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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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월 첫째주 청년부예배 >
신앙고백: 사도신경
찬 송: 부르신 곳에서
대표기도: 전영민 목사
성경봉독: 요한복음 19:38-40(신약 182쪽)
요한복음 19:38–40 NKRV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말씀증언: 제자입니까?
반갑습니다.
올 한해 주님의 은혜가 충만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올해 청년부 모임을 준비하면서요. 어떤 모임을 이루면 좋을 지를 생각했어요.
작년에는 성경공부를 통해 여러분들의 성경지식을 쌓는 일에 힘을 쏟고자 했는데요. 그래서 성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볼 수 있는 책을 통해서 그 순서에 따라 모임을 준비했고요.
다만, 저의 형편으로 그 일을 결국 완수하지 못했어요. 그러면서 올해는 작년의 했던 일을 완수할까를 고민했는데요. 방향을 바꾸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물론 저는 지금도 성경지식을 쌓는 일이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부정하진 않아요. 다만, 그것이 우리의 현재 상황에 적합한 것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얻은 결론은 성경지식을 쌓는 일보다 말씀을 통해 삶을 돌아보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니깐,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생각하는 일, 그것을 바탕으로 삶에 관해 생각하고 살아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라도 성경지식을 쌓는 일은 여전히 필요한데요. 그에 앞서 하나님 말씀의 능력을 경험하는 일이 더 먼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마치 맛있는 음식을 먼저 먹어보는 것이 음식을 이해하는 것에 더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데요. 성경을 이해함에 있어서도 성경의 맛을 먼저 경험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제가 일류 요리사 또는 일류 설교가는 아니지만, 부족하더라도 최선을 다해 성경을 잘 요리(?)해서 여러분들에게 전달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에 따라서 앞으로는 제가 주로 설교로 말씀을 전하게 될 텐데요. 그와 더불어서 형식도 올해는 성경공부의 방식을 취하지 않고, 예배로 바꿔서 하려고 해요.
서론이 많이 길었는데요. 제가 이 모임을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방식으로 운영할 것인지를 잘 전하고 싶었네요.
본론으로 들어가서요.
이번 주에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얘기는 ‘제자’에 관한 얘기에요.
제가 근래에 “팬인가, 제자인가”라는 책을 접했어요. 사실 2012년에 초판이 나오고 2017년에 개정증보판이 나온 오래되고 유명한 책인데요. 미국에서 목회하시는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이 쓴 책이에요.
원래 제목은 “not a fan”인데요. 우리말 번역으로 “팬인가, 제자인가”라는 제목으로 나왔어요. 아직 책을 다 읽지는 못했지만요. 이미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게 느껴졌어요.
특별히 팬과 제자를 대비시키는 한국어 제목이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결국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는 제자로 살아야 한다는 것인데요.
저자인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이 이 책을 쓰게 된 배경에 관해 책머리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어요.
부활주일을 앞둔 어느 날이었는데요. 설교 준비를 하는 것에 평소보다 어려움을 겪었다고 해요. 왜냐하면, 미국에서는 그렇다고 해요.
꼭 신앙생활을 하지 않아도 또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 이들도 부활주일이나 성탄일 같은 때에는 교회를 나오는 이들이 있다고 해요.
그러니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 입장에서 부활주일은 모처럼 교회를 찾는 이들에게 전도할 좋은 기회였던 셈이죠. 하지만 이에 따른 부담 또한 커져서 설교 준비가 어려웠다고 해요.
그러다가 문득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를 생각했고요. 그리고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이야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고 해요.
그 과정에서 깨닫게 되었는데요.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은 자신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됐어요. 자신은 그간 예배당에 오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흥미와 관심을 끌만한 얘기를 할지를 고민했는데요.
놀랍게도 예수님의 방식은 그와 정반대였다는 거예요. 예수님은 오히려 사람들에게 거북스러운 얘기를 하셨다는 거예요. 그것이 가장 측근에서 그를 따르던 이들에게까지도 말이지요.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고, 가롯유다는 예수님을 배신하기까지 했죠.
결국 예수님은 인기를 얻기 위한 사역을 하신 것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제자를 만드는 사역이었던 것인데요. 카일 아이들먼 목사님은 여기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어요.
‘나는 과연 예수님의 제자를 만들고자 했던가? 아니면 예수님의 팬을 만든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지요. 그리고 자기 스스로도 예수님의 제자를 자청했지만, 어쩌면, 팬의 모습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를 돌아보았다고 해요.
자칫 제자와 팬은 다르지 않아 보일 수 있어요. 오히려 제자보다 팬이 더 열광적일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둘은 분명 차이가 나요. 간단하게만 말하면, 제자는 헌신할 수 있지만, 팬은 헌신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또 제자야말로 스승의 가르침을 따를 수 있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보자면 이래요. 저는 스포츠를 즐기진 않아서 잘은 모르지만요. 요새 손흥민 선수가 꽤 인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많은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경기력에 응원을 보내고 박수칠 거예요. 더 나아가서 그를 사랑한다고 말할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 사람들 대부분은 손흥민 선수의 팬이지 제자는 아니라는 거예요. 제자가 되는 것은 손흥민 선수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는 것이니까요. 남몰래 흘렸던 땀방울을 감당하는 일이니까요. 사람들 대부분은 그와 같은 노력과 고난을 멀리서 지켜볼 따름이지, 결코 자신이 감당하려 하진 않아요.
그러니 분명 팬과 제자는 구분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한 사람에게서도 구분되어 나타나기도 해요. 우리는 그러한 인물을 성경에서 발견할 수 있는데요. 바로 ‘니고데모’라는 사람입니다.
간략히 그에 관해 소개하자면, 그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당시에 활동했던 인물인데요. 성경은 그를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으로 소개하고 있어요.
산헤드린 공의회 또는 그 회원에 관해 소개하자면 이래요. 당시는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고대 로마제국의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이었어요. 그래서 원칙적으로는 이스라엘은 주권이 없었지요.
이는 나라 운영을 비롯하여 재판에 관해서 모두 로마제국의 감독을 받아야 했어요. 그러나 딱 한 가지 문제에 관해서는 로마제국은 이스라엘에 자치권을 허락해줬는데요. 그것이 종교적인 문제에 관한 것이었어요.
다시 말해서, 종교적 차원에서 이뤄지는 제반 활동은 로마제국의 간섭을 받지 않을 수 있었는데요. 오늘날 세상에서 종교적인 영역이라는 것은 사회 전체를 놓고 보면, 일부분에 지나지 않지만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종교적인 영역은 사실은 국가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가장 중요한 영역이었어요.
그러한 일들을 결정하고 판단하는 곳이 바로 산헤드린 공의회였어요. 그리고 그곳에 속한 회원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가장 존경받는 인물들이었고요. 다시 말해 니고데모가 바로 그런 인물이었어요.
그런 점에서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만난은 특별했는데요. 우선 성경을 같이 찾아봅시다.
요한복음 3장 1절에서 2절 말씀입니다. 신약 145쪽입니다.
요한복음 3:1–2 NKRV
그런데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유대인의 지도자라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방금 읽은 구절에서도 확인할 수 있지만, 니고데모가 유대인의 지도자로 소개되고 있는데요. 아래에 각주를 보면, 또는 ‘산헤드린 공회원’이라고 되어 있어요. 그가 유명한 대단한 인물이었다는 것이죠.
그런 그가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은 우리가 주목할 지점이고요. 또 그가 예수님을 높이고 있는 것을 볼 때, 예수님에 관해서 호의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또한 주목할 것은 그가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다는 것이지요. 왜? 밤일까요? 추측해보자면, 남들의 이목을 피하기 위해서였음을 알 수 있죠.
이것은 니고데모가 유명인사였기 때문에 예수님께 사람들의 이목이 솔리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요.
또 다르게는 그가 예수님과 만난다는 사실을 숨기고 싶어했을 것이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앞서 얘기한 것처럼, 예수님은 당시에 때때로 사람들 거북스럽게 만드는 말들을 하셨기 때문에 모두가 예수님께 호의적이지 않았지요. 특히나 기득권을 가졌던 세력들 곧 바리새파 사람들에게는 적대적인 사람으로 여겨지기까지 했죠.
한편 니고데모는 또한 바리새파 사람이기도 했으니까요. 여러 정황들을 놓고보면,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배려해서 밤에 찾아간 것이 아니라, 니고데모가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여서 밤에 찾아갔다는 말이 더 맞을 거예요.
앞서 소개한 “팬인가, 제자인가”라는 책에서 이러한 니고데모의 모습을 ‘팬’의 모습으로 설명해요. 남몰래 예수님을 존경하고 특별히 여긴다고 할지라도 결국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그에 따라서 스승이 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는 결국 팬에 머물러 있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나는 기독교인이라고 말하면서 그에 걸맞는 삶을 살고 있나요? 교회에서는 신실한 기독교인이지만, 밖에서는 그것을 숨기며 살아가는 샤이 기독교인인가요? 어쩌면 나도 니고데모처럼 밤을 틈타서 남들의 이목이 사라져야지만 기독교인으로 변모하는 것은 아닌가요?
만약에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걱정할 것은 없어요. 왜냐하면, 니고데모는 팬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의 내용이 사실 그것을 보여주는 것인데요. 다시 한번 같이 읽어봅시다. 요한복음 19장 38-40절, 신약 182쪽입니다.
요한복음 19:38–40 NKRV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에 그 시신을 제자들이 찾아간 이야기인데요. 사실 이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었어요. 예수님은 일종의 로마제국에 관한 반역죄로 십자가형이라는 잔인한 형벌에 처하여 죽임을 당했는데요. 그 시신을 찾는 것은 나 또한 그와 한패라는 것을 나타내는 일이니까요. 자칫하면 그도 십자가형에 처해질지도 모르죠.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어요. 그가 ‘예수님의 제자’였다고 말이죠. 그리고 그 제자 중에 한 사람이 또한 ‘니고데모’이기도 했어요. 앞서 그가 산헤드린회 회원이었던 것을 기억하셔야 해요. 또한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그였던 것을 기억하셔야 해요. 그러한 그가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변화되었죠. 더 이상 밤에 몰래 예수님을 쫓는 팬이 아니라, 사람들이 주목하고 자리에서 예수님의 제자를 자청하는 모습으로 변화됐어요.
그것은 우리에게 또 저에게 긍정적인 신호로 읽혀져요. 저 또한 스스로 돌이켜 봐요. 나는 예수님의 제자인가? 그렇다면 과연 그에 걸맞는 삶을 살아가고 있나? 나는 어쩌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주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것이 팬과 제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돌아보고 반성하는 지점이지요.
그러나 니고데모의 변화는 나 그리고 우리 또한 변화할 수 있음을 교훈해 주고 있어요. 그러니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팬을 넘어서 제자로 거듭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지요. 저는 그것이 저와 여러분들의 신앙생활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더 단단히 만들고 여러분의 신앙을 한층 더 성숙시킬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데, 더 이상 팬에 머물지 말고 제자로 거듭나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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