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예배는 찬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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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내 평생 사는 동안 (주 찬양하리)
본문: 이사야 43:14-25 (14-21)
14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위하여 내가 바벨론에 사람을 보내어 모든 갈대아 사람에게 자기들이 연락하던 배를 타고 도망하여 내려가게 하리라
15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 내어 그들이 일시에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하기를 꺼져가는 등불 같게 하였느니라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자기가 강하다는 것을 과시하고 계세요.
14절입니다.
너희의 구속자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 여호와
15절도 보세요.
나는 여호와 너희의 거룩한 이요 이스라엘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니라
자기 자신을 과시하고 계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자기과시는,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힘센 친구가 있으면 어때요?
그러면 든든한 것이죠.
그 친구가 나를 지켜주고, 나를 보호해줄테니까 말이죠.
그게 하나님의 자기 과시인 것입니다.
나는 창조자다.
나는 왕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존재이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듣는 이스라엘을 위한 것이죠.
*지금 이스라엘의 형편은 좋지 않습니다.
14절을 보니까,
지금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있어요.
제국의 신민이 되어서, 자유도 잃고, 모든 주권도 상실하고 살고 있어요.
미래가 없는 것이죠.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기 자녀들도, 주권을 잃은 노예로 살아가야 될 형편이죠.
자유롭게 하나님을 예배하지 못하죠.
이것을 시인은 홍해 바다로 비유하고 있는데요.
16절을 보니까,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다 가운데에 길을,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을 내고
이거 홍해를 건너가는 이미지 이거든요.
지금 너희들의 형편은, 사면초가다.
바로의 군대가 뒤를 쫓고,
앞에는 바다,
양 옆에는 산이 가로 막고 있는 사면초가 같은 형편이 너희 형편이다.
*오늘 설교 제목이 예배는 찬양입니다 라고 지었는데
우리가 예배자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홍해를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일
내가 풀 수 없는 문제
내 힘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게 뭐에요?
16절을 보세요.
바다 가운데 길을 내는 일이고요.
큰 물을 어떻게 지나갑니까?
바다는 못 지나갑니다.
사람이 어떻게 지나가요?
잠수함타고 지나가고
배 타고 지나간다고 말하지 말고,
아무튼,
고대에 바다는 악이 출몰하는 지역이에요.
다니엘서에 보면,
괴물들이 나타나는데,
다 바다에서 올라오고 있습니다.
큰 짐승 네 마리가 어디에서 올라오느냐?
우리 다니엘서 7장, 3절을 찾아서 읽어봐도 좋은데.
제가 읽어드리면,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고,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 이빨 사이에 갈빗대에 물려 있고
등등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올라와서 뭘 하느냐?
성도들
그러니까 하나님을 믿는 자들을 잡아 죽이고
그들과 싸워서 이겼다 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고대에 바다는 악이 올라오는 영역을 이야기하는 거에요.
그 바다를 어떻게 지나갑니까?
성도를 괴롭히고
성도를 힘들게 하는 바다를 어떻게 지나갑니까?
우리 힘으로 지나갈 수 없는 거에요.
고통스러워서 소리지르고
살라달라고 아우성칠 수 밖에 없는 게 바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그런 바다를 허락하시는 거에요.
그런 바다 가운데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무엇이냐?
*여러분, 사람은 자기 찬양성이 있어서,
자기 자신을 높이고 싶어하지
다른 사람이나
특히 하나님을 높이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신론자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을 높이지도 않아요.
자연은 찬양해요.
자연의 신비는 찬양합니다.
그러나, 자연 뒤편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지는 않아요.
생명의 놀라움을 찬양하고,
자연의 웅장함을 위대하게 바라보고 놀라워하고,
다큐멘터리도 찍고, 하지만,
그러나 그 뒤편에 계신 하나님을 찬양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무신론자라기보다는,
하나님을 반대하고 미워하는, 반신론자에 가까운 것입니다.
아무리 교회를 오래다녀도,
홍해를 경험하지 않고,
바다를 경험하지 않고,
고난과 역경을 경험하지 않고,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역경과 어려움에 부닥치지 않아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찬양하게 되어 있습니다.
나의 업적과 나의 능력과 나의 스펙과 나의 무엇이나
어떻게든 찬양거리를 찾게 되어 있어요.
우울증이 무엇입니까?
우울증은, 내 안에 더이상 나를 찬양할 거리가 보이지 않아서 생기는 것입니다.
나를 찬양하지 않는 사람은 우울하지 않아요.
나에 대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에 대해서 찬양하는 사람은 우울해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울증은,
자기 사랑,
자기 자신을 찬양하고 싶어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특징이에요.
물론, 영적인 측면 말고 호르몬적인 문제로 생길 수도 있겠지만,
평범한 사람이 우울해지는 것은, 자기 사랑 때문입니다.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초라한 모습 때문에 우울해지지 않습니다.
진짜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자기를 혐오하거나 학대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보다,
하나님을 묵상하고, 그분을 사랑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게 된다면,
우울증은 그냥 사라질 거에요.
그러나, 현대는 잠잠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찾기 어렵습니다.
대부분 종교생활은 하지만, 잠잠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종교적 활동은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거의 없죠.
*이야기가 딴 데로 샜는데,
결론적으로 홍해를 경험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찬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홍해를 건너게 하는 경험을 해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여러분에게
홍해같은 답답한 경험.
특히 여러분 자신의 자아로부터,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집착으로부터 여러분을 해방시키기 위해서,
홍해같은, 역경과 고난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내 고집이 꺾이고,
내 생각이 무너지고,
내 방식이 틀렸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게 홍해 경험입니다.
왜요?
그래야,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경험할 수 있고,
그래야 나 자신이 아니라, 이제 하나님을 진정 예배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19절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제 하나님은 홍해바다가 아니라,
광야와 사막에다가 새로운 길을 내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마치
공사현장,
도로건설 현장처럼
하나님께서 새로운 고속도로를 내시겠다고 하시는 거에요.
이집트에 노예였을 때는, 바다를 건너야 했어요.
바다를 건너 약속의 땅으로 왔죠.
그러나 이제 바벨론에 있으니 홍해가 아니라, 어디를 건너야 할까요?
바로 광야와 사막을 건너야 하는 것이죠.
하나님이 바로 광야에 고속도로를 내시겠다는 것이죠.
이 일을 하나님께서는 행하겠다고 하십니다.
너희들에게 새로운 일을 행해 주겠다.
너희가 하지 못하는 새로운 고속도로를 열어 주겠다.
그 길은 내가 하는 것이다.
내가 뚫어주겠다.
나는 너희의 구속자요
너희의 거룩한 이요
너희의 창조자요
너희의 왕이기 때문이다.
*21절에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다’ 라는 동사는 반복과 강조를 의미하는 피엘형인데
시제는 미래형입니다.
21절을 보실까요?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새롭게 창조하였나니,
그 이유는 나를 찬송하고 또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니까 뭐에요.
지금부터 미래까지 영원토록
반복해서 하나님을 찬송하고 찬송하는 사람,
하나님이
홍해와 같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경험하게 하고,
그 이후에
그들이 뚫지 못하는
광야에 새로운 고속도로를 내시는 이유가 뭐에요?
아,
내가 찬양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구나!
내가 찬양할 분은 오직 하나님 이구나!
지금부터 반복해서,
영원토록 미래까지 찬양할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을 창조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지금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시는 것이죠.
*말씀을 맺는데요.
예배는 찬양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온갖 것들을 찬양하죠.
물질적인 것들
눈에 띄는 것들
소유들
다른 사람과 비교할 수 있는 것들
이런 온갖 것들을 찬양하면서,
하나님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병든 시대인 거에요.
우리의 마음이 병들고,
우리 영혼이 병들어서,
점점 잘 살고, 물질적인 풍요로움은 누리고 있지만,
우리의 정서와 영적은 부분은 메말라 가는 것입니다.
정말 나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인가?
나는 정말 하나님을 찬양하는가?
이게 적용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사람은 메마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찬양하고 찬양해도 아쉽지가 않거든요.
세상 것들은 한계가 있어요.
시대를 타고 유행을 타고,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만 한계가 없으십니다.
이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해 예배하는 것입니다.
정말, 오늘 예배자인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나요?
나의 어떠함, 나의 자존심, 나의 생각, 이런 것들을 찬양하고 있지 않습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은 찬송중에 임재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나 자신을 묵상하고
나를 높이고 있을 때 하나님은 임재하시지 않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하나님을 묵상하고,
우리의 생각을 들어올려, 하나님을 찬양할 때,
하나님은 우리 마음 가운데 거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바꾸시고,
놀라운 것을 보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죠.
오늘 말씀을 통해,
나는 평생 누구를 찬양할 것인가?
누구를 높일 것인가?
인생의 홍해같은 고통 가운데
나는 누구를 찬양하기 위해 창조되고 있는가?
되돌아보며,
하나님의 새 일을 기대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하고
내 평생 사는 동안 주 찬양하리
*같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 평생의 찬양의 대상이 하나님이 되기를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 몰두할 때, 우리 인생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또는 기뻤다가 슬펐다가를 반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하신 하나님, 하나님 한분만 바라보고 찬양할 때, 우리는 영원한 기쁨과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일평생 하나님만 높이고, 하나님만 바라보는 저와 여러분 되게 해달라고, 우리 열방 청년부 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또한 교회를 위해서, 예배 순서가 새롭게 바뀌고, 신입생들이 올라오고, 정착해야 하는 과정 가운데 있는데, 우리 신입생들이 청년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또한 대학 졸업을 앞둔 우리 졸업생들에게 하나님이 크신 은혜 베푸셔서 길과 진로가 열리도록. 우리 청년들의 직장과 학업과 생업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혜가 풍성하기를, 가정과 삶을 위해 함께 중보하며 기도하겠습니다.
등장하는 이미지
구속 - 물건을 사고 파는 이미지
파견 - 왕이 신하를 보내는 이미지
창조 - 새로운 것을 만드는 이미지
왕 - 통치자의 이미지
큰 물 가운데에 지름길 - 홍해가 갈라지는 이미지
바다 가운데에 길
꺼져가는 등불 - 조명 이미지
광야에 길 - 토목건설 이미지
사막에 강 - 수로건설 이미지
관찰
핵심 내용 : 바벨론 사람들을 쫓아낼 것이다.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창조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과거 홍해 사건에 버금가는 위대한 새 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자기 백성에게 생명의 물을 마시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자기 백성을 창조하실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기 위함이다.
개요
구원의 행위가 먼저 시작된다.
그 구원으로 인하여 이스라엘은 포로에서 구출된다.
하나님이 이 일을 행하시는 이유는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높이게 찬양하게 하기 위함이다.
설교개요
(1) 하나님은 여기에서 자기 백성에게 용기를 주시기 위해 다음과 같은 칭호를 사용하신다.
(2) 하나님은 그들의 압제자의 세력을 꺾어 버리실 것을 그들에게 확신시켜 주신다(17).
(3) 하나님은 과거에 그들이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데리고 나오실 때에 그들을 위하여 행하셨던 위대한 일들을 상기시키신다(16,17절).
(4) 하나님은 옛날에 앵하셨던 일보다 더 큰 일을 그들을 위해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그들은 그 기적들이 재현되는 것을, 아니 그것을 능가하는 기적들을 보게 될 것이다(18절).
(5) 하나님은 그들을 바벨론에서 구원하실 것이며 그들이 땅으로 안전하고 편안하게 인도하실 것을 약속하신다(19,20절).
(6) 하나님은 이 모든 약속하신 복의 큰 원인을 찾아내신다(21절).
14 자기들이 연락하던 - “린나” - 노래, 기쁨, 즐거운, 노래하며, 외치는 소리
평소에 기쁨으로 외치던 배이다.
평소에 자기들이 기쁨으로 여겼고, 즐거움으로 여겼고, 노래하며 좋아했던 “그 배”를 타고, 도망치게 하실 거라는 말씀이다.
15 카도쉬 - 거룩하다, 대단하다, 구별되다, 존경받을 만하다 => 하나님은 대단하신 분으로서 이런 일을 행하실 것이다.
나는 이스라엘의 “빠라”이다.
너희의 “멜레크”이다.
16 바다 가운데에 데레크(길)을 나탄(주다, 넘기다, 세우다, 맺다)하고,
아즈(큰, 강한, 힘이 센) 마임(물) 가운데에 나팁(길, 오솔길)을.
*바다와, 큰 물은 하나님이 다스리셔야 하는 세력이다.
고대 근동에서 바다는 악의 상징이다.
17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나오도록 (히필 / 나오다, 지나다) 역사하셨다! (하나님이 그들의 군대가 나오도록 하신 것이다.)
잇주즈 (용사, 강한자 - 육체적으로나 영향력에 있어 강력한 사람)
함께 하나가 되어 그들이 잠자도록(눕도록 / 샤카브 / 미완료), 일어나지 못하고, 그들은 사라졌다, 등불의 심지처럼.
18 너희는 처음 일을 기억하지 말기를 바란다. 옛날 일들을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19 보라 내가 새로운(신선한) 일을 행할 것이니, 이제 싹이 날 것이다(차마흐 / 미완료).
내가 광야에 길을 배치하겠다.
사막에 강을 (배치하겠다.)
20 내가 광야에 물(마임)을.
사막에 강을
나의 백성이 마시게(윤택하게 / 히필) 역사할 것이다.
내가 선태한 자에게
21 이 백성은 내가 만들었다.
나를 위하여
나의 찬송(영광 / 칭찬)을 / 그들이 계속해서 기록할 것이다(미완료 / 피엘)
*피엘은 ‘반복 능동’의 의미도 있다.
계속해서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을 새롭게 창조하셨다.
창조를 위해서는 ‘큰 물과 바다, 광야와 황무지’가 필요하다.
연구
여기서 그 새로운 역사란, 일차적으로 여호와께서 바사 왕 고레스를 통하여 B.C. 539년 바벨론 제국을 멸망시키고 선민 이스라엘을 포로에서 해방시키시는 구원 사건을 가리킨다(14절). 이사야는 이 사건을 과거 출애굽 사건과 비할 수 없는 새로운 하나님의 구원 역사로 묘사한다(15-18절). 그러나 이사야는 이 사건을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들이 생겨나게 하고 들짐승들이 목마름을 해소하며, 택한 백성들이 구원의 벅찬 감격으로 여호와를 찬양하는 신천 신지(新天新地)의 도래와 함께 주어질 세상 끝날의 궁극적인 구원 사건과 연관시키고 있다(19-21절). 그렇다 !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궁극적으로 얻게 될 구원은 이처럼 엄청나고 놀라운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 귀환으로 이같은 구원의 기쁨을 어느 정도 맛보았으며, 신약 시대의 우리 성도들도 복음을 믿고 성령으로 거듭날 때 이같은 기쁨을 영적으로 체험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천국에서 체험하게 될 구원에는 결코 비할 수 없는 지극히 작은 것이다. 때문에 수많은 하나님의 종들이 그날의 영광을 사모하며 현실의 모든 환난과 고통을 능히 극복해 나갔었던 것이다(딤후 4:7,8,18 ; 히 12:1). 이러한 구원의 기쁨을 맛본 자들이라면 그 기쁨을 혼자만 간직하고 가만히 있지는 못할 것이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로 그의 찬송올 부르게 하려는 것이라고 성경은 말한다(21절 ; 엡 1:6,12). 그러므로 입술로, 복음 전파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삶으로 여호와께 영광 돌리는 우리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고전 10:31).
14-15절 - 여호와는 바벨론을 패배시킬 수 있다. 이사야는 여호와의 주권을 강조하기 위해 “칭호”(구속자, 거룩한 자)를 표현한다.
14-15절에서 ‘구속자’, ‘거룩한 이’, ‘창조자,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고 있다.
16-17절 - 출애굽을 암시한다.
바다 가운데 길
큰 물 가운데 지름길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들 - 엎드러져 일어나지 못하고 소멸
18절 - 이전 일을 잊어라. 왜냐하면 새 일을 행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구원하실 것이다.
19-20절 - 광야에 물을 내는 것은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21절 - 하나님이 그의 백성들과 원하시는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은 ‘아버지’(사 9:6; 45:10; 63:16; 64:8)로서, 또한 ‘신랑’(사 62:5)으로서 서로 만족하는 관계를 원하신다.
묵상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찬양하게 된다.
구원은 내가 할 수 없는 문제를 해결받는 것이다.
바벨론의 포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새로운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적용
서론&예화
하나님은 우리 입에 어떤 노래가 있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신다. 그러면서 그 노래가 무엇을 말하는지 유심히 들으신다. 만일 우리가 입으로 '음란함'을 노래하거나 '돈타령'을 노래하거나 '미움을 노래한다면 하나님은 안타까워하실 것이다. 반면에 하나님이 귀 기울이실 때 우리가 그분을 찬양하고 그분의 역사와 은혜를 찬송한다면 그분은 얼마나 감격하실까?
나는 오랫동안 찬양과 관령된 일을 하면서 한가지 사실을 발견했다. 자신의 영적상태를 진단하는 '자가진단법'이다. 만일 지금 자신의 영적 상태을 알고 싶다면 요즘 자신의 입에 자주 맴도는 노래가 무엇인지 살펴보면 된다. 외롭다면 외로움에 관한 내용이 흐를 것이고 절망하고 있다면 비관적이고 슬픈 노래가 입에서 흐를 것이다. 영적 상태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찬양이 무엇인지 살펴보면 곧바로 지금의 영적 상태를 알 수 있다. '주님과 같이 내 마음 만지시는 분은 없네' 와 같은 찬양을 하고 있다면 위로와 치유를 필요로 하는 상태일 것이다. 우리의 입은 우리 속에 있는 것들을 표현한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자기 입의 노래를 바꾸면 자신의 상태도 바뀐다는 사실이다. 만약 자신의 영적 상태를 바꾸길 원한다면 입술의 찬양을 바꾸면 된다. 하나님은 노래를 좋아하시기에 우리 입술의 찬양을 들으시고 그대로 역사하실 것이다.
호화 여객선 런던호가 300여명의 승객을 태우고 대서양을 운항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거대한 태풍이 몰아쳐 배가 암초에 충돌하고 말았다. 배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성난 파도가 사납게 밀려들어와 승객들을 삼켰다.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며 이리저리 날뛰었다. 평화롭던 배안은 아비규환의 현장으로 바뀌었다. 그때 선실의 한 귀퉁이에서 찬송가 소리가 들려왔다. 한 소녀가 평안한 표정으로 찬송가 439장 '만세반석 열린 곳에'를 부르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두 명씩 소녀의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배 안은 평온을 되찾았다. 승객들은 우렁찬 찬송으로 파도소리를 제압했다. 그들은 죽음에 대한 공포를 잊고 찬송을 부르며 행복한 최후를 맞았다. 한 소녀의 아름다운 찬송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두려움을 내쫓았다. 감사의 노래는 마음의 두려움을 치유하는 묘약이다.
코리 텐 붐 여사가 호주의 시드니 공항에서 짐을 싣지 않은 채 비행기를 탔습니다. 두 시간이 지나서야 그 사실을 알았습니다. 자신의 모든 재산과 기록이 들어 있었기에 승무원을 불러 사정을 말했지만 나흘 후에나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붐 여사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렸습니다. 찬송을 하던 중 비행기가 고장이 났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승객들이 모두 사색이 되어 아우성을 쳤는데도 붐 여사는 평안을 유지하며 찬송을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비행기는 다시 시드니로 돌아갔고, 붐 여사는 자기 가방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한 유태인이 붐 여사에게 다가와 물었습니다. ‘내가 보니 비행기가 고장나서 아우성치는 승객들 가운데 유독 당신만 찬송하고 감사하던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습니까?’ 여사는 복음을 들려 주었고 그렇게 해서 그 유태인을 전도할 수 있었습니다.
성도는 언제, 어디서나 찬양해야 합니다. 위기에 처해 찬송할 수 없을 때 더욱더 하나님을 높이며 그 능력을 찬송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 찬송을 받으실 때 권능의 손을 펴서 성도들에게 복을 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목적 자체가 바로 그 하나님을 찬송하고 영광스럽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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