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를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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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면서

2023년을 맞이하여 송구영신 예배와 신년 성찬예배, 특별새벽기도회까지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특별새벽기도회는 유튜브를 통해서 계속 보실 수 있습니다.
새해에 link 는 (love in Christ , Network together, live for Kingdom of God) “그리스도의 사랑안에 연결되자.”라는 목표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영어로 link는 연결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연결되고, 서로 서로 공동체로 묶어져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내는 공동체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 연결점으로서 장년부와 차세대, 청년부가 함께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연결되길 소망하는 마음으로 가스펠 프로젝트의 본문 말씀으로 모든 세대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고 적용하고자 합니다. 주일 예배를 마치고 서로 들은 말씀으로 가족들이 함께 나누고 적용함으로 주님의 말씀으로 연결되길 소망합니다.

link와 겸손 ,그리고 세례

에베소서 4:1–2 NKSV
1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갇힌 몸이 된 내가 여러분에게 권합니다.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2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깍듯이 대하십시오.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은혜의 경륜 속에서 사도 바울이 강조하는 성품이 겸손과 온유, 오래참음, 사랑으로 용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느껴지는 하나님의 성품은 이중에서 겸손입니다.
어거스틴 (즉, 아우구스티누스)는 겸손을 은혜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그는 겸손은 죄인과 피조물이 하나님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됨에 있어서도 겸손은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런데 존 스토트에 의하면 고대사회에서 겸손은 대단히 멸시되는 것이었습니다. 절대로 사람을 칭찬할 때 겸손하다는 말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 단어는 비굴하고 굴욕적이고 추종적인 태도, “종의 굽실거리는 복종"이라는 의미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현대인들에게도 겸손은 이와 비슷하게 다가오는 단어로 느껴집니다. 베이커 심리학/ 상담 백과사전에서는 겸손이라는 단어를 현대 사회에서 잘 사용하지 않는 다고 합니다. 프로이드는 그의 수백만 단어 중에 겸손은 아홉번만 사용했다고 합니다.
(Humility, however, does not loom large as a topic of investigation for modern psychology. Sigmund Freud used the word humility nine times among his millions of words (Guttman, Jones, & Parrish, 1980).)
J. R. Beck, “Humility,” ed. David G. Benner and Peter C. Hill, Baker Encyclopedia of Psychology & Counseling, Baker Reference Library (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9), 591.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겸손은 영적, 종교적 개념으로 간주되지 심리학적 연구를 위해서 가치 있는 주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겸손은 개성, 주장, 독립성을 강조하는 현대사회의 정신에도 반하는 성품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드러내고 허세를 보이고, 자신을 자랑하는 데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인들에게 겸손은 너무나 중요한 성품입니다. 왜냐하면, 겸손은 온유와 더불어 예수님의 가장 대표적인 성품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1:28–30 NKSV
28 “수고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은 모두 내게로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는 마음에 쉼을 얻을 것이다. 30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세례요한의 겸손

예수님 보다 앞서서 온 예언자 세례요한은 예수님과 같이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과 같은 메시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마태복음에서의 하늘나라 즉, 천국은 “하나님 나라"를 유대사람들에게 맞게 표현한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 말씀을 선포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1–6 NKSV
1 그 무렵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나서, 유대 광야에서 선포하여 2 말하기를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였다. 3 이 사람을 두고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하였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가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길을 곧게 하여라.’ ” 4 요한은 낙타 털 옷을 입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었다. 그의 식물은 메뚜기와 들꿀이었다. 5 그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 강 부근 사람들이 다 요한에게로 나아가서, 6 자기들의 죄를 자백하며,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세례요한은 그 이름과 광야에서 살면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세례를 베풀던 사람입니다. 그 이름 그대로 말입니다. 그가 베풀던 세례는 회개의 세례였습니다. 회개는 겸손해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는 마음이 있어야 참된 회개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유대인들에게 세례는 정결예식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결예식은 이방인들 중에서 할례를 받고 정식으로 유대교로 개종하는 사람들에게 행했던 의식이었습니다. 유대인 공동체에 입회하는 상징행동으로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하였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유대인들을 향해서 그렇게 외칩니다. “회개하라 ~!!! 하늘나라가 가까웠다.”라고 말입니다. 엘리야와 같이 입고 광야에서 예언자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회개하라는 외침은 강력했습니다. 회개가 무엇입니까? 돌이킴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참된 신앙을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이 메시지를 듣고 많은 유대인들이 세례요한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세례요한을 따랐던 안드레가 있는데, 그는 베드로와 형제였습니다. 세례요한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인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유독 유대 지도자들에게는 냉정하였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라고 말하였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겸손하지 않고 교만하여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3:7–10 NKSV
7 요한은 많은 바리새파 사람과 사두개파 사람들이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것을 보고, 그들에게 말하였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닥쳐올 징벌을 피하라고 일러주더냐? 8 회개에 알맞은 열매를 맺어라. 9 그리고 너희는 속으로 주제넘게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다’ 하고 말할 생각을 하지 말아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실 수 있다. 10 도끼를 이미 나무 뿌리에 갖다 놓았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다 찍어서, 불 속에 던지실 것이다.
겸손은 자기 비하가 아닙니다. 자신의 처지가 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를 낮추는 말을 하고, 자신이 처한 현실이 어려워 진다고 겸손한 것은 아닙니다. 겸손은 오히려 회개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받는 다는 것은 자신의 죄인됨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인정하고 돌이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참된 겸손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자신을 낮추는 적극적인 자세 입니다.죄에대해서 자신에대해 기소장을 제출하며, 믿음이 자라날 수록 자신의 불신앙에 애통합니다. 뿐만 아니라 죄에대한 책망을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회개가 필요한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겸손하지 않으면 세례를 받으려는 행동을 절대로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회개의 세례를 베풀어 주는 세례요한은 그러한 겸손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마태복음 3:11 NKSV
11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은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분이시다. 나는 그의 신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그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 나는 그의 신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광야에서 메시야 즉,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는 부르심을 분명히 그는 알았습니다. 그렇기에 사람들이 외치는 세례요한에대한 영광을 뒤로 하고 자신을 하나님 앞에서 낮출 줄 알았습니다.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온 예수님에대해서도 그는 겸손하게 말합니다.
마태복음 3:13–14 NKSV
13 그 때에 예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가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내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내게 오셨습니까?” 하고 말하면서 말렸다.

예수님의 겸손

예수님은 가장 겸손하고 온유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갈릴리를 떠나서 세례요한의 세례를 베푸는 장소에 나타나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세례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세례입니다. 그런데, 흠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례요한이 주는 세례의 장소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니, 세례요한은 당황하였습니다. 자신이 예수님께 세례를 받을 지언정 예수님께 세례를 준다는 것이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기에 그는 거절하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기로 작정하시고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의를 이루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3:15 NKSV
15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도록 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가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옳습니다.” 그제서야 요한이 허락하였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회개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죄많은 인간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정결하게 하는 세례를 받으실 필요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을 위해서 우리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죄인들과 같이 되셨고,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7:34 NKSV
34 인자는 와서,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니, 너희가 말하기를 ‘보아라, 저 사람은 마구 먹어대는 자요, 포도주를 마시는 자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다’ 한다.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이땅에 오신 주님께서는 이제 죄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세례를 받으시며 죄인들의 친구라 선포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실 때 죄인들을 위해서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어 그들을 대속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들이신 것입니다. 바로 이때 하나님 아버지의 소리가 들려 옵니다.
마태복음 3:16–17 (NKSV)
16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 때에 하늘이 열렸다. 그는 하나님의 영이 비둘기 같이 내려와 자기 위에 오는 것을 보셨다.
17그리고 하늘에서 소리가 나기를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하였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지금 세례의 자리에 함께 하십니다. 아버지의 말씀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라는 말씀이 들립니다.

우리도 예수처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 말씀을 너무나 듣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말씀을 들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 사역과 부활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이 말씀을 동일하게 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세례를 받으시길 권합니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우리 인생에서 가장 겸손한 마음이 됩니다. 예수님의 겸손을 닮아 무릎을 꿇고 또는 물에 잠기어 세례를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관해서 죽고, 옛사람은 장사 지냈으며 새로운 삶을 살도록 부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마지막 날에 죽은 자들이 부활할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됨과 부활을 믿는 믿음을 상징하는 순종의 행위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그 의미를 다시 기억합시다. 그리고 아직 세례를 받지 않으신 분들은 이 겸손의 자리에 여러분을 초청합니다. 겸손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빌립보서 2:1–11 NKSV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무슨 격려나, 사랑의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무슨 동정심과 자비가 있거든, 2 여러분은 같은 생각을 품고,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 마음이 되어서, 내 기쁨이 넘치게 해 주십시오. 3 무슨 일을 하든지, 경쟁심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자기보다 서로 남을 낫게 여기십시오. 4 또한 여러분은 자기 일만 돌보지 말고, 서로 다른 사람들의 일도 돌보아 주십시오. 5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6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높이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에게 주셨습니다. 10 그리하여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 있는 모든 것들이 예수의 이름 앞에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고백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겸손은 예수를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이와같은 음성을 들을 것입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자녀다, 내가 그를 좋아한다.
주님의 음성을 듣는 우리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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