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15. 주일3부예배. 교회 - 하나님의 영광의 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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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40 NKRV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또 증거궤를 들여놓고 또 휘장으로 그 궤를 가리고 또 상을 들여놓고 그 위에 물품을 진설하고 등잔대를 들여놓아 불을 켜고 또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 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 또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 또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달고 또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제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 너는 또 물두멍과 그 받침에 발라 거룩하게 하고 너는 또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 문으로 데려다가 물로 씻기고 아론에게 거룩한 옷을 입히고 그에게 기름을 부어 거룩하게 하여 그가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너는 또 그 아들들을 데려다가 그들에게 겉옷을 입히고 그 아버지에게 기름을 부음 같이 그들에게도 부어서 그들이 내게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게 하라 그들이 기름 부음을 받았은즉 대대로 영영히 제사장이 되리라 하시매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 둘째 해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루에 성막을 세우니라 모세가 성막을 세우되 그 받침들을 놓고 그 널판들을 세우고 그 띠를 띠우고 그 기둥들을 세우고 또 성막 위에 막을 펴고 그 위에 덮개를 덮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그는 또 증거판을 궤 속에 넣고 채를 궤에 꿰고 속죄소를 궤 위에 두고 또 그 궤를 성막에 들여놓고 가리개 휘장을 늘어뜨려 그 증거궤를 가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그는 또 회막 안 곧 성막 북쪽으로 휘장 밖에 상을 놓고 또 여호와 앞 그 상 위에 떡을 진설하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그는 또 회막 안 곧 성막 남쪽에 등잔대를 놓아 상과 마주하게 하고 또 여호와 앞에 등잔대에 불을 켜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그가 또 금 향단을 회막 안 휘장 앞에 두고 그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그는 또 성막 문에 휘장을 달고 또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번제단을 두고 번제와 소제를 그 위에 드리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그는 또 물두멍을 회막과 제단 사이에 두고 거기 씻을 물을 담으니라 모세와 아론과 그 아들들이 거기서 수족을 씻되 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제단에 가까이 갈 때에 씻었으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 그는 또 성막과 제단 주위 뜰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휘장을 다니라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마치니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 앞으로 나아갔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나아가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에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진하는 길에서 그들의 눈으로 보았더라

서론

지난 시간 “다시 초대교회로”라는 슬로건 아래에서 한 해를 시작한 우리가 무엇을 위해 힘써야하는지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초대교회와 같은 모습을 회복하기 위해 초대교회처럼 구약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교회다운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다보니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뜻과 목적을 알게 되었죠.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에서 특별히 히브리인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선택하셔서 이집트에서의 노예생활에서 건져내시고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무엇을 위해서였나요?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섬기는 민족이 되게 하시려, 그들로 하여금 오직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백성들로 세우시려 구원하시고 인도하셨습니다.
지난 시간 살펴본 “민수기 2장”에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목적이 너무나도 잘 나타났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진영이 멈추어 설 때에는 자신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 그리고 그 법궤를 두는 회막을 가운데에 두고 모든 진영이 회막을 향해 텐트를 치라고 명령하셨고, 모든 진영이 다시 이동할 때에도 회막을 가운데 두고 순서를 지켜 행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진영의 이동과 멈춤으로 표현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생활 속에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회막을 중심으로 살아가야했지요. 우리또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예배를 위해, 예배를 중심으로 살아가야 함을 깨닫고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가자고 함께 결단하였습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예배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도록 할 수 있을까요? 또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며 무엇을 염두에 두어야 할까요? 오늘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러한 것들을 함께 나누어보았으면 합니다.

거룩함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이렇게 명령하십니다. 출 40: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첫째 달 초하루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 하나님만을 예배하는 백성으로 세워졌으니 이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처소를 만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막에서 드리는 예배를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잘 준비하여서 첫째 달 초하루에 즉, 새해의 첫날에 성막을 세워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으로서 새로운 출발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에서 생활하며 이 성막을 세우기 위해 필요한 예물들을 드리기도 하고, 모은 예물들로 예배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만들었습니다. 사실 출애굽기 후반부의 내용이 거의 다 여기에 포함되요. 이미 25장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성막에서 드릴 예배를 위해 준비하기 시작했고, 마지막인 40장까지 이어져 온겁니다.
여기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2절을 볼까요? 2절에서 이 성막은 회막이라고도 불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막은 무엇이고, 또 회막은 무엇일까요? 성막으로 번역된 단어는 본래 히브리어로 אֹ֥הֶל מֹועֵֽד(오헬 모헤드)라고 합니다. 오헬은 텐트를 뜻하고, 모헤드는 만남을 뜻하는데요, 옛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두 단어를 합쳐서 하나의 의미로 사용했습니다. 즉, 성막이란 만남의 텐트였던 것이지요. 이곳에서 누구를 만났을까요?
출애굽기 33:7–11 (NKRV)
모세가 항상 장막을 취하여 진 밖에 쳐서 진과 멀리 떠나게 하고 회막이라 이름하니 여호와를 앙모하는 자는 다 진 바깥 회막으로 나아가며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 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 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텐트
이 성막은 또한 회막이라고도 불렸습니다. 회막으로 번역된 단어는 본래 히브리어로 מִשְׁכָּן(미쉬칸)이라고 합니다. 미쉬칸은 거주하다, 머무르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샤칸에서 파생한 단어로서 거주하는 곳, 머무르는 곳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지요. 이 미쉬칸은 누가 거주하고 누가 머무르는 장소였을까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려 당신의 백성들의 손으로 지은 텐트에 자신의 처소를 두시겠다 약속하신 것이지요. 하늘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진영의 가운데에 자신도 함께 거주하며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그들을 인도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즉,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하나님께서 거주하시고 머무르실 처소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의 손으로 만들고 세울 텐트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거하실 것입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이었겠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모실 처소를 준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읽은 구절들을 눈여겨보니 반복해서 나타나는 구절들이 있습니다. 한 번 찾아볼까요? 첫번째는 “거룩하게 하라”하는 구절입니다. 9, 10, 11, 13절에 4번 반복이 되고 있지요. 두번째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하는 구절입니다. 19, 21, 23, 25, 27, 29, 32절에 7번 반복이 되고 있구요. 자, 성경에서 자주 반복이 된다는건 무엇을 의미합니까?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하라”하는 구절과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되니라”하는 구절이 모두 아주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는데, 두가지 모두 나누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오늘은 “거룩하게 하라”하는 구절만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거하실 처소를 세울 때에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거룩하게 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9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출 40:9 “또 관유를 가져다가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 새번역에서는 이렇게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출 40:9 “너는 예식용 기름을 가져다가, 성막과 거기에 딸린 모든 것에 발라서, 성막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구별하여라. 그러면 그것이 거룩하게 될 것이다.” 말 그대로 성막과 거기에 딸린 모든 것입니다. 10절과 11절에서는 제사를 드릴 때에 쓰이는 기구들을 거룩하게 할 것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명령하시는데요, 번제단은 제물을 불태워 드리는 곳을 말하며, 물두멍은 제사 전후에 손발을 씻는 곳을 말합니다. 13절에서는 기구들뿐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제물을 드리는 제사장들까지도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성막의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지극히 거룩하게 구별되어야 했습니다. 왜일까요? 그곳에 거하실 하나님이 지극히 거룩하신 영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라고 또한 영광의 하나님이라고 할 때에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몇가지 말씀이 말씀이 우리의 이해에 도움을 줄 수 있겠습니다. 먼저 레위기의 말씀입니다. 레 11:44-45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땅에 기는 길짐승으로 말미암아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거룩한 하나님이시니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거룩하라 말씀하십니다. 또 한 구절을 볼까요? 신명기의 말씀입니다. 신 4:24 “네 하나님 여호와는 소멸하는 불이시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하심에 대해 소멸하는 불이라고 하시지요.
하나님은 완전하게, 완벽하게 거룩하신 분이십니다. 이는 세상의 어떠한 것들과도 비교할 수 없을만큼 완전히 깨끗하시고 정결하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단순히 홀로 깨끗하고 정결한 상태로 계신다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관계하는 모든 것을 깨끗하게 하시고 정결하게 하신다는 것을 뜻하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함을 두고 소멸하는 불이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분이시기에 자신의 눈 앞에 있는 더럽고 추악한 것을 결코 두고 보실 수 없으십니다. 시 5: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은 그 분 앞에 있는 더럽고 추악한 모든 것들을 불태워 깨끗하게 정결하게 만듭니다. 소멸하는 불이 태워 없애지 않는 것은 오직 불밖에 없으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이 깨끗하고 정결하게 만들지 않는 것은 오직 거룩한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 영광스러운 하나님께서 임하실 처소를 세우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성막과 거기에 딸린 모든 것을 거룩하게 구별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성막과 거기에 딸린 모든 것이 또한 하나님께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는 제사장 마저도 소멸하는 불에 삼켜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께 모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모든 곳에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합당한 거룩함이 요구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주 이 사실을 잊었습니다. 예언서를 찬찬히 읽다가 보면 그들이 형식적으로는 거룩함을 지켰을지는 몰라도 제사를 드리는 자신들을 거룩하게 구별하는데는 소홀하였음을 자주 발견하게 되지요.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는 제사장은 물론이요 모든 예배자들이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거룩하심에 합당하지 않은 거룩하지 않은 자들이 모인 모임 중에, 다시 말해서 죄악에 사로잡혀 예배의 자리에조차 하나님 앞에 합당한 중심을 가지고 나오지 않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임재하시기보다는 그들을 떠나기로 결정하십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멸시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이제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을 떠날 것이라 선포하였고,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멸시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이 하나님께 기쁨이 아니라 역겨운 것이 되고 있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사야서의 말씀을 우리 잠깐 한 번 읽어볼까요?
이사야 1:11-15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숫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숫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내가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내 눈을 너희에게서 가리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라”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나아왔다고 하여도 스스로를 거룩하게 구별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임재에까지는 나아갈 수 없는 법입니다. 오직 스스로를 거룩하게 구별한 예배자들에게만 영광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이것이 누구나 다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는 있지만, 모두가 다 은혜를 누리지는 못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성막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자신의 임재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처소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요한복음에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약속하신 하나님의 처소를 향해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여기에서 ‘거하신다’라는 표현은 헬라어 ‘에스케노센’(eskēnōsen)을 번역한 것인데, 이는 본래 ‘성막을 세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분명히 하나님의 임재를 약속하신 옛 이스라엘의 성막을 가리키지요. 사도 요한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성막에 거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지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함께 하고 계신데, 예수님께서 입으신 육신이 성막이 되어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신다고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 이 땅에서 떠나셨을 때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성령님을 보내주셔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자들 가운데 함께 하시겠다 하신 약속을 이루셨지요. 이제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약속대로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함께하시고 그 예수님의 함께 하시는 곳에 하나님의 영광의 임재가 있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성막은 사라졌지만 보이지 않는 성막이 늘 우리와 함께 있는 것이지요.
구약의 보이는 성막보다 신약의 보이지 않는 성막이 훨씬 더 훌륭합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성막에서는 오직 제사장만이 성소에 들어가 영광의 하나님을 뵐 수 있었지만, 신약의 성막에서는 누구나 다 성소에 들어가 영광의 하나님을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모두가 다 성소에 들어갈 수 있도록 자신을 희생하셨습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이제 주께서 누구나 다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고 영광의 주님을 뵐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무한한 은혜에 힘입어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을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 말이지요. 히 10:21-22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이 계시매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악한 양심으로부터 벗어나고 몸은 맑은 물로 씻음을 받았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그 피를 뿌리셔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에스겔을 통해 약속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신 것이지요. 겔 36: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이렇게 예수님께서 피를 뿌리셔서 새롭게 하신 마음이 참 마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겸손히 하나님 앞에 서는 마음이 참 마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예배를 드리러 모일 때에 우리는 이 참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하고자 하는 마음 말입니다.
아까 말했듯 이것이 누구나 다 예배의 자리에 나올 수는 있지만, 모두가 다 은혜를 누리지는 못합니다. 왜냐구요? 모든 복과 은혜는 우리 가운데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인데, 우리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서도록 스스로를 구별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 위에 임재하시고 함께하시기보다 그를 떠나기를 선택하십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소멸하는 불에 태워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런 것과 같습니다. 군대 중대장 휴가 권한, 교수 장학금 권한
우리 안에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야 복과 은혜 또한 풍성하게 부어질 수 있다. 하나님의 임재가 회복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스스로를 거룩하게 구별하여야 한다.
출 20:24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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