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더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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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아가페 - 사랑, 애찬 이라는 뜻이 있다. 교회, 믿음의 공동체에서 함께 식사 나누고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따뜻하다. 거기에서 힘을 얻어 섬기고 봉사하게 된다. 예수님도 마찬가지...
예수께서 친히 떡 사들고 생선 구워주시고, 따뜻하게 한 사람 한 사람 떼어 주신 일. 위로, 격려, 사도를 사도로 만드시는 역사를 위하여, 그들을 보내시어 교회를 세우시고 사람들을 초청하기 위해서 하신 일이다.
이제 배도 든든하고, 몸도 녹이니 예수님께서 제자, 특히 베드로에게 하신 중요한 말씀.
1. 나를 더 사랑하니?
1. 나를 더 사랑하니?
이제 편안해 지니까 하신 말씀
15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 양을 먹이라 하시고
성까지 부름 - 아무개야가 아니라, 김한원. 뭔가 중요한 이야기. 여러 정황상 혼내고 심판하는건 아니지만, 매우 중요한 부분을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
이 사람들 - 다른 사람들과의 비교.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이 일들 - 이 일들, 물고기 잡고 예수님 만나기 이전과의 비교.
우리도 주님의 이 질문에 잘 대답할 수 있어야 한다. 때로는 부끄러워서, 그렇게 세상에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일들이 생기지 않아서, 내 약함을 너무나 잘 알아서··· 내가 주님 같아도 나는 안쓰겠다. 이런 심정으로 고기 잡으러 간 거다.
예수님이 늘 계시지도 않았고.호기로운 막 14:29, 마 26:3 의 상황과는 다르다.
2. 연약한 자를 통해 연약한 자를 살리시는 주
2. 연약한 자를 통해 연약한 자를 살리시는 주
도저히 같이 할 수 없는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떡 싸들고 든든히 먹인 다음에 기운차리도록 하시기 위해. 오셨고 오늘 질문하신다.
예수께서는 연약한 자가 연약자를 힘주고 위로하고 살리기를 원하신다.
베드로 하면 세 번 부인 - 여기에서 세 번의 사랑고백을 하도록 하신다.
다그치는게 아니다. 네 사랑이 부족하다고 야단치시는게 아니다.
주님 따라가는 걸 더 좋아하고, 그러기를 원하는데 그걸 제대로 감당하지 못해서 넘어져있는 베드로에게 가야할 방향을 알려주시고 일으켜 세워주시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은 예수님이 물어보신 사랑과 대답한 사랑이 다르다 그 이야기가 아니다.
3번
주께서는 주님을 사랑하지만 넘어진 자, 연약한 자 - 더 익숙한 표현으로는 죄 지은 자를 용서하셔서 죄 지은 자를 구원하는데 사용하기 원하신다.
예수 사랑하면, 그 마음이 변함 없으면, 그 사랑이 아주 대단한 것은 아니라도 그래도 다른 것보다 예수를 사랑하면, 그 천국,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점점 자라게 하셔서 복음이 증거되도록 하시고 사랑이 전해지도록 하실 것이다.
사랑하면 - 그 다음은 충분하다.
3. 사랑하기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
3. 사랑하기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
사랑 받은 자는 사랑하기에 이르러야 하고,
인도받은 자는 인도하는 데에 이르러야 하고,
용서 받은 자는 용서 하는 데에 이르는 것 그것이 천국이요, 하늘 나라다.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죽음으로 사랑을 보이셨기에, 베드로도 목숨 드리는게 아깝지 않다.
그러나, 어설픈 믿음은 주님의 사랑의 역사를 망가뜨리는 경우가 있다.
사랑 받았으니, 다른 사람 미워해도 되는 줄 알고,
자기가 인도 받았다고 길을 모르는 자를 조롱하고,
용서 받았으니, 이제 마음껏 정죄하는 자리에 이르는 경우가 많다.
신앙과 믿음의 원리.
예수는 용서해 주시고 잊으시지만, 나는 송구하고 감사하고 부끄럽고 그게 남아 있어야 한다. 베드로가 바울이 그랬다. 너무 감상적으로 빠지고 그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송구함이 있어야 한다. 그게 나를 변화시키고, 그걸 나를 온유하게 한다.
“늘 울어도 주 은혜를 다 못 갚을 줄 알아야”.
원하는 곳으로 다닌 베드로.
예수님도 원하는대로 안하셨잖아?
주의 뜻대로 하나되어 움직이는 것.
천국의 원리는 내가 더 큰 자가 되고, 내가 다른 사람보다 상석에 오르는 일에 잊지 않다.
먼저 송구한 마음, 낮아진 마음 가운데 있다 - 높아진 마음에서 낮아진 마음으로 그것이 회개다.
그 마음 한 가운데 예수께서 임하셔서 어루만져 주시고,
그것이 감사하여 더 아픈 자, 넘어진 자를 일으키는데 가는 것이다.
조금만 여유 주면 잘난 척하고, 정죄하는 그 마음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과 배려의 의미를 깨닫자.
너는 왜 예수님처럼(?) 난에게 안했니? 로 빠지지 말고,
내가 작은 예수가 되어 섬김의 자리에 나가는 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