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 그리고 임마누엘

성탄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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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의 내용은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한 천사의 대사에 언급된 것으로 유명한 본문입니다.
우리가 신약에서 이 말씀에 마태복음에 쓰여진 것은 많이 알고 계시지만 이것이 이사야서 안에서 어떤 내용이었는가, 어떤 의미를 가졌었는가? 하는 것은 많이 알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사야서에서 이 말씀은 유다의 왕이었던 아하스에게 이사야가 전했던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사야가 이 말씀을 마태복음에서처럼 메시아의 탄생, 예수님의 탄생을 미리 알고 이 이야기를 했겠습니까?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에 다른 상황과 환경과 의미로서 사람들에게 전해졌지만 또 그것이 신약시대에 와서, 마태복음에서는 메시아에게 이 예언이 이루어진 것으로 다시 새롭게 해석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다는 것이죠.. 이 말씀이 과거의 한 사건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는 살아있는 말씀이라는 것은 이 말씀의 내용이 오늘날 우리에게 새롭게 해석되고 의미를 가져오게 되면서 여전히 우리 삶에 영향력이 있다! 메시지를 전해준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이야기 했지만 오늘 본문은 이사야와 아하스 왕의 대화에서 나타나는 본문입니다.
배경이 언제인가 하니 주전 8세기 후반기에 시리아-에브라임 전쟁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이 전쟁이 무엇인가 하니, 조금씩 나라를 팽창시켜 나가고 있는 앗시리아에 대항하고자 아람-이스라엘이 군사동맹을 맺있는데, 여기에 유다는 그 동맹에 참여하지 않으려고 했다가 이제 그들 사이에 전쟁이 발발하게 된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 징조를 구하라!!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하스가 그것을 거절하죠!
명목상으로는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하는가?”입니다. 이거 굉장히 신앙 좋아보이는 말 아닙니까? 그런데 사실 아하스는 이미 앗수르(앗시리아)에게 돈을 주고 그들의 도움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보다 앗수르를 더 의지하고 하나님 도움 별로 필요없습니다. 할수는 없으니까 좋게 거절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사야가 화를 내는 것입니다,.
당시에 유다왕이 아하스였는데,, 그러니까 굉장히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시기입니까? 여기서 이사야 선지자가 이렇게 두려워 떨고 있는 아하스에게 전한 메시지가 7장의 내용이고 그 중심에는 14절의 내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되는 것은 이것입니다. 이런 임박한 전쟁의 상황에서 본문의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는 말씀이 어떠한 위로가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이 전쟁의 두려움에 휩싸여 있는 아하스에게 전쟁에서 유다가 구원받을 것이라는 징조를 주실 것인데 그 징조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는 것은 뭔가 이상합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이 처녀가 누구인가? 그리고 태어날 이 임마누엘이라는 아기는 누구인가? 이것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들이 있겠지만,
이 본문이 실제적인 어떤 여인이나 아기를 가리킨다고 보기 보다는 우리는 구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통해 이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서 “딸”또는 “처녀”로 불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열왕기하 19:21 NKRV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에게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처녀 딸 시온이 너를 멸시하며 너를 비웃었으며 딸 예루살렘이 너를 향하여 머리를 흔들었느니라
예레미야 31:4 NKRV
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를 들고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춤추며 나오리라
이스라엘이 “처녀”로 하나님께 불림을 받은 것과 더불어서
이스라엘이 위기 가운데(앗수르) 있을 때에는
이사야 37:3 NKRV
그들이 이사야에게 이르되 히스기야의 말씀에 오늘은 환난과 책벌과 능욕의 날이라 아이를 낳으려 하나 해산할 힘이 없음 같도다
그러니까 장에서 원래 의미로 봤을 때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출산한다는 것은 어떠한 의미겠습니까? 해산할 힘이 없는 이스라엘이 아이를 낳는다,, 다시 말하면, 유다가 시리아 - 에브라임 전쟁에서 망하지 않고 살아남게 될 것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미가서의 내용에서도 나타나는데요..
미가 4:10 NKRV
딸 시온이여 해산하는 여인처럼 힘들여 낳을지어다 이제 네가 성읍에서 나가서 들에 거주하며 또 바벨론까지 이르러 거기서 구원을 얻으리니 여호와께서 거기서 너를 네 원수들의 손에서 속량하여 내시리라
여기서도 선지자 미가는 유다와 온 이스라엘이 이방의 압제에서 풀려나게 될 것을 잉태한 여인의 해산에 비유하여 출생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장 14절의 처녀가 잉태하여 아이를 낳는것!! 그것은 현재 이스라엘이 처한 위기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란 의미를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아이의 이름이 “임마누엘”입니다. 임마누엘의 뜻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이 위험에서 구원받는 이 사건에서 누가 구원해 주시는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구원받는다! 입니다. 이것이 이사야 선지자때.. 아하스왕이 위험에 처해있는 상황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이죠!
너가 앗수르 의지하고, 그들의 힘에 의지해서 위기를 모면하려고 하고, 이스라엘은 타락하여 우상을 숭배하지만… . 그렇지만.. 내가 구원하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입니다!!
그런 너희와 함께 있어서 내가 너희를 구원하여 이스라엘이 계속해서 생명을 낳게 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인 것이죠!!
이것이 구약에 나타난 임마누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마태복음에서 한 번 더 등장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23 NKRV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우리는 구약에서 그 구원의 약속으로 주어졌던.. 연합군의 공격에 위태로웠던 유다!!에게 위로와 구원을 주었던… 그 약속이
마태복음에서 다시 한 번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성탄절을 맞이하는 것과 같이, 예수님이 오시던 그 날 밤에 천사들에 의해서 선포되는 메시지를 들을 수 있습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무슨 말입니까? 구약 시대에 그 구원이 필요한 유다에게 역사하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서… 그 구원이 한 번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구원이 필요한 자들에게 이 임마누엘의 약속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던 날 이스라엘의 모습은 어떠했습니까?? 제사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습니다… 종교는 타락했고, 성직자인 바리새인과 제사장들도 타락해서 재물을 갈취하기에 바빴고,… 사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없던 시대입니다…
위기의 시대였습니다.. 종교적으로나, 영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소망이 없고, 희망이 없는 위기의 시대에 주님께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임마누엘.. 내가 아하스 왕때에.. 그때에 모든 것이 타락했던 유다를 구원했던 것과 같이 내가 이 타락한.. 하나님을 떠난 백성을 다시 구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의지의 표현이나… 구원의 역사가 신약시대에도 일어났다는 거입니다.
세상은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에게는 이 세상이 정말 위태로웠던 것이죠.. 구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한다는 그 위로가 필요한 세상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이 구약에서, 또 신약의 마태복음에서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약속은 마태복음에서 끝난 것입니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죠..
우리가 매년 드리는 이 성탄절에서 우리는 이 말씀이 울려 퍼지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마치 이사야가 아하스 왕에게 이야기 했듯이.. 천사가 요셉에게 이야기 했듯이..
오늘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통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라!!
다시말하면 오늘 우리에게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의 구원을 이루시곘다는 것입니다...
유다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완전히 깨져버린 세상을 구원하신 하나님.... 그 하나님께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구원한다!!! 유다처럼… 이스라엘 처럼… 내가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마 많은 교회에서 본문이 이 말씀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의 메시지..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단순히 설교시간에 읽는 말씀이 아닙니다.
정말 구원이 필요하고.. 삶의 위기가운데 있으며… 세상의 높은 벽과 어려움에 소망과 희망을 찾기 어려운 이 시대 가운데.. 또 그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가운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앞에 많은 적들이 있고.. 그 적들이 성을 에워싸고 있지만.. 내가 징조를 보일 것인데..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너희는 구원을 받을 것인데.. 그 구원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때문임을 알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성탄절.. 이 땅에 죽으러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의 소식이 기쁜 소식이라고 합니다.. 아이러니입니다… 저는 그게 너무 이해가 안됬어요..
그런데 그 소식이 구약에서도 기쁜소식이며.. 신약에서도 기쁜소식이고 오늘 우리에게도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이기 때문입닏.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누구의 고백입니까?? 우리의 고백이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 하나님이 함께 하셨구나!! 우리와 함께 하셨구나!! 그렇게 고백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메시지가 우리에게 선포되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듣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내가 구원할 것이다!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억할 뿐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실 그 하나님에 대한 놀라운 소망과 희망으로 삶을 살아가실 수 있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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