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1228 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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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458 너희 마음에 슬픔이 가득할 때
본문 시 32:1-11
자비하신 하나님, 주님의 은혜가운데 시작했던 2022년도 이제 며칠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올 한해를 돌아보면 어디 하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던 것이 없었음을 고백합니다. 베풀어주시는 크고 놀라운 사랑에 감사하며 주님의 은혜를 노래해도 모자르나, 정작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아주 사소한 일에 쉽게 분노했고, 별 것 아닌 일에 불평하고 불만을 가졌으며, 작은 일에도 쉽게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때로 의심하기도 했고, 하나님의 다스리시는 손길을 외면하기도 했었음을 고백합니다. 얼마 남지 않은 올 한해 기간을 돌아보며, 아직 회개하지 못한 숨겨진 죄악들이 있다면 다 생각나게 하셔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하시고, 그렇게 새로 시작될 2023년 더욱 죄와는 멀어지고 거룩으로 다가가는 우리의 삶이 되도록 은혜 베풀어 주옵소서. 감사를 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1907년 1월 6일부터 열렸던 평양 장대현교회의 저녁집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뜨거워졌다. 그러다 14일 저녁집회 때 말씀사경회가 끝날무렵, 회중석에 앉아있던 길선주 장로가 회중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공개적으로 통회하는 일이 일어났다. “나는 아간과 같은 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죄 때문에 복을 주실 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1년 전에 내 친구 주 한 사람이 임종시에 나를 자기 집으로 불러서 말하기를, 자기 아내가 셈이 약하기 때문에 대신 자기 재산을 잘 정리해서 아내를 비롯하여 남겨진 가족들에게 전달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미망인의 재산을 관리하다가 나는 미화 100달라 상당의 금액을 사취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해 온 것입니다. 따라서 내일 아침에 그 돈 전액을 미망인에게 돌려드리겠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길선주 장로의 고백은 그 곳에 모인 무리들의 상한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길선주의 회개가 있은 후, 그렇게 무겁게 짓누르던 방해의 장벽은 별안간 무너져버리고 거룩하신 하나님이 친히 임재해 주셨다. 이에 이길함 선교사는 “기도하기를 원하는 누구라도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라고 통성기도를 요청했고, 그곳에 모인 무리들은 간절하게 기도하기 시작했다. 길선주의 회개가 마치 뇌관에 불을 붙인 것처럼 되어서 청중 가운데 성령의 강력한 임재와 통회의 역사가 나타난 것이다. 그곳에 참석했던 한 외국인 선교사는 한국인들의 기도소리가 마치 하늘보좌를 향해 포효하는 것 같았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바로 이것이 1907 평양대부흥의 시작이였다.
이후로 한국교회는 전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성령의 강력한 역사들이 나타났다. 은혜를 체험한 자들이 전국방방곳곳으로 퍼지면서 구령의 열정으로 복음을 전하게 되고, 그들이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게 되며, 복음 앞에서 신분제도가 무너지고, 복음 가운데 주님의 몸이 든든히 세워져간 것이다. 결국 한국교회의 주님을 향한 사랑은 일제 신사참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고, 그 순결한 신앙의 정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토록 놀라운 역사가 일어난 그 중심에 바로 회개운동이 있었다. 성경은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죄를 통회자복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자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에 대해 세 가지를 말씀하신다.
회개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 그 첫번째는 정죄함이 없다는 것이다. 본문 1-2절을 보라. 시인은 허물을 사함받고 죄가 가려진 자가 복이 있다고 노래한다. 성경은 허물이 없는 자, 죄를 범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오히려 있던 허물이 사함을 받은 자, 있던 죄가 가려진 자가 복이 있다고 말씀한다. 이는 인간이 죄인일 수 밖에 없다는 한계를 전제한다.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은 모든 인류는 그 죄 가운데 태어나고, 죄 가운데 살다가 죄 때문에 죽는다. 어느 누구도 죄의 영향과 죄의 지배로부터 자유할 자가 없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고 성경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모든 인간은 죄인이다. 하지만 기억하라.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는 것은 죄를 지었기 때문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전심으로 그 죄악에서 떠나 하나님의 자비를 호소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하나님께서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누구든 그 죄를 고백하며 회개할 때 죄사함의 은총을 베푸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자는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하는, 영적으로 무지한 자일 뿐이다.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이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다는 것이며,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한다. 반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자는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사함을 받는다고 약속하신다.
다시 본문의 말씀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죄를 감추고 스스로 의로운 자라고 속이는 자를 성경은 간사한 자라고 말씀한다. ‘간사하다' 라는 말은 ‘속이다', ‘거짓말을 하다' 라는 의미를 가진다. 즉 자기를 속이는 것이고 남을 속이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의인이라 주장하며 속으로는 온갖 죄악을 품었던 유대 종교지도자들을 외식하는 자로 정죄하셨지 않는가? 그들은 자신을 온갖 경건의 껍데기로 포장하여 남을 속이고 자신도 속이던 자들이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의인 판정을 받을 자는 아무도 없다. 성경이 말씀하시는 바 나의 본래의 모습, 그 더럽고 추악한 죄성을 직시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하나님께로 나아가는데 가림막이 되진 않는다. 이보다 더 크고 강하신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여 회개함 까지 나아가야 한다. 성도는 진정한 회개를 통해 죄사함의 은총을 누리기 때문이다.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 주시는 복, 두번째는 환난 중에 기도응답을 받는다는 것이다. 6-7절 말씀을 보라. 시인은 모든 경건한 자가 주를 만날 기회를 얻어 주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체험하는 복을 받게 됨을 노래한다. 우리 주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사함을 받은 신자는 주의 말씀이 그 안에 있고 그가 주 안에 거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전존재가 새롭게 변화한다. 이제는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산 자로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해 살던 삶의 목표가 이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나의 나라를 세워가려던 삶의 방향이 이제는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삶의 방향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방향으로 바뀌는 우리의 기도제목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응답을 받기 시작한다. 나의 뜻을 꺾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길 기도하던 우리의 간구들이 이루어지기 시작한다.
시편기자는 이런 자들에게 홍수가 범람할지라도 그에게 미치지 못한다고 노래한다. 어떤 환란이나 재난이 닥쳐도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이 교회를 붙들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 안에서 결코 끊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주님도 말씀하셨다.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시50:15]” 주님은 환난 중에 간구하는 기도에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그분의 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에, 자신이 죽기까지 사랑하신 성도이기 때문에 주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대로 환난 날에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그러므로 신자는 세상에서 어떠한 일을 당해도 절망하지 말고 주님께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며 주님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회개하는 자에게 하나님 주시는 복은 진리의 길로 인도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본문의 말씀 시32:8 말씀을 보라. “내가 네 갈 길을 가르쳐 보이고 너를 주목하여 훈계하리로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 많은 사람들이 헛된 인도자를 따라다니며 인생의 방향을 묻곤 한다. 어리석은 자들은 무당을 찾아가기도 하고 사주를 보기도 하며 타로와 같은 점술을 보기도 한다. 과학의 시대에 무슨 종교냐며 기독교 믿음을 평가절하하는 사람들이 집안에 액땜을 막기 위해 온갖 미신적인 것들을 의지하고 신뢰한다. 이 세상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창조주를 통해 만들어진 피조물에 불과하거늘, 여전히 우매한 자들은 피조물 앞에 경배하며 피조물을 떠받들며 피조물을 숭배한다. 인생의 발걸음을 인도하는 분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 뿐이시거늘, 하나님을 떠나서 어디에서 인생의 방향을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자들의 결국은 결국 멸망 뿐이다.
그러나 시편기자는 회개하는 경건한 자에게 주께서 갈 길을 가르쳐 보이실 것이라고 말씀한다. 성령님은 경건한 신자들에게 진리로 가르치심으로 멸망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로 행하도록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전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제공하고,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해 영적 능력을 갖추게 하고 하나님의 사람을 온전하게 한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음성을 듣고 주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께 더욱 나아가는 복을 누리는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 온 세상의 주관자께서 친히 우리 인생을 다스리신다. 이것만큼이나 우리에게 복되고 안전한 길이 있겠는가?
따라서 사랑하는 여러분, 신자의 삶에서 회개가 이와 같이 중요하다. 앞서 평양 대부흥운동에서 살펴보았듯이 참된 회개는 영적 대각성을 일으키고, 참된 회개는 우리의 죽은 영혼을 소생케 하며 참된 회개는 성령의 강력한 임재를 경험케 한다. 또한 오늘 본문을 통해서 확인했듯이 참된 회개는 죄사함의 은총으로 인하여 더이상 정죄함이 없게 하며, 참된 회개는 환난 중에서도 기도 응답을 받게 되며, 참된 회개는 진리의 길로 인도함을 받도록 우릴 인도한다.
이제 오늘을 포함하여 2022년도 한 해도 4일 남았더라. 지난 날들을 돌이켜보면 얼마나 많은 죄악들을 저질렀던가. 본문의 말씀을 기억하며 하나님 앞에 진실된 회개로 나아가자.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가난한 심령을 보시고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환난 가운데에서도 지켜주시며, 진리의 길로 인도하실 것이다. 이 귀한 복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아멘.
기도하자.
주님, 이 시간 우리의 죄악들을 주님 앞에 고백합니다. 죄를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 앞에 아룁니다. 주여, 우리의 회개하는 마음들을 받아주시고, 진실로 주님 앞에 회개하며 나아갈 때 우리에게 은혜를 내려 주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