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함께, 빠짐없이

민수기  •  Sermon  •  Submit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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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성막 세우기를 마친 시점 2. 지파들의 개별적인 선물 3. 축제의 성격을 가진 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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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 봉헌

1-10장까지는 성막 세우기를 마친 이후 다시 시내산으로 출발하기까지의 50일간의 기록입니다.
50일 동안 제사장 위임, 나답과 아비후 사건, 인구 조사, 레위 지파의 임무 분배, 성막 봉헌, 유월절 준수 등 다양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성막을 세운 이후 성막 봉헌을 진행하는데, 봉헌식은 축제의 성격을 갖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날을 기념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표하기 위해 그릇들을 가져 왔습니다.
그 그릇들은 기름을 섞은 소제물향을 담은 그릇과 향을 담는 금 그릇이었습니다.
또한 번제물, 속죄제물, 화목제물 등 다양한 희생제물을 하나님께 올려 드립니다.
성막 완공 이후 하나님께서 나를 기념할 제물들을 가져와라! 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성막이 지어진 것을 보고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원하여 들고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축복해주지 않으셔도, 어떤 단서도 조건도 달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자신들의 것을 기꺼이 가져와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들이 가져 온 예물들은 그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
이것을 드림으로써 생가는 개인적은 손해나 어려움 등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일부를 기꺼이 떼어내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예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성도님들께서도 일천 번제, 주일 헌금 등 다양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고 계신데요.
이 예물의 의미를 생각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왜 예물을 하나님께 매일 혹은 매주 드리고 계셨나요?
다양한 의미가 있겠지만, 예물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에 대한 감사의 반응을 담고 있습니다.
또한 예물은 나와 하나님과 관계가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은 나의 구세주, 아버지 되십니다. 라는 뜻을 갖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스라엘은 얘물을 하나님께 드렸고, 하나님은 그것을 받으셨습니다.
예물을 드리고 받는다. 서로 관계가 있다는 뜻이겠죠.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구원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또 다른 은혜와 복들을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향해 적극적인 믿음과 마음을 고백하는 우리를 절대 외면하거나 모른척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기브 앤 테이크처럼, 내가 드렸으니 나에게도 주세요! 가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린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예물을 기쁘게 받으시고 우리의 삶에 분명한 은혜를 허락해 주실 것입니다.

지파들의 개별적인 선물

성막이 만들어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피부로 깨닫게 된 이스라엘의 온 지파들은 각자가 드릴 수 있는 예물들을 다 가지고 나왔습니다.
훗날 솔로몬에 의해 성전이 지어졌을 때에는, 일천 번제 즉 굉장히 많은 제물들을 한번에 하나님께 드리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성막이 지어졌을 때는 그렇게 한번에 일천개의 번제를 하나님께 올려드리지 않았습니다.
한 번에 끝내지 않고 각 지파별로 하루씩 맡아 12일 동안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열두 지파가 가져 온 끝도 없이 펼쳐진 제물들이 한 번에 불에 타 하늘로 올라간다면 어떤 느낌일까요?
한번 상상해 보시겠습니까?
저는 소고기 300g이 숫불 위에서 구어지는 것만 봐도 정신이 혼미한데, 이스라엘이 가져 온 것은 300g과 비교도 되지 않는 양이었습니다.
번제물로는 수송아지, 숫양, 어린 숫양이 바쳐졌고,
속제제물로는 숫염소 한 무리가
화목제물로는 소 두마리, 숫양과 숫염소 다섯마리, 일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가 드려졌습니다.
한 지파당 20마리였다고 가정하면 총 동물 140마리가 한번에 그 광야에서 불에 타 올라가는 것을 보았다면 전율이 돋지 않았을까요?
제물을 잡을 때는 엄숙하지만 모든 의식이 끝나고 그것이 불에 타 올라갈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이 광야에서도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에 큰 감격”을 했을 것입니다.
광야에서 살아갈 수 있는 최후의 보루들이 되는 이 많은 짐승들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이 가축들을 정말 중요했습니다. 후에 정착하게 되면 농사를 짓는데 활용할 수도 있었고, 또 다른 경제 활동으로오 사용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먼 미래의 일을 생각하며 아까워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지금 이 순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그 사실 하나에 감격하여 자신들의 것을 기꺼이 내어 놓았습니다.
한번에 모든 짐승들이 드려졌다면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장엄하고도 멋진 모습이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각 지파별로 하루씩 맡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굉장히 번거로운 일 같아 보입니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계속해서 보게 되면 첫 마음처럼 기쁘거나 소중하지 않은 경우가 있는 것처럼,
12일 동안 동일한 제사가 반복되면 자칫 지루하거나 혹은 이전 지파보다 더 멋지게 더 많이 드려야 한다는 잘못된 유혹에 빠질 수도 있어 보이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지파별로 하루씩 드리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차별없는 제사를 위해서 였습니다.
첫째, 각 지파가 드린 예물은 모두 똑같습니다.
지파의 규모와 능력이 달라도 똑같은 예물을 준비해서 드려야 했습니다.
물론 개인적으로 드리는 예물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었지만, 공동으로 특히 지파별로 드릴 때는 모두가 똑같은 양을 준비해서 드렸습니다.
지파의 규모와 능력에 상관없이 전혀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준비되었습니다.
각 지파는 제 몫을 다해 준비하여 하나님께 드려야 했습니다.
이 때 드렸던 화목제물의 수는, 속죄제물로 드렸던 제물의 5배였습니다.
작년 새벽마다 우리를 힘들게 했던 레위기에서 화목제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요.
화목제물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 즉 다시 화목하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물입니다.
죄를 용서 받는 속죄제물보다, 화목제물이 5배가 더 많은 것
죄 용서에 대한 은혜가 정말 크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과 같습니다.
죄 용서의 은혜는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기 때문에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감사를 드리는 것이죠.
둘째, 12일 동안 하루에 한 지파씩 충분히 자신들의 헌신과 정성을 하나님께 표현 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어떤 일을 치러내듯 모여 급하게 제사를 드리고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지파씩 충분히 준비하도록 시간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지파들은 동일한 수의 제물을 준비하고, 앞 지파의 제사들을 보며 마음을 깨끗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차례가 왔을 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셋째, 성막 봉헌식은 눈에 보이는 예식이었습니다.
한 지파의 지휘관들이 짐승들을 데리고 나오는 행동을 모두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은 2주간 진행되었는데, 짐승들만 잡아 하나님께 제물로 드렸던 것이 아닙니다.
제물을 드리면서 이들은 성막의 모든 기구에 기름을 발랐습니다.
기름을 바르는 것은, 기름 부음을 받는 것과 똑같은 의미를 갖습니다.
기름이 발라진 성막의 모든 기구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되어졌음을 모두에게 보여주는 의미를 갖고 있었습니다.
성막과 기구들. 하나님께 드린 이 것들을 죄와 부정한 것과 더러운 것들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죠.
사람들은 2주 동안 성막 모든 기구에 발라지는 기름을 보면서, “거룩하게 살아야겠다!”라는 결단했습니다.
앞으로 “앞으로 나는 이렇게 구별 되어진 삶을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동기부여를 성막 기구들을 통해 가지게 된 것이죠.
그리고 자신들의 삶의 정중앙에 있는 성막을 보며 매일 마음을 다 잡았을 것입니다.
성막 봉헌식 때 드려진 제사들모두 함께, 빠짐없이 같은 마음을 고백함으로 시작되었고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한 가지를 그들의 머릿속에 그리고 가슴에 새깁니다.
“나는 광야에 혼자 서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 광야는 아름답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광야는 충분히 걸을만한 곳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이스라엘처럼 성막 기구에 기름을 바르지 않습니다.
교회 기물에 기름을 바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분명하게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광야에 선 이스라엘 사람들처럼”
“나도 세상과 구별된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세상과 구별 된 존재가 바로 나라는 것을 안다면,
하나님께서 특별히 나를 먼저 선택하여 구별 된 존재로 세워주셨음을 안다면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라는 고백을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며, “구별 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처럼
“나는 광야에 혼자 서있지 않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이 광야는 아름답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광야는 충분히 걸을만한 곳이다.”
라는 고백이 저와 여러분에게도 있어야 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먼저 선택하여 불러주신, 세상과 구별되게 세워주신 존재들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선택과 부르심에 반응하며,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이 길이 정말 아름다운 길임을 주위 사람들에게 전하고 보여주는 간증이 넘치는 삶을 갖는 모든 분들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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