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 오직 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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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사도행전 15:1-21
성경본문: 사도행전 15:1-21
사도행전 15:1–21 (NKSV)
1 몇몇 사람이 유대에서 내려와서, 이렇게 신도들을 가르쳤다. “여러분이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2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충돌과 논쟁이 벌어졌다. 드디어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와 신도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해서, 사도들과 장로들을 찾아 보게 하였다.
3 그들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떠나서,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가면서, 이방 사람들이 회개한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곳의 모든 신도들을 매우 기쁘게 하였다. 4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그들은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환영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행하신 일들을 모두 보고하였다.
5 그런데 바리새파에 속하였다가 신도가 된 사람 몇이 일어나서 “이방 사람들에게도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하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6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다루려고 모였다.
7 많은 논쟁을 한 뒤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택하셔서, 이방 사람들도 내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습니다. 8 그리고 사람의 마음 속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9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메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12 그러자 온 회중은 조용해졌다. 그리고 그들은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통하여 이방 사람들 가운데 행하신 온갖 표징과 놀라운 일을 보고하는 것을 들었다.
13 바나바와 바울이 말을 마친 뒤에, 야고보가 대답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14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을 돌아보셔서, 그들 가운데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처음으로 한 백성을 택하신 경위를 시므온이 이야기하였습니다.
15 예언자들의 말도 이것과 일치합니다. 예언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이 뒤에 내가 다시 돌아와서, 무너진 다윗의 집을 다시 짓겠으니, 허물어진 곳을 다시 고치고, 그 집을 바로 세우겠다.
17 그래서 남은 사람이 나 주를 찾고, 내 백성이라는 이름을 받은 모든 이방 사람이 나 주를 찾게 하겠다. 18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니, 주님은 옛부터, 이 모든 일을 알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21 예로부터 어느 도시에나 모세를 전하는 사람이 있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하나 되게 하소서
하나 되게 하소서
공동체의 하나됨과 성숙은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를 공동체가 어떻게 풀어가는 가 하는 모습 속에서 알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높은뜻교회는 민주적인 장로정치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인되심 속에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서로 서로 질서와 규모 속에서 문제들을 풀어가며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뜻을 한 마음으로 하나되어 이루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교회가 은혜를 받고 성도들이 늘어갈 때 헬라파 유대인 과부의 날마다의 구제에 소홀히 되는 문제가 생겼을 때, 교회는 7명의 신실한 교회 지도자를 세워서 일을 지혜롭게 나눔으로서 다시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와같이 오늘 1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수의 복음 증거로 인한 기쁨이 넘치는 안디옥 교회에 한 부류의 사람들이 문제제기를 하게 되면서 이는 당시 유대교와 태동하던 초기 기독교의 핵심적인 구원의 문제로 까지 이 논의가 흘러가게 되었습니다.
이방인의 구원과 할례
이방인의 구원과 할례
사도행전 15:1–2 (NKSV)
1 몇몇 사람이 유대에서 내려와서, 이렇게 신도들을 가르쳤다. “여러분이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2 그래서 바울과 바나바 두 사람과 그들 사이에 적지 않은 충돌과 논쟁이 벌어졌다. 드디어 안디옥 교회는 이 문제로 바울과 바나바와 신도들 가운데 몇 사람을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게 해서, 사도들과 장로들을 찾아 보게 하였다.
몇몇 사람이 유대에서 안디옥교회에 와서 사람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니 구원을 받으려면, 모세의 관례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적어도 당시 초기 기독교 공동체들, 교회들은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복음이 전파되고 그들에게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고넬료에게 세례를 줄 때만해도 베드로를 포함한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예수의 복음이 유대인 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환상 속에서 그 모든 편견을 깨뜨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넬료에게 동일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남을 보고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바로 안디옥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보내어 그리스말을 쓰는 이방인들을 주축된 회심자들을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바울과 함께 안디옥 교회를 세워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안디옥교회는 헬라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함께 모여 교회를 이루고 있었고, 금식할 때 성령의 명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세워서 1차 전도여행을 통해서 각 지역에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세워지고 있던 때였습니다.
유대에서 온 할례파 사람들이 그런 주장을 합니다. 모세의 규례대로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지극히 유대인을 중심으로 하는 당시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의 관점입니다.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관점에서의 구원은 모세의 규례를 따라 할례를 받고 율법과 규례들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이방인의 참된 개종, 즉 이방인이 유대인과 같이 되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구원론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들은 고넬료의 회심 사건 때에도 바울에게 문제제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사도행전 11:2–3 (NKSV)
2 그래서 베드로가 예루살렘에 올라왔을 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3 “당신은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의 집에 들어가서,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은 사람이오” 하고 그를 나무랐다.
그런데, 이 문제가 이방인 선교를 하고 있던 바울과 바나바와 그를 따르는 무할례파가 대립되어 많은 충돌을 일으키고, 논쟁도 벌어졌습니다. 바울과 바나바 입장에서는 이방인들의 구원에 예수의 이름외에는 어떤 조건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인들이 유대인화 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그들이 전하였던 모든 입장과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부정당하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1–5 (NKSV)
1 그 다음에 십사 년이 지나서, 나는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2 내가 거기에 올라간 것은 계시를 따른 것이었습니다. 나는 이방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설명하고, 유명한 사람들에게는 따로 설명하였습니다. 그것은, 내가 달리고 있는 일이나 지금까지 달린 일이 헛되지 않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3 나와 함께 있는 디도는 그리스 사람이지만, 할례를 강요받지 않았습니다. 4 몰래 들어온 거짓 신도들 때문에 할례를 강요받는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리를 노예로 만들고자 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우리의 자유를 엿보려고 몰래 끼여든 자들입니다.
5 우리는 그들에게 잠시도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복음의 진리가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 논쟁과 충돌은 안디옥 교회는 한쪽을 묵살하거나 문제를 덮어 둘 수 없는 큰 문제였습니다. 어쩌면, 교회가 깨어질 판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 할례에 관한 문제가 안디옥교회에서 끝날 문제가 아니라 당시 초기 기독교 사회 전체에 중요한 구원론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 이기에 사도들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서 이 문제를 상의하기로 결정합니다.
사도행전 15:3–4
3 그들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떠나서,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가면서, 이방 사람들이 회개한 일을 이야기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곳의 모든 신도들을 매우 기쁘게 하였다. 4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그들은 교회와 사도들과 장로들에게 환영을 받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행하신 일들을 모두 보고하였다.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을 향하여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안디옥으로 부터 당시의 여행의 방법으로 한달 정도 걸리는 거리였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돌아가는 길에 사도행전_11장에 나오는 개역개정에서는 베니게 라는 페니키아 지역, 그리고, 8장에 나오는 사마리아 지역의 교회들에서 이방사람들의 선교 이야기를 나누자 모두 기뻐합니다. 이를 통해서 당시 기독교인들은 대체적으로 이방인의 선교에대해서 성령이 주시는 영혼 구원의 기쁜 마음이 동일하게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환영을 받는 한 편 , 조금은 냉담하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방인의 선교를 받아들이는 것이 현재 기독교교회의 분위기 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바리새파 출신 유대인 기독교인들이 그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유대인 중심의 선민사상을 기반으로 한 율법 주의적 구원론을 공식적으로 해결하고자 하였고, 이 자체가 매우 중요한 상황이었기에 누가는 사도행전의 가장 중심, 가운데에 이야기를 배치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과 바나바 일행들에대해서, 바리새파 출신 기독교인들의 반응은 냉담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5:5 (NKSV)
5 그런데 바리새파에 속하였다가 신도가 된 사람 몇이 일어나서 “이방 사람들에게도 할례를 행하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명하여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다루려고 모였다고 합니다. 사도행전_15장에 이르러서 누가는 교회의 조직에 변화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교회는 사도들과 교회의 실질적인 지도자들인 장로들이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예루살렘 교회와 안디옥교회는 각각 독립된 교회입니다. 그런데, 두 교회는 당시 기독교 교회 전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마치,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고백하듯이 말입니다. 이제 예루살렘에서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함께 모였습니다.
6 사도들과 장로들이 이 문제를 다루려고 모였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할례문제로 예루살렘 공의회는 꽤나 시끄러웠습니다. 저 같은 사람이 거기에 있었으면, 분위기에 휩싸여서 감정적으로 너무나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예루살렘 공의회는 최고의 기독교 회의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이방인들에게 할례와 율법 준수와 같은 율법의 짐을 지울 것인가? 그렇다면 유대교의 한 분파에 지나지 않는 유대교 갱신 운동에 머물러 있을 잠간의 무브먼트에 지나지 않게 될 판입니다. 그런데 이 때 누가 먼저 말을 시작하는가? 중요합니다. 아마, 바울과 바나바가 이 상황을 정리하려고 한다고 했으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시끌 벅적한 많은 논쟁뒤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의 한마디 뒤에 사람들은 한동안 조용해질 정도로 권위있는 말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체험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가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5:7–11
7 많은 논쟁을 한 뒤에, 베드로가 일어나서 그들에게 말하였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택하셔서, 이방 사람들도 내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습니다. 8 그리고 사람의 마음 속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9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셔서, 그들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을 두지 않으셨습니다. 10 그런데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제자들의 목에 메워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11 우리가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고, 그들도 꼭 마찬가지로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고 우리는 믿습니다.”
베드로는 율법 주의를 한마디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조상들이나 우리가 다 감당할 수 없었던 멍에”라고 말합니다. 할례를 받고 다 지킬 수도 없는 율법의 짐을 지게 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셔서 하나님 아버지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셨는데, 다시 율법 주의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은 말이 안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말합니다. 복음에는 차별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신다고 9절에 말합니다. 즉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두번째 11절에 율법의 어떠한 할례의 증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즉 오직 은혜입니다.
베드로가 말한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무엇입니까? 누가 지금 이방인을 구원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말할 법한 이야기를 예수님의 수제자로 여겨지는 사도 베드로가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하나님께서 일찍이 여러분 가운데서 나를 택하셔서, 이방 사람들도 내가 전하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셨습니다. 8 그리고 사람의 마음 속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이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셔서,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베드로는 고넬료 사건 이후 십여전이 지난 지금 그때를 회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베드로를 택하셔서 이방사람들이 그가 전한 복음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확실히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을에게 성령으로 임재하심으로 구원의 인정하심을 눈으로 보았습니다.
베드로의 말이 끝나자 온 회중은 조용해 졌습니다. 그러자, 이제 바울과 바나바의 제 1차 선교여행에서 있었던 일을 들을 귀가 열렸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이 복음을 전할 때 있었던 모든 일들을 이야기했을 것입니다. 누가는 그 이야기 조차도 기록하지 않습니다. 이미 앞에 기록을 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회의록이 아닙니다. 당시 회의에서 베드로의 발언은 너무나 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이 바로 예수를 믿는 우리들에게 중요한 이신칭의의 교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갈라디아서 2:15–21 (NKSV)
15 우리는 본디 유대 사람이요, 이방인 출신의 죄인이 아닙니다. 16 그러나 사람이,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임을 알고,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고 하심을 받고자 했던 것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행위로는, 아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다고 하심을 받으려고 하다가, 우리가 죄인으로 드러난다면, 그리스도는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시는 분이라는 말입니까? 그럴 수 없습니다. 18 내가 헐어 버린 것을 다시 세우면, 나는 나 스스로를 범법자로 만드는 것입니다.
19 나는 율법과의 관계에서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죽어버렸습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20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이제 살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살고 계십니다. 내가 지금 육신 안에서 살고 있는 삶은, 나를 사랑하셔서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21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의롭다고 하여 주시는 것이 율법으로 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께서는 헛되이 죽으신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회의는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이 기둥으로 인정받은 야고보라고 소개하는 예수님의 형제인 야고보의 발언으로 회의가 정리됩니다.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는 예수님을 육신의 형이 아닌 그리스도로 주님으로 믿게 되었고, 그리고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들 중에 기둥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누가는 야고보의 발언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사도로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체험과 인도하심을 근거로 이방인에게 할례가 필요없음을 말하였다면, 이제 야고보는 유대인들이 각 회당에서 펼쳐서 볼 수 있는 예언자의 말, 아모스서 말씀을 인용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논의를 정리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5:13–17
13 바나바와 바울이 말을 마친 뒤에, 야고보가 대답하였다. “형제 여러분, 내 말을 들어보십시오. 14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을 돌아보셔서, 그들 가운데서 자기 이름을 위하여 처음으로 한 백성을 택하신 경위를 시므온이 이야기하였습니다.
15 예언자들의 말도 이것과 일치합니다. 예언서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6 ‘이 뒤에 내가 다시 돌아와서, 무너진 다윗의 집을 다시 짓겠으니, 허물어진 곳을 다시 고치고, 그 집을 바로 세우겠다.
17 그래서 남은 사람이 나 주를 찾고, 내 백성이라는 이름을 받은 모든 이방 사람이 나 주를 찾게 하겠다. 18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니, 주님은 옛부터, 이 모든 일을 알게 해주시는 분이시다.’
그는 바울과 바나바의 말에 바로 이어서 시므온 즉, 베드로가 한 하나님께서 이방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을 하고 계신 것을 예언서, 이는 아모스서 인데요, 무너진 다윗의 집을 다시 세운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세운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남은 사람이 나 주를 찾고 내 백성이라는 이름을 받은 모든 이방사람들이 나 주를 찾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에 이방인들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λαός(laos,라오스)입니다. 이 단어는 구약의 헬라어 번역인 70인역에서 슥 2:11 “11 그 날에, 많은 이방 백성들이 주님께 와서 그의 백성이 될 것이며,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머무르시면서, 너희와 함께 사실 것이다. 그 때에야 너희는, 만군의 주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말씀에 나온것 처럼
λαός(laos,라오스)= 마지막 날에와서 새로운 시온에 거하고 하나님의 백서의 일부가 될 이방인
을 말합니다. 즉,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의 라오스 즉, 그분의 이름을 위한 하나의 백성으로 함께 모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됨을 위한 권면
하나됨을 위한 권면
야고보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권면하면서, 할례와 율법주의가 구원의 조건은 아니지만, 그렇다고해서 이방인의 모든 거룩하지 못한 문화와 관습이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함께 이루어갈 공동체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중요한 4가지를 권면합니다.
오랫동안 이슬람을 믿다가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에게 오늘 예수 믿었으니 삼겹살 파티 하자고 하면 그 사람은 아마도 도망갈 겁니다. 때로 믿음과 신앙, 종교는 먹는 문화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기독교 공동체는 식구 공동체 즉 식탁 공동체 였습니다. 여러분이 어느 집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사상과 같이 차려져 있고 여러분에게 마음껏 먹으라고 하면 드시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반대로 예수 믿은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에게 기독교의 언어 문화 습관은 어색할 수 있습니다.
성찬을 나누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기 위해서 이방인들은 자신들의 문화 중에 유대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한 배려를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유대인들의 정결예식과 관련이 있고, 특히 이방신 제사와 관련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15:18–21 (NKSV)
18 이것은 주님의 말씀이니, 주님은 옛부터, 이 모든 일을 알게 해주시는 분이시다.’19 그러므로 내 판단으로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이방 사람들을 괴롭히지 말고,
20 다만 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과 음행과 목매어 죽인 것과 피를 멀리하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21 예로부터 어느 도시에나 모세를 전하는 사람이 있어서,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그의 글을 읽고 있습니다.”
즉, 우상에게 바친 더러운 음식, 음행, 목매어 죽인것, 피를 멀리 하라고 합니다.
복음은 자유분방주의가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은혜로 구원 받은 것은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가장한 이중생활이 아닙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그 삶이 성경에서 말하는 정결한 삶으로서 사람들에게 덕을 끼쳐야 합니다. 술을 마실 수 있지만, 신앙을 위해서 절제하고 보란듯이 나의 자유분방함을 드러내 공동체를 깨드리는 것은 참된 경건이 아닙니다.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사도행전 _15장을 통해서 우리는 초대교회의 지혜를 배우고자 합니다.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토대를 세우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증거해 줄 수 있는 베드로와 같은 지도자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하게도 높은뜻연합선교회에는 김동호 목사님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지혜를 구할 목사님들과 믿음의 선배들이 계십니다. 또한, 그런 모든 순간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를 붙잡길 소망합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이방인도 유대인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높은뜻안성교회에 그러한 하나님의 도우심이 늘 함께 하길 기도합니다. 이시간 함께 찬양하고 교회를 위한 기도로 나아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