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멀리해야 할 것과 가까이 해야할 것

민수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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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새해 멀리해야 할 것과 가까이 해야할 것
대학시절 저와 함께 신앙생활하던 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해병대를 제대한 사람이었습니다.
집에가면 옷들이 칼각을 잡고 있고, 시간도 칼같이 지키는 그런 친구였습니다.
어느날, 자신보다 나이가 한 살 많은 새신자가 교회에 오자 형이라고 부르며 매우 잘 대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새가족과 이야기하면서 군대이야기가 나온거에요.
이야기하다보니 같은 해병대출신으로 자기보다 기수가 아래였습니다.
새가족은 군대도 아니고 교회니까 경례를 하지 않았거든요.
그랬더니 이 친구 얼굴 표정이 바뀌더니 조용히 교회 뒤로 새가족을 데리고 나갔습니다.
새가족에게 해병대 예의를 갖추라고 다그치고 얼차레를 준겁니다.
이 일을 겪고 그 새가족은 두번 다시 우리 교회를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는 예수님을 믿었지만 여전히 해병대가 삶의 중심이었던 것입니다.
[본론]
지난주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나아가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그들은 광야생활을 준비해야 하고, 전쟁을 준비해야 하며,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준비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그들의 광야생활과 전쟁의 승패를 좌지우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올 한해 여러분의 삶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개인적인 소망들이 많이 있지만 한가지 기준은 분명해야 합니다.
무엇을 하든지 바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입니다.
민수기 2장에 보면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배치할 때 중앙에 있는 게 무엇입니까?
바로 성막입니다.
이 성막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오셔서 그들과 함께 사시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3-4장은 모두 성막을 섬기는 레위인들에 대해 다룬 것입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 레위인들이 해야할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볼 5장부터는 백성들이 해야할 일들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공동체는 레위인들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해야할 일이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하나님 중심의 삶이란 어떤 삶일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올 한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소망합니다.
첫째, 하나님 중심의 삶이란 죄를 멀리하는 삶입니다.
2절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악성 피부병 환자와 고름을 흘리는 사람과 주검에 닿아 부정을 탄 사람은 모두 진에서 내보내야 한다고 지시하여라.
이 부분은 레위기에도 등장하는데 다시 민수기에서 요약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부정한 자들을 이스라엘 진영 밖으로 내보내라고 하십니다.
그런 사람을 세가지 종류로 말씀하시는데요.
악성 피부병자, 고름 흘리는 사람, 시체와 접촉한 사람입니다.
여기서 악성 피부병이란 피부가 마치 강시처럼 창백한 시체의 색이 되고, 살갗이 벗겨지는 그런 만성 피부병을 의미합니다.
고름을 흘리는 병은 유출병에 걸린 것을 말하는데, 피나 고름 등 분비물이 몸 밖으로 흘러나오는 병을 말합니다.
진 밖으로 보내는 대상은 일반적인 유출병말고, 만성적이고 악성 유출병을 말합니다.
주검에 닿은 경우는 시체같은 것에 접촉하여 부정해진 경우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부정하다는 의미는 죄를 지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더럽다는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의도하지 않을 때에도 이런 부정한 상태는 일어날 수 있거든요.
어떻게 내 맘대로 피부병, 유출병을 관리합니까?
어쩔수 없이 시체와 접촉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정하다는 것이 곧바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부정한 것을 방치하면 죄가 됩니다.
또한 죄를 지으면 부정한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부정하다’는 개념이 유대인들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도 이것과 유사한 말인 ‘부정탄다’는 개념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때만 해도 왼손잡이들이 부정탄다고 생각해 부모님들이 오른손잡이 자식들은 고쳐주려고 했습니다.
여기서 부정탄다는 것은 저주받는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부정한 상태가 되는 것은 대부분 죽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악성 피부병은 죽은 시체의 모습과 유사해진 것이고, 유출병도 생명이 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고, 주검에 닿는 것 역시 죽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반면, 부정의 반대 개념인 정결이란 의식적으로 깨끗하다는 의미입니다.
부정하지 않으면 자동적으로 정결한 상태인 것입니다.
그럼 이런 부정과 정결에 있어 핵심이 무엇일까요?
핵심은 부정해지면 단절된다는 것입니다.
부정해져 진영밖으로 쫓겨난다는 것은 가족들, 친구들과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예배도 드릴 수 없게 됩니다.
그러니, 진영밖으로 쫓겨나는 것은 육체적 죽음은 아니지만 영적, 사회적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부정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 눈으로 직접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단절, 이것이 바로 부정함의 치명적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런 부정한 상태가 되지 않도록 항상 신경써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이런 부정한 상태가 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광야에서 조금만 부주의하면 피부병이나 유출병에 걸립니다.
또한 광야에 짐승의 사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니까 부정해지지 않으려면 일상에서도 매우 조심해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이런 부정함에 대해 백성들이 신경쓰게 하셨을까요?
물론 이들때문에 이스라엘 진영에 전염병이 돌수 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광야에서 집단생활을 하는데 전염병을 막지 못하면 수많은 인명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죄의 위험성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적 연결]
마태복음 15장 16-20절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도 아직 깨닫지 못하느냐?”입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뱃속으로 들어가서 뒤로 나가는 줄 모르느냐?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는데,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마음에서 악한 생각들이 나온다. 곧 살인과 간음과 음행과 도둑질과 거짓증언과 비방이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힌다. 그러나 손을 씻지 않고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히지 않는다.
당시 유대인들은 부정해지는 것에 노이로제에 걸릴 정도로 심각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부정해지지 않으려고 각종 정결의식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람을 진짜 부정하게 만드는 것은 인간의 육체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죄가 우리를 더럽히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적용]
그럼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올 한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죄를 우리의 삶 밖으로 멀리 보내야 합니다.
올해에는 작년의 묵은 죄의 습관을 털어버려야 합니다.
죄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일상 속에서 우리를 더럽히는 주범입니다.
죄의 결과는 먼저 하나님과 멀어지게 만듭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하나님을 피해 숨었듯이 우리도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죄는 예배의 기쁨을 빼앗아가고, 우리의 믿음을 굴복시킵니다.
그 뿐입니까?
죄는 사람들과도 멀어지게 만듭니다.
미움과 탐욕, 정욕이 우리를 얼마나 이웃과 멀어지게 만듭니까?
이처럼 죄는 하나님과의 단절, 사람들과의 단절을 가져옵니다.
이스라엘 진영안에 부정함이 개입되지 못하게 하듯, 우리 삶에도 우리 교회공동체도 죄를 멀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죄를 멀리할 수 있을까요?
죄를 멀리하는 유일한 방법은 죄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죄를 가까이 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사랑하는 남편이나 아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을 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남편을 사랑할수록, 아내를 사랑할수록 싫어하는 일은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많이 사랑한다면 죄는 자연스럽게 우리 삶에서 멀어질 것입니다.
이처럼 죄를 멀리하는 것이 하나님 중심의 삶의 소극적인 측면이라면 이제 적극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중심의 삶이란 이웃을 가까이하는 삶입니다.
6-7절입니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라. 남자나 여자를 가릴 것 없이, 남에게 어떤 잘못이든지 저질러서 그 일로 주를 배신하였을 때에, 그런 사람은 자기의 잘못을 깨닫는 대로,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고백하고, 피해자에게 본래의 값에다가 오분의 일을 더 얹어서 갚아야 한다.
이스라엘 공동체가 함께 생활할 때 크고 작은 마찰들과 분쟁들이 생길 수 있습니다.
200만명이 넘는 인원이 작은 공간에 함께 살아가니 얼마나 마찰이 많이 생기겠습니까?
하나님은 이 점을 생각하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웃을 향한 지침도 주십니다.
이웃에게 피해를 준 경우 어떻게 보상해야할지 알려주십니다.
이웃에게 뭔가 잘못을 저질러 재산상의 피해를 줬을 때에는 자신의 잘못을 먼저 고백하고, 원래 값에 20프로를 더해서 갚아줘야 합니다.
100만원어치 소에게 피해를 줬다면 그 소값의 20프로를 더해 120만원으로 갚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문제가 생겨 그에게 갚을 수 없는 경우에는 그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척에게 갚아야 합니다.
만약, 친척도 없으면 속죄하는 양과 함께 모든 것이 제사장에게 귀속됩니다.
그럼 이것이 왜 중요한 문제일까요?
이웃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곧 하나님께 죄를 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6절 잘 보시면 ‘그 일로 주를 배신하였을 때에’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웃에게 잘못한 것을 주님께 잘못한 것으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웃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은 곧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도 우리는 이웃사랑과 하나님 사랑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중심의 삶이란 소극적으로는 죄를 멀리하는 삶이지만, 적극적으로는 이웃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삶인 것입니다.
성경에는 부정, 정결, 거룩이라는 삼단계 개념이 존재합니다.
수학적으로 부정은 (-)상태, 정결은 (0)상태, 거룩은 (+)상태인 것이죠.
죄를 멀리하는 게 우리를 겨우 정결 상태인 0으로 놓는 것이라면 이웃을 사랑하는 일은 거룩, 즉 +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이웃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 회개하는 것으로만 그쳐서는 안됩니다.
이웃에게 직접 자신의 죄와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이것은 꽤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면 수치심이 들수도 있고, 상대방에게 안 좋은 말을 들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입니다.
영화 ‘밀양’에 보면 남의 어린 아들을 죽이고 감옥에 간 살인자가 등장합니다.
그는 감옥 접견실에서 그 아이의 엄마를 만나지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께 회개하여 벌써 용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전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처럼 주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지만, 그 피해자에게도 용서를 반드시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만 그쳐서도 안됩니다.
말로 사과하는데 그쳐서는 안되고 실질적인 배상도 해야합니다.
자신이 손해를 입힌 것보다 더 많이 배상해줘야 합니다.
[성경적 연결]
누가복음 19장에 나온 삭개오를 보십시오.
그는 백성들의 세금을 징수하는 자로서 미움을 받던 부정한 자이자 죄인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을 먼저 알아본 예수님을 만나자 스스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속여 빼앗은 것이 있다면 4배로 갚겠다고 말입니다.
이것이 진심으로 회개한 자의 진정성있는 삶의 태도인 것입니다.
반면 스스로를 거룩하다고 여기던 바리새인들을 보십시오.
그들의 이름인 바리새인이라는 의미 속에는 분리주의자라는 뜻이 있습니다.
부정한 사람들과 멀리해서 자신들의 정결함을 유지하려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부정한 자들을 멀리하고 종교적 의식을 통해 거룩함을 유지하려고만 했지만 오히려 삶에서 이웃을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이때문에 주님 보시기에는 오히려 거룩과 더 멀어져 버린 것입니다.
[적용]
우리의 삶은 어떻습니까?
올 한해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죄는 멀리하고 이웃은 가까이하여 그들과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 40절에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행하는 선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여러분은 올 해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마음을 갖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계획을 갖고 있습니까?
주님을 사랑한다면 고민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신앙이 성장한다는 것은 우리의 시야가 넓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나만 보던 신앙에서 내 옆사람, 내 이웃, 내 나라, 온 세상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작년 한해 나만 보고 산 것 같다면, 조금만 눈을 돌려보십시오.
주님이 우리에게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결론]
오늘 말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이스라엘 진 중앙에는 성막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사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삶을 살라는 의미입니다.
소극적으로는 죄를 멀리하고, 적극적으로는 이웃을 가까이 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곧 거룩으로 나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토록 거룩한 삶을 원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죄는 우리의 생명을 갉아먹지만 정결과 거룩은 생명을 얻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생명으로 나아가 풍성한 삶을 살기 원하시는 것이 바로 주님의 뜻입니다.
아마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게 최종 목표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올 한해 우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개인적인 목표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우리의 개인적 목표도 이루어진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 원리를 깨닫고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기를 결단하는 한 해가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올 연말에 한해를 뒤돌아볼 때 그래도 내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려고 노력했구나라고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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