 몸을 입고, 세례를 받고 새로운 몸으로 태아났다면 살아내셔야지요… 그렇게 살아내셔서 오늘도 여전히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우리를 통해서 여전히 성육신 하신다!!는 것을 우리가 드러내고 알릴수 있는 성도님의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