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하드캐리] 모세, 승리의 여호와를 만나다(출17: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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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 2023년 1월 8일 주일 청년부
소제목 : 하나님의 하드캐리
제목 : 모세, 승리의 여호와를 만나다
본문 : 출애굽기 17장 8-16절 *구108
결단찬양 : 아무 것도 두려워말라
[도입]
하나님을 만나서 인생이 바뀐 자들이 참 많습니다. 멀리서 찾을 필요 없이, 저를 비롯한 이곳에 함께 앉아 계신 여러분 모두가 하나님을 만나 인생이 바뀐 자들 아닐까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함께 나눌 인물들 또한 하나님을 만나, 예수를 만나 변화된 인물들입니다. 먼저는 모세의 이야기를 오늘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모세의 이미지는 어떤 이미지 입니까?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나오는 리더의 이미지를 떠올려 볼 수도 있고, 금송아지라는 헛된 것에 절하는 이들에게 십계명을 던지는 열정이 넘치는 모습을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이미지가 있을까요? 40년 광야 생활 끝에 가나안을 눈 앞에 두고 들어가지 못하는 아쉬움의 모습을 떠올려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늘 성경인물들의 강인함과 용맹한 모습을 보느라, 정작 그들의 연약함을 놓치고 볼 때가 많습니다. 그리곤 ‘역시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라면 이정돈 해야 성경에 기록되지. 하지만 나는 아닌걸.’ 이라는 생각을 하며, 나와는 다른 사람으로, 나는 저렇게 될 수 없는 사람으로 비교 해석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는 모세라는 인물에게 있어, 하나님을 기점으로 연약함을 보였을 때와 그리고 강인함을 보였을 때를 나누며 그 안에서 은혜를 누리고자 합니다.
[모세의 연약함]
먼저 우리는 모세의 연약함을 보고자 합니다. 연약함이라 하면, 어떤 사건들이 있었을까요? 우선 그는 의심의 사람이었습니다.
떨기나무에 불이 붙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 ‘내가 여기에 있다.’, ‘내가 너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건져내겠다.’ 등 여러 신호를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모세의 대답은 13절과 같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모세는 ‘그들이 내게 묻거든, 제가 당신을 뭐라 말해야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분명 여호와께서 자신을 충분히, 3장 1절부터 12절까지 정말 충분히 드러내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의심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대답하십니까? 14절 입니다.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분명하게 모세에게 보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여전히 의심합니다. 어떻게요? 4장 1절 입니다.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 때 전적으로 믿고 행해야 하는 것이 인간임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가라’는 하나님의 선포에, ‘글쎄요?’의 자세를 취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방이를 뱀으로, 또 뱀이 지팡이로 바꿔 보이시는 능력을 실현하십니다. 능력으로써 이미 검증 받아, 이제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임을 보게된 모세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빠져나갈 구멍을 찾습니다.
이번에 찾은 구멍은 ‘제가 말을 잘 못해요.’ 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조치하십니까? 말을 참 잘 하는 형 아론을 옆에 붙여버리지 않습니까?
어찌저찌 바로 앞에 나아간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으나, 바로가 말을 듣지 않자 모세가 또 어떤 의심을 합니까? 5장 22절과 23절입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돌아와서 아뢰되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이 학대를 당하게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셨나이까 / 내가 바로에게 들어가서 주의 이름으로 말한 후로부터 그가 이 백성을 더 학대하며 주께서도 주의 백성을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모든 책임과 모든 책망을 하나님께 돌리며, 하나님이 구원하지 않으셨다는 으름장을 넣는 모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여하튼 그는 의심에 의심을 더한 사람이었습니다.
[여호와를 통해 변화되다]
그랬던 그가 장차 여호와를 의지하며 어찌 변화됩니까? 모세의 연약함이 조금씩 다듬어져 갑니다. 조금 더 담대함으로, 조금 더 하나님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군사로 성장되어 갑니다.
그는 하나님을 의심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도, 동시에 놓치지 않았던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여호와를 인정한 것입니다. 쉽지는 않았겠지만, 매순간 나는 내려놓고 결국 여호와의 뜻을 존중하고 인정했던 것입니다.
오늘 날 우리에게도 이와같은 자세가 필요합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먼저는 여호와를 인정하고 따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까?
[여호와를 인정할 때 : 1.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먼저는 하나님이 나의 능력되심을 고백하게 됩니다. 모세의 노래인 출애굽기 15장에서 2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
이 고백이 언제 나온 것인지 아십니까? 바로 앞 장인 14장을 보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홍해 바다를 건너고 나서의 고백입니다.
사실 백성들도 모세를 의심했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콩심은데 콩나고, 팥심은데 팥난다는 말처럼, 의심의 모세에게는 의심의 백성들이 있었나 봅니다. 그러나 그들이 모세와 함께 홍해를 건너자, 그들의 제일 처음 행동이 무엇입니까? 14장 31절에,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그들 또한 모세의 능력을 통해, 모세를 믿었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이런 모습을 본 모세는 여호와의 능력을 고백하며, 노래를 불렀던 것이지요.
그렇게 여호와의 능력을 고백하고, 여호와가 나의 힘이 되심을 고백하자 하나님은 모세에게 더 많은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뒤로는 수르 광야에서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셔, 목마름을 호소하는 백성들의 목을 축여 주셨고, 굶주림 가운데 있는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로 배를 불려 주셨습니다. 또 르비딤에 이르러서도 반석을 지팡이로 치자 물이 나와 백성들의 갈급함을 해소해주셨습니다.
이처럼 여호와를 인정할 때, 우리도 능력의 하나님을 마주하게 됩니다. 나를 내려놓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갈 때, 먼저는 하나님께서 나의 내려놓은 부분을 채우시기 위해 대신 일하시고자 능력을 보이신다는 것이지요.
바라옵기로는 이 능력의 하나님이 올 한 해, 우리 가운데 임하시어 역하하심을 맛보는 우리 모두 되기를 소망합니다.
[여호와를 인정할 때 : 2. 여호와는 나의 승리시요]
두 번째는 승리의 하나님을 고백하게 됩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곧 우리게 승리를 가지고 옵니다.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사건을 접한 후 나오는 것이 바로 아말렉과의 전투입니다.
아말렉이 누굴까요? 이들이 어떤 존재 입니까? 창세기 36장 12절을 함께 봅시다. “에서의 아들 엘리바스의 첩 딤나는 아말렉을 엘리바스에게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내 아다의 자손이며” 또 15절과 16절을 봅시다. “에서 자손 중 족장은 이러하니라 에서의 장자 엘리바스의 자손으로는 데만 족장, 오말 족장, 스보 족장, 그나스 족장과 / 고라 족장, 가담 족장, 아말렉 족장이니 이들은 에돔 땅에 있는 엘리바스의 족장들이요 이들은 아다의 자손이며”
아말렉이 곧 누구의 자손입니까? 바로 에서의 자손입니다. 에서, 무엇에 능한 사람입니까? 사냥에 능한 사람입니다. 즉 아말렉 또한 전투에 능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들을 지금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주한 상황이 오늘의 본문입니다.
계란으로 바위치는 듯한 이 싸움의 핵심이 있었다면, 모세가 팔을 내리면 전투에서 패배하고, 올리고 있을 때 승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과정 또한 하나님의 능력이었음을 보게 되는데, 이제는 더 나아가 이 능력을 통한 승리의 하나님을 보고자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전투에서 승리하자 모세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17장 15절과 16절입니다. “모세가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 이르되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
이제 모세는 능력의 하나님을 보며 승리를 고백합니다. 여호와는 곧 승리이심을 경험했고 또 고백할 수 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삶에도 여호와의 능력이 승리로 인도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당장 나의 삶이 패배같고, 또 하나님의 능력이 과연 있는가에 의문이 들 수 있지만, 그럴 때 우리도 모세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며 능력의 하나님을, 승리의 하나님을 맛보길 소망합니다.
[여호와를 인정할 때 : 3. 축복을 누리다]
여호와를 인정할 때, 마지막 세 번째는 축복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끄심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데리고 나와 가나안 땅을 목표로 걸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그는 끝내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신명기 32장 49절과 50절이 이렇게 기록합니다. “너는 여리고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아바림 산에 올라가 느보 산에 이르러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기업으로 주는 가나안 땅을 바라보라 / 네 형 아론이 호르 산에서 죽어 그의 조상에게로 돌아간 것같이 너도 올라가는 이 산에서 죽어 네 조상에게로 돌아가리니”
모세는 가나안 땅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고, 이제는 형 아론이 죽었던 호르 산에서 자신도 죽음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그의 결말이었습니다.
가나안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인생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지만, 끝내 마지막 목표 앞에 그는 더 이상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바라보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아쉽고, 또 화도 날 것이고 지난 날 자신을 이끄신 하나님의 모든 과정에 의심과 함께 역정이 날 법한데, 모세의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그의 마지막 자세가 무엇입니까? 33장 1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모세가 죽기 전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축복함이 이러하니라”
그는 자신들과 함께 동행한 백성들을 향해 축복했고,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하나님을 떠나 살지 않기를 소망했습니다. 마음을 다해 축복했습니다. 그리고 모세 또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며 생을 마무리 합니다.
신명기 34장 7절입니다.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
육체의 힘듬 없이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축복을 모세 또한 누리며 마무리 합니다.
[결론]
사랑하는 청년 공동체 여러분. 모세의 삶을 보며 이 삶이 우리의 삶 되길 소망합니다. 목표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그런 삶 살자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겨져 있었던, 능력을 고백하는 자의 삶, 여호와께서 언제나 승리로 이끄신다는 확신을 가진 삶, 그리고 다른 이들을 축복하며 또 나 또한 축복받는 자의 삶을 살아내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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