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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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한 자의 입술과 지혜로운 자의 말의 기준과 차이에 대하여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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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설명절 한가운데에 주일을 맞이합니다. 온 가족분들이 함께 모이셨을텐데도 불구하고, 오늘 주일예배를 드리시는 모든 성도님들께 하나님의 복이 늘 함께 하시길 축복합니다. 가끔 이런 명절에 보면, 조그만 말실수 하나 때문에 큰 일을 겪게 되는 사례들을 종종 경험하고는 합니다. 큰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말 한 마디 실수로 인하여 가족간의 큰 다툼으로 치닫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또한, 공동체에도 말로 인해서 공동체가 분열되고 와해되기도 합니다. 그 만큼 말에는 힘이 있습니다. 또한, 말의 수명(유통기한)은 없습니다. ‘무덤’까지 갑니다. 말로 인한 상처는 마음 속 깊이 묻어두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갑자기 툭하고 튀어져 나오게 되면 그 때 그 상처가 고스란히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 나라 속담에도 “혀 아래 도끼 들었다”라는 격언도 있듯이 말의 영향력은 엄청 셉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말’에 과한 교훈이 곳곳에서 증거되고 있습니다. 즉, <말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대표적으로 오늘 본문의 말씀 21절이 대표적입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유럽의 한 성당에서 신부가 성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한 어린아이가 그 신부를 도와서 성찬을 준비합니다. 그러다 그만 이 어린아이가 실수를 해서 포도주가 든 그릇을 땅바닥에 떨어뜨리고 말았습니다. 신부는 버럭 화를 내면서 저리 나가라고, 너 같은 녀석 필요 없다고 내쫓아 버렸습니다. 이 아이가 커서 무신론자가 되고 그리고 철저한 공산 국가의 독재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고의 ‘티토’ 대통령입니다. 그 동시대에 또 다른 한 성당에서 신부가 성찬을 준비하는데 어린이가 보좌를 합니다. 어린이가 그만 실수해서 포도주잔을 땅에 깨뜨려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신부가 웃으면서 “괜찮아 괜찮아! 너도 앞으로 큰 신부가 되겠어, 나도 너만 한때는 그런 실수를 많이 했거든,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훌륭한 신부가 됐잖아.” 그러면서 오히려 아이를 격려해주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답니다. 그 아이가 무럭무럭 커서 유명한 ‘플턴신’ 대주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말 한 마디로 인해 인생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뀌는 일도 일어나고는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말에 관한 교훈 2가지를 말씀드리려 합니다.
Ⅰ. 먼저 남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13절)
미련한 사람이란 상대방의 사연을 듣기도 전에 그 말을 가로채어 자신의 말을 하려는 사람을 말합니다. 왜 듣지 않으려 하겠습니까? 이미 자신의 마음 속에는 자신의 생각과 욕심으로 가득차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문 1절입니다.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오늘 본문인 잠언 18장의 말씀은 공동체 내에서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무리에서 떠나거나 갈라지는 사람들의 특징이 <자기 욕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또한 본문 2절-3절의 말씀처럼 “자기 의사만 드러내기를 기뻐”하고, 남을 “멸시하고 능욕”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자기의 말만 하려는 사람이 있는 공동체에는 항상 시끄럽습니다. 다툼이 끊이질 않습니다. 본문 6절의 말씀입니다. “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대표적으로 이런 모습들을 볼 수 있는 곳이 정치현장 아니겠습니까? 자신의 말만 늘어놓고 주장만 할 줄 알지, 남의 말은 귀담아들으려 하지 않습니다. 남의 말을 듣는 척 하지만, 그 순간에 내가 어떻게 반격할까 다음 말 할 것을 궁리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대화의 모습은 있지만, 문제에 대한 해결은 늘 평행선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공감(共感)”하며, “경청(敬聽)”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이것을 <공감적 경청>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태어난 이후 3년 정도 돼면 제대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말하기 전에 <듣기>부터 합니다. 잘 들으면, 잘 말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들음”에 대한 메시지가 항상 먼저 나옵니다. 신명기 축복장인 28장을 보시면, 모든 복이 임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청종(聽從)>입니다. 잘 듣고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신명기 6:4-5 말씀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계시록에서도 “교회여, 들으라” 야고보서 1:19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자녀들과 효과적인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도 ‘공감적 경청’이 필요한데, 그 중에서도 한 단계 깊이 들어가게 되면 <반영적 경청>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반영적 경청이란, 아이의 이야기를 비판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그대로 수용하며 아이의 감정을 이해하려는 태도로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감정과 마음을 적극적으로 이해하려는 마음의 자세로 들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들을 청, 聽>을 분해해 보면, 귀를 주인으로 먼저 해서(耳+主), 진지한 눈으로 바라보며(十+目), 한 마음으로(一+心) 듣는 자세를 말합니다.
성도님 여러분, <잘 배우는 사람>이란, <잘 듣는 사람>인데, <자신의 것을 잘 비우는 사람>을 말합니다. “잘 비워야 잘 배울 수”있습니다. 그래서 교만한 사람은 잘 배울 수 없고, 성숙과 성장도 없고, 늘 제자리에 머물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 15절의 말씀입니다. “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우리 하나님께서도 민수기 14:28에서와 같이 “내 귀에 들린대로 행하리라”고 말씀하시듯이 항상 우리의 세미한 음성을 듣고 계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국민MC 자격이 아닌 유재석씨, 최근 약 20년간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그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경청하고,공감해주고, 맞장구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다함께 “공감하며 들읍시다”>
Ⅱ. 말하려는 입술에 파수꾼을 세우시기 바랍니다. (8절)
“남의 말”하는 것이 “별식”과 같습니다. ‘뒷담화’하는 것은 아주 달콤한 음식과도 같아서 해도해도 지치지 않습니다. ‘악플’을 달면 묘한 쾌감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야고보서 기자는 말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3:6, 야고보서 3:8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을 출발하여 이제 가나안땅으로 향하고 있었을 때, 가데스 바네아라는 곳에 머물면서 가나안땅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을 포함한 12명의 정탐꾼들을 보내게 됩니다. 그 때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열 명의 정탐꾼들은 거대한 아낙 자손들이 살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돌아와서는 그들에 비하면 우리는 “메뚜기”에 불과합니다라고 부정적인 보고를 하게 됩니다. 결국, 하나님 말씀에 신뢰하지 못하고 부정적인 말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40년 여정의 길고 긴 훈련을 받게 된 것입니다. 만일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그들은 우리의 밥(먹이)”입니다라고 했더라면 당장 가나안땅으로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에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서 인생이 달라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시편 141:3 “여호와여 내 입에 파수꾼을 세우시고 내 입술의 문을 지키소서.”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입술의 문을 지키도록 하게 하시기 위해서 때로는 <침묵명령>을 하실 때도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때에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신 것은 ‘침묵명령’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에도 ‘침묵하라’는 말씀을 하실 때도 있으셨고,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예수님께서도 침묵하셨습니다. 성도님 여러분, <침묵하라>는 것은 그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침묵하면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집중하여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마주보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출애굽기 14:13-14에서 말씀하십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말을 할 때에는 입술의 문을 잘 지켜야 됩니다. 본문 20절의 말씀처럼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우리는 배부르며 만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사도바울은 말에 관한 중요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5:3-4입니다.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조차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에게 마땅한 바니라 /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오히려 감사하는 말을 하라.” 일본의 워렌 버핏이라 불리는 <다케다 와헤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아이들의 국민과자라 할 수 있는 계란과자(다마고 보로)를 만들고 있습니다. 그는 사업의 성공 비결을 “감사합니다”를 하루에 3,000번이상 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람을 만나 인사를 나눌 때에도 늘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성도님 여러분, 감사합니다라를 하루에 3천번 하기 운동을 했으면 합니다. 감사에는 기적의 능력이 숨겨져 있습니다. 감사할 때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났고, 사도바울이 감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에는 기본적으로 <감사의 제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님 여러분, 듣기는 속히 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말을 함으로 늘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무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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