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예배인가?
Notes
Transcript
요한복음 4:21-24
요한복음 4:21-24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우리의 삶에는 여러가지 종류의 만남이 있습니다.
만남을 세 부류로 정리를 해보면,
절대 만나서는 안 되는 만남
그저 그런 만나나 마나 한 만남
꼭 만나야 하는 만남
누가복음 10장에 등장 하는 강도 만난 어떤 한 사람을 기준으로 보면
자신의 옷을 벗기고 때려 거의 죽게 만든 사람은 - 절대 만나서는 안되는 만남이었을 것이고
죽어가던 자신을 그냥 내버려두고 쳐다보만 보다 간 사람은 - 만나나 마나 한 만남
죽어가던 자신을 치료해주고 돌봄비용까지 지불한 사람은 - 꼭 만나야 하는 만남
오늘 말씀에 등장하는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납니다.
어쩌면 만나서는 안될 사람이었고 만나나 마나 한 사람이었을 수 있어요.
사마리아 여인은 남편에 대한 상처가 있는 여자였습니다.
지금이 여섯번 째 결혼생활이었는데 지금 결혼 생활도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이기 부끄러 아무도 다니지 않는 정오 12시에 물을 뜨러 나왔습니다.
팔레스타인의 지역 특성상 가장 무더운 시간이었기에
사람이 잘 돌아다니지 않은 시간대를 선택한 것이죠.
그렇기에 여자에게 예수님은 절대 만나서는 안 되는 만남이었을 수 있어요.
아니면 그저 빨리 지나쳐가기를 바라는 그저 그런 만나나 마나인 사람이었을 수도 있구요.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만나고 싶지 않은 분인가요?
만나던 만나지 않던 상관없으신 분인가요?
꼭 만나야하는 분인가요?
이 여인에게 불편하게 다가왔던 예수님이었지만,
예수님과 대화를 하며 여인의 인식은 바뀌게 되고
여인에게 있어서 꼭 만나야 할 분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저 목말라서 나에게 물을 요구하는 불편한 나그네에서
나의 모든 아픔과 상처를 알고 있는 나를 치료할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여자는 예수님께 평소 가지고 있던 궁금증을 예수님께 묻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여자가 궁금했던 것은 바로 ‘예배 장소'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그리심산'에서 예배를 드렸어요.
이스라엘의 분열왕국 시대 때,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가 망하고 포로생활 끝에 다시 돌아와 하나님을 예배할 성전을 짓습니다.
그 때 남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람에 성전을 지을 때,
앗수르와 혼혈이 되어버린 사마리아 사람들이 돕겠다는 것을 부정하다고 거절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북이스라엘의 처음 왕이었던 여로보암이 정치적인 이유로
북이스라엘 백성을 예루살렘에 가지 못하도록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만들고 예배하게 했었던 그 장소에 성전을 짓고 예배를 드렸어요.
그래서 여자는 묻습니다.
“어떤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습니까?”
어쩌면 여자는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가지고서
자신의 모습이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다고 탓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소외 받고 무시받는 사마리아인이라는 문제가 해결 된다면,
예루살렘에서 더 좋고 정통있는 곳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내가 이렇게 숨어서 그리고 외롭고 상처받은 모습으로 있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라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마치 내가 더 정통한 학교 학원에 다녔다면,
일타 강사에게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면,
내가 좀더 잘나고 똑똑하고 돈 많은 사람으로 태어났다면,
학교생활이 좀 더 행복했을 것이고 명문대학교도 갈 수 있는 황금길을 걷는 삶이었을 텐데
자신이 처한 상황과 환경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예수님의 답변은 놀라웠습니다.
예수님은 상황과 환경을 보고있는 여자에게
그 속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어떻게 돌아보게 만드는지 함께 살펴봅시다.
먼저, 예배의 장소에 대해 묻는 여자의 질문에
예수님은 예배에 관한 본질로 답을 함으로써 대화의 방향을 돌리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예배의 장소가 문제가 아니라
예배의 주체 되신이를 여자한테 소개해 줍니다.
바로 ‘아버지’ 입니다.
그런데, 이 아버지를 예배할 때가 온다고 합니다.
무슨말이죠? 바로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어주실 것이고
우리는 나의 아버지 되신 하나님을 예배하게 될 것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을 믿으라고 예수님은 명령하십니다.
두 가지 의미를 담을 수 있겠죠.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그분을 예배할 때가 올 것을 믿으라
그리고 이 말을 하고 있는 주체는 자신 즉, 예수님을 믿으라!
그런데 아버지께 예배하는 때가 오는 것은
이 때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 우연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때를 이루는 주체가 있고, 이 주체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수동적인 반응으로 나타나는 것이 바로 그 때라는 거에요.
즉 예수님께서 믿으라고 명령하는 것은,
가장 먼저는 자신을 믿음의 대상으로 선언하고 계시는 겁니다.
여기서 예배의 가장 기본적이고 첫번째 되는 요소가 등장을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
“아버지를 예배하는 때”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을 향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만이 가능한 것임을 이야기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효력은
유대인에게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고
유대인들이 멸시하던 사마리아인에게도 나타나는 보편적인 복음이라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예배에 대한 고민함과 갈급함이 있던 사마리아 여인에게
나를 믿으라! 너희가 아버지를 예배할 때가 올 것이다!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이 선언은 이 팔레스타인 중동지방에만 국한 되는 것도 아니고
온 열방가운데 선언된 약속이고 말씀의 선포였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 이방 민족 중에… 즉 지구상의 모든 민족 가운데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크게 될 것임을 이야기 하십니다.
그렇기에 기독교는
예수님을 믿음을 통해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는 것이 핵심이 되는 믿음의 종교입니다.
그리고 장소와 상관없이 모든 곳곳에서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로 모신 상태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진정한 의미로써의 예배입니다.
예수님은 어느 장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인가에 대한 것을
어떠한 방식으로 누구에게 예배를 드려야 할 것인가로 돌리십니다.
장소적인 예배가 아닌
예수님을 믿고,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나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
이것인 참된 예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아들이신 예수님의 아버지이십니다.
그런 아버지를 예수님은 자신을 통해 아버지라 부르도록 가르치세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붙들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아니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시니
본문에 등장 하는 여인은 하나님을 예배한다는 것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래서 예배는 종교적인 활동에 불과했고, 자신의 삶에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해결하고자 전전긍긍 하고있었던 겁니다.
즉 예배함은 있었지만,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있던 상태였던 겁니다.
여러분은 이 자리에 왜? 어떻게? 나와 예배를 드리고 계십니까?
부모님 때문에, 그냥 드려왔으니까 드리는 예배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이러한 예배라면 여러분은 알지 못하는 것을 지금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그 때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어 주시고 나의 삶은 변하게 됩니다.
불안하고 상처많은 인생이, 외롭고 괴로웠던 인생이 변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세요! 그것이 시작입니다.
이것이 예배의 기본입니다.
예배에 관하여서 장소의 문제를 뛰어 넘은 것 같은데,
22절에서는 다시금 한가지 제약을 거는 것 같습니다.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구원이 어디에서 나온다고 하죠? 바로 유대인.
이말은 어떤 의미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기를 원하시는 이 구원 사역이 역사적인 계획임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안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어떻게 나타내시기로 선택하셨는지 이 사실을 알게하기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시고 다윗을 택하신 겁니다.
유대인을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운반체로 사용하여 하나님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뜻을 이루기를 시작하셨다는 겁니다.
하나님은 유다에 알려지셨으며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 크시도다
하나님께서 유다에 먼저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하지만 자세히 알리시지는 않으셨어요.
이제 예수님을 통해 예배해야할 대상을 명확히 알리시는 겁니다.
바로 이 하나님이 아버지라는 사실을요.
예수님을 믿음으로 통해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어주신다는 사실을요.
이 아버지를 예배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로써 드려지는 예배라는 사실을요.
이 예배가 그렇기에 자녀를 위한 힐링 콘서트가 아니고 소원을 비는 장소가 아니고
오직 아버지의 이름이 높여지고 그분의 뜻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을 키워가는 것임을요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예배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예를 들면 이런거에요.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요?
그래서 묻습니다. 왜 저들은 구원해 주지 않으세요??
우리의 관점입니다.
반대로 생각을 해보세요.
우리 모두는 그리고 이 땅은 심판 받아 죽을 수 밖에 없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구원해 주신 거에요.
한 부류만 선택한 것이 아니고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시는 거에요.
이미 하나님을 잃어버린 세계에 구원을 베풀러 오신 것이에요.
더 쉽게 이야기 하면, 물에 빠졌어요.
거기서 한 사람이 물 속에 밧줄을 던져서 건져내 줬어요.
그 때 우리는 그 사람에게 왜 다른 사람은 안 건져 주고 나만 건지십니까? 화낼 수 있을까요?
구원의 계획을 이루어 가는데 이 역사적인 흐름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도 역사적인 흐름 속에 동참하게 하기 위함이에요.
여러분은 우연히 그저 교회를 다니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교회를 다닐 수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여전히 나를 건져내 주신 생명줄을 붙잡는 것 대신
내 힘으로 잘 살아 보겠다고 열심히 반대편으로 헤엄쳐 가고 계시지는 않나요?
예수님 제대로 믿으시고 예수님 편에서 예수님과 함께 열심히 밧줄을 던지세요.
여러분의 삶의 모양이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성적이 여러분의 목표가 되고 대학이 여러분의 목표가 되고
성공이 여러분의 목표가 되면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예수님을 믿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대학과 성적을 하나님으로 모시는 모르는 것을 예배하는 그런 사마리아 여인과 같은 사람일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길 바랍니다.
바울 또한 동일하게 가르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이 세상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세상의 기준에 속지마시고 넘어지지 마세요.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아들의 영이 우리의 마음 속에 있기에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상태에 대해서 정의 내려주시고
참된 예배의 방식에 대해서 말씀 해 주십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3절 말씀은 21절 말씀의 확장 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1절에서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올 것이다!가
23절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올 것이다! 로 확장되었습니다.
그리고 올 것이다. 다음에 23절에서 “곧 이때라”로 확장되었습니다.
그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가 이 때라. 이것은 미래와 현재가 섞인 무순적인 어법이에요.
예수님은 이 어법을 통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여자에게 명확하게 정의를 내리시는 겁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곧 하나님이다.
왜냐면, 이 때는 사실 십자가를 짊어지고 나서 이루어질 일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직 십자가를 짊어지지 않으셨고 죽임당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그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게 될 때가 올 것인데,
지금 자기를 믿는 것이 곧 하나님께 나아가는 예배라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예배한다고 할 때,
이 영은요 바로 예수그리스도의 영 아들의 영을 통해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거에요.
아까 함께 읽었던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시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아들의 영을 통해 우리가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전에는 하나님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었어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아지만 영이신 자신을 인간에게 나타내시기를 선택하시고
이 방법을 통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예수님은 지금 이 땅 가운데 육체로 계시지 않습니다.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세상은 그를 부정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되기를 거부합니다.
그리고 어떻게든 살겠다고 경쟁하며 남을 짓밟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발버둥 치며 달려갑니다.
그 물살에 여러분 휩쓸리지 마세요.
그 물살 가운데 여러분 가운데 함께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그것이 바로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여러분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의 영 즉 ‘성령’을 의지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처음에 말했듯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 마음대로
오늘은 울적하니 오늘은 기분 좋으니 오늘은 힘든일이 있엇으니
내 기분과 내 상태에 따라 기도하고 예배하기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나와는 상관 없이 나를 위해 십자가를 희생으로 사랑을 표현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봄으로 그 은혜 가운데 나아가는 거에요.
나는 매우 괴롭고 힘들 지만
나를 물속에서 건져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나아가는 거에요.
수능에 초조하고 시험기간에 학원과 성적에 치여도
예배하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이신 이 진리를 알고 믿기 때문이에요.
이 세상을 만드신 이가 하나님이시고
그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지,
돈과 성공이 그리고 권력과 힘이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믿기 때문이에요.
성령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나에게서 이 진리가 떠나지 않게 하는 거에요. 이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 곧 네 위에 있는 나의 영과 네 입에 둔 나의 말이 이제부터 영원하도록 네 입에서와 네 후손의 입에서와 네 후손의 후손의 입에서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왜냐면 이 말씀이 곧 예수 그리스도이고 진리이시며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래서 우리가 지금 이자리에서 예배드리는 것은
우리의 삶 속에서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하기가 쉽지 않기에 이자리에 모여 다시금 결단하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거에요.
출석 체크하고 종교생활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영을 가지고 살며 진리를 나타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여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것을 연습하고 회복하는 거에요.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계십니까?
이곳 이 자리 교회에서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모든 삶 가운데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하고 계십니까?
영과 진리로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고 계십니까?
우리 모두에게는 사명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이 땅가운데서 이루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믿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자신의 상황과 환경에 갇혀 있지 않습니다.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그리고 그 여인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그 땅 가운데 이루어 집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하나님은 이러한 자를 찾고 계십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그런 예배자가
바로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