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하나님 앞에 머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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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516장 - 사도신경 - 성경봉독

요한1서 2:12–17 NKRV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받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안에 거하시며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잔소리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자녀들이 하고 싶어하는 것은 하지 말라고 하고 하기 싫어하는 것은 하라고 합니다. 예를 들자면 하고싶은 컴퓨터게임은 하지 못하게 하고 하기 싫은 공부는 하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우리에게 우리가 하고 싶은 것은 못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이 땅에 보물을 쌓아 두고 싶은데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 땅에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마6:19) 이 땅에 재물을 쌓는 즐거움이 얼마나 큽니까? 돈을 많이 벌어서 저축하고 땅을 사서 자기이름으로 등기도하며 좋은 차를 사서 놀러 다니고 싶은데 주님은 우리에게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라고 하십니다. 또한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라(롬6:12), 이 세대를 본받지 말라(롬12:2), 불신자들과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고후6:14), 술 취하지 말라(롬13:13), 땅에 것을 생각지 말라(골3:2), 하십니다 이런 것들은 하고싶은데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와 반하여 하기 싫은데 하라고 하신 말씀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원수를 사랑하고 싶지 않습니다. 우리 마음에 괴로움이 있습니다. 사랑하고 싶지 않은데 사랑하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른 빰을 치거든 왼뺨을 돌려 대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오히려 우리의 빰을 친자의 팔을 부러트리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구약의 말씀처럼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고 싶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하십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와 멀리 있는 달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셨다면 우리는 지키기 쉬울 것입니다. 우리가 늘 피부로 느끼며 함께 하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는 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부모들은 아이를 사랑하여 그들이 가기 싫어하는 공부를 시킵니다. 학원에도 보내고 여러 교육을 받게 합니다. 자녀의 장래를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도 우리의 유익을 위하셔서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세상

요한일서에 나오는 세상이나 모두 물질세계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세나 마음가짐을 의미합니다. 성경 곳곳에서 이 ‘세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대부분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사용하는데,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사는 삶,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가리키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사는 삶,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죽음에 대한 자세,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하나님에 대한 태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이웃에 대한 태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 언급한 것들 외의 모든 것들을 대하는 모습이 이 ‘세상’이라는 단어 안에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이라는 단어의 뜻입니다. 세상이란 전적으로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 없이 모든 일을 생각하며 결정하고 행동하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의 공동체 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라고 말하였습니다.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을 발견할 수 없고, 하나님께 이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어떤 종교던 어떤 철학이던 어떤 사상이던 예외는 없습니다. 모든 것들이 다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을 염두에 두지 않으며,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임의대로 생각하며 결정하고 행동하게끔 하는 것이라면, 제 아무리 훌륭해보이는 것이라 하여도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인간은 세상에서 건져주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없이는 누구나 예외없이 세상에 속해 있습니다. 골 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리고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없이 세상의 풍습에 따라 살아갑니다. 엡 2:1-2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여러분은 이 말씀이 교훈하는 것 곧, 세상의 풍습의 배후에 존재하는 사탄의 활동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사탄은 자신의 권세로 세상을 장악하고 있으며, 풍습 다른 말로는 문화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하며 진리의 빛을 가림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죄를 짓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구원받은 우리 또한 옛 습관을 따라 혹은 이런저런 유혹들 때문에 세상을 따르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열매

예수님께 분명히 세상이 심판의 대상이라고 말합니다. 요 12:31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왜일까요? 이 세상의 임금 즉, 사탄이 만들어내는 것, 그리고 그가 온 세상에 가득 채워가고 있는 것이 온통 더럽고 추악한 것들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 바 있습니다. 요일 2: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그렇습니다. 세상에 가득차 있는 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이 말씀이 과연 진실한지 한 번 생각해봅시다.
세상이 계속해서 어마어마한 속도로 발전해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최첨단의 기술을 가지고 있고, 모든 사람들이 고등교육을 받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전쟁과 학살, 가난, 기근, 학대와 같은 일들 말입니다.
(러시아 영상)
이런 일들이 여전히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성경은 일부 잘못된 사람 개개인의 문제 때문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태도 즉,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 사는 삶, 하나님 없이 사는 삶을 살아가는 자들의 마음가짐 때문입니다. 사탄은 계속해서 인간에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불어넣고 있으며, 모든 인간이 그에 따라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육신의 정욕이란 무엇일까요? 육신의 정욕은 강한 욕구를 뜻하며, 성경은 이런 욕심에 이끌려 사는 삶을 정죄합니다. 물론 인간은 욕구와 강한 충동을 본성으로 가진 존재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어떤 것을 하고 싶어하고, 그것을 마음에 품은 순간부터 열심히 그것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본능이 너무나 강한 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세상에서 자제력을 상실하고 본능대로 마구 날뛰는 사람들을 보게 되지요. 아주 분별력이 있고 자제력이 뛰어나 보이는 사람이(브래드피트) 알콜중독자가 됩니다. 아주 휼륭한 교육을 받았다 하는 사람들이 다른 이의 가정을 깨뜨리거나, 어린아이들을 학대하는 일들을 저지릅니다. 이런 죄악이 다 육신의 정욕에서 출발합니다. 강한 욕구가 우리 안에 충동을 일으키면 그렇게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합니다. 우리 스스로가 이런 욕망들을 사랑하며 즐기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육체의 정욕’이라고 규정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아닌 우리의 육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육체의 정욕을 부추기는 것들이 온통 가득합니다. 특시 이 시대에 성적인 욕구를 자극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굳이 포르노 비디오가 아니더라도, 이제 우리가 쉽게 접하는 모든 미디어에서 성적인 묘사를 아주 짙게 표현하는 일이 다반사입니다.
요한은 마치 오늘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고 성경을 기록한 것처럼 우리가 처해 있는 현실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삶은 한마디로 하나님을 떠나 사는 삶입니다. 요한이 살아있던 당시 1세기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가 그들보다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인간은 우리 조상들이 했던 일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요한은 안목의 정욕에 대해서도 언급하였습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외모나 외관을 숭배하며 외형적인 것에 치중하는 것입니다. 세상은 인간을 안목의 정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듭니다. 눈에 보기에 좋은 것들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가게 합니다.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속에는 겉모습은 그럴 듯하게 보이나 실상은 그저 보기 좋게 꾸며놓은 가짜가 넘쳐납니다. 안목의 정욕이 가득한 세상의 문화 속에서는 겉모습만을 온통 화려하게 꾸며서 가짜가 진짜로, 거짓을 진실로, 부정직을 정직으로 꾸며냅니다. 정말로 진짜인 것, 진실인 것, 정직한 것이 무엇인지 분간하는 것은 그닥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겉모습만이 중요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안목의 정욕에 젖어 살아가는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 23:25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하는도다” 겉으로는 번지르르해 보이지만 속이 어떤지 전혀 보지 못합니다. 보기에 멋지다면 속이 어떻든지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이생의 자랑입니다. 야망과 교만과 욕구는 계속해서 이생의 자랑을 부추깁니다. 사람들은 이를 자랑하며 이것들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수 받기를 갈망하고, 유명해지기를 열망합니다. 위대한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더 중요한 인물이 되려고 애씁니다. 오늘날 세상 속에서 일어나는 행태들을 보십시오. 박수를 받을 수 있다면, 유명해질 수 있다면, 더 중요한 인물이 될 수 있다면 온갖 불의와 악행도 감수합니다. 그렇게 지식과 재물과 권력을 얻었으니 자신이 가진 지식과 재물과 권력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나 있겠습니까? 그저 자기가 얻은 것을 자랑하기에 바쁠 뿐입니다. 세상은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가도록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것이 세상의 삶에 대하여, 세상적인 삶을 사는 인간과 그들의 마음가짐에 대하여 성경이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정욕들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세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시점에서 두가지 진지하게 여겨야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이 정욕이 세상을 끔찍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구요, 둘째는 세상이 그저 지나갈 뿐만 아니라 반드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정욕 자체가 부끄러운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욕정이 한 인간를 넘어서 세상 전체를 나쁜 길로 이끌며 무질서를 초래하며 풍기문란을 일으킵니다. 온 인류의 역사 내내 이러한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이 세상을 조금 더 낫게 만들 수 있다는 전망은 그저 유토피아에 불과했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세상과 함께 끔찍한 모습으로 변해갈 수 밖에 없다. 세상에 속해 있으면 반드시 임할 심판을 피할 길이 없다. 우리에게 하등 유익이 될 것이 없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
무엇으로 이 세상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무엇으로 세상에 물든 인간의 마음을 고칠 수 있을까요? 세상은 교육제도를 개선해 사람들을 잘 가르치면 문제가 해결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세상에는 소망이 없습니다. 세상의 그 어느것으로도 우리는 스스로를 치유하고 고칠 수 없습니다.
심판을 막을 길도 피할 길도 없습니다. 이 세상이 받아야 할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우리가 받아야 할 형벌을 주님께서 대신 받으셨음을 믿는 길 뿐입니다. 이것을 굳게 붙들면 세상으로부터 분리되고, 세상에 심판이 임할 때 구원받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이 악한 세상이 받을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운명으로부터 우리를 분리시켜 줍니다. 이러한 일은 오직 십자가만이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붙드는 순간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며,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됩니다. 주님이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분리하시며, 자기에게 속하게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입니다. 이제 세상이 내게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를 세상으로 분리시켰고 당신의 나라에 속하도록 이전시키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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