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13. 새벽예배. 함께 세워가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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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10장 - 사도신경 - 성경봉독

민수기 7:12–23 NKRV
첫째 날에 헌물을 드린 자는 유다 지파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이라 그의 헌물은 성소의 세겔로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열 세겔 무게의 금 그릇 하나라 그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이며 화목제물로 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라 이는 암미나답의 아들 나손의 헌물이었더라 둘째 날에는 잇사갈의 지휘관 수알의 아들 느다넬이 헌물을 드렸으니 그가 드린 헌물도 성소의 세겔로 백삼십 세겔 무게의 은반 하나와 칠십 세겔 무게의 은 바리 하나라 이 두 그릇에는 소제물로 기름 섞은 고운 가루를 채웠고 또 열 세겔 무게의 금 그릇 하나라 그것에는 향을 채웠고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숫양 한 마리와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 한 마리이며 화목제물로 소 두 마리와 숫양 다섯 마리와 숫염소 다섯 마리와 일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라 이는 수알의 아들 느다넬의 헌물이었더라
민수기 7:84–89 NKRV
이는 곧 제단에 기름 바르던 날에 이스라엘 지휘관들이 드린 바 제단의 봉헌물이라 은 쟁반이 열둘이요 은 바리가 열둘이요 금 그릇이 열둘이니 은 쟁반은 각각 백삼십 세겔 무게요 은 바리는 각각 칠십 세겔 무게라 성소의 세겔로 모든 기구의 은이 모두 이천사백 세겔이요 또 향을 채운 금 그릇이 열둘이니 성소의 세겔로 각각 열 세겔 무게라 그 그릇의 금이 모두 백이십 세겔이요 또 번제물로 수송아지가 열두 마리요 숫양이 열두 마리요 일 년 된 어린 숫양이 열두 마리요 그 소제물이며 속죄제물로 숫염소가 열두 마리이며 화목제물로 수소가 스물네 마리요 숫양이 육십 마리요 숫염소가 육십 마리요 일 년 된 어린 숫양이 육십 마리라 이는 제단에 기름 바른 후에 드린 바 제단의 봉헌물이었더라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서 여호와께 말하려 할 때에 증거궤 위 속죄소 위의 두 그룹 사이에서 자기에게 말씀하시는 목소리를 들었으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심이었더라

공동체성

우리 민족처럼 고난과 시련을 많이 겪은 민족이 또 있을까요? 지난 수천년의 역사 동안 우리 민족은 숱하게 많은 국난을 겪어 왔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국난을 하나하나 극복해왔기 때문에 우리가 오늘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모여 살아갈 수 있는 것이겠지요. 우리 민족은 역사적인 위기의 순간마다 저력을 보여준 참 대단한 민족입니다. 오죽하면 우리 민족은 국난 극복이 취미이자 특기인 민족이라고까지 말하겠습니까? 몇가지 자랑스러운 예들을 한 번 생각해볼까요?
우리나라는 고대로부터 주변 강대국들에게서 끊임없는 침략을 받았습니다. 온 나라가 위태로운 순간에 자발적으로 모여 나라를 위해 싸웠던 민간인 병사들, 즉 의병들의 활동을 통해 끝내 전쟁에서 승리한 역사가 자주 있었습니다. 의병의 전통은 이미 삼국시대부터 비롯되었으며, 고려·조선 시대를 거쳐 조선 말기에까지 이릅니다. 특히 조선 말기의 의병은 일제에 강점된 뒤 독립운동으로 이어져 항일 독립군의 모태가 되기도 하였지요. 이러한 선조들이 아니었으면 이 민족은 진작에 강대국들에 의해 뿔뿔히 흩어지고 말았을 것입니다.
벌써 25년 전의 일이 되었습니다만, 1997년 당시 대한민국은 IMF 외환위기로 심각한 경제 위기에 빠졌습니다. 그때 우리 민족은 나라를 살려야 한다고 금모으기 운동을 벌여 무려 3년이나 일찍 국가 부채를 모두 상환했습니다. 당시 너나 할것 없이 나라를 위해 단결하는 모습을 보고 imf와 해외 투자기관들이 대한민국은 충분히 위기를 극복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여 신용등급을 대폭 상향 조정을 해주었다고 합니다.
또 2007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2007년 12월 충청남도 태안군에서 유조선이 사고로 크레인선과 충돌하여 기름이 유출되는 대형 재난이 발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기름을 걷어내는데만 10년, 바다가 완전히 회복되는데 30년 정도의 기간이 걸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발벗고 나서 방제작업을 펼친 덕분에 불과 두 달만에 기름을 대부분 걷어냈고, 7년이 채 지나지 않아 바다의 생태계가 회복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자원봉사자로 모인 인파가 무려 123만 명에 달했다고 하네요.
이렇듯 우리 민족은 위기의 순간마다 평범한 국민들이 다 함께 일어나 힘을 합해 왔습니다. 다시 말해서 공동체성이 아주 강한 민족이라는 것이지요. 우리 민족의 저력은 특별한 한 사람이 아니라 모두가 단결하는 공동체성에서 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사실 사회에서 이런 공동체성을 가장 잘 찾아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그 말 자체부터 공동체라는 의미를 강하게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요. 오늘 주시는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 교회라는 단어의 어원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교회라는 말은 사실 본래 구약시대에 쓰던 말이 아니었는데요, 성경을 찾아보면 구약성경에 교회라는 단어는 단 한차례도 등장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단어는 오직 신약성경에만 나타나지요. 이 교회라는 단어는 본래 헬라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하는데, 에클레시아라는 단어는 'ek(밖으로)'와 'caleo(부르다)'를 합하여 만든 합성어로서 직역하자면 불러내진 사람들 정도가 되겠고, 흔히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본래 고대 그리스에서 국가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기 위해 소집한 사람들 즉, 민회라고 부른 모임을 가리키는 말이었지만,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말이 자신들의 공동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께 그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아주 잘 나타낼 것이라 생각해서 이 말을 자신들의 공동체를 가리키는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구약시대에는 교회가 없었을까요? 아닙니다. 지난 설교에서 나누었듯 구약시대에도 교회는 분명히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교회라는 단어로 등장하지는 않고, 회중이라는 단어로 등장하기에 우리가 구약성경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 회중이라는 단어는 본래 히브리어로 카할이라고 하는데요, 헬라어 에클레시아와 뜻이 같습니다. 카할 역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선택받은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요.
시대에 따라서 사용하는 단어는 다르지만 의미는 같습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지 두 가지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는 하나님께서 선택하시고 불러내셔서 세우신다는 것이구요, 둘째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교회는 언제나 사람들 즉, 공동체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교회를 공동체로 세우셨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교회로서 이러한 공동체성을 지켜가고 더욱 풍성하게 이룰 수 있도록 마땅히 애써야 합니다. 우리 교회의 모든 활동과 모습들 속에서 세상으로 하여금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를 볼 수 있게 해야하지요.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우신 공동체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그 모습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는 것에 대한 얼마나 큰 증거가 되겠습니까? 2023년 한해 하나님께서 이루실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위해 우리는 지금보다 더욱 공동체성을 이루기 위해 힘써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일에 어떤 모습으로 공동체로서 함께 노력해야할까요?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한 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예배

오늘 우리가 원래 읽어야 할 본문은 사실 상당히 길었습니다. 12절부터 89절까지니까 총 78절의 분량이었네요. 모두 읽기에는 시간 상 어려움이 있고, 똑같은 내용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에 제가 중간 부분을 조금 생략하고 봉독할 분량을 정했습니다. 어떤 내용이 반복되고 있습니까? 열두날 동안 예물을 봉헌하는 지파와 그 지도자만 매일 달라질 뿐 정확히 똑같은 예물을 드리는 내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각 지파에서 드리는 예물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죠. 소제물을 담는 은쟁반과 은대접, 향올 가득 담는 금그릇 하나, 번제물을 위한 수송아지 한 마리, 숫양 한 마리, 일 년 된 어린 숫양 한 마리, 속죄제물올 위한 숫염소 한 마리, 화목제물올 위한 소 두 마리, 숫양 다섯 마리, 숫염소 다섯마리, 일 년 된 어린 숫양 다섯 마리. 모든 지파가 같은 품목, 같은 양의 예물을 봉헌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각 지파의 우두머리가 봉헌하는 예물들은 먼저 드린 예물과 목적이 다릅니다. 먼저 드린 예물은 3절을 보시면 장막 앞에 드린 것이라고 나오고, 지금 드리는 예물은 10절을 보시면 제단 앞에 드린 것이라고 각기 구별되어 쓰여 있습니다. 또한 5절을 보시면 먼저 드린 예물은 레위인들이 회막 봉사를 할 때 쓰기 위한 것이라고 나오고, 10절을 보시면 지금 드리는 예물은 제단의 봉헌을 위한 예물이라고 각기 구별되어 쓰여 있습니다.
전자와 후자,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앞서 드린 헌물은 앞으로 레위인들이 봉사를 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물품들이었고, 지금 드리는 예물은 이제 처음으로 이 제단에서 드려질 예배를 위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물입니다. 둘다 예배에 반드시 필요한 것이긴 하지만, 후자의 것이 레위인이 아닌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께서 받으신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예배를 위한 예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이 예물은 처음 드려질 예배를 위해 드리는 것임과 동시에 앞으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예배를 위해 온 공동체가 어떻게 하나님께 드릴 예배를 준비해야할지 방향을 가리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열두 지파가 하나님께 드린 예물의 양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이들이 지금 광야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예배를 위해 예물을 준비하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금과 은이라는 귀한 것을 광야에서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간단하게 구할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을 사막 한복판에서 캐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렇다고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이집트를 탈출할 때 그들이 전리품으로 챙겼던 금과 은으로 된 패물들을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준비하기 위해 너도나도 내놓았을 것입니다. 제물로 드릴 많은 가축들은 또 어땠겠습니까? 가장 귀한 운송수단
양이나 염소는 털을 공급해준다. 이 털로 옷을 만들어 입는다.
양이나 염소는 매일 젖을 공급해 준다. 젖으로는 치즈나 요쿠르트를 만들 수 있다.
양이나 염소가 죽으면 고기를 먹는다.
가죽으로는 장막을 만들기도 하고 물 주머니를 만든다.
뿔로는 나팔을 만들어 양을 칠 때 사용한다.
피는 제사용으로 사용한다.
뼈로는 연장을 만든다.
광야에는 나무가 없다. 그러면 어떻게 불을 지필 수 있었을까? 바로 양이나 염소의 똥을 사용한다. 양이나 염소의 똥을 말려서 불을 지피는 것이다.
이처럼 양이나 염소는 인간의 의식주를 다 해결해 줄 수 있는 긴요한 가축이었다.
사람은 쉬이 잊을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신다.
본문은 똑같이 12번 반복되는 내용이지만, 그것올 한꺼번에 요약해놓지 않고 12일로 나누어서 일일이 되풀이하고 있다. 12 일 동안 이스라엘 열두 지파가 드리는 제물의 양과 값어치는 모두 똑같다. 이스라엘의 온 지파가 모두 균등하게 참여하여 하나님의 성소를 유지, 관리해야 한다. 성막의 운영올 후원하는 일에는 지파 사이에 어떤 차별이나 구별도 없다. 그리고 이 모든 일올 책임지고 총괄하는 지도자는 제사장이다. 본문은 이런 식으로 이스라엘 종교의 성장과 부흥올 위한 신학적 강령올 제시하고 있다.
본문은 이런 통계를 통해서 다음 몇 가지 사실올 주지시킨다. 첫째, 아스라엘 각 지파는 하나님의 성소를 후원하는 일에 책임을 져야 한다. 둘째 , 이스라엘 각 지파들은, 그 군사적인 규모의 형편이 어떻든, 동일하고
균퉁하게 성소를 후원해야 한다. 셋째 이스라엘 지파들이 바치는 봉헌예물은 하나님이 지시하시기 전에 이스라엘 지파들이 자원해서 자발적으로 바친 것이다. 넷째 ,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소에 접근할 때는 통
일한 형식에 따라서 예물을 가지고 냐아가야 한다. 다섯째, 이 처방에 이스라옐 자손들이 기꺼이 순종한다면, 이스라엘의 야웨 종교는 회복되고 부홍될 것이다. 여섯째, ‘제단의 봉헌식’ 때 “제단 앞에n 예물을 바친다는
것은 이스라엘 종교의 근간이 제단에서 시행되는 회생제사에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준다. 일곱째 , 제단의 봉헌과 회생제사의 시작은 이스라엘이 시내산에 머물러 있올 때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제도이다.
교회는 공동체 모두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세워져간다.
출 40:34-35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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