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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 강해시리즈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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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새벽기도에 오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다윗 왕가에 불행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왕자가 공주를 범하고 왕자가 왕자를 죽이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것도 아주 치밀한 계획 살인을 통해 죽였습니다. 양털 깎는 자리에형을 초대해서 죽였는데 당시에 양털을 깎는 일은 축제였습니다. 이 축제는 원래 자비와 관용이 넘치는 자리인데 이런 자리에서 왕자끼리 살인이 났습니다. 너무나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오늘 본문은 압살롬이 암논을 죽인 이후 다윗과 요압이 이것을 어떻게 대처했는지를 보여주면서 어려울수록 사람의 지혜가 아닌 무엇을 의지해야 하는지를 교훈합니다.
1- 합리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의 생각대로 일을 하고자 한다.
(설명)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교훈은 죄인은 사람의 생각이 합리적이라 생각하며 일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계획적으로 형을 살인하고 도주한 압살롬을 다시 왕궁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요압이 계략을 꾸민 장면입니다. 본문을 어떤 관점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의미를 아예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 본문을 어떻게 보면 요압이 틀어진 부자지간을 봉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13장 39절에 다윗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다고 나와 있고 14장 1절에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는 줄 알고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다윗의 심복인 요압이 다윗의 마음을 잘 알아서 드고아의 여인을 섭외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도 본문에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요압이 지혜로운 여인을 섭외해서 부자 갈등을 잘 봉합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언뜻 본문을 읽으면 갈등이 일어날 때 지혜롭게 화해를 잘 시켜야겠구나 하고 본문을 읽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사건 이후에 화해가 하나도 안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첫 번째로 압살롬이 다시 예루살렘에 왔어도 다윗왕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킵니다. 문맥을 살펴보면 요압은 다윗과 압살롬의 관계를 잘 봉합하지 못했고 이 본문은 화해에 대한 본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사무엘서의 메시지가 요압과 관련된 스토리를 설명하면 긍정적인 결과가 거의 없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요압은 믿음으로 전쟁을 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 전쟁을 했습니다. 요압이 아사헬의 복수를 하기 위해 아브넬을 죽이는 바람에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의 평화협상이 결렬 될 뻔한 적이 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빼앗을 때 요압이 동원되었습니다. 요압이 엮여서 긍정적인 일이 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사무엘하의 이야기는 다윗이 잘못된 판단을 내릴 때 요압을 이용해서 이것이 잘못된 일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사무엘하를 쭉 읽은 독자라면 오늘 요압이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을 섭외한 일이 결코 잘하는 일이 아니라는 암시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차분하게 읽으면 굉장히 쉽게 이런 내용을 캐치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이 이렇습니다. 다윗은 형제를 살인한 죄를 짓고 도망간 아들 압살롬이 그립습니다. 요압은 그 마음을 이해하고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을 섭외합니다. 어떤 복장으로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코칭을 합니다. 드고아의 지혜로운 여인이 다윗에게 찾아와서 하나의 이야기를 합니다. “아들 둘이 서로 싸우다가 한 명이 죽었는데 사람들이 남은 아들마저 죽이려 한다. 이 아들이 재산을 상속 받을 아들이다. 이 아들이 없으면 대가 끊긴다 그래서 좀 살려달라고 부탁드리려고 다윗왕에게로 왔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다윗이 그 아들을 살려준다고 약속합니다. 이때 드고아의 여인이 정중하게 질문을 합니다. “그러면 왕의 아들은 왜 집에 안 돌아오고 있습니까? 암논을 죽였지만 살려줘야죠!”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이 때 다윗이 “너를 섭외한 사람이 누구냐 했을 때 이 여인이 요압이 사주해서 이런 일을 꾸몄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 상황에 다윗은 요압의 충정에 못 이기는 척하고 그냥 압살롬을 불러옵니다. 요압이 상황을 만들고 다윗의 부정을 자극했을 때 다윗은 그저 마음이 가는대로 압살롬을 다시 불러들입니다.
요압은 왜 이렇게 복잡한 일을 꾸며서 압살롬이 다시 왕궁으로 돌아오도록 했습니까? 이게 사실 엄청 복잡한 상황입니다. 법적으로 다윗 이후로 왕이 될 사람은 암논인데 이 암논이 압살롬에게 죽임 당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인간적인 입장에서 봤을 때 암논이 죽으면 압살롬이 왕이 되어야 하는데 압살롬이 살인죄를 저질렀으니 너무 상황이 곤란합니다. 압살롬이 머리도 좋고 외모도 뛰어나고 왕이 될 상인데 인간적인 관점에서 압살롬이 너무 아까운 것입니다. 그래서 드고아의 여인을 시켜 하나님의 기업이 끊어지면 안된다 이런 말을 하면서 계속 다윗을 꼬드기는 것입니다. 드고아 여인이 들려준 이야기의 핵심은 대가 끊기면 안된다 기업이 끊어지면 안된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요압은 다윗으로 하여금 왕위를 누가 이을것인가 하는 고민을 하도록 합니다. 압살롬 정도 되어야지 “잘생기고 똑똑하고 딱 왕이 될 상인데... 압살롬이 아니면 누가 이 왕조를 이어?” 이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 나는 것이 있지 않습니까? 사울 왕이 생각납니다. 사울 왕도 키가 크고 외모가 준수했습니다. 이런 사울 왕이 어떻게 했는지를 다 겪고도 아직도 그 때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사울의 왕조는 결국 망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이 메시아의 계보를 세우는 왕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것을 벌써 잊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처럼 그분의 마음에 합하고 믿음으로, 고백으로 그분의 나라를 세워갈 사람을 원하십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이 사람이 맡아서 하는 게 합리적인데 라고 생각을 하고 그렇게 자리를 맡기고 일을 진행시킵니다. 죄인인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관심이 있지 않습니다. 잘생기고 멋진 압살롬을 선택하고 싶어합니다. 살인죄를 지었든 뭘 했든 압살롬 아니면 안된다고 그렇게 아우성칩니다. 드고아의 여인을 섭외한 것처럼 어떻게든 명분을 만들어냅니다. 합리적이라는 것일 핑계로 우리가 내키는 대로 합니다. 물론 우리는 합리적으로 살아야 합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를 골라야 하고 돈과 시간을 절약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합리적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궤를 달리 한다면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합리적이라고 판단하는 우리의 사고방식 또한 타락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합리로 일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의 원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십니다. 우리는 말씀에서 벗어난 것임이 분명한데 우리가 가진 나름대로의 합리적인 이유를 들어 우리의 욕구를 만족시키려 합니다. 이것이 죄인의 본성입니다. 압살롬이 형제를 살인한 죄를 지으면 징계를 하든지 회개를 시키든지 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선입니다. 그냥 구렁이 담 넘어가듯이 넘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2- 하나님의 뜻이 일할 때 능력이 있다.
(설명) 그 다음으로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두 번째 교훈은 하나님의 뜻이 일할 때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압살롬이 망명하고 방황할 때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했습니다. 자신의 왕위를 이을 아들이 죽고, 왕위를 이을 만한 다른 아들은 살인죄로 도망을 다니고 있는 상황이라서 정확하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너무 놀라고 혼란스러운 상황일수록 절망적일수록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더 구하고 기도로 나아갔어야 했습니다. 결국은 사람의 지혜로 임기응변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일할 때 능력이 있습니다.
암논이 죽었어도 압살롬이 망명을 했다고 해도 하나님의 백성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무너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어떤 고난이 있어도 절대 쓰러지지 않습니다. 교회가 쓰러지는 순간은 고난을 맞이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을 때입니다. 다윗은 이런 때일수록 자신의 감정이나 요압의 계략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일하도록 했어야 합니다. 사울왕이 버림 받고 심지어 죽었을 때에라도 이스라엘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다윗이라는 인물을 준비 하셔서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고 메시아의 계보를 마련하셨습니다. 이것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다윗입니다. 하나님은 혈통이 아니면 일 못하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혈통에 얽매이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울을 버리고 다윗을 택한 것처럼 얼마든지 메시아의 계보를 세우고 이 땅에 그리스도를 보내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할 일은 자기 혈통을 지키기 위해 인간적인 생각을 하고 꾀를 내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눈 앞에 해결해야 할 죄의 문제가 있을 때 인간적인 명분으로 얼마든지 덮는게 아니라 말씀에 비추어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임기응변을 펼치고 머리를 굴리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도 할 수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기도로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이 일하도록 하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우리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 번에 설교를 계속 듣겠지만 이렇게 인간적인 명분과 사람의 지혜로 데리고 온 압살롬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회개 했습니까? 아닙니다. 다윗을 이어 위대한 왕이 되었습니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뜻이 일하지 않으면 아무리 인기가 많고 잘생기고 똑똑한 왕일지라도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일꾼으로 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일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 생각대로 하는 게 더 편하고 멋지고 명분도 살 것 같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압살롬이 점점 예루살렘의 골치덩이가 되고 결국 왕에게 대항하지 않습니까?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결국 말씀을 자신에게 순종시키려고 하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일생을 말씀에 순종하느냐 말씀을 순종시키느냐의 투쟁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는 말씀에 순종하여 우리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이 일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능력이 있습니다. 압살롬이 아니면 안될 것 같은데 해도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마련하시고 이스라엘을 강대국으로 세웁니다. 하나님께는 항상 새롭고 강력한 플랜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지혜에서 나온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가진 그 어떤 것보다 강력합니다.
(적용)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얼마나 관심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이 역사하도록 합니까? 아니면 우리의 고집과 경험이 일하도록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 고집과 경험이 만든 우리의 세계가 무너지고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우리의 뜻과 욕망을 꺾고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있는 것으로는 그 어떤 것도 감당할 수 없습니다. 말씀의 씨앗이 뿌려지고 기도의 은혜가 부어질 때 우리 마음의 토양에서 하나님의 뜻이 피어나고 하나님의 나라가 열매 맺습니다.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이 잡초처럼 자라나지만 그것을 뿌리 뽑고 하나님의 뜻만 서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생각과 의지는 우리 욕망을 양분삼아 엄청나게 잘 자라납니다. 하나님의 뜻이 피어나는 것보다 우리 고집이 자라는게 훨씬 더 빠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만이 꽃피우는 것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꾸 쉬운 것을 하고 싶어합니다. 꽃을 키우는 것 대신 잡초같은 우리 생각 우리 고집을 키우고 싶어합니다. 너무나 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뿌리 뽑고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세우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생각과 고집은 결국 아무런 능력이 없이 우리 삶을 망치기만 합니다. 압살롬을 쉽게 데리고 왔지만 나중에 하나님이 세운 다윗 왕조를 망치지 않습니까? 이것을 기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일하도록 경건에 힘써야 합니다.
결론
설교를 맺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 우리가 합리적이라고 착각하는 우리의 생각, 고집이 아닌 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만이 온전히 세우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이렇게 피어난 하나님의 뜻에는 우리 삶에 강력하게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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