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열심히 살았는데(시119: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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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월 4일 수요일
제목 : 나름 열심히 살았는데
본문 : 시편 119편 17-24절 *구890
결단찬양 :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
도입_어떤 목적을 이루었는가?
먼저는 성도님들과 감사를 나누며 시작하고자 합니다. 지난 1년을 돌이켜 보니, 성도님들이 계시기에 이어진교회가 건강히 세워져 왔음을 보게 됩니다. 개척 준비 기도회부터 지금의 순간까지 곳곳에서 섬겨 주시는 성도님들의 수고와 노고가 참으로 귀합니다.
또 본집을 떠나 이곳으로 나아오고자 결단하신 성도님들의 발걸음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모세의 광야와 같은 낯선 땅이었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걸음하심에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가장 큰 감사는 어쩌면 검증되지도 않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초면인 저에게 자녀들을 맡겨주신 용기가 참으로 대단하고 감사했습니다.
성도님들의 모습을 떠올릴 때, 열심과 열정 그리고 결단과 용기가 생각나기에 참으로 귀한 한 해 였다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 또한 제게 물었습니다. ‘과연 나는 작년 한 해, 열심히 살았는가? 어떤 목적을 이루었는가?’
분명 열심히 산 것 같은데, 나름 열심히 살아낸 것 같은데 특별히 목적을 이루었거나 목표한 바를 이루었다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작년에 구체적인 목표를 세운 것도 없지만, 그렇다 하여 뚜렷하게 드러난 결과물 또한 없기에 확신에 찬 한 해다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도입_모든 목적이 긍정적일 수 있는가?
청년들과 함께 대화를 하다보면, 이들도 정해둔 목표가 있고 또 목적을 위해 살아가려는 모습이 보여집니다. 자의든 타의든, 그들의 삶에 목적과 목표가 존재합니다. 직장에서는 ‘올해의 실적’이 이들의 목표가 되기도 하고, 대학생들에게는 ‘학업 성적’이 목표가 되기도 합니다. 또 누군가에게는 ‘육체적 건강’이 목표가 되기도 하고, 종종 ‘부’가 목적이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목적과 목표를 세우는 것은 좋은 모습입니다. 삶의 열정과 열의를 불태우게끔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모든 목적과 목표가 긍정적이지는 않습니다. 때로는 독이 되기도 합니다.
목표한 바에 이르지 못했을 때 누군가는 다시금 도전하고자 다짐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큰 좌절로 다가오곤 합니다. 아내와 연애할 때 어딜 다녀왔는지 장소 정도는 기억이 나지만, 그곳에서 어떤 대화를 했는지 그리 잘 기억이 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유독 기억에 남는 대화 내용이 하나 있는데, ‘수능 날 응급실은 긴장의 끈을 놓치 않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수능의 결과에 따라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친구들이 매년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목적에 이르지 못했을 때 이들은 좋지 못한 선택을 한 것으로, 이들에게 목적은 독이 된 셈입니다. 그래서 저는 매년 수능 날이 오면 그런 친구들이 없길 기도하곤 합니다.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들을 대상으로 데이터베이스를 수집하는 곳의 보고서에 따르면, 학업이 떨어졌거나 또는 실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교회를 가고 싶지 않다가 무려 45%의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실적과 성적이 교회출석과 왜 연관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결과가 그렇다 합니다. 어찌 되었든 목적과 목표가 우리의 삶에 결과에 있어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실이며,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안타깝게 사실이 되었습니다.
주제제시_본문 속으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며 목적과 목표를 두는 것이 익숙해졌고 또 연초의 필수과제와 같은 숙제가 되어졌습니다. 그런데 이 목적과 목표가 온전히 긍정적 효과만 가지고 오는 것은 아님을 보게 됩니다. 그럼 우리는 부정적인 결과가 올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목적과 목표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까?
아니면 어떤 모습이든 긍정적인 결과만을 가지고 오는 목적과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우리가 그 목적과 목표를 위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본문_우리의 목적과 목표는 주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저는 이 질문의 해답을 오늘의 본문을 통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먼저는 본문 18절입니다. 우리의 목적과 목표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함께 읽어 봤으면 합니다. “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우리의 삶의 목표, 무엇입니까? 세상이 말하는 성공도 아닙니다. 세상이 추구하는 부유함과 물질적 충원이 아닙니다. 우리가 목적으로 삼아 살아낼 삶은 ‘오직 주께 소망을 두는 삶’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119편의 저자는 특별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시편을 가장 많이 기록한, 그래도 당대 성공했던, 명예와 실적과 물질 모든 측면에 있어 빠짐이 없었던 다윗을 생각해볼까요? 이런 다윗은 시편 39편 7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다윗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고백은 ‘나의 소망은 주님께 있습니다.’ 였습니다. 그에게 있어 삶의 소망이 더 좋은 성전을 건축하는 것에 있음도 아니요, 다른 나라들의 왕들보다 더 뛰어난 자가 되는 것에 있음도 아니요 그저 주께 소망을 두어 살아냈습니다.
다윗 뿐 아니라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 3장 8절을 통해, 이렇게 고백합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사도 바울이 예수를 만나기 전의 삶은 많이들 아실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주 외에 모든 것이 배설물로 여겨짐은, 그 또한 주께 소망을 둔 자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의 고백, 사도 바울의 고백, 이런 고백이 우리의 삶을 통해 고백되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쩌면 이들보다 더 확신에 찬 고백이 우리의 삶을 통해 고백되어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 때, 주께 소망을 두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까?
본문_2023년 어떻게 살 것인가? : 1. 주의 율법을 ‘묵상’하는 삶.
20절입니다. “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주께 소망을 두어 살 수 있는 방법 첫 번째는 ‘주의 율법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시며 많은 크리스천들이 결단하는 삶 중 하나가 ‘성경일독’일 것입니다. 한 해, 정말 말씀 붙들고 살아가길 소망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러나 이 마음이 길게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창세기와 출애굽기 이상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아니 어쩌면 레위기라는 큰 언덕을 겨우 넘어 민수기라는 벽 앞에 고생하다 신명기라는 산에 좌절하여 끝내 ‘일독’의 길을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언덕을 넘고 벽을 뛰어 넘어 산을 정복하여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포기하지 마시고 끊임없이 도전과 시도하며 나아가는 우리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 결단이 서시는 분들은 매일성경과 또 성경통독표를 통해 모두 함께 걸어 나가길 소망합니다.
기독교 저널인 ‘브리티시 위클리’에 한 독자가 편집자에게 ‘설교의 무용함’에 관한 글을 기고 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을 읽으며, 저 또한 찔림이 있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30년 동안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 30년 동안 나는 약 3,000편 정도의 설교를 들었지만 지금 기억나는 설교는 단 한 개도 없습니다. 내 생각에 목사들은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을 설교 준비에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설교 준비에 사용하는 시간을 차라리 다른 곳에 사용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십니까? 이어진교회 개척주일, 첫 설교 기억하십니까? 사실 저도 기억이 나지 않아 지난 기록을 찾아보니, 사도행전 1장 1절에서 11절말씀을 가지고 ‘이어진, 교회행전’이라는 제목의 설교를 하셨습니다.
개척 초 한동안 사도행전 시리즈를 하셨기에 1장 어딘가 였겠지 유추는 했지만, 정확히 어떤 본문이었는지, 어떤 설교의 제목이었는지 기억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저 또한 성도님들과 함께 들었던 설교이기에 생각나지 않음에 있어 어찌 찔림이 없었겠습니까? 동시에 앞으로 33년은 더 매주 설교를 준비하고 해야 하는 저에게 있어서 이 저널의 기사는 참으로 마음 아픔소식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여하튼 이 글이 저널에 올라가자 많은 이들이 찬반 논쟁을 뜨겁게 펼쳤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이 논쟁을 잠재운 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나는 아내와 30년 결혼 생활을 했습니다. 결혼 기간에 아내는 저를 위해 약 30,000끼의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정말 감동적이던 식사는 한 끼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내가 분명히 믿는 사실은 기억조차 할 수 없을 만큼 당연한 듯이 받은 그 식사들이 나를 견디게 만들어 주는 힘을 공급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 내용이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수 밖에 없는 이유’라 생각했습니다. 말씀 묵상함에 최선을 다함은 필요한 양식을 공급하는 일이지 항상 별식을 준비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출애굽을 경험한 백성들에게 만나가 처음 주어졌을 때, 이들에게는 분명 신기한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기함도 잠깐, 매일 밤낮으로 반복되는 모습에 이들에게 만나는 더이상의 신기함은 없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만나는 매일 내려지는 일반식이지, 이들에게 별식처럼 주어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일반식에서 별식을 찾으려 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평과 불만이 쌓여 매일 주어지는 일반식의 은혜를 놓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삶의 말씀 묵상도 그렇습니다. 분명 때에 맞춰 주어진 그 말씀이 너무나 신기하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매일 주어지는 일반식 속에서 우리가 별식을 찾으려 할 때, 우리 또한 일반식의 은혜를 놓치게 됩니다.
바라옵기로는 매일의 말씀 묵상이 특별한 감흥이 없고, 뎌디거나 지루하게 느껴진다 하더라도 말씀을 끊어 내기보다, 날마다 우리게 힘 주시는 공급처가 되심을 믿어 의심치 말아, 말씀 묵상에 최선을 다하는, 일반식의 은혜를 누리는 우리 모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_2023년 어떻게 살 것인가? : 2. 주의 율법을 ‘나누는’ 삶.
주님께 소망을 두며 살아갈 두 번째 방법은 ‘주의 율법을 나누는 것’입니다.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말이 그렇게 썩 와 닿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다음으로 읽어드릴 내용이 더 공감되는 것 같습니다. ‘슬픔을 나눴더니 약점이 되고, 기쁨을 나눴더니 시샘이 되더라’
지금의 시대가 나누면 나눌수록 나의 연약함이 약점이 되고, 시샘의 인물이 되기도 합니다. 지금의 시대는 사람의 온정을 느끼거나 찾아내기 너무 어려운 것 같습니다.
어릴 적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도 ‘안녕하세요’ 하고 기억하던 모습이 생생하지만, 지금은 옆, 위 아래로 누가 사는지, 이웃이 누구인지 알지도 못하는 삶이 때론 답답하기도 합니다.
정말 손이 크셔서 부침개를 그리 많이 했는지 모르겠지만, 늘 옆집과 앞집으로 음식 배달을 시키던 어머니의 모습을 떠올려보면, 지금은 그저 1인 식재료와 1인 배달음식 등 ‘나’하나에 맞춰진 지금의 삶이 온정보단 냉기가 도는 것 같습니다.
어느 한 직장인이 자신의 SNS를 통해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가진 장점이 다르기에 인정받고 싶은 부분도 다를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장점을 살리는 것과는 다른 교육을 받고 인정받고 싶은 부분은 무시되는 현실의 괴리감을 얻습니다. 장점을 인정받는 기회는 줄어들고 만들어진 인정의 대상을 추구하는게 가장 안전한 길이라 말하며, 그것을 달성하지 못했을 때는 자책하도록 만듭니다. 어느 날 구름 사이로 햇빛이 비추는 것을 보며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기보다, 이제는 저 구름마저 나에게 비추는 햇빛을 가로막는구나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참으로 차갑습니다. 이태원 참사 당시, 처참한 현장 속에서 그 모습을 보며 희희낙낙 거리며 술잔을 부딪히던 사람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에 다른 이의 도움을 무시하던 자들의 모습을 보면, 정말 지금의 시대는 너무나 차가운 시대입니다.
온정보단 냉기 가득한 이 세상 속, 교회 안에는 너무나 좋은 온정 시스템이 존재합니다. 바로 다락방입니다. 이어진교회에는 다락방이라는 너무나 따뜻한 공동체가 존재합니다. 물론 교회 공동체도 참으로 좋지만, 소규모로 모여진 이 다락방이 냉기 가득한 세상 속에서 온정을 느끼게 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보게 합니다.
혼자 신앙생활할 때 우리는 결국 ‘나’ 혼자만의 힘과 능력으로 모든 것을 부딪히려 하지만, 다락방 안에서 함께 신앙생활하게 될 때, 혼자였다면 ‘저 구름 마저도 나에게 비추는 햇빛을 가로막는다’의 생각에 그치겠지만, 함께 할 때, 누군가는 그런 우리를 향해, ‘저 한 줄기의 햇빛이 너를 위해 비추는거 같아’ 라 말해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공동체를 통해 말씀의 은혜를 나누게 될 때, 우리는 더욱 큰 기쁨과 감사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슬픔이 약점이 되고, 기쁨이 시샘이 되는 시대라 말하지만, 교회 공동체에서 슬픔은 반절이 되고, 기쁨은 갑절이 될 것이며 은혜는 갑절 이상의 것이 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바라옵기로는 공동체를 통해 갑절 이상의 은혜를 모두가 받아 누리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본문_2023년 어떻게 살 것인가? : 3. 주의 율법을 ‘지키는’ 삶.
주님의 말씀을 읽고 나누는 과정은 참으로 귀합니다. 그런 과정의 삶을 살아내신다면 우리는 한 발자국 더 나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하나님의 은혜를 읽고 나누며 행복함을 누렸지만, 그 삶이 지속될 때 사탄은 우리를 향한 공격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떠나라고 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께 소망을 두는 세 번째 방법은, 주의 율법을 지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을 기록한 시편 저자에게도 분명 고난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씀을 지키는 삶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본문 22절입니다.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성경을 보면 모든 이들이 주님의 말씀을 지킬 때 고난 길을 걸었습니다.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사도 바울 등 정말 많은 이들이 고난 길 가운데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이들은 늘 하나님 앞에 주어진 말씀을 붙들고 지켜 나감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어업을 할 때는 몰랐겠지만, 예수를 믿고 나니 그의 삶에 고난이 될 만한 순간들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말씀을 지키고자 할 때와 지키기를 포기할 때의 고난에 대처하는 방법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그가 말씀 지키기를 포기할 때, 그는 예수를 부인했습니다. 예수를 모른다 답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말씀을 지키기로 다짐했을 때 그는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담대했고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마지막 순간에 그는 아내와 함께 로마 군사들에게 붙잡혔다고 합니다. 그리고 군사들이 죽어가는 아내를 향해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주겠다’ 회유하자 베드로는 아내를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사랑하는 아내여! 주님을 기억하십시오!’
아내가 죽고 자신에게 죽음이 다가왔을 때 그는 이렇게 고백했다고 합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소! 나는 십자가에 그대로 매달릴 자격이 없소! 나를 거꾸로 매달아 주시오!’ 라고 말한 후 숨을 거두었다고 합니다.
고난이 올 때 말씀을 지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베드로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멋진 모습이지만, 정작 우리가 저 상황이라면 당장이라도 말씀을 포기할 것만 같습니다. 그럼 우리가 어떻게 말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겠습니까? 23절입니다. “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시편 기자가 말씀을 지키기 위해 택한 방법은 우리가 처음 나누었던 방법인,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었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고 지키는 삶은 각각 별도의 삶이 아닌 하나의 루틴과도 같은 삶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올 한 해 정말 주께 소망 두시고, 그러기 위해 매일의 말씀 묵상을 통해 일반식의 은혜를, 공동체를 통해 갑절 이상의 은혜를 누리는 기회를, 말씀으로 말씀을 지키는 주께 사로잡힌 군사의 기쁨을 누려 오직 주만 바라보는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맥스 루케이도가 쓴 ‘당신은 한 번도 혼자가 아니었다’의 한 부분을 읽어 드리며 함께 기도로 이어가고자 합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제외한 우리는 모두 맹인이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보지 못한다. 우리의 미래를 보지 못한다. 문제와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보지 못한다. 예수님을 보지 못한다. 하지만 예수님이 우리를 보신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분은 우리에 관해 모든 것을 아신다.’
올 한 해 우리의 모든 것 아시는 주님께 소망두어 살아가, 어떤 결과에도 하나님의 기쁨이 있음을 고백하는 한 해 되는 우리 되길 소망합니다.
[결단찬양]
전능하신 나의 주 하나님
[기도제목]
1) 날마다 말씀 묵상을 통해 일반식의 은혜를 누리게 하소서
2) 공동체를 통해 말씀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한 해 되게 하소서
3) 고난 속 말씀으로 말씀을 지켜, 하나님의 군사된 삶을 살아내는 한 해요 우리되게 하소서
[주기도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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