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20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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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일하심
하나님의 일하심
여러분 반갑습니다. 제가 지지난주에 처음으로 인사를 드렸던 것 같은데, 또 이렇게 금방 함께 말씀을 나누게 되어서 약간 어색하기도 하면서 긴장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오늘 말씀을 준비하면서 여러분들과 어떤 말씀을 나누면 좋을까 고민하다가, 여러분들이 지금 나누고 있는 말씀으로 하면 좋을 것 같다는 우리 준장님의 말씀을 따라 오늘 함께 나누었을 말씀인 요한복음 말씀을 함께 나누려고 합니다.
5장의 말씀에는 여러 말씀들이 나오지만 그래도 가장 대표적인 내용은 여러분들이 잘 알듯이 베데스다 연못 사건일거에요. 그래서 오늘은 이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예수님께서 이 사건에서 어떻게 행동하셨는지, 또한 우리는 그것을 보면서 어떤 것들을 생각할 수 있을지 함께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의 시작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으로 향하시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사실 우리가 연못을 생각하면 보통 아주 아름다운 정원의 느낌을 생각하게 될 거에요.
연꽃이 떠있고, 이쁜 물고기가 돌아다니고, 개구리도 뛰어다니는 좀 운치가 있는 그런 느낌을 생각하게 될 것 같아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나아가셨던 베데스다 연못은 그러한 운치있는 곳은 아니었어요. 왜냐하면 3절에 나온 것처럼 그곳에는 병자, 맹인, 다리저는 사람 등 여러 아픈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그러면 어떤 분위기겠어요? 그렇게 깔끔할 것 같지는 않죠.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곳곳에 퍼져서 있는 상황에, 뜨겁고 추운 중동 날씨에서 바깥에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니까 아마 씻기도 힘들었을 것이고, 그렇기에 많은 냄새도 나고 했을거에요.
그러니 사실 이 베데스다 연못은 우리가 상상하는 그런 연못의 이미지와는 매우 다른, 어떻게 보면 슬럼화가 되어있는 느낌이 드는 곳이었을 거에요. 그리고 그렇다보니 그곳에는 치유를 바라는 병자들과 그들의 가족들 외에는 어떤 사람들도 다니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될거에요.
그렇다면 그러한 곳에 예수님은 왜 행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어떤 모습인지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볼수 있어요. 바로 낮은 자리로 먼저 나아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이죠.
아무도 찾지 않는, 모든 사람들에게 외면받은 사람들에게 먼저 나아가 그들에게 손을 내미시고 고치시는 것이 바로 예수님의 사역이었다는 것입니다.
자 이어서 3절과 4절을 보면, 어떤 내용이 등장하죠? 왜 그렇게 베데스다 연못에 병자들이 모여있었는지를 알려줍니다. 바로 천사가 연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일 때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이 모든 병들을 치유받는다는 것이죠.
자. 우리가 이 이야기를 들으면 생각할 수 있는 것이 ‘이것이 정말 가능하냐’라는 생각일거에요.
사실 과학적으로 보았을 때에는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이죠. 하지만 또 성경에 나와있으니 뭔가 진짜가 아닐까 생각이 되기도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답은 뭘까요? 정답은 알 수 없다. 입니다.
굳이 추측을 해보자면, 정말로 딱 그때 맞춰 들어가면 치유를 받았을 수도 있죠. 아니면 우연찮게 들어갔던 사람이 연못에 있었던 물의 어떠한 성분으로 인해 병이 호전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제가 여기서 어떤 답을 내리지 않는 것은 이 베데스다 연못의 효능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그리 중요치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흔히 이야기하는 맥거핀과 같은 것이라는 이야기에요.
이 베데스다 연못이 우리에게 주는 것은, 그저 당시 그 지역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 전설과 같은 이야기가 하나의 믿음을 형성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 전설을 향한 믿음을 갖고 불편한 몸들을 이끌고 다 베데스다 연못으로 나아왔다는 것이죠.
말씀을 계속 살펴볼게요. 5절부터 보면 38년된 병자가 나타납니다. 연못으로 나아오신 예수님은 그 사람을 보시고 그가 병으로 오랜 기간 고통을 받았다는 것을 아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니 아마 그의 모든 치유를 위한 사투를 아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리고 병자는 대답합니다. 물이 움직일 때 나를 넣어주는 사람이 없어 대신 다른 사람이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답은 뭐겠어요? 한마디로 나좀 넣어줘인 것이죠.
아마도 이 병자는 예수님이 누구시고, 어떠한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전혀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에게는 그저 유대인 1에 그쳤던 것이죠. 그러다보니 낫고자 하느냐라는 질문을 내가 좀 도와줄까?로 이해했던 거에요.
그러자 그때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리고 그 병자는 말씀대로 일어나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게 됩니다. 이것을 행하신 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에 이후 예수님과 유대인들이 안식일 논쟁을 하는 부분이 이어서 등장하지만, 저희는 오늘 여기까지만 한번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이 베데스다 사건을 보면서 어찌보면 그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 중에 하나의 사건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다른 기적들과는 조금 다른 점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께서 먼저 나아오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치유하신 사건은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예수님의 말씀과 그가 행하신 일들을 보고서 예수님께 나아와서 치유해달라고 하는 경우들입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베데스다의 병자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이고 예수님께서 그에게 먼저 다가가 물으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두번째, 치유받는 병자에게 어떠한 믿음의 고백도 발견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발견하는 여러 치유의 기사들에는 예수님을 향한 고백이 발견됩니다. 백부장의 종도 그렇고, 열두해 혈루증을 앓던 여인도 자신의 주님을 향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기뻐하시며 그들을 치유하셨죠.
그런데 이 경우에는 그러한 것이 발견되지가 않습니다. 심지어 이 병자는 예수님이 누구신지도 잘 알지 못합니다. 그냥 유대인 한명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께 자기좀 옮겨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죠.
하지만 예수님은 그를 치유하시는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예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은혜는 전적으로 예수님께서 행하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앞부분을 보면 아까 이야기했던 맥거핀, 바로 베데스다 연못의 전설이 등장을 합니다. 그 전설은 실제인지 아니면 정말 소문에만 불과한 것인지 알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병자들은 그것에 열광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그 전설에 투자합니다.
심지어 그 전설은 수혜자로 하여금 많은 조건들을 요구합니다. 천사가 와서 물을 움직여야 하고, 뿐만 아니라 누구보다도 먼저 그 타이밍에 몸을 담궈야 합니다.
이렇게 어려운 행동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병자들, 심지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그곳에 나아가기조차 힘든 병자들도 열심히 그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하지만 그 행동이 그들을 능히 구원할 수 있었을까요? 물론 어떠한 효과로 인해 호전되었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모든 것들이 확실히 다 낫게 되었다? 그것은 알 수가 없습니다.아마도 개인적으로는 그렇게는 어렵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요, 어쩌면 우리 역시도 이 베데스다 연못과 같은 맥거핀들을 쫓고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에는 이러한 수많은 전설들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도 그러한 전설들을 좇아 열심히 우리의 행동으로 무엇인가를 이루려 합니다.
세상의 것들 뿐만이 아니죠. 우리의 신앙생활도 충분히 그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떤 이상적인 것들을 놓고서, 나의 열심을 통해 그것을 이루어 내려고, 나는 그것을 행할수 있다고 나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우리 가운데 존재합니다.
물론 그러한 열심을 통해서 어떤 이득들을 얻어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베데스다 연못이 모든 병자들을 구원하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 모두는 그러한 열심으로 온전한 평화와 구원을 이루어낼 수 없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 주님은 찾아오십니다. 찾아오셔서 어쩌면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다른 우리의 열심에 취해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을 낫게 하시고, 우리에게 참된 구원을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요, 우리가 가진 어떤 행동을 통해서 이루는 것이 아닙니다. 오로지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냥 거저 주시는 것이 바로 구원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그 병자를 치료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처럼 말이죠.
우리 이자리에 모인 모든 준비팀들도 이 말씀을 잘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역을 행할 때, 쉽게 이러한 생각들을 할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이번에 이러한 것들을 잘 해야만, 캠프가 은혜로울 수 있고, 모두가 은혜를 받을 수 있을거야’
‘내가 이번에 이렇게 해야만 내가 은혜를 받을 수 있을거야’ 이러한 생각들 말이죠.
하지만 말씀에 나타나신 주님은요, 우리의 행동에 구애를 전혀 받으시지 않습니다. 주님이 은혜를 주기 원하신다면, 우리의 행동여하와는 관계없이 은혜를 부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제 이야기를 잠시 해드릴게요. 제가 어릴때부터 수련회 때만 되면 아주 두려워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바로 저녁집회 시간이었어요. 왜냐면 기도회 시간이 되면 눈물을 흘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이 자리에도 이런 경험이 있는 분들이 계실수도 있겠지만요, 저도 어린 시절에는 눈물을 흘리고 감정적인 고양이 있어야만 내가 하나님을 만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도회시간만 되면 그 감정을 짜내려고 정말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런데도 눈물이 잘 안나면 그날은 하나님이 날 찾아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날에 또 주변을 둘러보면 다 열심히 울고 기도하는데 나만 이러고 있으니까 정말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죠. 특히 또 제가 목사님 아들이다보니까 더 그렇게 해야한다라는 강박관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이 고등학교때에 깨지게 되었어요. 순간 왜 꼭 눈물을 흘려야 하지? 라는 의문이 생긴 것이죠. 그냥 눈물 흘리지 않아도 하나님께 내 이야기를 하면 되는것 아닐까? 라고 생각하면서 더이상 눈물을 소위 짜내려는 이러한 노력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러니까 더 이전에 흔히 이야기했던 고양되는 감정이 더 찾아오고, 눈물이 더 흐르더라구요.
왜 이러한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노력을 할때는 안찾아오셨다가 이제 포기하니까 하나님이 찾아온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요, 제가 눈물을 흘리려 노력했던 그 때에도, 그리고 노력을 포기했던 그 때에도 항상 함께하셨습니다. 제가 그것을 몰랐던 것 뿐이죠.
그저 적절할 때에 제가 하나님의 진정하신 임재가 무엇인지를, 나의 노력과 은혜는 상관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준비하는 이 캠프의 자리에서도 이 사실을 우리 준비팀 모두가 기억했으면 좋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 준비팀과 함께하시고, 우리가 짜내는 노력이 아니라, 우리의 있는 그대로를 사용하셔서 우리의 캠프를 주님이 뜻하신 바대로 은혜롭게 완성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그저 하나님께서 일하실 것을 신뢰하고 우리의 할 바를 묵묵히 해나아가는 것 뿐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이 준비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을지도 몰라요. 사탄은 언제나 우리의 이 자리를 노리고 있으니까요. 분명히 고난도 있을 것이고, 마음의 상함도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오늘 보았던 것처럼, 주님은 결국 우리의 캠프 가운데 은혜를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주님의 일하심을 따라 용기를 갖고 나아가는 우리 모든 준비팀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주님은 분명히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일하심을 통해 분명히 우리의 26차 하임 캠프를 은혜롭게 만드실 것입니다.
말씀 한구절 읽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바울과 아볼로로 파가 나뉜 고린도 교회에게 선포한 말씀입니다. 바울이 중요하고 아볼로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에 그저 바울과 아볼로를 사용하시는 것 뿐이라는 것이죠.
우리의 캠프도 마찬가집니다. 우리 이자리에 모인 모든 준비팀 멤버들을 통하여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한걸음한걸음 나아가는 우리 모든 준비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놓고 기도합시다.
- 우리가 오늘 보았던 것처럼 주님은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고, 우리에게 항상 은혜를 베푸십니다.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에 감사하면서, 항상 주님이 말씀하시는 길을 따라가는 우리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우리의 어떤 능력이나 경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우리의 모습들이 되게 해달라고, 이시간 말씀을 통해 주신 은혜를 놓고 함께 기도하며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