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성의 기쁨(행1:6-11)
0 ratings
· 15 viewsNotes
Transcript
일시 : 2023년 1월 15일 주일 일대일양육 수료예배
본문 : 사도행전 1장 6-11절 *신187
[축복/환영]
2주간의 모집기간, 그리고 22년 9월 4일 오리엔테이션 시간을 통해 처음 모였고, 또 16주의 시간과 2주간 간증문을 작성하는 시간을 통해 오늘의 시간이 완성되었습니다.
도합 20주라는 정말 길고 길었던 시간들을 함께 걷고 또 웃고 울었던 서로를 바라보며, 우리 이렇게 인사했으면 합니다. ‘고생했다.’
또 한 번 인사했으면 합니다. ‘함께 웃고 울어 고마웠다.’
제게도 일대일 양육은 처음 접해보는 과정이었으며, 또 어떻게 하면 빈틈없이 준비할 수 있을까를 참 많이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그 허점이 제게는 참으로 귀한 경험의 시간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부족한 모습이었기에 더욱 감사가 넘쳤고, 또 제가 누리지 못한 은혜를 다른 이들로 하여금 충족하시는 그런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일대일 양육은 정말 미완성된 자들의 기쁨이 넘치는 잔치라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 자리 가운데 함께 한 성도님들과 함께 나눌 말씀은 너무나 잘 알려진 말씀이자,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오늘 날 우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 선포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수료과정 가운데 은혜를 누리시며, 또 앞으로의 일대일 양육 가운데에서도 은혜를 누리는 모두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Point Message : 1. 우리는 미완성 존재입니다]
먼저 우리가 나눌 첫 번째는, ‘우리는 미완성된 존재’ 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창조됨에는 틀림이 없지만, 그렇다하여 우리가 결코 완전하다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불완전한 존재요 불안정한 존재가 바로 우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기꺼이 사용하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자 부르심에 결단하여 나아갑니다.
그렇다면 누가 제자일까요? 제자란 무엇입니까? 여러분들 중에 ‘나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손 한 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이후로 마인드를 바꾸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옥한흠 목사님은 자신의 저서를 통해 제자란 예수를 믿고 무리 중에 나아온 자들이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제자란 예수님을 믿는 자 모두라는 것이지요.
그러니 오늘 이 자리 가운데 모여 함께 예배를 드리는 우리가 ‘제자’임에 틀림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부름받은 우리는 어떤 존재입니까? 바로 미완성의 존재라는 것이지요. 즉 하나님께서는 미완성인 우리를 제자로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어떠셨습니까? 미완성인 존재가 모여 완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16주의 시간들이 어떠셨나요? 함께 웃고 우는 그 시간들이 참으로 귀하지 않으셨습니까?
[Point Message : 2. 그런 우리를 사용하심에 감사가 넘칩니다]
여기서 우리가 나눌 두 번째는, 그래서 우리가 사용됨에 감사가 넘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본문 속에서도 그렇습니다. 당시 사람들이라 하여 완성된 존재가 있었겠습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하나님의 의중을 잘 알지 못했고, 또 예수님의 심중을 온전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들의 질문이 무엇입니까? 6절입니다.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하니”
여전히 이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이라는 그 한 곳만의 회복을 희망했고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이곳에 온 이유가 무엇입니까? 오직 이스라엘 한 땅만의 회복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땅의 회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미완성된 존재로써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했고, 여전히 무지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들을 향해 어떤 말씀을 전하셨습니까? 7절과 8절입니다.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때와 시기는 너희가 알 수는 없지만, 너희가 해야 할 일이 있어. 그건 너희가 이 땅 가운데 살며 이스라엘 뿐만 아니라 이 땅 곳곳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는거야.’ 라는 답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보고 경험한 자들의 무지함 마저도 받아들이시고 미완성된 자들을 불러 모아 지상명령을 내리시며, 복음 사역에 최선을 다할 것을 선포하셨습니다.
이처럼 오늘 날 우리 가운데도 임하시어 명령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해야할 일들을 말입니다.
그러니 감사 또 감사 아닙니까? 심히 미완성된 우리를 사용하시니, 너무 감사할 내용 아닙니까?
[Point Message : 3. 교회 리더는 준비된 자가 감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또 감사로 끝내는 것은 너무 이기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미완성된 자들을 모아 사용하시기로 했고, 그 사실에 감사한데, ‘네, 주님 너무 감사하네요.’로 딱 끝내버리기엔, 너무 정이 없습니다.
물론 사역을 정으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과 삶의 목표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지상명령, 즉 복음전하는 사역 아니겠습니까? 함께 웃고 함께 우는 것이 우리의 사역 아니겠습니까?
바라옵기로는 이 훈련의 과정이 이대로 끝나지 않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제자가 되고자 이 훈련들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제자로 부르심 받았고, 제자이기 때문에 훈련을 받는 것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교회의 리더들은 이미 완성된 자들이나 감당하는 사역이 아닙니다. 제자는 특공대를 만드는 훈련이 아닙니다. 그저 예수를 닮아가고자 힘쓰는 자들을, 그럴 수 있도록 돕는 환경일 뿐입니다.
올 한해 일대일 양육은 동반자 과정뿐 아니라 양육자 과정이 함께 진행됩니다. 양육자 과정은 이제 동반자 과정을 희망하는 성도님들을 위해 함께 웃고 울어주는 리더가 되는 것입니다. 명심하십시오. 리더는 준비된 자가 감당하는 것이 아닌, 미완성으로 남아 있는 우리 모두가 감당할 자리임을 말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심으로 16주간 함께 은혜를 나누며 기뻐하고 슬퍼하고 행복해할 수 있어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보고서를 보며, 또 청년들과 함께 은혜를 나누며 너무 귀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이 작년 한 해를 버티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 은혜가 그치지 않고 이어져 나가길 소망합니다. 미완성된 자들의 섬김과 그 기쁨이 이어져 나가길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