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15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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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하신다

하늘고 친구들 반갑습니다! 다들 지난 한주 잘 보냈죠? 오늘도 예배당에서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게 되어 너무나도 반갑습니다.
우리 지난주에 이어서 오늘도 전도사님하고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되었는데요, 우리 지난주에 어떤 말씀 나누었는지 기억하나요?
우리가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했죠? 바로 바보같은 삶을 살아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먼저 우리에 앞서 그러한 낮아지심의 삶을 살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발자취를 따라 나아가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 친구들 어때요? 한주간 그렇게 살아갔나요?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다면 너무나도 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하려고 해도 사실은 그런 삶을 실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우리는 항상 말씀을 들으면서 오 정말 이 말씀이 너무나도 지금 내게 필요한 것 같아! 나도 이제 이러한 삶을 살아갈거야! 라고 생각을 하지만, 당장의 삶으로 나아가면 그것을 행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가장 좋은 예가 언제일까요? 바로 교회 수련회때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도 이제 캠프를 한달정도 남겨놓고 있는데요, 보통 우리가 수련회를 가면 어떻게 하죠? 말씀을 듣고 정말 은혜를 받아서 울면서 막 기도하고, 주님, 제가 정말 변화할게요! 이제는 주님 원하시는 삶을 살아갈게요! 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어때요? 그 마음은 한주를 넘어가면 상당부분 사라지게 됩니다. 다시 이전으로 돌아갈 때가 많다는 것이죠.
그건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어릴 때 막 은혜받아서 마음속으로 변하겠다고 마음먹고서도 그 다음 수련회때 똑같은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을 저조차도 많이 발견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들이 우리 가운데 있는 것일까요? 그때 눈물로 기도했던 기도가 사실 가짜였던 것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우리 친구들 중에 경험한 친구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때의 고백과 기도는 우리가 평상시에 하는 고백들이 아니에요. 그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특별히 주시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님께서 만나주셨고, 그러한 마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결국 우리의 그때의 고백은 진심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마음이었다는 것이에요. 그런데 왜 그 귀한 우리의 마음은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직도 죄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때문에 우리가 죄에서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하고 이끌리게 된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다면 의문이 생길거에요. 우리는 분명히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믿는 사람들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히 구원을 받은 사람들인데, 왜 아직도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로마서 6:6–7 NKRV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이 바울의 말씀만 보아도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우리가 더이상 죄에게 종노릇하지 못하도록 하기기 위함이셨습니다.
하지만 그러면 구원받은 우리는 지속적으로 말씀을 지키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죠. 모든 말씀이 아니라, 남을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 한구절도 지키지 못합니다. 심지어는 술 취하지 말라라는 구절을 보고서 취하지만 않으면 되잖아요! 라고 하면서 마음대로 해석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대체 우리는 구원받은 사람이 맞는 것일까요? 구원받은 사람이 맞다면, 왜 우리는 말씀을 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일까요? 오늘의 말씀을 보면서 함께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말씀은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회에게 쓴 편지글을 담고 있습니다. 친구들, 혹시 편지글의 특징을 알고 있나요? 다른 글과 다른 점 말이죠. 바로 편지글은 발신자와 수신자가 있으며, 특수한 목적성에 의해 쓰여졌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의 이 갈라디아서 역시도 특수한 목적에 의해 쓰여진 것일거에요. 그렇기 때문에 먼저 우리는 이 갈라디아교회 가운데 있는 배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갈라디아교회는 어떤 문제가 있었냐면, 헬라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인 그리스도인들간에 갈등이 있었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당시 많은 초대교회들에게 있던 공통적인 문제이기도 했는데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는 물론 예수님을 믿는 이들이긴 했지만, 원래 유대교의 문화 속에서 자라왔기 때문에 유대 율법에 대한 엄격한 준수를 행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헬라인들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유대교 문화 속에서 있지 않았기 때문에, 그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그들은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선교했던 바울 역시도 그렇게 가르쳤죠.
그런데 교회에 이런 헬라인들과 유대인들이 함께하다보니 문제가 생겨난 것입니다. 바울이 이방인들을 향해 오직 믿음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 라고 이야기를 한 후에 다른 교회로 전도를 떠나면, 그 후에 다른 보수적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이 나와서 믿음 뿐만 아니라 더해서 율법을 준수해야 진정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라고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율법 준수를 하려면 여러 말씀을 해야 했지만, 가장 큰 것이 무엇을 해야 할까요? 할례를 해야합니다. 그러다보니 이 할례를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할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었다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는 엄청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바울이 그러한 혼란을 잠재우기 위해 이 편지글을 쓴 것이었죠.
특히 오늘 본문의 앞 내용을 보면 그 혼란을 잘 보여주는 상황이 등장을 합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냐 하면, 예수님의 제자였던 베드로가 이방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다가 유대인들이 찾아오자 그들의 눈치를 보고 그 식사자리에서 떠났다라는 거에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로부터 이방인과 식사한다고 책망을 듣기가 싫었다는 것이죠. 결국 이 일에 대해 바울은 베드로를 책망하게 됩니다.
이정도로 사실 이 율법 준수, 말씀 준수에 대한 문제는 지금 뿐만이 아니라 초대교회때도 존재했던 문제였다라는 거에요.
그렇다면 과연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뭐라고 이야기를 했을까요? 함께 16절부터 살펴봅시다.
바울은 뭐라고 이야기를 시작하냐면,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결국 바울의 말은 뭐겠어요? 말씀을 지켜야지만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믿음을 가져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러면 우리에게 또 이런 질문이 필요하겠죠. 그렇다면 말씀은 우리에게 필요 없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이죠. 믿음만 가지고 구원을 받을 수 있다면 율법이 굳이 필요하지 않은 것이니까 말이죠.
그렇다면 바울은 율법에 대해서 뭐라고 했을까요?
갈라디아서 3:23–25 NKRV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는 율법 아래에 매인 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바울은 율법에 대해 우리를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이야기합니다. 친구들, 초등학교 선생님이 알려주는게 어떤 것이죠?
물론 국어 영어 수학 같은 과목들을 알려주시기도 하지만,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온 1학년들에게는 어떤 것들을 알려줄까요? 학교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친구들과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를 알려줄거에요.
제가 1학년 때에는 국영수 말고 우리들은 1학년이라는 과목이 있었어요. 그 내용이 어떤 것이었냐면, 선생님을 만나면 공손하게 인사해요. 복도에서는 뛰지 않아요. 와 같은 정말 기초적인 사회생활에 대해 배우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것처럼 초등학교때에는 정말 기초적인 행해야 할 것들, 행하지 않아야 할 것들에 대해서 배웁니다.
율법의 역할이 이런 것이었다는 거에요. 믿음, 즉 예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오시기 전까지 율법을 통해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를 알려주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런데, 우리가 초등학교때를 한번 생각해봅시다. 그때 배우면 배우는대로 다 그대로 따르나요? 그렇지 않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복도에서 뛰어다니면서 떠드는 친구들이 있어요. 사실 그 내용들이 간단해보이지만 지키기 쉽지 않다는 것이죠.
율법도 그렇습니다. 율법의 내용이 정말 초등교사 수준으로 간단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지키지 못합니다. 바울 역시도 그래서 율법으로는 우리가 죄를 깨닫기만 한다고 이야기를 하죠.
예수님의 때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을 합니다. 어떤 청년이 예수님께 나아와서 영생에 대해 물으니 예수님이 말씀을 지키라고 말씀하시고, 자신이 말씀을 다 지킨다고 하니까 이웃에게 재물을 나누어주라고 하시니 아무말 없이 돌아갔던 일이 있죠. 이처럼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이 말씀을 100%지키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말씀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겠네요? 어차피 아무도 지키지도 않고, 지킬 수도 없는데, 굳이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지킬 필요가 없는 것이잖아요.
그런 생각을 가진 친구들에게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주십니다.
야고보서 2:14–17 NKRV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이 말씀은 무엇을 말하고 있죠? 행함이 없는 삶은, 그러니까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주지 않는 사람의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말하는 거에요.
그러면 또 우리에게 혼란이 찾아옵니다. 말씀 한쪽에서는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하고, 어느 한쪽에서는 행함이 있어야 한다고 하고.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시 오늘의 본문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본문 20절을 보면 유명한 말씀이 등장을 합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갈라디아서 2:20 NKRV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 모든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실 우리는 원래 말씀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최초로 언약을 하셨을 때에도 그러했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를 따먹지 않고,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다면 우리는 영생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서 죄가 생겨났고, 우리는 그 죄로 인해서 지속적으로 말씀을 지킬 수 없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죄를 지으면 어떻게 해야 하죠? 벌이 있어야 하죠. 우리 역시도 사실 그 죄로 인해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바로 사망이라는 형벌이죠.
그래서 우리는 사실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고 죄만을 지으며 살아갔기 때문이죠.
그런데 그 때 하나님께서 누구를 보내셨죠?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그를 보내셔서 우리가 받을 죄의 형벌을 대신하도록 하셨습니다. 왜요?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사망의 길로 가도록 두지 않으시고자 했던 것이죠.
그래서 예수님은 지난주에 말했듯 낮은 자리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모든 고통과 죽음을 당하십니다. 동시에 그가 이 땅에서 행하셨던 모든 일은 하나도 죄악된 일이 없이 모든 말씀을 그대로 지키셨습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우리의 사형수 옷을 입으시고, 대신 입고오신 깔끔한 왕의 옷을 우리에게 입히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치르시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지키신 의로서 의롭게 되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과 우리는 그를 믿는 믿음으로 한 몸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20절에서 말한 것처럼 이전의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예수님이 주신 왕의 옷을 입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 하나로 겨우 살 수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다시 한번 설명드릴게요.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대신 사형수 옷을 입으시고 내가 대신 형벌을 받겠다고 하시면서 나에게 왕의 옷을 주시고, 십자가 형벌을 통해 그 모든 죄를 대신하시고,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그 모든 사실을 믿는 믿음을 통해 우리가 의롭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 용어로 칭의라고 합니다.
결국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예수님께서 모든 말씀을 다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킬 수 없기에 예수님께서 대신 모든 말씀을 지켜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21절에서 바울이 말하듯이 의로운 행위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으면 예수님께서 굳이 그 고통의 길을 행하실 필요가 없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귀한 일을 행하신 것은 우리가 말씀을 전혀 지킬 수 없기에, 대신 예수님께서 지켜주셔야 했다라는 것이죠.
자 그러면, 마지막 질문이 우리에게 남습니다. 그럼 왜 지금 구원이 확정된 우리가 지킬 수 없는 말씀을 지켜야 하냐는 것이죠.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이미 구원이 확정된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대신해서 주님께서 모든 것을 다 지키셨기 때문에, 우리의 앞으로의 모든 죄까지 주님께서 다 갚아주셨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죄를 짓는다고 해서 우리의 구원이 갑자기 취소가 되고 그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구원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택하셔서 그리스도의 대신 죽으심으로 왕의 옷을 입고 의롭다고 칭해진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의 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뿜어져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개인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그의 삶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행동이 나타나야 된다라는 것이죠.
앞서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란는 말씀이 바로 이러한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지 않으면 진정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가 없다라는 것입니다.
정말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해 행하셨다는 그 사실을 믿고, 그것을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의 행동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우리는 함께 말씀을 어느 인간도 행할 수가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해주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우리가 정말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면,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고, 그 성령을 통해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행할 수 없지만, 우리를 그의 능력으로 이끌어 가능하게 하시고, 가능하지 못하더라도 최대한의 능력으로 가까이 나아갈 수 있도록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학적 용어로 성화라고 합니다. 인간이 점점 예수님을 닮아가며 결국에는 완벽한 모습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성화는 한번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우리의 모든 삶을 통틀어 계속적으로 깎이고 깎이면서 다듬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지난 주에 말했던 우리의 삶이 어렵고 힘든 이유중에 하나도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다듬어가시는 과정이라는 것이죠.
물론 우리는 아직도 죄가 많기에 지속적으로 깎여나가야 합니다. 우리 전부의 삶을 통틀어야 할 정도로 거룩해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리스도께서 이 땅 가운데 다시 오실 재림의 때에는 우리 모두가 완벽한 성화를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이루실 것이기 때문이죠.
오늘 말씀을 정리해볼게요. 결국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랑을 통해 의롭게 하신 칭의의 단계에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 구원을 받은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온전한 거룩을 이루는 성화의 단계까지는 이루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아직도, 구원을 받았음에도, 죄악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죠.
하지만 우리가 정말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그래서 성령께서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신다면, 우리는 결국에는 그리스도와 함께 깎이고 깎여 결국에는 온전한 성화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우리가 지킬 수도 없는 말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 성화의 온전한 단계를 이루기 위한 우리의 노력인 것입니다. 또한 우리를 의롭게 하시기 위해 우리의 사형수 옷을 입고 고통당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한 우리의 반응인 것이죠.
이자리에 모인 우리 모든 친구들이, 이 사실을 기억하면서, 말씀을 구원을 얻기 위해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주신 주님께 감사함으로, 주님, 제가 감사하신 주님의 뒤를 따라가겠다는 그 반응으로서 우리의 삶을 주님께로 향할 수 있는 우리 모든 친구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함께 찬양할게요. 오늘은 아까 했던 곡인 내 삶 드리리라는 곡을 함께하겠습니다. 찬양을 통해 나의 진정한 믿음을 가지고 내 삶 전부를 주님을 위한 감사의 반응으로 드리겠다는 고백을 함께하도록 하겠습니다.
말씀을 놓고 기도합시다.
- 우리는 말씀 하나 지킬 수 없는 죄인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사형수 옷을 입고 사랑으로 우리를 의롭다고 칭해 주셨습니다. 그 모든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대한 감사로서, 우리의 모든 삶을 주님께 드리는,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반응이 있기를 원한다고 고백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주님과 함께 성화를 이루는 그러한 우리의 모습이 되게 해달라고, 오늘 말씀을 놓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2. 올해 우리 하임 공동체와 우리의 학교를 위해 함께 기도합시다.
- 주님이 주신 이 공동체가 올 한해 더욱 성장하게 해달라고, 새로 들어올 1학년들이 하임 공동체를 통해 주님을 만나는 귀한 일들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하늘고가 올 한해 어려움 없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형통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함께하는 모든 선생님들, 학생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즐거운 학교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3. 우리의 캠프를 놓고 기도합시다.
- 2월 10-12일에 있을 캠프가 주님 뜻 안에서 잘 진행되게 해달라고, 우리 모두도 이 캠프를 위해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고 준비할 수 있도록, 그래서 많은 영혼들이 캠프를 통해 주님과 교제하는 귀한 시간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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