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행동의 일치
Notes
Transcript
1.도입
1.도입
1. 믿음이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1. 믿음이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22장을 보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에스라는 이전에 바벨론 왕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보호하시고, 하나님을 배반한 자들은 벌하신다고 말했었습니다. 즉, 하나님을 잘 섬기는 기독교인은 반드시 하나님이 도우신다고 이방인인 바벨론 왕에게 호언장담 한 것입니다.
에스라에게는 그러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지금 에스라가 하려는 일은 무엇입니까?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고, 그 재건 된 성전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고자 포로되었던 유대인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이동하려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여행길은 거의 800마일이나 되는 긴 거리였습니다. 이 여행에 어린 아이들도 많이 있었고, 25절이하의 내용을 보면, 금과 은도 수십톤에 달했습니다. 긴 여행을 하는 동안 분명 도적떼를 만날 것입니다. 실제로 여행중에 도적떼를 만났습니다. 3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첫째 달 십이 일에 우리가 아하와 강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갈새 우리 하나님의 손이 우리를 도우사 대적과 길에 매복한 자의 손에서 건지신지라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재건하고 예배하러 가는 이 들 경건한 유대인들은 도적떼를 만났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은혜로 위험은 지나갔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변에 보면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기독교인들은 막연한 맹신 같은 믿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절대로 위험한 일을 당하지 않는다는 그러한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잘 믿는 기독교인, 언제나 말씀과 기도로 신실하게 사는 사람은 결코 나쁜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근거없는 믿음이 있습니다.
예수님 잘 믿으면, 암에 걸리지 않을까요? 사업이 망하지 않을까요? 전혀 삶의 어려움이 없을까요? 결코 그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든 그렇지 않던 모든 기독교인들은 불신자들과 똑 같은 위험에 처합니다. 똑 같이 건강상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똑 같이 좌절하고 실패 합니다.
12년간 피 나는 선교 훈련을 받고 어린 아이들과 부인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먼 선교지로 떠나는 비행기가 테러에 의해서 공중에서 폭파 당합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목숨걸고 선교지로 향한다고 해서 그 가정이 결코 비행기 테러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목적이 선한것과 상관 없이 이 세상의 모든 신실한 기독교인들은 불신자들과 똑 같은 비율로 어려움을 겪게 되어 있습니다.
에스라도 하나님의 성전 재건을 위해서 헌신하는 무리들이 여행중에 위험에 처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았습니다. 22절 말씀을 다시 한 번 읽어 볼까요?
이는 우리가 전에 왕에게 아뢰기를 우리 하나님의 손은 자기를 찾는 모든 자에게 선을 베푸시고 자기를 배반하는 모든 자에게는 권능과 진노를 내리신다 하였으므로 길에서 적군을 막고 우리를 도울 보병과 마병을 왕에게 구하기를 부끄러워 하였음이라
에스라가 왕으로 부터 예루살렘 여행중에 모든 위험으로 부터 보호해 줄 군사 지원을 원하고 있습니까? 원하지 않고 있습니까? 원하고 있지요. 너무나도 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청을 못했습니다. 왜 일까요? 챙피해서 그랬습니다. 이 전에 얼마나 자신이 믿는 하나님을 왕에게 자랑했는지 모릅니다. 반드시 하나님이 유대인을 지켜 주실 것이라 호언장담했습니다. 그런데, 아하와 강가에서 자신만을 믿고 따라오고 있는 유대 백성들을 보니까 난감한 것입니다. 도중에 강도 떼라도 만나면, 큰일이 날 것 같습니다.
이러한 에스라가 믿음이 없는 것일까요? 만일 믿음이 없다면, 절대로 많은 힘없는 아이들을 거느리고, 성전에 바쳐질 어마어마한 금 은 동 등을 가지고 여행을 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믿음이란 현실에 통계적으로 누구나 당할 수 있는 어려움을 하나님을 잘 믿는 나 같은 실실한 기독교인도 똑 같이 당할 수 있다 여기는 것입니다. 에스라 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뻔히 보이는 어려움 가운데에도 결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가 바로 진정한 믿음입니다.
에스라 처럼 말입니다.
<전환문> 믿음 좋은 에스라는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들이 반드시 여정 중에 강도의 위험을 만날 것이라 예견했습니다. 그러한 그가 취했던 행동은 무엇일까요? 무엇이 믿음을 가진 자의 바른 자세일까요?
2. 믿음이란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도하는 것 입니다.
2. 믿음이란 현실을 받아들이고 기도하는 것 입니다.
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내가 아하와 강 가에서 금식을 선포하고 우리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겸비하여 우리와 우리 어린 아이와 모든 소유를 위하여 평탄한 길을 그에게 간구하였으니
에스라는 예루 살렘으로 출발하기 전에 모든 백성들이 금식하며 기도하기를 선포했습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믿음이란 보편적인 현실을 부정하고 무조건 아무일도 안 일어날꺼라는 맹신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앞으로 닥칠 위험을 인지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금식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성경을 읽고 기도하지 않습니까? 왜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기도를 합니까? 오늘 하루 모든 사람들이 당할 어려움을 잘 넘기게 해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지요. 전혀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을것이라 맹신하는 사람은 결코 기도하지 않습니다. 기독교인 무슨 통뼈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신앙생활 잘하는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암에 걸릴 수 있습니다. 사업에 실패 할 수 있습니다. 투자에 손해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은 결코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당할 만한 일들을 통계와 확률적으로 당합니다. 그것이 현실입니다. 그 현실을 받아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 현실을 인정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동차를 타고 갈 때, 안전 운전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통계적으로 교통사고는 늘 납니다. 그리고 그 통계적으로 기독교인이든 불신자이든 동일하게 사고가 날 수 있을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기도하는 삶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안전하다 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평안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안전을 구하는 기도를 하고, 건강한 삶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현실을 완전히 인정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전환문> 또 무엇이 무음을 가진 자의 바른 자세일까요?
3. 믿음이란 현실에 맞게 계획하는 것입니다.
3. 믿음이란 현실에 맞게 계획하는 것입니다.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그 때에 내가 제사장의 우두머리들 중 열두 명 곧 세레뱌와 하사뱌와 그의 형제 열 명을 따로 세우고
에스라는 출발하기 전에 여행 중에 모든 위험을 대처할 수 있는 조직을 세웁니다. 수 많은 백성을 통솔하고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게 하기 위해서 12명의 통솔자를 따로 세웁니다. 이 번에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이유가 무엇입니까? 통제하는 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국가는 위드 코로나 시작과 함께 이태원 할로윈 파티에 수 많은 인파가 몰릴 것임을 예측했습니다.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던 것이지요. 그런데, 적절한 인원을 배치하지 않고, 안전 관리 책임자들은 그 책임을 반기 했습니다. 그래서 이처럼 끔직한 참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무슨 배짱으로 국가가 안전 계획을 세우지 않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확고한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현실을 무시하고 무질서하게 살아도 되는 것일까요? 인간은 믿음이 있으니까 무질서하게 마음대로 빨간 불일때도 마구마구 지나가면, 하나님이 무슨 하인인 것 처럼, 뒤 쫓아 다니며 수습해야 합니까? 믿음이 좋은 어떤 인간이 나는 믿음이 강하기 때문에 또 성경에서 어떤 독을 마셔도 해를 입지 않는다고 하니까, 청산가리를 마음껏 먹으면, 하나님께서 또 하인인양 그 인간의 위와 연결된 혈관을 다 막고, 오바이트 해서 모든 독을 토하게 해야 합니까?
소위 믿음이 좋다 하는 사람들중 현실적으로 또 지금까지의 과학적인 지식으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나는 하나님이 지켜 주시니까 괜찮다고 무질서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무슨 자신의 뒷처리하는 하인 정도의 신으로 여기는 매우 무례하고 경박한 삶의 태도에 불과합니다.
믿음이란 현실에 맞게 사는 것입니다. 입시를 앞둔 학생은 막연한 기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일 성실히 입시를 준비해야 합니다. 건강을 생각하는 중년은 열심히 먹는 것을 절제하고 적절한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건강을 챙겨야 합니다. 다가올 노후를 준비하고자 여러가지 금융적 대비도 해야 합니다. 그 모든 것을 매우 합리적으로 현실에 맞게 차근 차근 준비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4. 말씀을 맺겠습니다.
4. 말씀을 맺겠습니다.
소위 믿음이 좋다하는 사람들 중 현실을 부정하고 무시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믿음을 의심해야 합니다. 어떤 정신나간 그리스도인은 병에 걸렸는데, 의사를 찾지 않고,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현실에서 해야 할 것들은 다 해야죠. 병원도 가고, 의사도 만나고 검사도 받고, 수술도 하고 약도 먹고 다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무슨 통 배짱이라고 다른 일반인들도 상식적으로 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합니까?
또 어떤 정신나간 그리스도인은 본인은 믿음으로 살기 때문에 보험을 하나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자랑합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이 해야 할 것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이렇게 현실에 맞추어 살아간다면, 우리 기독교인들은 기도하지 않아도 될까요? 그것 역시 정신나간 소리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현실을 살아가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교통사고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에 교통사고 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시험보는 학생은 실수하지 않고 주어진 시험 잘 보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죠. 아침에 일어나서 오늘도 무사히 지나고, 사람들과 관계에서 평안을 달라고 기도해야죠. 기도는 늘, 그리고 순간순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현실을 사는 사람입니다. 근거없는 맹신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기도하고 기도하면서 현실을 대비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삶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한 현실에 발을 딛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으로 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