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기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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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장 7~11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기도편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기도 어렵다.
교회에서 한 청년이 한 자매를 너무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여간해서는 자기에게 마음을 안 주는 이 자매를 포기할 수가 없어 기도를 붙들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하는 기도여야 응답받는다 하기에 이 형제는 이 자매를 하나님이 주실 것이라 믿고 기도합니다. 자매는 싫다고 하는데 의심하지 않습니다. 자매는 기겁을 하는데도 형제는 믿습니다 합니다. 교회에서는 이런 형제를 믿음이 좋다고 합니다만, 세상에서는 이 형제를 스토커라고 부릅니다.
기도처럼 성도들에게 혼란을 주고 또 부담을 끼치는 것도 없을 겁니다. 믿음으로 의심하지 말고 기도하라니까 좀전과 같은 형제들이 나타납니다. 또 정욕대로 구하면 안된다고 하니까 막상 뭘 기도해야 할지도 막막합니다. 뭔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맞춰야 할 것도 같고, 자기가 살아온 게 하나님께 내세울 거 하나 없기에 나같은 게 뭐 기도해봐야 소용있겠나 하기도 합니다. 정성껏 기도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그 정성으로 더 공부하거나 더 노력하는게 응답의 비결이 아닐까 하면서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의 기도 생활은 어떠신지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올 한해 기도에 대한 부담과 혼란들, 그 이전것들이 지나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보라 기도가 새것이 되었도다 선포케 되는 한해가 되기를 원합니다. 예전에 하던 방식대로 겨우 간신히 억지로 짜내는 기도의 재방송 말고, 새롭게 하나 하나 만들어가는 나만의 기도 생방송이 준비되어지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이유 1) 기도해봤자 소용 없어요
기도하지 않는 이유 1) 기도해봤자 소용 없어요.
이를 위해서 먼저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 첫번째, 기도해봤자 소용 없어요 입니다. 그동안 기도를 안 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기도한대로 응답받은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도 몇번 시도도 더 해봤음직한데 별로 바뀌는 게 없다보니까 기도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나 하는 마음이 든 겁니다. 기도 응답의 실패가 우리로 하여금 기도 무용론을 가지도록 하는 겁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어떠신지요? 기도 응답의 실패로 낙심해 계신 건 아닙니까? 아니면 정말 기도하면 응답받는다고 정말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기도하고 싶어 난리가 날텐데요? 내가 기도해서 그대로 된다면 어떻게 가만히 있겠습니까? 틈만 나면 기도하고 싶어서 기도의 자리를 찾을 겁니다. 정말 기도의 응답을 믿으면 기도하지 않고는 베길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는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합니다. 믿으면 기도하고, 믿지 않으면 기도 안하는 겁니다.
좋은 아버지는 구하는 게 아니라 좋은 것을 주신다.
기도 응답에 낙심한 성도를 위해서 오늘 본문 9절부터 봅시다. “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며 10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답변 1) 좋은 아버지는 구하는대로 주는 아버지가 아니라, 좋은 것을 주시는 아버지입니다. 자식이 돌을 달라해서 돌을 주고, 자식이 뱀을 달라해서 뱀을 주는 아버지, 즉 구하는 대로 다 주는 아버지는 결코 좋은 아버지가 아닙니다. 좋은 아버지는 돌을 구하는 아들에게 구하는대로 주지 않고, 떡을 줍니다. 또 좋은 아버지는 뱀을 구하는 아들에게도 응답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생선을 줍니다.
주님도 응답받지 못하셨다.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하다 보니 자꾸 자책을 하기도 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라 했는데 역시 믿음이 부족해. 정욕대로만 구했나봐. 내 기도에 문제가 있어.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하는데 교회를 그리 오래 다녔어도 아직 모르나봐. 난 안돼. 그러나 우리 주님도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믿음으로 구했고, 의심없이 기도했고, 정욕으로 쓰려고 기도한 것도 아니고, 정성이 없던 기도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거절 당한 기도가 있습니다. 겟세마네 기도입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기옵소서 기도하셨는데 하나님은 구하는대로 주지 않으십니다. 우리 주님이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우리들의 심정에 공감하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구하는대로 응답하지 않으십니다. 좋은 아버지이시기에 구하는대로 주지 않고 좋은 것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십자가라서 우리는 아쉬운 겁니다. 그래서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다는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우리도 하나님 아버지께 간구했지만 구하는대로 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좋은 것으로 주신다고 했는데 도리어 악화되고 기대와 달리 어려워지는 경우들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서운함을 느끼게 되고, 기도에 대해 꺾여진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때부터 기도하기 보다는 내뜻대로 본격적으로 대처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마음도 아십니다. 좋은 것으로 응답하신다 했는데 십자가를 짊어지셨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를 통해 분명히 보여주고자 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라는 어려운 상황이면 끝장이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정짓지 말라 합니다. 죽음 속에서도 길을 만드십니다. 사흘 뒤에 무덤 문이 열립니다. 한쪽 문이 닫혀서 끝장이다 했는데 또 다른 문이 열린 겁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서 기도했지만 문이 닫혀진 경험이 있다면 또 다른 문이 열리는 은혜를 기대케 되기 원합니다. 무덤 문이 열립니다. 간절히 기도한대로 안 주실 때 있었을 겁니다. 우리 주님도 그 마음 아실 겁니다. 또 하나 문이 닫혔다고 낙심하지 맙시다. 또 이게 끝이라고 단정짓지도 맙시다. 무덤 문도 열어주시는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정말 응답이 없었을까?
신앙생활하면서 수많은 기도를 해왔을 겁니다. 그런데 그 기도가 어떻게 응답받았는지 추적하지를 않습니다. 즉각적으로 응답해주지 않았지만 응답해 주신 많은 일들이 있었을 겁니다. 오히려 정말 응답이 없었는지를 묻고 싶습니다.
저는 어린 시절 기도 응답에 대한 체험이 있었습니다. 형이 동네 쓰레기장에서 예쁜 상자에 담긴 죽은 새끼 고양이를 주워 왔습니다. 형이랑 교회 옥상 십자가 밑에서 간절히 살려달라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이 고양이가 정말 살아납니다. 분명 쓰레기장에 버려져 있고, 그것도 예쁜 상장에 담겨서 버려져 있었던 걸 보면 누가 기르다 죽어서 버린 게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몇 시간 만에 살아납니다. 제가 처음 기른 고양이 아나입니다.
나중에 크니까 혹시 그때 죽었던 게 아니라 기절한 건데 주인이 모르고 버렸던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기도의 응답이 아니라 기절이라는 과학적 원인을 찾았던 겁니다.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그 기도의 응답은 하나님이 기도하면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주기에는 충분했습니다. 이는 응답입니까, 우연입니까?
지난 한해도 이어진교회를 통해 얼마나 많은 기도의 응답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이 시대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만 높이는 목회자가 도야 할텐데요 했더니, 개혁신학의 요람 칼빈대학교로 딱, 성도님들 말씀 잘 먹이고 싶은데 준비가 부족합니다 어떡합니까? 했더니 도서관이 딱. 좋은 동역자들 만나게 해주세요 했더니 곳곳에서 헌신하는 우리 순장님들과 요즘 사역자들 같지 않게 헌신하는 교역자들을 만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 100명만 와도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섬김이만 227명이었다 합니다. 성도들을 행복하게 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구했더니 비빔밥도 해먹고, 잔디밭에서 고기도 구워먹고, 고구마도 굽고, 떡국도 먹어보고 다 했어요. 행복하다고 고백하는 성도님들이 계셔서 감사했구요. 얼마나 기도 응답이 차고 넘쳤으면 저에게 현빈보다 멋지다고 한 성도님도 계십니다. 아멘?
얼마전 심방 중에 한 성도님께 이어진교회가 부족한 거 많았을텐데 한해 잘 버티셨다고 인사드렸더니, 아니라고 좋았던 일들 행복했던 일들이 있어 부족한 줄도 모르고 기쁘게 지내오셨다고 고백합니다. 그렇습니다. 기도의 응답도 그렇습니다. 부족한 응답, 지연된 응답, 이해할 수 없는 응답들도 있었지만 우리를 에벤에셀 여기까지 인도해주신 응답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습니다. 그 행복한 응답에 대한 감사로 우리의 기도가 다시 새것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이유 2) 기도 안 해도 잘 풀려요
기도하지 않는 이유 2) 기도 안 해도 잘 풀려요.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 두번째, 기도 안 해도 잘 풀려요 입니다. 굳이 구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입니다. 기도제목이 없는 겁니다. 그냥 이대로만 죽 이어졌으면 하는 겁니다. 오히려 형통하고 편안한 이 삶이 기도생활을 붙들지 못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겁니다.
구하지 않아도 좋은 아버지는 좋은 것을 주신다
그러나 이에 대한 답변이 있습니다. 답변2) 좋은 아버지는 구하지 않아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아들이 굶주리면서도 떡을 구하지 않았다고 해서 종에게 구할 때까지 기다려봐라, 또 살이 쪽 빠지고 건강을 잃어가는데도 ‘아직 안 구하느냐 그러면 줄 수 없구나’하고, 그러다 아들이 죽은 다음에 ‘구했으면 줬을텐데’하는 아버지는 세상에 없습니다. 좋은 아버지는 구하지 않아도 떡을 주고, 구하지 않아도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감사 기도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
기도 응답을 추적할 때도 누구는 응답으로 감사히 받지만 누구는 우연으로 또는 자기 실력으로 해석합니다. 구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상황과 조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는 기도 하나 하지 않고도 다 내가 준비하고 성취한 것들로 해석하겠지만 누구는 구하지도 않았는데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로 해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예전 이찬수 목사님이 교역자 회의 때 너희들은 정말 감사할 지 모른다고, 목사들이 가장 감사를 모른다고 당연히 받는 줄로만 안다고 혼쭐을 많이 내셨습니다. 그러면서 누구에게 뭐 하나라도 줘봐야 안다고. 그게 그렇게 마음에 많이 담겼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오래 전 조이스 청년부를 할 때 이 말씀을 듣고 그래 우리 청년부 섬김이들에게 뭐라도 하나 내가 있는 힘껏 섬겨보자 했습니다.
100명 가까이 되는 섬김이들을 위해서 섬김이의 밤 행사를 진행하는데 예산은 없고 잘 해주고는 싶었던 겁니다. 물론 청년들에 대한 감사함도 컸구요. 그래서 당시 제가 가진 돈을 다 끌어모아서 메가박스 서현 한 관을 통째로 빌렸습니다. 그리고 한해 동안 청년들이 수고한 영상들을 만들고 맨 마지막에 앤딩크래딧이 극장 화면에 좌악 올라가게 해주는 장면을 보여주고 싶었던 겁니다. 저로서는 쪼들리는 상황 속에서 뭐라도 섬겨보자 해서 섬긴 것이었습니다. 청년들에게는 어떤 분이 우리 청년들 위해서 섬겨주었다고 말했습니다. 이제야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청년들은 고마와하는 지체들과 또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청년들로 나뉘어졌습니다. 그때 어떤 청년들은 목사님 이런 행사 마련해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지체들도 있었구요. 또 어떤 청년들은 이렇게 준비했는데 목사님 다른 약속 있어요 하고 훌쩍 떠나기도 했고, 또 어떤 지체는 영화가 별로예요 하면서 심드렁하게 있기도 하고요. 그 때 정말 줘봐야 안다는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성도들에게 감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모습이 이런 마음을 주는 거였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이 이렇게 아름답지는 못한 거구나.
사랑하는 성도님,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만 응답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구하지 않을 때에도 좋은 것을 준비해주신 분이십니다. 심지어는 우리가 잘못 구하는 데도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영성 있는 분은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고 찬양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평안함과 형통함, 당연함입니까 감사제목입니까? 잘 풀리고 있습니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랑하고 싶어 못견디다 시샘만 사지 마시고요.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합시다. 이것이 기도입니다.
편안할 때 드리는 기도의 능력
평안할 때 드리는 기도의 위력이 있습니다. 평안할 때 나의 성취와 소유들을 내가 이룬 것으로 보는 사람들은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좋아졌다가 나빠졌다가 하는 롤러코스터의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누리는 고난 없는 상태가 계속 유지되기를 나빠지지 않기만을 대충 기도하고 사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님 구하지 않습니다. 뺏어가지나 마십시오 라고 기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들은 간구한 적이 없다 보니 하나님이 무엇을 주셨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감사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우연히 좋아졌거나 나빠졌고, 내가 어떻게 더 했어야 했고, 또는 남들이 나를 더 도와줬더라면 하고 삶을 해석합니다. 그런다 보니 세상에 휘둘려집니다. 상황에 휘둘립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릅니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우리가 구하는대로 주지 않지만 좋은 것으로 응답해주시고, 또 구하지도 않은 것들까지도 하나님께서 좋은 것으로 응답해주신다는 것을 아는 자들은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이 다 주시는데 뭘 간구하나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일용할 양식까지 먹이고 입히고 살아가게 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 이를 기뻐하고 감사히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들은 확신이 생깁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 시작하고, 의지하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의존감만 생기는 게 아닙니다. 담대함이 생겨버립니다. 눈에 뵈는 게 없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럽니다. 너는 아무 것도 없는 거 같은데 왜 담대하냐? 그러나 내 인생을 돌보신다는 너무 많은 증거를 기도로 모으며 살았습니다. 이제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겁니다. 세상이 준 게 아니고, 자기 실력에 따라 받아낸 게 아니라 아버지가 주셨다는 것을 알기에 세상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세상 일로 벌벌 떨지 않습니다. 이게 바로 기도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현재 상황은 똑같습니다. 똑같이 성공했고, 똑같이 형통합니다. 누구는 이를 다 자기가 열심히 했기 때문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래서 잘 되면 우쭐해지고, 잘 안되면 우울해지는 일들을 반복합니다. 그러다 보니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는 이 모든 것이 내가 구하는 것보다 더욱 응답하신 하나님의 은혜라 믿습니다. 그래서 잘되도 우쭐해하지 않습니다. 또 못된다 해도 우울해지지 않습니다. 내가 이룬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이기에 그렇습니다.
어차피 하나님이 좋은 거 주실 거고, 어차피 예수 믿으니 천국 갈텐데, 어차피 행위로 구원받는 게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는 거니 기도하나 안하나 똑같다고 생각하는 성도님들이 계시다면 오늘 말씀 곰곰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지금 상황은 비슷할 수 있으니 그 중심은 완전히 다를 겁니다. 삶의 질이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을 넘어 담대해지는 이어진교회 성도님들 되시면 좋겠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이유 3) 하나님의 뜻대로 다 될텐데
기도하지 않는 이유 3) 하나님의 뜻대로 다 될텐데 굳이?
우리가 기도하지 않는 이유 세번째, 하나님의 뜻대로 다 될텐데 굳이 기도해야 하나? 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는 자들입니다. 내가 기도한다고 해서 과연 하나님의 뜻이 바뀔 수 있나 싶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정하신 뜻이 있고, 이미 다 아시는 분이신데 내가 기도한다 한들 뭐가 바뀌겠나 싶은 겁니다. 이런 신학적인 이유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해봐야 그분이 듣나, 정말 내 삶에 관심이나 가질까, 정말 뭐가 달라질까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바뀌지 않지만 그 수단과 방법은 바뀔 수 있다.
답변3) 하나님의 뜻은 바뀌지 않지만 그 수단과 방법은 바뀔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은 바뀌지 않는 거 맞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무궁무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얼마든지 수단과 방법을 바꿔가면서 자신의 뜻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기도를 해야 한다며 기도하면서도 이렇게 기도해도 되나 싶기도 하고, 하나님 뜻을 알아맞추는 기도를 자꾸 드리려 하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한 기도를 통해서도 얼마든지 자신의 선한 뜻을 바꾸지 않고 일하시는 분이심을 기억하면 좋을 거 같습니다.
송구영신 예배 교역자 특송
지난 송구영신 예배 때 저의 뜻은 우리 부교역자들이 성도님들을 정성을 다해 섬김으로 우리 성도님들이 기쁨으로 새해를 맞이했으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건 변함없는 저의 뜻이었습니다. 그래서 교역자들에게 특송을 하나 부탁했습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분당우리교회에서 송구영신예배 때면 우리 부목사들이 비장함으로 특송을 하곤 했습니다. 선한 능력으로 일어나리라, 말씀 앞에서 그게 성도님들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었던 기억이 있어서 그렇게 품격있고 정중한 특송을 기대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 교역자들이 특송을 준비하는 건 같은데 뭐 김기락 목사님께는 기린 옷을 입히고, 뭐 이어진교회니까 뒤돌았을 때 끈으로 이어주자 이런 식을 의논하길래 내심 불안했습니다. 그리고 곡도 이어지네 라는 처음 듣는 곡을 가지고 와서 이거 되겠나 싶었습니다. 자꾸 코믹으로 가려고 하길래 에헴 하면서 견제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무슨 유희열의 스케치북처럼 높은 의자를 가져다 놓고 하겠다고 합니다. 속으로는 괜한 폼 잡지 말지 싶었지만 그들의 간구를 받아들였습니다. 그런 의자에 앉으면 가창력이 좋아야 할텐데? 그래도 그들의 부탁을 들었습니다. 또 무슨 특송을 할테니 마지막에 양복 속 등에 글자를 붙혀줄테니 특송 끝나면 양복 웃통 벗고 뒤돌아서 나와달라 또 부탁하는 겁니다. 아, 담임목사의 품격이 있지 이거 너무 과한 거 아닌가 싶었습니다만 일단 알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송구영신 예배가 되었습니다. 우리 부교역자들의 거친 생각과 저의 불안한 눈빛과 그걸 지켜보는 우리 성도님들. 그런데 성도님들이 얼마나 따뜻하게 환대해주시는지 놀라울 정도였습니다. 제 뜻은 하나도 안 바뀌었습니다. 교역자들이 성도님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기쁘게 해드리자 이 뜻은 하나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제가 생각했던 수단과 방법은 완전히 다 달라졌습니다. 교역자들의 부탁과 간구에 따라 얼마든지 저의 수단과 방법을 변용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저보다 훨씬 무궁무진하신 분이십니다. 저는 우리 교역자들이 담임목사의 눈치 살피느랴 해오던 이전 것만 붙들고 있고 재방송만 하려고 했다면 오히려 더 속이 상했을지 모릅니다. 불편한 심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높은 의자 놓겠다, 무슨 글짜를 등에다가 붙혀 드리겠다는 부탁을 담대하게 해준 게 고마왔습니다.
하나님도 자신의 뜻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지만 우리가 하나님 눈치만 보고 정답만 재방송하기를 원하시기 보다는 하나님 앞에 친밀함으로 우리의 간구를 자유롭게 아뢰는 것을 더 기뻐하시겠다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뜻을 바꾸지 않으시지만 자신의 뜻을 이루시는데 우리의 기도를 통해 이루시기를 기뻐하시겠다 싶은 겁니다.
제가 우리 교역자들의 특송 부탁을 뜻은 바꾸지 않되 수단과 방법은 다 포기했던 것처럼 하나님도 얼마든지 그러시겠다는 깨달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훨씬 창의적이고 또 다양하시며 무궁무진하신 분이시기에 우리의 기도와 함께 수단과 방법을 얼마든지 다양하게 바꾸어 가면서 자신의 거룩하고 온전하고 기뻐하시는 뜻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심을 믿습니다.
기도의 능력, 친밀함으로 나아간다.
저는 우리 교역자들이 송구영신 예배를 담임목사와 함께 기획하고 준비하면서 서로 눈치보지 않고 자유롭게 의견을 말하고 준비하면서 더욱 친밀함과 하나됨을 누리게 되었다고 믿습니다. 서로를 통해 자기의 생각을 확장하고 성도들을 기쁘게 한다는 뜻을 이루어낸 그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소중해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이게 기도 아닐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아맞춰야 응답받는 눈치 보는 시간 말구요. 제대로 간구해야 응답 받을텐데 하는 수동성 말구요. 하나님과 흥정을 하고 거래를 하는 그런 시간 말구요. 담임목사가 가진 봉황의 뜻을 다는 모른다 해도 그 안에서 함께 마음을 담고 같이 고민하며 그 뜻을 이뤄가는 기쁨을 함께 하는 시간이 기도가 아닐까 합니다.
보라, 기도가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우리의 잘못된 기도들이 지나가길 원합니다. 제가 뭐라 뭐라 하면 성도님들은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외쳐주세요. 시작해봅시다. 기도해봤자 소용없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절박한 게 없어 구할 게 없다고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하나님의 뜻이 기도한다고 바뀌냐고요?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정말 우리의 기도가 바뀌면 좋겠습니다.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오늘 말씀 7절을 봅시다. “7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오늘 말씀은 분명한 기도의 응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현실에는 우리가 구하는대로 응답받지 못하는 아쉬움과 서운함이 있습니다. 그런 아쉬움과 서운함도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와 함께 떠나 보내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구하는대로 주시는 응답이 아니라 좋은 것으로 응답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가 응답이라 하는 겁니다.
어떤 학자가 이런 말을 했다 합니다. 엄마가 옆에 있을 때는 구하라. 엄마 감사해요. 엄마 저 이게 필요해요. 그런데 엄마가 보이지 않을 때는 찾으라. 엄마? 엄마? 어디계세요? 또 엄마가 안방에 있을 때는 두드리라. 엄마! 들어가도 되요? 어쩌면 하나님은 가까이 느껴질 때도 기도하고, 보이지 않을 때에도 기도하며, 무언가에 닫혀 있고 막혀 있을 때도 기도하라는 권면 같습니다. 올해에는 그 하나님을 간구하여 우리가 정말 새로워지는 새해가 되기를 기도합시다.
보라, 기도가 새 것이 되었도다
그래서 우리의 어두운 기도에 빛이 있으라 하여 새로운 기쁨을 맛보게 되는 기도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르고, 기도 응답은 또 무엇인지 알 수 없는 우리의 혼돈스러운 기도에 하나님이 말씀으로 새롭게 생기를 불어넣어주시기를 기대합시다. 구하는대로 받지 못해 낙심했던 성도님들이 좋은 것으로 주시려는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악한 자라도 좋은 것을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일까 보냐 하시는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의 공허함을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하는주기도문 시리즈를 통해 기도의 언어를 배워가고, 복음의 언어를 채워가는 은혜가 있기를 원합니다.
어린 아기들이 처음 말문이 트일 때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아빠. 진짜? 하는 소리 하나 하나가 얼마나 그 아버지를 기쁘게 하는지 모릅니다. 눈치보는 기도 말고, 아버지를 찾고, 좋은 아버지께 구하고, 좋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문을 두드리는 새해를 만들어 봅시다. 그래서 보라, 기도가 새것이 되었도다! 보라 기도가 새것이 되었도다! 기쁨으로 선포하는 23년이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