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4 주일예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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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오늘날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뭔가 좋고 기쁜 일들이 생길 것을 기대하고, 계획하면서 지냅니다.
하지만 정작,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인 예수님의 출생은 그렇게 쉽지 않았습니다.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사람들에게 명령하기를,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호적을 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었기에 아내 마리아와 함께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내 마리아는 예수님을 임신 중이어서 그 여행길이 쉽지 않았습니다. 더군다나 베들레헴에 도착해 보니 이미 와 있는 수 많은 사람들로 인해 여관이 꽉 차 있어서 요셉과 마리아가 머물 만한 방이 없었습니다. 임신한 마리아와 요셉은 쉴 만한 곳을 찾지 못해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아마 요셉과 마리아는 너무 속상하고 울 것만 같았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임신하기 전에,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가 자신의 몸에서 나올 것이라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이 땅에 태어나는데 이렇게까지 자신을 고생스럽게 태어나게 하시니 말입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결국, 방을 찾지 못하고 짐승들이 있는 마구간에서 아기 예수님을 출산을 하게 되고, 아기 예수님은 강보에 싸여 짐승들이 밥을 먹는 구유에 모셔졌습니다.
무사하게 아기 예수님을 출산했지만 그들의 행색은 여전히 초라했고,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 일행의 고생스러운 모습은 아랑곳하지 않고, 천사를 시키셔서, 들에서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면서,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초라한 탄생에 대해서 그 누구보다 기뻐하며 영광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 가운데 누군가 예수님과 같이 방도 없어서 고생스럽게 마굿간에서 태어나서 구유에 누웠었다고 한다면, 참 힘들고 불행하다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렇게 초라하게 태어난 것에 대해서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초라하게 태어난 자신의 아들에 대해서, 하늘에는 영광이고, 땅에는 기쁨과 평화라고 선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이 땅의 기쁨임을 선포하셨습니다. 10절에서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한다고 하셨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기쁨으로 아기 예수의 탄생을 맞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기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면서 사람들이 기뻐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면서 크게 기뻐합니다. 멀리 떨어져 있던 가족들이 만나서 기뻐하고, 휴일이라 일하지 않아도 되기에 기뻐합니다. 집을 성탄 장식으로 예쁘게 꾸며 놓고 기뻐하고, 산타 크로스의 복장을 하고 선물을 나누면서 기뻐합니다. 연인들과 함께 지낼 수 있어서 기뻐합니다. 가게들은 이 때에 수입이 좋기 때문에 기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탄의 본질적인 기쁨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탄절이 되어도 헤어진 가족과 만날 수 없고, 성탄 트리 밑에 선물을 기대할 수 없고, 집이 없어서 한데서 생활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입니다. 추운 성탄의 날에도 일하지 않으면 살기 힘들어 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만약 성탄의 기쁨이 오늘날 세상 사람들이 성탄절에 누리고자 하는 풍요와 세상적인 즐거움에 있다고 한다면, 그렇지 못한 이들은 성탄이 그 어느 날 보다 불행하고 슬픈 날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성탄의 기쁨은 세상적인 안락과 풍요를 근거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도 성탄의 기쁜 소식은 세상적으로 부유하고 안락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먼저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밖에서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던 목자들"이었습니다. 양떼를 지키느라 밤에 편안하게 집안에서 자지도 못하고 밖에서 양을 지켜야 하는 목자들에게 먼저 알려 졌던 것입니다. 자기 양떼라고 해서 자기 소유의 것이 아닙니다. 양떼의 주인에 의해서 자기에게 맡겨진 양들입니다.
그리고 그 목자들은 당시에 천시되는 직업이었습니다. 양떼를 돌보며 밤낮으로 함께 하니까 힘도 들고, 몸도 옷도 더러워 집니다. 더군다나 일반적으로 목자의 일은 부정한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을 하면, 양들이 새끼를 낳을 때에 몸에 피를 묻히고 하기 때문에 결코 정결한 상태를 유지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니 제사도 제대로 드릴 수 없었습니다. 종교적으로도 부정한 사람들이 목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목자들에게 먼저 그 기쁜 소식을 알리셨습니다. 그리스도주가 나신 기쁜 소식을 목자들에게 알리셨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성탄을 맞이하면서 정말로 기뻐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를 함께 말씀을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1. 예수님의 탄생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한 그리스도 주로 탄생하신 것이기에 기쁨입니다.
당시에 목자들은 천한 사람들이요, 부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대로 제사를 드릴 수도 없는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하나님의 복을 받은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켜 구원에 이를 수도 없는 대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목자들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쁨이 있음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바로 그 누구보다도 당신들에게 기쁜 소식이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당신들을 포함한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임했다는 소식입니다.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대상에 들지 않는 사람들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어떠한 형편에 있는 자이든지 간에 그들을 구원코자 이 땅 가운데 오신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 3:23절에는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죄가 있음을 말씀하고 있고, 이것에서 예외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당시의 목자나 제사장이나 임금이나 모두 죄인이었습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나의 죄를 구원하신 예수님으로 믿고, 그 분을 따르게 되면 천국에 이르는 구원이 있습니다.
특별히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싫어하고 도리어 세상의 것을 더욱 기뻐하면서 살아가는 세대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의 기쁨을 가지고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기쁘고 즐겁게 살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길의 결국은 사망이요, 지옥인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나를 구원하신 구세주임을 기뻐하며, 그 분을 따라서 살아가는 것을 기뻐한다면, 결국 영생의 길인 천국에 이르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 믿음의 성도들은 세상에서 주는 기쁨에 취해서 살아가는 자녀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로 모시고,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2. 예수님께서 우리의 목자가 되신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예수님 당시의 목자라는 직업은 3D직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Difficult 어렵고, Dangerous 위험하고, Dirty 더러운 직업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목자의 일을 하기를 꺼려했고 천시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목자들에게 처음으로 알리셨고, 더군다나 예수님의 삶을 보게 되면, 그러한 목자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14-15,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하셨습니다.
양들에게만 목자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도 목자가 필요했습니다.
양들이 얼마나 무지하고 연약합니까? 들판의 맹수들에게 힘없이 당하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한치 앞도 제대로 보지 못하여서 어디로 자신이 가고 있는지도 제대로 모르면서 눈 앞에 있는 것만 보면서 걷는 것이 양입니다.
사람들도 그렇습니다. 목자가 없으면 밤낮으로 사탄에게 이끌려서 죄를 지으며 죽을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대로 기쁨을 위해 살아가다가 죄를 짓고, 지옥으로 가는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 가운데서는 우리를 제대로 이끌어주실 구원자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생명의 길로 살아가는 지를 알려주시고, 우리를 보호하여 주실 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일은 목자와 같이 거친 일입니다. 밤낮 수고해야 하는 일입니다. 맹수가 오면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헌신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끝내 그 양떼를 위해서 죽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아기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서 목자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목자가 양을 위해서 죽을 수 있는 것은 돈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보다 더욱 양들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셔서 우리를 참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하여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안 오셨으면 사탄에게 속아서 죄를 짓고 끝내 사망에 이르러야 되는데, 이제 구원의 길을 따라서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거칠고 힘든 일들을 우리를 위해서 감당하시는 목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우리는 기뻐하는 것입니다.
3.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 또한 우리의 기쁨이 됩니다.
그리고, 이 성탄에 우리에게 기쁨이 되는 것은, 이 기쁜 소식을 이웃에게 전하고 증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구원하시기 오셨음을 우리의 삶을 통해서 전해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사실, 성탄절에 많은 기쁨을 주는 산타 크로스가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4세기 경, 터키에 해당하는 미라 시에, 성 니콜라우스(270-310) 라는 주교가 살았습니다. 니콜라우스는 남몰래 선행을 많이 했습니다. 한번은 너무나 가난해서 결혼하지 못하는 세 자매의 집이 있었는데, 성 니콜라우스 주교는 세 자매를 도와주기로 결심하고 아무도 모르게, 금 주머니를 굴뚝으로 떨어뜨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 금덩이는 자매들이 벽에 걸어둔 양말 속으로 들어갔고 그 금돈으로 세 자매는 결혼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양말을 걸어두는 풍슴이 생겼고, 산타 클로스가 굴뚝으로 들어 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성 니콜라우스 주교가 죽은 후에도 12세기 초 프랑스 수녀들이 니콜라우스 축일 전날인 12월 5일에, 성 니콜라우스가 과거 행했던 것처럼, 가난한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었고 그 풍습이 유럽 전 지역에 확산되었습니다. 그리고, 17세기에 아메리카 신대륙으로 이주한 네달란드 사람들이 자선을 베푸는 사람을 성 니콜라우스라는 이름대신, '산테 클라스'라고 부르게 되었고, 이게 '산타 클로스'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 성 니콜라우스 주교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섬기며, 그들에게 기쁨이 되는 존재였던 것입니다.
성 니콜라우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으로서, 그의 삶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구원의 기쁨을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준 사람이었습니다. 이 성탄의 계절은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기쁨과 감격을 이웃들에게 나눌 수 있는 복된 시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성탄을 맞이하는 자들의 기쁨이 됩니다.
말씀을 정리합니다.
성탄은 하늘에는 영광이요, 이 땅에는 큰 기쁨과 평화가 되는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사랑을 드러낸 사건이기 때문에 하늘에는 영광입니다. 그리고 땅에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는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일을 위해서 예수님께서는 가장 천하고,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험하고 힘든 목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이끌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살아갈 때에 진정한 삶의 기쁨이 있으며 구원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세상에 목자가 왔어도 목자의 소리를 알지 못하고, 도적의 소리를 따라, 사탄의 소리를 따라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는 이들은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며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도 목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나 자신을 낮추며, 다른 이들에게 복음의 메시지를 나누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살아가는 기쁨이 있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요즘 상업적인 것과 같이 내 자신이 중심이 되는 성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 소식이, 그리고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고 구원하는 귀한 일들이 경험되는 성탄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